교회는 교인들 분주히 드나들어
정교회는 문 닫히고 교인도 없어
온화하고 고대 유적 많은 관광지
성경 속 ‘버가모’, 페르가몬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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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에 있는 그리스 정교회 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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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앗달리아 칼레이시(Kaleici) 구시가 안에 있는 개신교회(성 바울 연합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마치고 골목길을 걸어서 나오자 인근에 또 다른 교회가 보인다. 동방 정교회에 속한 그리스 정교회로서 19세기에 세워진 교회이다.
예니카피(Yenkapi)라는 교회 이름이 출입문 옆에 붙어 있는데, 문은 굳게 닫혀 있다. 개신교회는 문이 열려 있고 교인들이 분주하게 드나드는데 비해, 이 그리스 정교회는 주일 예배를 안 드리는지 문이 굳게 닫혀있고 교인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앗달리아는 기원전 3세기 건국된 ‘페르가몬(Pergamon) 왕국’ 항구도시로서, 기원전 2세기에 앗탈루스(Attalus) 2세(통치기간, 기원전 160-138)가 세운 도시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앗달리아(Attalia 또는 Attaleia)라는 이름으로 기록된 이 도시는 앗탈루스 2세의 이름을 따라서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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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리아누스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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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페르가몬을 성경에는 ‘버가모’라고 표기한 것이다. 수도인 버가모가 왕국 서북부에 자리잡고 있음에 비해 앗달리아는 왕국의 가장 동남부 지역에 위치하였다.
페르가몬(버가모) 왕국은 오래 가지 못하고 기원전 133년 로마 제국의 속주가 되었으므로, 사도 바울이 앗달리아를 방문하였을 당시 이미 앗달리아는 로마 제국의 도시였다.
오늘날 앗달리아 구시가 중앙에는 로마 시대에 세운 거대한 문이 남아 있는데, 이것은 서기 130년에 로마 제국의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앗달리아를 방문한 것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다. 이 문은 이오니아식 기둥을 가진 3개의 아치문으로서 아름다운 디자인의 예술품이며, 오늘날 안탈리아를 대표하는 랜드마크 가운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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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의 좁은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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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주크 튀르키예는 앗달리아를 점령한 뒤 무슬림의 영광을 과시하기 위해 술탄 알라딘 케이쿠밧 1세(1190-1237)가 즉시 이 도시 중앙에 높은 미나렛(이슬람 사원에 세우는 뾰죽한 탑)을 세웠다. 이블리(Yivli) 미나렛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탑은 19년(1219-1238)에 걸쳐 완공되었는데, 일반 미나렛과 달리 탑 표면에 큰 커브가 들어가 있고 높이 39.6m 꼭대기까지 92개의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이슬람교가 국교와 다름없는 튀르키예는 종교적인 측면에서 이 탑을 안탈리아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다. 또 셀주크 튀르키예는 이 도시를 점령하고 이슬람 확산을 위한 신학자를 양성하기 위해 1239년 이곳에 이슬람 신학교를 세웠는데, 이 학교 교문 등 유적이 오늘날에도 이블리 미나렛 옆에 남아 있다.
안탈리아는 기후가 온화하고 주위에 고대 유적이 많고 좋은 해수욕장이 있으므로 튀르키예 국내에서도 여름 휴가철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고, 유럽 각지에서도 이곳에 와서 휴가를 보내는 관광객이 많아 도시 인근에 공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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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블리 미나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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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주혁 장로
세계 136개국 방문
성지 연구가, 국제 정치학 박사
‘권박사 지구촌 TV’ 유튜브 운영
영국 왕실 대영제국 훈장(OBE) 수훈
저서 <여기가 이스라엘이다>,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찾아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