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욱
▲정성욱 교수는 <티타임에 나누는 기독교 변증>, <10시간 만에 끝내는 스피드 조직신학>, <삶 속에 적용하는 LIFE 삼위일체 신학(이상 홍성사)> 등의 저서에서 보듯 조직신학 기본 교리들을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설명하는 탁월한 은사를 갖고 있다. ⓒ크투 DB
코로나19가 끝나가고 일상이 회복되며 본격적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할 2023년, 한국교회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크리스천투데이는 새롭게 출발하는 2023년 한국교회를 위해 현상을 통찰하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영락교회와 갈보리교회 등에서 목회하고 국제독립교회연합회를 설립한 박조준 목사와의 신년 대담에 이어,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복음주의 신학자’ 덴버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정성욱 박사를 서면으로 만났다. 현재 미국에서 교수 사역을 하고 있는 정성욱 교수는 최근 한국 방문을 통해 다양한 사역을 진행하기도 했다. 정 교수와의 인터뷰는 3회에 나눠 연재된다.

교회, 코로나 초유의 상황 창조적 해결책 모색 노력
온라인 예배로 교회론과 예배론 분쟁과 분열은 상처
양쪽 입장 모두 일리 있어, 존중·공존 성숙한 자세를

-다사다난했던 지난 2022년, 한국교회와 이민교회의 신학적 특성이나 흐름을 어떻게 보셨는지요.

“역사상 유례없는 전지구적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한국교회와 이민교회 모두 신앙의 의미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그동안 나태한 신앙생활 가운데 방향을 잃고 방황하던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깨어나기 시작해 각성을 경험했습니다. 이는 팬데믹이 가져다준 긍정적 열매였습니다.

더 나아가 교회들마다 과거의 전통과 관행을 무의미하게 반복하기보다,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팬데믹 상황에 대한 바른 신학적 해석의 필요성을 인식했고, 대면 예배와 대면 사역이 불가능해진 초유의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창조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타성에 젖어있던 교회들이 위기를 맞이하면서 생동력을 회복한 것이죠.”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우리의 신학과 신앙에 남긴 상처 또는 과제는 무엇일까요.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이 3년차를 맞이하면서, 한국교회와 이민교회는 이 팬데믹의 신학적 의미가 무엇인지 진지한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많은 교회들과 성도들은 팬데믹이 예수님 재림의 징조들 중 하나라는 종말론적 관점에서 해답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다만 종말론 자체의 혼돈과 혼란들로 인해, 많은 교회들과 성도들이 심각하게 방황하게 된 점은 부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예를 들어 극단적 세대주의나 음모론에 빠진 사람들은 아직도 코로나 백신을 ‘짐승의 표 또는 666’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는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잘못된 해석입니다.

미국교회의 경우 실내에서 마스크를 벗기 시작한 것이 지난 2021년 11월 경이었습니다. 이민교회도 마찬가지였구요.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이민교회들은 주일 대면 예배 회복에 큰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이민교회 역시 대면예배 회복률이 60-70% 정도에 머물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경우 아직 실내에서 마스크를 벗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년 상반기에는 마스크를 벗을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팬데믹 상황이 미국보다 길어지고 있기 때문에, 대면 예배와 오프라인 사역 회복률이 이민교회보다는 더 낮은 것으로 보입니다. 평균 50-60% 정도로 파악되고 있으니까요.

이 상황에서 비대면 또는 온라인 예배를 정상적 예배로 인정하고 온라인 사역과 오프라인 사역을 병행할 것인가, 아니면 온라인 예배를 비정상적으로 정죄하고 대면 예배와 오프라인 사역에만 집중할 것인가 하는 양자택일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신학적인 차원에서 교회론과 예배론에 대한 중요한 논쟁들의 촉매제가 되었습니다. 이 논쟁들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지금 현재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논쟁들 때문에 교회 내에서 분쟁과 분열이 초래된 것이 코로나로 인한 상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과제라면 역시 코로나 이후 교회론과 예배론을 어떻게 성경적이고 복음적으로 바르게 정립할 것인가가 되겠지요. 더 나아가 밝고, 건강하고, 행복하고, 균형잡힌 성경적 종말론을 어떻게 확립할 것인가가 되겠습니다.”

-말씀하셨듯 코로나19는 교회론과 예배론에 대한 많은 논의를 안겨줬습니다. 당시 이뤄졌던 논의와 과정, 결과를 지금 평가하신다면.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코로나 19는 교회론과 예배론에 대한 많은 논의와 논쟁을 초래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슈는 무엇보다 늘 예배당에서 드렸던 공동체의 공예배를 못 드리게 된 상황에서, 흩어진 공동체가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을 정상적인 예배로 인정할 수 있는가의 문제였습니다.

우선 좀 더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온라인 예배는 정상적인 예배라기보다, 비정상적이지만 어쩔 수 없는 예외적 상황으로 이해합니다. 따라서 팬데믹 상황이 정상화되면 온라인 예배는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반면 좀더 열려 있고 융통성 있는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무소부재하시기에, 예배당에서만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어느 곳에서든, 어떤 방식을 사용하든 살아계신 하나님을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따라서 온라인 예배와 온라인 사역은 존치돼야 하고, 어쩌면 더 확대돼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양쪽의 입장이 모두 일리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온라인 예배에 대한 해석 문제는 구원과 관련된 본질적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하기에 양쪽이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공존을 추구하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쪽이 다른 쪽을 정죄하면서 자기와 입장이 다른 사람들은 마치 지옥에 갈 것처럼 심판하는 자세는 주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의교회 비대면 온라인 생중계 예배
▲2021년 코로나19로 중계 인력만 참석한 가운데 사랑의교회에서 비대면 예배가 진행되던 모습. ⓒ크투 DB
대면 예배 가치 강조, 교제 중요성과 가치 재교육 필요
온라인 예배로 개인주의적 신앙생활, 모두에게 불이익
교회, 공간 개념 넘어 공동체 함께함과 교제 유익 설득

-말씀처럼 비대면 예배가 널리 퍼지면서, 특히 젊은이들과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교회에 가지 않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이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돌아오게 할 방안은 있을까요.

“비대면 예배 또는 온라인 예배가 가능하다는 인식은 이제 상당히 많이 퍼졌습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 예배의 정당성을 수용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온라인 예배와 사역의 정당성에 대해 좀 더 자유롭고, 열린 자세를 취하는 사람들 중 대면 예배, 특히 주일 공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안타깝습니다.

특히 젊은이들과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여러가지 이유와 핑계를 대면서 주일 공예배를 무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젊은이들은 간편함이나 편리함을 추구하고, 학부모들은 어린 자녀의 건강과 안전 문제를 이유로 공예배를 간과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젊은이들과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대면 예배로 돌아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첫째, 대면 예배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해 한번 더 강조해야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온라인 예배는 가치가 없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둘째, 교회 공동체에 속한 지체들이 특정 시간과 공간에서 실제로 만나 인격적으로 교제하는 것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한 재교육이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온라인 예배의 정당성을 빌미로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신앙생활에 빠진다면, 어느 누구에게도 유익할 수 없지요.”

-연관된 질문입니다. 교회가 단지 예배드리는 곳이라면, 굳이 출석하지 않고도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면 될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기대할 것은 무엇이고, 교회는 우리에게 무엇을 주어야 할까요.

“지금 기자님은 교회를 예배드리는 공간 또는 예배당과 일치시키고 계신 듯합니다. 하지만 분명하게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성경이 말하는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이지요.

따라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에 나온다는 표현은 사실 정확한 표현은 아닙니다. 도리어 교회 공동체가 함께 예배드리기 위해 예배당에 모인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지요.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 구성원들이 흩어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된 시간에, 함께, 마음을 합하여 온라인이라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예배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성경적 근거는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온라인 예배도 여전히 정당한 예배입니다.

다만 공동체가 흩어져서 예배하기 보다, 특정 공간에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 이후 인격적인 친교를 나누는 것이 가진 유익들이 많습니다. 그런 유익들을 강조하고 극대화해 준다면, 온라인 예배에 머물러 있는 분들이 오프라인 공예배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입니다.”

로봇 설교
▲로봇 설교가 ‘BlessU-2’. ⓒ유튜브 캡처
메타버스와 AI 활용 불가피, 거부하면 현대판 아미쉬
문화·과학기술 발전 수용, 하나님 나라 확장 이용을
영적 터치와 인격적 교감, AI가 흉내낼 수 없는 영역

-이제 메타버스 등으로 ‘가상현실 예배’, ‘AI 설교’까지 가능해졌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평가하시고, 교회나 목회자들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사실 코로나19 팬데믹은 ‘뉴노멀 (New Normal)’ 시대로 우리를 이끌었습니다. 그것은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 세계와 삶의 ‘실재성(reality)’을 엄청 높여준 것이죠.

과거에는 오프라인 세계와 삶만을 실재적인 것으로 인식했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인 지금은 온라인 세계와 삶도 오프라인 세계와 삶만큼 실재적인 것임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온라인 세계는 더 확대되고, 깊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메타버스 세계죠. 메타버스 기술은 ‘가상현실 예배’를 가능케 하고 있습니다. 또 최근에 급격하게 발전하는 AI(인공지능) 기술은 앞으로 AI가 설교와 상담을 할 수 있는 시대를 앞당기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러한 현상은 불가피하고, 더 이상 우리가 막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미국 아미시 공동체(Amish Community)는 지금도 전자제품이나 자동차 등을 거부하면서, 과거의 삶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메타버스와 AI가 지배할 미래 세계 즉 디지털 세상에서 아날로그의 삶을 고집한다는 것은 현대판 아미시공동체가 되는 것이지요.

저는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가야할 길은 문화로부터의 ‘분리’가 아니라, 문화와 과학기술의 발전을 수용하면서 그것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가는 ‘참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참여라고 해서 무비판적 추종이 되어선 안 되겠지요. 비판적 사유와 분별력을 발휘하는 참여가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목회와 설교와 상담까지도 AI가 감당할 수 있는 세상이 올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와 설교와 상담의 본질이 영적 터치와 인격적인 교감이라면, AI가 흉내낼 수 없는 영역은 여전히 남을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깊이 인식하면서 현대 목회자들은 하나님 말씀에 기초한 영적 지도력을 길러야 하고, 깊이 있는 인격적 감화를 줄 수 있는 덕성을 함양해야 합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어떻게 보면 목회자들이 본연적으로 힘써야 할 부분들을 더 극대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이죠. 즉 목회공학적 측면은 더 약화되고, 목회본질적 측면이 더 강화되고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메타버스나 AI 발전이 목회자들의 무덤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피상적입니다. 도리어 목회자들만이 할 수 있는 고유 영역과 기능은 여전히 생생하게 남을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