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23년 1월 1일 주일 오전 11시
장소: 송명희 시인 집
본문: 고린도후서 12장 8-10절

송명희 김명혁
▲지난 6월 22일, 송명희 시인 60회 생일 축하 모임에 참석한 김명혁 목사.
저는 송명희 시인을 아주 좋아하고 사랑하는데 이따금씩 송명희 시인 집을 방문해서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간단한 설교를 하곤 합니다. 오늘 2023년 1월 1일 새해 첫 날이고 첫 주일인 오늘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송명희 시인이 오늘 저 보고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하라고 부탁을 했기 때문입니다.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라는 고백은 사도 바울이 거듭 반복한 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약함”에 대한 사도 바울의 간절한 고백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내가 부득불 자랑할찐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후 11:29-30).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1-10).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 13:4-5).

제가 작년 2022년 6월 22일 주일 송명희 시인 집에 와서 예배를 드리면서 “약함과 가난함을 귀중하게 보시는 예수님”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한 일이 있는데 그때 설교 내용을 요약해서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제부터 “약함과 가난함을 귀중하게 보시는 예수님” 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성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늘 영광을 다 버리시고 세상에 오셔서 33년 동안 극심한 약함과 가난함의 삶을 사시다가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셨다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태어나실 곳이 없어서 마구 깐에서 태어나셨고 태어나시자 마자 애굽으로 피난을 가셔서 피난 생활을 하셨는데 결국 성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시면서 극심한 “약함과 가난함”의 모습을 분명하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결국 십자가 복음의 특성은 “약함과 가난함” 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만 왕의 왕이신 성자 예수님께서 로마 군인들에게 붙잡히시고 십자가에 달려서 조롱을 당하시고 죽임을 당하신 일보다 더 약해지시고 더 가난해지신 일은 이 세상과 우주에 없을 것입니다. 사실 십자가의 복음은 역설적입니다. 약할 때 강하고 어리석을 때 지혜롭게 되는 것이 십자가 복음의 특성입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 복음의 특성을 묘사하면서 사람들의 눈에는 미련한 것이고 약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 1:23,25).

사도 바울은 십자가 복음을 전할 때 헬라의 지혜로 포장하지 않고 로마의 웅변술로 빛나게 하지 않기로 작정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설교를 너무 지혜롭고 유창하고 멋지게 하지 않기로 작정했다는 말씀입니다. 순수한 십자가의 복음을 변질시키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약하고 가난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의 복음만을 바로 알고 순수하게 전하기로 작정했다고 지적했습니다(고전 2:1,2).

사도 바울은 그 다음 복음 전도자의 특성도 자신의 “약함”과 “어리석음”을 깊이 인식하고 인정하고 지니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파벌을 만들어 분쟁하던 고린도 교회가 지도자들을 지나치게 높이며 우상화 하려고 했을 때 사도 바울은 그와 같은 시도를 단호하게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비하했습니다. “바울은 무슨 물건이며 아볼로는 무슨 물건이냐?”(고전 3:5). 몇 줄 다음에는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단어로 “아무 물건도 아니라”(고전 3:7) 라는 멸시적인 말까지 썼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며 “나는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고전 2:3) 라고 했습니다. “나는 만물의 찌끼”(고전 4:13) 즉 시궁창에 내버리는 음식물의 찌꺼기 같은 존재라고까지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고전 4:13). 그리고 고린도후서에서는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나는 나에 대해서 약한 것들과 부족한 것들을 자랑하노라 그 이유는 내가 약할 때에만 강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약할 때에만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와 함께 하기 때문이다”(고후 12:5,10).

존 스토트 박사는 오늘날 세계 곳곳을 다녀보아도 사도 바울처럼 자기의 약함과 어리석음을 진솔하게 드러내는 진정한 기독교의 지도자들을 찾아보기가 너무나 어렵다고 고백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 지도자들은 너무 강하고 지혜롭고 부요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수많은 교회가 “나는 부자라”고 자랑했던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다음 복음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자격도 “약함”과 “어리석음”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6-29).

초기 한국교회는 참으로 약했고 가난했고 어리석었고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겸손히 땅에 엎드려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만 의지한 적이 있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적으로 약하고 가난하고 어리석고 힘이 없고 소망이 없어 보이는 한국 교회와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시고 부흥과 축복의 손길을 펴신 것이었습니다. 한국교회는 급속한 성장을 이루게 되었고 민족과 나라까지 큰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한국교회는 너무 커지고 너무 강해지고 너무 지혜로워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복음의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고 사회로부터 실망과 불신을 받기에 이르렀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비판의 소리를 겸허히 수용하며 자신을 돌아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는 사도 바울처럼 약해져야 하고 어리석어 져야 한다고 생각해 봅니다. 왜냐하면 성자 예수님께서 “약해 지셨고” “가난해 지셨고” “비천해 지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사 53:3). 저는 고등학생과 대학생 때 헨델의 메시야를 감상하면서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He is despised and rejected) 라는 가사의 음악을 들으면서 깊은 감동과 충격을 받곤 했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우리 대신 멸시를 받으시고 싫어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너무너무 약해지셨고 너무너무 멸시를 받으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불치병에 걸리는 약함에 처했을 때 약함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성자 예수님께서는 사도 바울에게 이렇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고후12:8-9).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약해질 때에 우리와 함께 하시고 주님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머물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 복음의 특성은 “약함과 가난함과 어리석음" 입니다. 이제 “약함과 가난함과 어리석음”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체험하여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이 우리 고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10).

송명희 시인이 작사한 ‘나 가진 재물 없으나’를 읽어드리겠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걸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나 남이 못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못한 사랑 받앗고 나 남이 모르는 걸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이것이 작년 2022년 6월 22일 주일 송명희 시인 집에 와서 예배를 드리면서 “약함과 가난함을 귀중하게 보시는 예수님” 이란 제목으로 설교한 설교의 내용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자기 몸의 약함을 통해서 십자가 복음의 특성을 순수하고 자상하게 나타내 보인 몇 사람들의 귀중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조니 에릭슨은 장래가 촉망되던 예쁜 소녀였는데 다이빙을 하다가 머리를 부딪혀서 전신 마비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도 자신도 모두를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몸에 지닌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이 결국에는 보석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조니 에릭슨은 몸도 손도 발도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의 몸을 가지고서도 천사와 같은 아름다운 얼굴과 목소리로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를 드리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의 영혼으로부터 울어 나오는 노래와 간증과 입으로 붓을 물고 그린 그림 등은 너무너무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작품들이 되었습니다. 빌리 그래함 박사님 하고 간증도 했습니다. 불우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격려와 도움의 손길을 펴기도 했습니다.

저는 조니 에릭슨의 간증을 직접 두 번 들으면서 마치 천사의 모습을 보는 듯했습니다. 너무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조니 에릭슨은 극심한 가난과 고난을 통해서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온 세상에 전파하는 너무 귀중한 선교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찬송가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패니 크로스비는 태어난 지 몇 주 만에 맹인이 되어서 95년 평생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맹인으로 “고가난과 난과 슬픔과 아픔”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패니 크로스비는 이 세상에서 제일 많은 찬송가를 쓴 찬송가의 여왕이 되었습니다. 크로스비는 9천여 개의 찬송시를 썼는데 우리 찬송가에도 23개나 포함되어있습니다. 제가 가장 즐겨 부르며 깊은 은혜를 받는 찬송가들은 패니 크로스비 여사가 지은 찬송가들입니다.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패니 크로스비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1820년 3월 24일 미국 뉴욕 주의 작은 마을 푸트남에서 태어났는데 돌팔이 의사의 잘못된 약물 치료로 생후 6주부터 95세까지 맹인으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패니 크로스비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패니 크로스비는 부흥 집회에 참석해서 간증을 많이 하곤 했는데 어느 부흥 집회에서 그를 동정하는 목사님에게 다음과 같은 고백을 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태어날 때 하나님께 기도를 할 수 있었다면 저를 맹인으로 태어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천국에 이르렀을 때 내 눈이 제일 먼저 보고 좋아할 수 있는 얼굴이 나의 주님의 얼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보배로운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녀는 한 평생을 살면서 수 많은 슬픔과 고통과 아픔을 경험했지만 거의 한 번도 원망이나 불평이나 증오의 마음을 품지 않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오히려 감사하고 찬송하면서 한 평생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녀가 92회 생일을 맞았을 때 그의 생일을 축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있으면 내게 데려오세요. 그 사람과 악수하고 싶어요.”

패니 크로스비는 주님과 천국을 이 세상의 그 어느 사람보다도 가장 순수하고 뜨겁게 사랑하고 사모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쓴 9천여 개의 찬송시들이 지금 세계의 많은 성도들이 가장 즐겨 부르는 찬송시들이 되었습니다. 그는 ‘찬송가의 여왕’이었습니다.

닉 부이치치는 두 팔도 두 다리도 없지만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니고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수년 전에 닉크 부이치치를 대구에서 만났는데 그의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했고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닉 부이치치는 세계 곳곳을 찾아 다니면서 절망 중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며 소망과 용기를 불어넣는 소망과 행복의 천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이 주신 기쁨과 위로를 전할 수 있어 너무 감사합니다” “나 역시 많은 사람들이 들려주는 역경 스토리를 통해 많은 은혜를 받습니다.” 너무너무 귀중하고 보배로운 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닉크 부이치치는 극심한 가난과 고난을 통해서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온 세상에 전파하는 너무 귀중한 선교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경직 목사님이야말로 젊었을 때는 폐결핵 말기의 병을 지니고 사셨고 그리고 후에는 온갖 종류의 질병을 몸에 지니고 한평생 고난과 고통을 당하면서 사셨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그의 생애의 마지막 2년 동안은 노환으로 인한 많은 고난과 아픔을 체험하셨습니다. 두 다리를 수술하는 고통도 겪었고 말을 잘 하지 못하는 답답함도 당하셨습니다. 특히 마지막 6개월 동안은 가래가 너무 끓어 목에 구멍을 뚫고 지내는 극심한 괴로움도 겪으셨습니다. 한 목사님은 저의 손을 붙잡고 “늙는 것이 재미없어!”라고 노약의 서글픈 심정을 토로하시기도 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한평생 약함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절감한 사람인 동시에 약함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통해서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체험하고 간증한 사람이셨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약할 때에 강하니라” 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셨습니다.

“인간이 약할 때는 흔히 겸손하여 집니다. 건강하던 이가 중병에 걸려 약해지면 겸손하여집니다. 인간이 약하여 질 때에 그 생각이 깊어집니다. 우리가 약할 때에 기도를 더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내가 약할 때에 곧 강함이니라’ 라고 외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경직 목사님이야말로 극심한 약함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통해서 주님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를 온 세상에 전파하는 너무나 귀중한 사역자가 되셨다고 생각합니다.

송명희 시인도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통해서 보석으로 만들어진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송명희 시인은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통해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주님의 모습을 지닐 수 있는 보석과 같은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송명희 시인의 노래는 모두를 감동시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송명희 시인은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통해서 주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온 세상에 전파하는 너무 귀중한 사역자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성 프랜시스는 성경 말씀들을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이면서 가난과 고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과 죽음을 귀중하게 받아 드리면서 살았는데 다음과 같은 고백을 자주 했습니다. “가난은 나의 애처이고 고난은 나의 스승이고 죽음은 나의 자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가난과 고난과 죽음의 삶을 본받기를 간절히 소원하면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과 버림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상속권은 물론 지식과 학문도 버렸습니다. 성 프랜시스는 두 벌 옷을 가지지 않고 신을 신지 않고 맨발로 걸어 다니며 한 평생을 가난하게 고통스럽게 살았습니다. 성자 예수님을 닮기를 간절히 소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중에 성 프랜시스의 영향을 많이 받으신 한경직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도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아픔의 삶을 사셨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집도 자동차도 재산도 은행의 통장도 없는 가난과 버림과 청빈의 삶을 사셨습니다. 손양원 목사님도 가난과 고난과 청빈의 삶을 아주 철저하게 사셨습니다.

사실 “한국의 작은 예수”라고 불리시던 장기려 박사님도 아시아에서 최고의 의사라고 존경을 받으시던 분이셨는데 모든 소유를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고 3무 4무 5무의 가난과 청빈의 삶을 사셨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무디라고 불리시던 한국교회의 최고의 부흥사셨던 이성봉 목사님도 사례비를 집으로 가져오시는 때가 거의 없이 모든 곳의 불우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시며 가난과 버림과 청빈의 삶을 사셨고 나중에서 소유하고 있던 자기의 작은 집까지 팔아서 불우한 사람들을 도왔기 때문에 사모님과 자녀들은 거지와 같은 가난의 삶을 사셨습니다.

너무너무 놀라운 일이고 너무너무 귀중하고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난하게 사는 것이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선포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모순되는 듯한 놀라운 복음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고난”의 유익함을 계속해서 지적했습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 119:67).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히 13:12).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 2:21).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벧전 4:16).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막 8:31).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고후 1:5).

사도 베드로는 처음에는 고난을 싫어하고 반대했지만 디베랴 바다가에 나타나신 부활의 주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통곡하면서 회개한 다음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의 길로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사실 한국교회 귀중한 신앙의 선배님들은 거의 모두 극심한 고난을 당하셨는데 길선주 목사님, 이기풍 목사님, 최권능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들께서 모두 극심한 고난을 당하셨고 대부분 순교의 길로 달려가셨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자기가 쓸데 없고 병든 자들에게라야 쓸데 있다는 좀 이상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마 9:12). 그리고 각색 병든 사람들을 찾아 다니시면서 긍휼과 사랑과 치유의 손길을 펴셨습니다(마 8장과 9장).

건강하고 강한 사람들보다는 약함과 질병을 지닌 사람들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푸신다는 모순되는 듯한 놀라운 복음진리는 욥에게도 나타났지만 사도 바울에게 가장 분명하게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치유의 은사도 받았고 삼층 천에 올라갈 정도의 놀라운 영적인 체험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불치의 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자기의 불치의 병을 고쳐달라고 성자 예수님에게 세 번이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고쳐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약함의 유익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사도 바울은 불치의 병인 약함을 지니고 오히려 기뻐하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들을 다시 인용합니다.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 1:24,25).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고전 1:27).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고전 2:3).

이것으로 오늘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마무리 합니다. 사랑하는 송명희 시인과 박경남 간사와 우리 모두에게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는 귀중한 말씀을 하신 성자 예수님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며 축원합니다.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명예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