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아기 예수 탄생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낮아짐 사건이다.
한국교회는 낮아지신 예수님을 따라서 자신의 높아짐을 회개하며 낮아져 이웃을 섬겨야 한다.

김영한 박사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12월 25일 성탄절은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날로 기독교가 추정하고 감사 찬양하는 날이다. 주후 350년 로마 가톨릭 주교 율리오 1세가 12월 25일을 예수 탄신일로 지정했지만 탄신일의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다. 당시 12월 25일을 그리스도 탄신일로 정하자 로마 제국의 우상를 거절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던 수많은 기독교 신자들은 적잖이 놀랐다. 왜냐하면 이 날은 로마 태양신 숭배 축제일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이렇게 논란을 야기하면서 시작한 역사적 기원을 냉철하게 직시하면서 미신적 습관으로 날짜를 숭배하거나 혹은 연말연시 흥청망청 세속 문화에 매몰당하지 않고 오직 성육신 사건으로서 하나님 아들 예수 탄생의 본질과 의미에 더욱 충실해야만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탄생은 하나님의 아들이 메시아로 오신 영원한 언약의 성취 사건이다. 시편 2편 7절에 여호와는 자신이 ‘아들을 낳았다’고 하신다. 언약이지만 이미 완성하신 사건으로 선언한다. 동일한 말씀으로 사도행전 13장 33절에서 사도의 선언으로 확증된다. 요한복음 5장 39절에 예수님이 선언하신 바에 따르면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구약의 모든 기록은 영생을 약속한 말씀이며 그것은 바로 자신이라고 확정하신다. 하늘의 지혜이신 말씀(로고스, 요 1:1)으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의 영광은 잠언 8장 22-31절에 더 놀랍게 나타난다. 창세전 그리스도의 영원한 출생, 창조시 그리스도의 창조주 되심(잠 8:30) 그리고 에덴동산 창설의 주체임을 밝힌다.(잠 8:31) 육신의 몸을 입으셨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신성은 한순간도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다. 자애로운 어머니 마리아의 품속에 안겨있는 교회 전통에 이어온 아기 예수 형상의 온갖 우상 이미지에 매몰되어 왜곡된 그리스도 탄생의 성경적 의미는 성탄절에 즈음하여 성경적으로 바로잡고 바른 의미를 반드시 회복해야 한다. 나아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영광을 이 땅에 ‘신적 평화’(눅 2:14)로 완성하신 만왕의 왕 만주의 주(계 17:14)의 자비와 긍휼도 다시 새겨야 한다. 이에 샬롬나비는 다음과 같은 성탄절 논평을 제시하는 바다.

1. 예수 탄생은 창세전 성부에 의한 성자의 영원한 출생을 역사적으로 완성한 초자연적 기적 사건이다

하나님은 태초에 창조 사역을 하기 전에 이미 그리스도를 가졌으며 그를 우주 만물의 통치자로 세우셨다.(잠 8:22-23) 땅과 바다와 큰 샘, 산과 언덕이 생기기 전, 세상 먼지의 진원지도 확정하기 전 영원한 아들을 ‘낳으셨다.’(잠 8:24-25) 그리고 하늘과 궁창, 바다와 구름과 우주, 바닷물과 강의 경계를 모두 정할 때 ‘창조주’(잠 8:30)는 아버지 곁에서 항상 기뻐했다.

그런데 영원에서 확정된 하나님의 아들이 그리스도 탄생의 근원과 본질임을 많은 신자들은 망각하고 있다. 아기 예수의 이미지를 단지 우리 자신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신 단지 고마운 분 정도로 예수 탄생의 이미지를 축소하거나 왜곡한다. 이는 성자의 영원한 출생과 그의 창세전 신성과 사역을 망각한 결과이며 결국 성경진리에 대한 무지가 그 원인이다. 따라서 성탄절은 성부와 성자의 영원하신 존재와 사역에 기초한 시간 역사적 위대한 사건임을 우선 명심해야 한다.

2. 예수 탄생은 창세전 영원한 신적 출생에 근거한 처녀 잉태로 완성된 표적 사건이다

오늘날 성탄절은 점점 세속화하고 있다. 국가 대부분이 성탄절을 국가 공휴실로 지정하고 있다. 기독교 문화에 속한 영미 유럽에서는 한 주 이상의 성탄절 휴가를 보낸다. 휴가가 성탄절의 지배적 의미다. 예수 탄생의 진정한 의미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도 마찬가지다. 성탄절 문화는 이미 상업화하여 교회 내에서도 예수 탄생의 본질과 의미는 회복할 수 없을 만큼 타락한 상태다. 그러므로 예수 탄생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 2:7)는 시편 초두의 말씀은 예수 탄생의 본질이 성부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성자를 이 세상에 자신의 이름으로 보낸 사건에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는 남성과 여성의 관계로 자녀를 낳는 사건과는 차원이 다른 신적 출생의 신비로운 표적적 사건이다. 하지만 현대 신학과 교회의 풍토는 점점 예수의 처녀 잉태 사건을 역사적 사실로 강조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사야 7장 14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에 나타난 ‘처녀’를 ‘여자’로 바꾸어가고 있다. 처녀 잉태에 의한 예수 탄생은 인간의 출생 사건의 눈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이 사건은 창세전 성부에 의한 성자의 영원한 출생을 표적적 사건으로 확정하기 위한 신적 계시 사건이다.

3. 처녀의 몸에서 탄생하신 그리스도 예수는 본성이 신성이며 아버지 하나님과 동일 본체다

처녀의 몸에 잉태되고 출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은 결코 피조물의 지성과 감정과 정서로는 결코 평가할 수 없는 차원에 속한다. 이사야 9장 6절은 예수 성탄의 의미가 얼마나 놀라운 사건인지 반드시 명심하게 한다. 탄생하신 예수에 대해 핵심 개념만 모아본다. ‘한 아기-한 아들-정사(政事)를 돌봄-기묘자-모사-전능하신 하나님-영존하시는 아버지-평강의 왕’이다. 이 모든 뜻을 담고 처녀의 몸에서 탄생하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다. 이 모든 개념들의 총화(總和)는 신구약 성경에 모두 담겨있다. 결국 성탄절 의미의 퇴락은 성경 진리에 대한 교육 부재의 결과다. 성탄절 축하 예배에 참석하여 ‘기쁘다 구주오셨네’를 왜 부르는지 그 의미조차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대해 누구보다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은 반드시 자신을 되돌아 봐야 한다.

4. 만왕의 왕 평강의 왕으로 오신 예수는 이 땅에 영원한 평화의 나라를 세우고자 하신다

성탄절에 구세주로 오신 예수는 창조주(잠 8:30)와 심판주(시 2:9; 말 4:5)로서 아버지가 맡긴 영원한 나라(눅 22:29)를 오직 진리의 말씀으로 건립하신다. 자신의 백성 곧 ‘땅에서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눅 2:14)에게는 ‘평화(평강/샬롬)’를 확정해 주신다. 이 평화는 절대적 성격을 갖는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롬 8:38)도 결코 침범할 수 없는 절대적 아가페의 사랑이 지배한다. 첨단 살상 무기로도 강탈할 수 없는 샬롬이다. 세계 교회가 성탄절 축하 예배를 성경적 의미로 들이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모든 폭력을 교회 내에서부터 우선 끝내야 한다. 이사야 선지자와 미가 선지자는 이 땅에 메시아가 오면 ‘칼은 보습이 되고 창은 낫이 되어 나라들이 칼로 치지 않고 전쟁 연습도 하지 않으리라’(사 2:4; 미 4:3)고 예언했다. 그런데 한국 교회 많은 목회자들이 한국 교회와 사회를 분열시키는 데 앞장선다. 권력의 하수인이 되려는 저급한 목회자들이 너무 많다. 이전투구의 정치인들보다 심할 정도로 보수/진보로 진영을 갈라치기한다. 주님의 몸 된 교회는 보수든 진보든 오직 그들에게 평강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한다. 평강의 왕은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더러운 여자나 배신한 베드로나 성도를 죽이던 바울이나 십자가에 함께 달렸던 강도라도 천국으로 인도하신다. 한국 교회가 갈수록 정치적 색깔을 보이면 보일수록 이는 평강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샬롬 통치를 전면으로 대적하는 적그리스도 세력으로 전락할 것이다.

5. 평강의 왕으로 오신 예수는 세상의 대속주와 죄인의 구주로 오신 영원한 로고스다

예수 그리스도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계 12:5) 심판주다. 세상에 대한 심판은 세상의 완전한 멸망이 아니라 세상에 남아있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고자 함이다.(요 12:47) 말씀이 육신이 되어 피조물 가운데 탄생하신 예수는 아버지의 독생자 영광이며 자기 백성을 위해서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 1:29)이다. 창조주이시며 심판주이지만 그리스도는 세상을 대속하는 구주이며 죄인의 저주를 모두 소멸하신 구속주다. 이는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요 1:18)의 신적 계시 사역이다. 하지만 교회 문화와 세상 풍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신적 사역을 너무도 인간중심적이며 타락한 세속 문화로 변질시키고 있다. 점점 경박스러워지고 세속적 문화로 변질하는 성탄 본래의 의미를 반드시 진리의 말씀으로 회복해야 할 것이다.

6. 평강의 왕 탄생은 전쟁 희생자에 대한 차별 없는 무한 구제와 긍휼을 요구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022년 2월 24일부터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 사망자는 6,655명이며 부상자는 10,368명이다. 어린이 사망자는 419명이며 그 부상자도 799명이다. 의료 시설 387곳, 학교 230곳 이상이 피해를 입거나 황폐화했다. 현재 우크라이나 난민은 789만 명 이상으로 추정하며 90% 이상이 어린이와 여성이다. 러시아 측 희생자까지 고려하면 전쟁이 가져온 처참함을 수치를 나타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구호 활동은 모든 포로에게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침략군 포로라고 하더라도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해 제네바 협약에 따라 한 인간으로 대우해야 한다. 올해 초 우크라이나 군에 항복한 러시아 병사에게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빵과 따뜻한 홍차를 대접한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주민들은 이 병사가 러시아에 있는 가족들과 영상 통화를 할 수 있도록 도왔으며 러시아 포로는 손에 빵을 쥔 채 눈물을 쏟았다. 성경에 보면 아람 군대가 북이스라엘을 침범했을 때 엘리사 선지자는 그들의 눈을 멀게 하여 포로로 잡아 사마리아 성으로 데리고 온다. 왕이 그들을 죽이자고 하자 오히려 엘리사는 떡과 물을 대접하고 자기 나라로 돌려보낸다.(왕하 6:18-23) 다가오는 성탄절은 세계 교회가 피해자 국민뿐 아니라 침략군인 원수도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마 5:44) 화해와 평화를 어느 때보다 더 적극 실천하고 또한 강하게 촉구해야 할 것이다.

7. 예수 그리스도는 양보없이 싸우고 있는 한국사회의 진보와 보수에게 정의로운 평화를 명하신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은 세월호 참사를 비롯하여 모든 사건에서 서로 상대 진영의 입장을 부정하면서 극단적인 대립의 상황으로 몰고 가 국민들을 불안하고 하고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싸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찬성세력은 좌파의 역사인식이 심각하게 왜곡되어 국가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고 비판하고 국정화 반대세력은 역사국정화가 친일과 유신독재를 미화하려는 시대착오적인 시도라고 비판한다. 보수 진보 양 진영 모두 상대방을 파트너로 인정하고 상대방의 견해를 공감하고 경청하려는 태도가 결여되어 있다. 노조는 의사표시를 법이 정해준 테두리를 무시하고 불법 투쟁으로 우리 산업을 마비시키고 있다. 노조는 법 테두리 안에서 준법투쟁해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서로 대림하는 이 땅에 서로 용납하고 장점을 받아들이는 평화를 그분의 낮아지심으로 보여주셨다. 그리스도가 가신 십자가의 길은 상대방에 대한 겸손과 자기희생의 길이다. 한국사회는 이러한 우리 시대의 평화의 길이신 그분을 바라보고 우리 땅에 서로 용납하는 정의로운 평화를 실천해야 한다.

8. 한국교회는 낮아지신 성탄 예수님을 따라서 자신의 높아짐을 회개하며 낮아져야 한다.

한국교회는 가난하고 천하게 자신을 비어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신 주님의 삶을 바라보면서, 특히 교회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면서 낮아지고 섬기는 본래의 모습을 되찾기를 요청한다. 교회 지도자들은 이미 명예와 돈과 권력을 가지고 기득권층이 되어버린 자신의 모습에서 나와서 지극히 작은 소자와 자신을 동일시 하신 주님의 모습을 실천하기 바란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초창기 한국교회가 작은 무리로서 조국 근대화와 민족 독립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자신을 헌신한 선구자적 희생의 모습으로 이 성탄절 자기를 낮추신 예수의 모습을 재현하기를 소망한다.

2022년 12월 22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