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고데모 Nicodemus
▲헨드릭스 보마레인의 ‘Christ talking with Nicodemus at night'.
본문: 요한복음 7장 50-52절

니고데모가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파의 한 사람입니다. 유대 최고 의회기관인 산헤드린 공의원입니다. 그렇게 신분이 높은 니고데모가 주님을 존경하여 밤에 찾아와 단독 인터뷰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주님을 따른 사람 중 신분이 가장 높은 사람입니다. 본문을 배경으로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먼저는 율법의 편에 서야 한다, 바리새인의 편을 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50-51절)”.

니고데모는 구약의 신명기를 근거로 항변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19장 15-20절에서는 모든 죄에 관하여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을 참고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거짓 증인을 방지하기 위해서 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빙자하여 주님을 재판에 넘기려 합니다. 그래서 긴장감이 작용하는 상황입니다. 원래 잘못된 의도는 긴장감이 높아지게 됩니다. 이때 니고데모는 바리새인들의 태도에 대해 잘못을 지적합니다.

니고데모는 평의회 의원으로서 피고의 말을 듣기 전에 심판을 집행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피고를 행정관 앞에 소환해서 변호하는 말을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니고데모가 입장이 난처해짐을 감수하면서 용기를 낸 결과입니다. 율법의 문제를 거론하면서 주님의 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반대되는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주님의 시신을 성모 마리아가 안고 있는 성화가 유명합니다. 그 성화를 미켈란젤로가 그렸습니다. 주님의 시신을 옆에서 거들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니고데모입니다. 니고데모는 끝까지 주님과 함께 했다는 장면입니다.

그 감동적인 장면을 미켈란젤로는 그림으로 그려 후대에 증거를 삼았습니다. 잘못된 율법의 편에 서지 않는 믿음의 니고데모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2. 판결이 부당하지 않다
반대하지 말고 바리새인들을 따르라는 말입니다.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52절)”.

바리새인들은 항변하는 니고데모를 하찮은 사람으로 취급합니다.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하고 무안을 주는 태도를 취하면서 말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지금 거대한 음모를 꾸미는 중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에게는 지금 사실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정당성만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잘못된 의도를 포장하기 위해 더 많이 억지를 부립니다.

그 억지는 니고데모에게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고 소리를 높인 이유입니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너도 갈릴리당이냐?”입니다. 이는 주님을 경멸하면서 니고데모를 폄하시키는 모습입니다.

주님은 분명 성경 예언대로 베들레헴에서 탄생했습니다. 성경학자들 중에는 주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바리새인들은 알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천사의 증언을 따라 목자들이 베들레헴에서 나셨다 함을 들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목자들이 백성들에게 한 말을 기이히 여기더라(눅 2:15-18)고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주님의 탄생을 베들레헴으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주님을 갈릴리 출생으로 몰아갑니다. 메시아의 갈릴리 출생을 인정할 수 없다는 억지입니다. 본래 억지란 말도 안 되는 한 가지 이유만 근거로 밀어붙이는 것입니다.

3. 갈릴리를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
갈릴리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찾아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52절)”.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올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일반적인 말로 들어서는 안 됩니다. 감정이 강하게 실린 말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바리새인들은 니고데모에게 경고를 보낸 것입니다. 니고데모에게 사실상 최후통첩을 한 것입니다. 계속 니고데모가 그렇게 갈릴리당을 자처한다면, 신변이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협박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심한 편견과 교만으로 눈이 멀어진 바리새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심한 편견이 작용하면, 옳고 그른 판단이 무시됩니다. 그리하여 자신들이 의도하는 것만을 위해 매진하게 됩니다.

그리고 본래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은 그렇게 심한 억지를 부리게 되어 있습니다. 나아가 잘못된 계획을 호도하기 위해 강력한 힘을 사용합니다. 권세를 잡은 사람이 엄청난 폭력과 무자비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그 예입니다.

김충렬
▲김충렬 박사.
4. 정리

말이 통하지 않는 답답한 세상을 사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금이 그런 상황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님을 체험하심으로 놀라운 축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는 언제나 주님의 편에 서게 하소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주님을 대변하는 용기를 갖게 하소서. 그리고 우리는 주님이 메시아임을 믿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주님이 구세주이심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축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
전 한일장신대 교수
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문의: www.kocpt.com
상담: 02-2202-3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