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종교 자유, 차별 금지 충돌
ⓒ폭스뉴스 보도화면 캡쳐

미국 서던복음주의신학교 총장이자 크리스천포스트(CP) 편집고문인 리처드 랜드(Richard Land) 박사가 최근 CP에 ‘종교적 확신 vs 동성애자 인권: 겸손한 제안’(Religious convictions vs. gay rights: A modest proposal)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리처드 랜드 박사는 이 칼럼에서 “진정한 다원주의 안에서 미국 시민들 안에 깊이 간직된 종교적 신념이 양심의 문제에서 강요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관용과 겸손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그 주요 내용이다.

지난 12일, 미국  대법원은 ‘303크리에이티브 대 엘레니스’(Creative vs. Elenis) 종교 자유 사건에 대한 심리를 열었다.

이 사건은 수정헌법 제1조의 종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문제에 관한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다. 사건의 기본 사실은 단순하지만 심오하다. 로리 스미스(Lori Smith)는 303크리에이티브의 소유주다. 스미스는 하나님께서 주신 창조적 재능을 사용해 웹사이트를 구축하는 일을 한다. 그녀는 장애아동과 참전용사, 동물 권리, 동물보호소 등 자신이 깊이 관심을 갖는 프로젝트에 집중해 왔다.

그리고 사업을 확장해 웨딩 웹사이트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헌신적인 복음주의 기독교인으로서 그녀는 하나님께서 오직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결혼을 창조하셨다고 믿기 때문에, 동성커플의 결혼식을 위한 웹사이트 제작은 거부했다. 그녀는 웹사이트를 통해 LGBTQ 고객들에게 “개인적인 종교적 신념을 위반하지 않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되는 이슈는 정말 간단하다. “미국 시민이 자신의 양심을 거슬러, 도덕적으로 반대하는 것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도록 강요를 받아야 하는가?”이다.

콜로라도주는 “그렇다”고 말한다. 하급 법원도 “그렇다”고 한다. 이제 문제는 “대법원은 어떻게 말할 것인가?”이다. 2018년 과거 사건에서 대법원은 동성결혼을 축하하는 케이크 제작 및 장식을 거부한 콜로라도 제빵사 잭 필립스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그 사건은 콜로라도 민권위원회가 필립스의 종교적 신념에 대해 편견과 적대감을 드러냈다는 매우 좁은 선에서 결정됐다.

이 철학은 오바마가 지명한, 조지타운대학교 법학센터 법학교수이자 미국 평등고용기회위원회(Equal Employment Opportunity Commission) 소속 차이 펠드블럼(Chai Feldblum)에 의해 명확하게 표현됐다. 그는 2006 브루클린법률리뷰(Brooklyn Law Review)와 2010년 1월 조지타운법률고용출판(Georgetown Law Faculty Publications)에 게재한 ‘도덕적 갈등과 자유: 동성애자의 권리와 종교’라는 글에서 이 문제를 다뤘다.

펠드블럼 박사는 LGBT 공동체의 권리와 신실한 종교적 신념을 가진 이들 간의 갈등에서 “사회는 LGBT 사람들의 자유를 보호하는 편에 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그러한 갈등은 한쪽이 항상 다른 쪽에게 자신의 권리를 양보해야 하는 ‘제로섬’ 게임이라고 여긴다. 이 사고방식은 항상 승자와 패자가 생긴다는 신념으로 그러한 갈등이 더욱 증폭되도록 한다. 이 제로섬 게임 가정이 사실이 아니라면 어떻게 될까? 나는 2014년에 CP에 “동성결혼과 종교의 자유: 겸손한 제안”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한 바 있다.

그 칼럼에서 난 펠드블럼 박사의 제로섬 옵션에 도전했고, “그러한 경우, 목표는 양측 모두에 대한 존중을 확대하는 것”이라는 헌법학자 마이클 맥코넬(Michael McConnell)의 주장을 인용했다. 나는 그러한 존중을 “우리가 동료 시민과 동역자들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에도 적용하는 시민적 관용”으로 정의한다.

나는 맥코넬의 존중과 시민적 관용이, 종교적 권리가 항상 축소되는 제로섬 게임보다 훨씬 더 고귀한 목표라고 믿는다. 이 대안의 가장 좋은 이름은 ‘다원주의’이다.

지난 12일 뉴욕타임스(NYT)에서 티쉬 해리슨 워렌(Tish Harrison Warren)의 칼럼 ‘게이와 종교의 자유가 충돌할 때’를 발견한 순간 매우 기쁘고 놀라웠다.

북미 성공회 사제인 저자는 기본적으로 매우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동일한 주장을 펼쳤다. 워렌은 미국인들이 국가적·사회적 가치로서의 진정한 다원주의에 얼마나 헌신하고 있는지 묻는다. 진정한 다원주의는 “심각하게 다르고 상호 반대되는 신념을 가진 개인과 집단이 공적 생활의 영역에서 환영받는 사회를 형성하겠다는 약속”이다.

이 칼럼은 정말 훌륭하다. 솔직히 NYT가 이 칼럼을 게재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워렌 목사는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성과 결혼에 대해 화해할 수 없는 견해를 갖고 있으며, 이는 곧 바뀔 것 같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인종차별주의와 반동성애적 관점 사이의 유추는 유사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녀가 지적한 바와 같이, LGBT 가치 체계에 대한 종교적 신념을 가진 이들의 반대는 기독교와 전 세계 대다수의 유대교 및 무슬림 공동체를 포함한 다양한 종교의 기본 가르침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반대로 인종 차별은 항상 성경과 정반대였으며, 기독교인들이 역사적으로 이를 이용할 때는 성경을 거짓되게 강요한 것이었다.

동시에 워렌은 대법원이 동성커플의 결혼을 비준했으며, 대다수의 미국인이 LGBT 권리를 지지한다고 지적했다. 이것은 분열, 다툼, 원한을 낳는 원인인 것 같다. 워렌은 이것이 사회적으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시작할 운명에 처해 있는지 물었다.

워렌과 내가 동의하는 대답은 ‘아니오’다. 대신 워렌은 “성과 결혼에 대한 역사적인 가르침을 고수하는 종교인들이 자유롭게 신앙을 실천할 수 있도록 허용하며 동성애자들의 시민권을 보호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침례교 복음주의 기독교인으로서 나는, 동성결합을 포함하기 위해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를 바꾸는 것에 반대한다. 결혼에 대한 이러한 재정의는 동성인 두 성인 사이의 합의된 행동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그것은 사회에 미치는 영향, 특히 어린이에 대한 영향을 포함해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현재 미국 대중들은 점점 더 다른 결론에 도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종교적 신념이 현재의 문화적 시대 정신과 상충되는 신앙을 가진 이들에 대한 법적 보호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그러한 사람들(2000년 동안 기독교 신앙을 지배해 온 도덕적·성적 견해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수백만 명의 미국 시민)은 이제 감옥, 벌금 또는 사업 중단이라는 잠재적인 처벌 때문에 스스로 비양심적이라고 생각하는 의식(종종 종교적인)에 참여하거나 이를 장려하도록 억압을 받는가?

역사적으로 다원주의는 미국의 가장 고귀한 이상 중 하나였다. 이러한 다원주의의 비공식적 모토는 “난 당신이 말하는 모든 것에 동의하지 않으며, 당신이 그것을 말할 권리를 죽을 때까지 옹호한다!”와 같을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목표는 성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동시에 모두의 권리가 보호되는 사회를 이루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이슬람 트럭 운전사가 증류주를 운송하지 않아도 되도록 허용한다. 이제 흑인 식당 주인에게 남부군 재향군인의 아들을 위한 서비스 제공이나 조상의 노예화와 예속을 상징하는 깃발인 남부군 깃발이 달린 케이크 제작을 강요해야 하는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마찬가지로 동성결혼이 하나님께 대한 죄라고 믿는 이들은, 법적인 처벌 없이 도덕적으로 혐오하는 일을 기념하기 위해 자신의 창의력을 제공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LGBT 사람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기꺼이 제공할 준비가 된 수많은 미국인이 있기 때문에, 원하는 서비스가 거부될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 경우 특히 그러하다.

확실히 우리는 미국 시민 안에 깊이 간직된 종교적 신념이 양심의 문제에서 강요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맥코넬 박사의 관용과 공손함의 길을 따를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왜 LGBT 공동체는 동료 미국인들의 종교적 신념을 강요하고 짓밟고 싶어하는가? 그러한 강압은 동성결혼에 대한 더 큰 확언으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큰 분노, 반발, 무례함을 낳을 뿐이다. 우리 모두 더 큰 정중함, 관용, 존중을 추구하기로 결단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