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세계 기독교
20세기, 세계, 기독교

이재근 | 복있는사람 | 460쪽 | 25,000원

기독교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마굿간에서 시작한 기독교가 전 세계를 구원하는 종교가 되었다. 하나님이자 그분의 아들인 예수가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내려오셔서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신다. 예수가 중심이 되는 성경은 약 1,600년 동안 40여 명의 다양한 저자를 통해 기록되어 우리의 손에 들리게 되었다.

기독교는 우리나라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중동 열사의 땅에서 시작된 기독교는 거의 전 세계에 퍼져 있다. 천하 곳곳에 복음이 전해져야 종말이 온다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처럼, 세계 복음화를 위한 운동은 예수님 시대부터 있었다. 아니 아브라함 때부터 출발하였다고도 볼 수 있겠다.

우리는 영국의 학생운동과 미국의 부흥운동, 그리고 그 은혜의 물결이 인도와 아시아를 거쳐 우리나라에까지 왔다는 근대교회사를 쉽게 떠올린다. 그러나 세계교회사의 운동은 그 시점과 원천이 예수님의 사역과 방향과 목적이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개혁주의를 공부하다 보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위험이 있다. 필자 또한 신대원 시절과 그 후에도 그 때의 신학과 책과 말씀이 최고인 줄 알고 집중했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종교개혁자들과 후예들의 설교와 신학을 좋아하고 그들의 하나님을 향하는 거룩함과 열정을 여전히 사모한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한 신학이라고 고정관념이 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이 세계 곳곳에 남겨주신 기독교의 유산을 잃어버리고 무시하는 어리석은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이재근
▲이재근 교수. ⓒ크투 DB
나의 신학과 공부에 가장 큰 전환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지점은 현재 등산 친구이기도 한 이재근 교수님과의 만남이고, 그의 책 <복음주의 지형도>이다. 서현교회를 섬길 때 실제 이 책을 교회에서 성장반 주 교재로 쓰며 스터디를 했고, 마지막 시간에는 교수님을 초청하여 직접 강의도 들었다.

그 때 어느 권사님은 감동을 받으시며 눈물을 글썽이셨고 막힌 것이 뚫린 것 같다고 나에게 피드백도 해주셨다. 역사 강의를 들으며 은혜와 눈물을 흘리시다니, 역시 역사는 우리의 정체성을 찾게 해주고 교수님 또한 탁월하시다는 생각을 했다.

복음주의 지형도를 보며 남반구 기독교를 향하는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남미에 있는 기독교, 오순절에 속한 교회들은 잘못된 것일까? 동방과 중동과 제3세계에 있는 기독교는 변종들인가?

그곳에 있는 교회들은 토착화와 상황화가 과도하고 심각하게 이루어져 진리를 엉망으로 만든 죄를 지었는가? 그곳에서 교회를 책임지고 이끄는 리더들은 진리를 왜곡시켰는가?

오히려 교회를 타락시키고 진리를 훼손한 교회와 지도자들은 우리나라에 더 많을 수도 있는데, 교단 신학과 다르다는 이유로 세계적인 기독교를 너무 폄훼한 것 같다.

유럽과 미국의 기독교가 하향세를 넘어 사향으로 접어들고 있기에, 기독교는 소수로 전락될 위기를 느낀다. 그러나 <복음주의 지형도>에서는 남반구의 기독교가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개신교의 중심이 되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런 흐름과 역사를 통해 기독교는 소수가 아니라 더 확장되었고 더 편만해져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양 중심의 기독교가 비서양 중심으로 전환되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세계지도, 중보기도
ⓒPixabay
《20세기, 세계, 기독교》는 저자가 첫 책 이후 7년 만에 내놓은 역작이다. 우리나라에 세계기독교를 저술할 수 있는 학자가 소수일 것 같은데, 저자는 대략적인 20세기 세계 기독교 지형도를 그려주었다.

그동안 저자와의 교제를 통해 이 원고를 쓰고 있는데, 매번 고충을 토로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아마 역사와 인물을 읽고 소화하여 객관적으로 소개하는 것이 엄청난 스트레스였을 것 같다. 그 고뇌와 숙성의 과정을 거쳐 본 열매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제목처럼 20세기 기독교의 중요한 인물 21명을 소개한다. 복음주의, 비서양, 오순절, 혼종 등 4개 챕터를 통해 20세기 기독교를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데 그들을 통해 어떤 위대한 일들을 펼치셨는지 그 손길과 역사를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저자는 인물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평가도 소개하지만, 그를 통해 일어났던 사건과 그것이 갖는 의미와 역할도 충분히 소개하고 있다. 한 인물과 사건에 양면이 있듯, 저자 또한 치우지지 않고 균형을 유지한다.

우리나라 대부분 사람들은 서구 신학에 의존해 있고 미국 신학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인도와 아프리카와 제3세계 교회와 신학자들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리고 그들의 신학이 여전히 부족하고 위험하고 심지어 잘못되었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다.

그곳에 역사와 정치와 사회와 민족성을 고려하여 해석해야 바르게 볼 수 있을텐데, 우리의 신학과 다르다고 너무 쉽게 적대시한다. 그러다 보니 그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수고하고 교회를 위해 헌신하며 사회를 이롭게 했던 교회 지도자들을 비중 있게 다루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비서양’을 읽으며 제일 유익했다. 필자도 처음 접하는 인물이 있었고, 이번에 제대로 알게 되고 평가하게 된 인물도 있었다. 첫 챕터 ‘복음주의’에서는 존 스토트와 로이드 존스, 빌리 그래함 등 익숙한 인물이 나오기에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전에는 로이드 존스를 더 좋아했는데, 신학의 년수와 믿음의 깊이가 더해질수록 스토트가 필자에게 더 가깝게 다가왔다.

특별히 일본의 가가와 토요히코를 보면서, 이렇게 세계적인 신학자가 있었는지 놀라게 되었다. 비록 민족적 신학으로 치우는 위험이 있었지만, 동양의 신학을 구축하고 일본을 구원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에 많은 공감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 주님의 사람들을 세우신다. 특별한 나라와 민족을 교회로 삼아 예배와 영광을 받으시지 않는다.

계시록에는 자기의 언어와 방언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게 된다고 한다. 구약에서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도 제사장 나라로 세우셔서 열방에 구원의 빛을 비추고 구원의 도를 전하기 위함이지, 잘못된 선민의식으로 배제와 차별하게 하려는 뜻이 아니었다.

기독교는 고립되어서는 안 되고, 민족주의와 우월의식을 늘 경계해야 한다. 자기 신학이 무조건 진리고 옳으니 타국 신학을 형편없는 것으로 무시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 민족과 문화 속에서 아름답게 꽃 피우게 되어 있지, 사대주의로 흘러가는 모방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은 서양의 신학을 최고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동양과 아프리카와 남미 등 각 나라에서 예수의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 기독교와 교회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우리는 내가 본 것만 전부로 여기는 우물 안에 개구리로 살아서는 안 될 것이다. 기독교는 이미 세계화가 되었는데 고립된 성도가 되어서도 안될 것이다.

우리의 세계는 참 좁은데 하나님의 세계는 정말 넓다. 지난 20세기 하나님의 일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보며, 지금 이곳에서 우리의 일을 지혜롭게 이루어가길 생각해 본다.

방영민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부전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