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 가장 위협적이었던 민족, 블레셋
나라 운명, 주변국들과 상대적 관계 속 결정
중앙집권 체제 확립 전까지 블레셋에 굴복해
약탈과 정착 공동 목표 위해 뭉친 복합 민족

가드 블레셋 파편 도자기 에게
▲가드 지역에서 발견된 도자기 파편. 에게 문명의 것과 유사하다.

1. 들어가는 말

국제 질서는 힘에 의해 결정됩니다. 한 지역에서 강대국이 나오면 주변 국가들은 움츠러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성경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크게 부강했던 시절과 약했던 시절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통틀어 부강했던 시절은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대부분 이웃 강대국들에 의해 시달리며 살아야 했던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왕국이 형성되었던 것은 바로 다윗-솔로몬 시대였습니다. 이 영화로웠던 시대에 대한 자부심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머리 속에 영원히 새겨져 있습니다.

다윗-솔로몬 시대의 특징은 국제 정세에서 애굽과 메소포타미아가 가장 취약했던 시기입니다. 따라서 비록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가나안 지역은 애굽과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틈을 타서 가나안 지역 패권국가 중 하나로 등장한 이스라엘이 애굽과 메소포타미아가 빠진 빈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즉 북쪽으로는 멀리 유프라테스강 남단 지역으로부터 남쪽으로는 애굽강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창 15:18; 대하 9:26).

물론 모든 지역을 다 정복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지역에 속해 있던 나라들로부터 조공을 받아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풍족한 삶을 누렸던 황금기를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애굽과 메소포타미아가 국제 질서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던 시기에 이스라엘만 패권을 잡았던 것은 아닙니다. 다윗과 솔로몬을 통하여 이스라엘이 최고 황금기를 누리기 전, 이스라엘에게 가장 위협이 되었던 민족은 블레셋이었습니다.

가사(지금의 가자 지역)를 중심으로 5개의 연합 도시를 형성한 블레셋은 가나안에서 가장 좋은 땅인 ‘블레셋 평야’를 점령하여 살았고, 이들은 철기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주변 민족들과의 싸움에서 늘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특히 가나안 지역에서 가장 큰 민족을 이루며 살았던 이스라엘에게 블레셋은 늘 위협의 대상이 되었으며, 따라서 이스라엘은 영토를 풍요로운 해안가 지역으로 넓히지 못하고 “산에 사는 민족”이라 불릴 정도로 매우 척박한 유다 산지와 에브라임 산지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이처럼 한 나라의 운명은 주변 국가와의 상대적 관계 속에서 결정됩니다. 한 나라가 강해지면 이웃 나라는 약해질 수밖에 없고, 반대로 한 국가가 약해지면 이웃 국가가 득세하게 됩니다.

애굽이 강해지면 상대적으로 메소포타미아는 약해지고, 또 애굽이 약해지면 메소포타미아가 강해집니다. 메소포타미아 내에서도 앗시리아 지역이 강해지면 바빌로니아 지역은 약해졌고 또 앗시리아 지역이 약해지면 바빌로니아 지역은 강해졌습니다.

가나안 지역도 마찬가지로 블레셋이 강할 때는 상대적으로 이스라엘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철기로 무장한 블레셋은 가나안에서 가장 좋은 땅을 차지하며 살았고, 이스라엘을 포함한 주변 국가들을 복속시켜 많은 조공을 바치게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부흥하기 위해서는 블레셋의 압제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지만, 사분오열 12지파로 구성된 이스라엘은 강력한 중앙 집권체제 국가가 확립되기 전까지는 블레셋의 위세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블레셋이 어떻게 이스라엘 왕국의 형성에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는 것은 성경 이해에 매우 큰 도움이 됩니다.

블레셋 에게
▲배를 타고 전투를 벌이는 해양 민족들.

2. 블레셋의 기원

1) 이름의 기원

블레셋의 기원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으며 역사적 증거 부족으로 추론에 의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방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블레셋(Philistines)’은 이름 뜻 그대로 가나안 토착민들은 아닙니다. 블레셋이 성경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창세기 10장 14절과 역대상 1장 12절로, 함의 손자이며 미쯔라임의 아들인 ‘가슬루힘’에서 나온 족속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예레미야 47장 4절과 아모스 9장 7절은 이들을 갑돌(Caphtor, 크레테 섬)에서 온 족속이라 부르고 있는데, 갑돌에서 온 이 무리들이 가사 지역(Gaza, 오늘날 가자 지역) 각 촌에 거하는 사람들을 몰아내고 거주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신 2:23).

성경 다른 곳에서도 이 곳 가사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그렛 사람(Cherethites, 오늘날의 크레테 섬)’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습 2:5; 삼상 30:14).

이와 같은 성경의 기록을 볼 때 블레셋이 가사 지역에 거주하는 족속들을 지칭하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한 편으론 블레셋이라 불리며 살았던 족속들이 두 그룹이 아니었나 판단됩니다.

즉 초기 거주민들은 미쯔라임(즉 애굽)의 기슬루힘 후예들로 보는 점에서, 갑돌로 갔던 사람들은 애굽에 기원을 둔 이주민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가사 지역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청동기 시대 말기 인도-유럽어를 쓰는 북방 철기 민족들에게 쫓겨 에게해에서 지중해 동쪽으로 피난해 온 사람들인 것 같으며, 이들은 함의 후손이 아니라 야벳 족속의 후예들로 보입니다.

그러나 초기 거주자와 후기 거주자를 구별할 수 있는 어떤 뚜렷한 역사적 자료들도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 두 부류의 민족들이 서로 혼합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가사라는 지역의 특성을 놓고 볼 때 충분히 가능성 있어 보입니다.

블레셋 에게
▲블레셋인들의 이동 경로로 추정되는 해로. ⓒ성서문화교육원 캡처

가사는 애굽 왕국 초기부터 애굽에서 필요로 하는 수입품목 특히 레바논의 목재를 운반해오기 위한 식민지로 건설된 곳으로, 일찍부터 이곳에 기슬루힘 후예들이 자리를 잡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북방 민족의 침입을 피하여 남하하였던 야벳 후손들은 갑돌을 거쳐 거주하기 좋은 곳을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은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이들은 해안에 상륙하여 약탈을 하기도 하고 좋은 곳이 나타나면 정착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배에 가족들을 태우고 다녔는데, 이는 이들의 궁극적인 목적이 ‘정착’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소수 인원이 여러 척의 배로 나누어 이동하는 이들은 기존 거주민들과 전쟁을 벌이기보다, 안전을 위하여 성벽을 쌓은 작은 도시를 형성하며 기존의 거주민들과 혼합하여 거주하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더구나 풍부한 물과 넓은 기름진 땅으로 거주하기에 매우 좋은 블레셋 평야 지역의 자연환경은 이런 화합과 양보의 자세를 더욱 부추겼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이들이 믿던 종교도 여러 종교의 요소들이 혼합되어 있는 것을 볼 때 더욱 그렇습니다.

살기 좋은 환경을 가진 블레셋 지역에 강력한 도시 국가들이 형성된 것은 애굽과 해양 민족들 간 전쟁이 오랜 기간 벌어진 결과입니다.

특히 B.C. 1177년 이들 사이 사활을 건 전쟁에서 승자 없이 전쟁은 끝났으며, 양쪽은 모두 심각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애굽은 이 전쟁 후 심각한 국력의 손실을 입어 오랫동안 가나안 지역에 진출할 수 없었고, 해양 민족들도 많은 피해를 입어 이후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이들 중 패잔병들 일부가 가사 지역에 문화적으로 공통점을 많이 가지고 있는 기존 거주민들과 더불어 함께 정착하여 강력한 도시국가들을 형성한 것으로 보는 것이 요즘의 흐름인 것 같습니다.

블레셋 도시 가드 에그론 아스돗 아스글론 가자
▲이스라엘 옆에 위치한 블레셋 다섯 도시들. ⓒ성서문화교육원 캡처

2) 역사적 기원

이처럼 블레셋의 기원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지만, 블레셋의 중심축을 이루는 민족은 해양 민족들(Sea Peoples)로 보는 것이 합리적인 것 같습니다.

청동기 시대 말기 철기를 가지고 남하하는 북방 민족들에 의해 그리스 미케네 문명이 멸망하면서, 이들은 정착하기 위한 땅을 찾아 지중해 지역 특히 동부 지역을 돌아다니며 약탈을 합니다. 이들에게 특히 표적이 되었던 것은 부유한 애굽으로, 오랜 기간 해양 민족들은 소규모로 배를 타고 이동하며 애굽을 약탈하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미 많은 해양 민족들이 개별적으로 애굽의 비옥한 삼각지 지역에서 공동체를 형성하며 거주하기도 하였습니다. 점점 이들의 숫자가 불어나고 사회 혼란의 원인이 되자, 애굽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이들과 대대적인 전쟁을 벌입니다.

그러나 배를 타고 와서 약탈을 한 후 도망치는 이들을 소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으며, 전쟁은 자연 장기전으로 돌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미 레바논 지역을 놓고 힛타이트족과 자주 벌인 전쟁으로 국력이 쇠한 애굽 신왕국(B.C. 1570-1069) 19대 마지막 왕인 메렌프타(Merenptah, B.C. 1279-1212)는 왕국의 명운을 걸고 해양 민족들과 대결하여 승리합니다. 이들의 특기인 기습 공격에 대비해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 반격을 가하여 이들에게 큰 피해를 입힙니다.

그러나 20년 뒤 여러 해양 민족이 다시 연합하여 전열을 정비하고 나타나자, 애굽 신왕국 마지막 왕이자 20대 왕조의 유일한 왕인 람세스 3세(B.C. 1186-1154)는 국운을 걸고 전쟁을 벌이지만 이 전쟁으로 인하여 신왕국이 멸망하는 비운을 맛보게 됩니다.

에게해 지역 5개 민족이 연합군을 형성하여 해상과 육로를 통하여 애굽으로 진격한 해상 민족들은 가는 곳마다 초토화시켰으며 람세스 3세는 가사 남쪽 지역에서 이들과 맞서 싸웠습니다.

가까스로 애굽으로의 전진을 막기는 하였지만 애굽이 받은 피해는 막심하였으며, 이 전쟁의 결과로 애굽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왕국을 형성하던 애굽 신왕국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후 애굽은 내리막길을 걷게 되는데, 국내적으로는 패전 후유증으로 질병, 기근, 각종 범죄 등이 횡행하였으며 반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국내 정치 상황이 혼란한 상태에서 신왕국 패권 정책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고, 가나안 지역에 대한 애굽의 지배는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되었습니다.

람세스 3세와 전쟁을 벌였던 해양 민족들도 전쟁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고, 역사의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비록 숫자는 적었지만 북방 민족으로부터 전수받은 철기로 무장한 이들은 엄청난 숫자의 애굽 군대와 전쟁을 벌여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숫자의 군대를 가진 이들도 심각한 피해를 입어 다시는 재기를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졌습니다.

이때 해양 민족 중 일부 패잔병들이 블레셋 평야에 자리를 잡았는데, 이들이 바로 성경의 사사 시대에 등장하는 블레셋입니다. 이들은 민족적 동질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약탈과 정착’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하여 서로 뭉친 복합 민족입니다.

따라서 블레셋인들은 여러 도시 국가들을 형성하여 블레셋 평야에서 살았습니다. 이들이 정착하는 과정은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고 있지 않지만 많은 문화를 공유하는 갑돌 출신의 기존 블레셋인들과 함께 거주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들이 세운 주요 도시로는 해안 도시인 아스돗, 아스켈론, 가사, 그리고 내륙 도시인 에크론, 갓 등입니다(수 13:3; 삼상 7-14장). 이들이 해안가에 있는 비옥한 토양을 차지하며 정착하자 기존의 이스라엘과 충돌이 발생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삿 3:31, 13-16장; 삼상 4-6장). 강력한 적을 맞이한 이스라엘의 국경은 축소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블레셋이 블레셋 평야에 언제 자리를 잡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성경을 볼 때 사사 시대 후반기와 이스라엘 왕국 초기(B.C. 1150-1000)에 블레셋은 가나안에서 최강자로 군림하였습니다. 삼갈이나 삼손 같은 사사 이야기 배경도 블레셋이고 사울이 통치한 40년 동안의 주적도 블레셋이었습니다. <계속>

류관석 교수
대한신대 신약신학
서울대 철학과(B.A.), 서강대 언론대학원(M.A.),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M. Div.),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Th. M. 구약 / M. A. 수료), Loyola University Chicago(Ph. D., 신약학)
미국에서 Loyola University Chicago 외 다수 대학 외래 교수
저서 <구약성경 문화 배경사>, <산상강화(마태복음 5-7장)>, <기적의 장(마태복음 8-9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