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 용어 교과서 추가에 반대하는 교사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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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자유민주주의는 ‘편협해야’ 한다

요즘 관용이 마법의 단어, 편협 나쁜 것만은 아냐
자유 없는 자유민주주의 배제하는 것이 편협인가?
2022 교육과정 개정 과정이야말로 편협 아니었나

▲포커 최고의 패로 불리는 로얄 플러쉬(royal flush). ⓒ픽사베이

▲포커 최고의 패로 불리는 로얄 플러쉬(royal flush).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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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는 확률 게임인 동시에 심리 게임이다. 만일 포커에 심리적 요소가 없다면, 승패는 거의 항상 50대 50이어야 한다. 어떤 카드를 손에 쥐게 될지는 무작위적(random) 요인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포커 게임에서 패를 열어 공개하기 전까지는 치열한 심리 게임이 펼쳐진다. 상대가 대체 어떤 카드를 들고 있길래 저렇게 공격적인 베팅을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는 것이 포커이다. 그런데 패를 공개하는 순간만큼은 모두 ‘진실의 순간(the moment of truth)’에 직면하게 된다. 더 이상의 심리 게임은 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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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29일 자 한겨레신문에는 현직 교사 1,191명이 교육부가 공청회 및 온라인 의견수렴 과정을 통해 2022년 교육과정 개정 시안에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추가하기로 한 결정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실명을 공개한 교사들의 요지는, 자유민주주의를 교과과정에 명기할 경우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편협하게 잘못 이해하게 되는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관용(tolerance)은 ‘마법의 단어(the magic word)’가 되었다. 논란의 여지가 충분한 상황에서도 이 단어 하나면 모든 사람을 침묵하게 만들 수 있다. 이 단어가 등장하면, 사람들은 그 반대말인 ‘편협함’이라는 주홍글씨가 자신에게 새겨질까 두려워 더 이상 말하기를 꺼린다.

그러나, 편협함이라는 단어의 이면에는 ‘절개(정절)를 지킨다’ 혹은 ‘한눈팔지 않고 하나에만 충성한다’는 좋은 의미도 포함돼 있다. 편협함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닌 이유이다.

우리 사회가 절대적 가치로 인정하는 이념들은 모두 편협하게 추구해야 한다. 자연권이라는 이념이 그것이다. 설사 다수가 경제적 이익을 볼 수 있더라도, 그 이익이 단 한 사람의 자연권을 심각한 정도로 침해한 결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포기하는 것이 옳다. 이러한 종류의 편협함은 공리주의 관점에서는 미련한 것이다. 그럼에도 자연권을 ‘편협하게’ 추구하는 것이 옳은 이유는 그것이 절대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역시 좋은 예가 된다. 사실 자유민주주의야말로 ‘마법의 단어’이다. 자유민주주의를 편협하게 추구하면 다양성, 포용, 관용도 동시에 달성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각 개인이 자유롭게 사고하고 행동하면 사회는 저절로 다양해지고,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하여 타인의 자유를 존중하면 그 자체로 포용과 관용이 되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는 편협한 개념도 아니다. 대의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 의회민주주의 등 다양한 ‘형태’의 민주주의를 아우르는 ‘이념’이 자유민주주의이다. 다만 개인의 자유가 없는 민주주의를 배제한 이념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자유가 없는 민주주의 중 어떤 민주주의를 원하기에 저리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2022 개정 교육과정 공청회에서 질문을 받지 않자 항의하고 있는 학부모들.

▲2022 개정 교육과정 공청회에서 질문을 받지 않자 항의하고 있는 학부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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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교육과정 개정 과정 전반을 살펴보면, 흡사 포커 게임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들은 자유 시민을 철저히 배제한 채 이루어진 37회의 소위 전문가 회의를 거치면서, 당신들의 민주주의가 대단한 것인 양 공격적인 베팅을 하였다.

전 교과목에 걸쳐 인권 감수성, 생태 감수성, 문화 감수성 등의 용어로 학습 목표를 도배한 것은 실로 공격적인 베팅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자유 시민들은 잘 알고 있었다. 저 현란한 신조어들은 포커페이스에 능한 도박사의 블러핑(bluffing)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자, 이제는 진실의 순간을 직면해야 할 때이다.

당신들은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주장한 것이 윤석열 정부인 것처럼 호도하지만, 지난 10월 초 한국교원대에서 열린 개정 교육과정 공청회에 참석한 필자는, 용감한 자유 시민들이 목청 높여 요구한 결과임을 잘 안다. 우리 자유 시민이 들고 있는 카드는 자유민주주의이고, 우리는 이 카드에 “올인(all-in)”한다. 이제 당신들이 들고 있는 카드를 보여주기 바란다.

우리 자유 시민 역시 자유민주주의가 최고의 카드라고 믿는 것은 아니다. 0.0001퍼센트의 확률로 손에 쥘 수 있는 로얄 플러쉬(royal flush)가 아닌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0.19퍼센트 확률의 플러쉬(flush) 혹은 0.14퍼센트 확률의 풀하우스(full house) 정도는 되는 카드라 믿고 있다.

실명으로 서명한 1,191명의 교사들도 이제는 우리의 자유민주주의가 편협하다는 식의 변죽만 울리지 말고, 당신들이 손에 쥔 카드를 공개할 때이다.

자유가 없는 민주주의 중 당신들이 정의롭다고 믿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공개하고, 왜 자유민주주의보다 우수한지 설명하기 바란다. 당신들이 로얄 플러쉬 정도의 카드를 들고 있다면, 우리가 ‘올인’한 모든 것을 가져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이형우
한남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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