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 브뤼헬
▲16세기 플랑드르 화가 브뤼헬의 1598년작 ‘산상설교’.
본문: 요한복음 7:40-42절

쟁론을 하는 장면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죽으심과 죽으신 후 받을 성령에 대해 강론했습니다. 주님의 강론을 듣고 반응이 여러 갈래로 나뉘었습니다. 주님의 강론을 받은 유대인들이 변화를 경험합니다. 주님에 대한 인식이 전환된 결과입니다. 그런데 주님에 대한 존재인식이 일치되지 않은 것입니다. 본문을 배경으로 ‘쟁론이 되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주님을 선지자로 보았다
주님은 선지자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이 참으로 선지자라 하며(40절)”. 여기서는 쟁론이 됐다는 말이 중요합니다. 주님의 강론을 들은 유대인들의 생각이 서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주님으로부터 동일한 말씀을 듣고 서로 다르게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쟁론이 되는 중에서도 어떤 사람은 주님을 선지자로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오래도록 기다리던 선지자로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선지자’는 신명기 18장 15절에 모세가 한 말씀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구절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모세가 그 옛날에 예언해 둔 그 선지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유대민족을 위해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주신다는 선지자 사상입니다. 선지자 사상은 그대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선지자로 생각한 사람 중에는 주님이 미래 예시적인 것을 말하고 있다는 근거입니다. 주님이 사사로운 개인에 대해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유대 민족을 위해 말하는 주님이 “바로 그 선지자가 틀림이 없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유대 민족에게 선지자는 400년 넘도록 매우 귀하고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를 목이 빠져라고 기다리게 된 이유였습니다.

2. 주님을 그리스도로 생각되었다
주님이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라 하며(41절)”. 본래 쟁론(爭論)은 서로 다투어 토론한다는 말입니다. 원래 쟁론이라는 의미의 Controversy는 “반대 방향으로 돌았다”는 논쟁의 합성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서로 의견이 달랐다, 일치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그리스도이시다”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즉 메시아는 선지자와 격이 아주 다릅니다. 그리스도 즉 메시아는 온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오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주님이 행하시는 기적과 표적은 모두 메시아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주님과 반대되는 사람들의 악의는 항상 이성에 반대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주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강론하신 그 지혜와 능력, 은혜와 설득력 있는 명료함에 대해 믿지 않은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영원한 생명의 문제에서 어리석게도 외적 동기에 휘둘렸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주님의 지혜가 흔히 멸시되는 주제로 선택되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유대인들에게 지금 잠시 눈이 열렸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이 분이 혹시 메시아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영적 까막눈을 가진 저들의 모습입니다. 그렇게도 많은 기적을 보여주었고, 사람이 하지 못할 일들을 보여주었는데도 말입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들고, 병자를 고치고, 죽은 사람을 살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기적을 보여주었 해도 믿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어쩔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말해도 듣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실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3. 주님은 다윗의 가문이어야 한다
주님은 베들레헴 출신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의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41-42절)”.

쟁론은 이상한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수가 있습니다. 확실한 정보를 이상하게 만듭니다.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데, 잘못된 사실로 만들어버립니다.

여기서 우리는 유대인들이 쟁론이 일어난 점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의 강론을 들었던 유대인들은 쟁론이 일어난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져서 쟁론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자신이 가진 정보에 대해 자신감과 확신감이 없는 것도 있습니다. 잘못된 열정이란 사용 가능한 실제 정보의 양에 반비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주님이 그리스도이심에 대해 주님의 출신을 문제로 삼았습니다. 주님은 베들레헴 출신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갈릴리 출신이라고 억지를 부립니다. 주님은 나사렛에서 교육을 받았고 가버나움은 주님의 고향이었다는 것입니다. 주로 갈릴리에서 가르치고 강론하시고 기적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은 갈릴리 출신이라 결론지었습니다. 주님의 출신을 문제로 삼아 진정한 메시아임을 반대합니다. 사람이 핑계를 대려 하면, 어떤 핑계라도 댈 수 있습니다. 반대를 하기로 작정하면, 어떤 반대라도 들이댈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완벽한 것은 없으니까요. 유대인들은 내용의 순수성보다는 형식의 문제로 주님이 메시아성을 반대한 결과입니다.

김충렬
▲김충렬 박사.
4. 정리

사람은 때로 자신의 태도가 드러나는 때가 있습니다. 부득이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혀야 하는 때입니다. 자신이 입장을 표명해야 하는 순간입니다. 우리는 주님에 대해 분명하게 입장을 밝히므로 믿음의 축복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는 주님이 세상을 구원하려 오심을 믿게 하소서. 우리는 주님이 우리의 죄를 해결하려 오신 것을 믿게 하소서. 그리고 우리는 주님이 나를 구원하러 오셨음을 믿게 하소서. 주님을 구세주로 믿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축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
전 한일장신대 교수
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문의: www.kocpt.com
상담: 02-2202-3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