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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17장 강해

요절: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1절).

가정의 행복은 어디에 있나요? 많은 사람들이 행복은 돈이 많은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가정의 행복은 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 있고 화목한 데 있습니다.

1.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 화목한 것이 낫습니다

1-4절을 보면 사람들은 싸우면서라도 돈을 벌어 행복을 얻고자 합니다. 그러나 집에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다투는 것보다 누룽지를 먹어도 마음 편한 것이 낫습니다. 부유하게 살면서 싸우는 것보다는 가난하면서 화목하게 사는 것이 더 행복합니다. 가정의 행복은 물질적 풍요보다는 화목에 의해 결정됩니다.

사람들은 종보다 자녀를, 딸보다 아들을 중시합니다. 대부분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주어 집안을 다스리게 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종은 부끄러운 짓을 하는 아들보다 낫습니다. 그는 종으로서 주인에게 인정을 받아 주인의 유업을 물려받아 집안을 다스리는 청지기가 됩니다. 우리에게 혈육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자입니다.

도가니는 은이나 금을 풀무로 단련합니다. 하나님은 시련을 통하여 사랑하는 자녀의 마음을 단련하십니다. 우리는 시련의 날에 내면의 성숙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한다면 징계를 통해 연단해야 합니다. 자녀를 연단하여 지혜로운 자로 만드는 것이 자녀에 대한 진정한 사랑입니다.

악을 행하거나 거짓말하는 자는 사악한 자들이 하는 말을 잘 듣습니다. 악한 자는 악한 자와 통합니다. 반면에 선을 행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 말씀을 잘 듣습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성령 받은 사람들끼리 통합니다. 우리는 먼저 내가 성령을 소유해야 자연히 성령을 소유한 자들과 친밀해질 것입니다.

2.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것입니다

5-8절을 보면,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가난한 자를 지으신 주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자도 지으셨지만 가난한 자도 지으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가난하게 되거나 재앙당하는 것을 기뻐하는 자는 하나님의 형벌을 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어야 복을 받습니다.

아버지는 자식의 영화입니다. 부모가 공의롭게 살아야 자식이 부모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손자는 할아버지의 면류관입니다. 부모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공의롭게 살면 손자에게 복을 주시고 천대까지 복을 주십니다. 가문에는 명문가문이 있고 천민가문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율법에 순종해야 명문가를 만들 수 있습니다.

미련한 사람도 거만한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물며 통치자가 거짓말을 해서는 더욱 안 됩니다. 지혜로운 통치자는 겸손한 말을 하고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통치자가 겸손하고 진실해야 국민의 신뢰를 얻습니다.

뇌물은 그 임자가 보기에 보석과 같습니다. 뇌물을 주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형통을 믿고 뇌물을 주다 보면, 나중에 발각되어 뇌물 때문에 망하게 됩니다. 뇌물을 거래하지 않는 것이 지혜입니다.

3. 허물을 덮어주는 자가 사랑을 구하는 자입니다

9-13절을 보면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습니다. 허물을 덮어주는 자는 사람들과 사랑의 관계를 맺게 해줍니다. 그러나 허물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질하는 자입니다.

허물을 한 번 말할 수 있으나 거듭 말해선 안 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허물을 험담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두고두고 씹어서는 안 됩니다.

한 마디 말로 총명한 자에게 충고하면 총명한 자는 알아듣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매 1백 대를 때리는 것보다 한 마디 충고가 깊숙이 박힙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매 1백 대를 때리며 충고해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악한 자는 왕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반역만 힘씁니다.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잔인한 사자를 보내어 징벌합니다. 교만하게 왕을 반역하는 것은 죽음에 이르는 길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잔인한 사자에 의해서 죽기 전에 겸손히 순복하는 자입니다.

미련한 자를 만나면 많은 피해를 봅니다. 새끼를 빼앗겨 화가 난 암콤을 만난 것보다 미련한 자를 만나면 더 큰 피해를 봅니다.

미련한 자는 거리를 두고 피해야 합니다. 미련한 자는 선을 악으로 갚는 자입니다. 미련한 자가 악으로 선을 갚으면 그 악이 그 집을 떠나지 않습니다.

4. 다투는 시작은 둑에서 물이 새는 것과 같습니다

14-16절을 보면 미련한 자는 다투기를 좋아합니다. 다투는 시작은 둑에서 물이 새는 것과 같습니다.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치지 않으면 둑이 다 무너져 엄청난 피해를 봅니다.

1-2차 세계대전도 다 작은 시비에서 시작돼 큰 피해가 생겼습니다. 지헤로운 자는 작은 다툼이 있을 때 말로써 그것을 해결하는 자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시비하기보다 이해하므로 평화를 이루는 자입니다.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을 악하다 하는 두 사람은 다 거짓된 자입니다. 여호와께서 거짓된 자를 미워하십니다. 지혜로운 자는 악인은 악하다 하고 의인은 의롭다 말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옳다, 아니다를 분명히 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지혜로운 자를 사랑하십니다.

미련한 사람의 손에 돈이 있어도, 배울 마음이 없으면 지혜를 얻을 수 없습니다. 지혜는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함으로 배우는 자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한 마디의 충고도 기쁨으로 받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짐승처럼 매를 맞고 죽어도 깨닫지 못하는 자입니다. 우리는 말로서 문제를 해결하고, 말씀을 잘 듣고 회개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5.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해서 있다

17-21절을 보면 진실한 친구는 사랑이 언제나 끊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진실한 사랑은 위급한 때에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진실한 친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끝없이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죽을 위기의 때에 대신 죽으셨습니다. 혈육은 고난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동기간 고난을 함께 하도록 지으셨습니다.

지혜 없는 미련한 자는 남의 손을 잡고 그의 이웃 앞에서 보증을 섭니다. 예수님은 미련한 자가 되셔서 우리 생명의 보증을 서셨습니다. 예수님은 진실로 우리를 사랑하여 죽음의 길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미련한 보증을 통하여 우리는 살아났습니다.

다른 사람과 싸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벌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으면 다른 사람과 평화해야 합니다. 자기 집 문을 높이 만들어 치장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패가망신을 원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평화하려면 자기 문을 낮추어 겸손해야 합니다.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은 복을 얻지 못합니다. 거짓말만 하는 혀를 가진 사람은 재앙에 빠집니다. 우리가 진실해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주시는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미련한 자식을 낳는 부모는 슬픔을 맛봅니다. 어리석은 자식을 둔 아비는 기쁨을 알지 못합니다. 즐거움을 누리려면 자식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키워야 합니다.

6.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입니다

22-28절을 보면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과 같아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합니다. 우리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길은 바로 즐겁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여 몸을 망칩니다. 우리가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주 안에서 우리는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악인은 사람의 품에서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합니다. 진정한 재판장은 돈에 따라 좌우되지 않고 공의를 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뇌물을 받는 불의를 기뻐해서는 안 됩니다. 죄와 싸워야 진정한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슬기로운 사람의 눈은 지혜를 가까이에서 찾습니다. 하나님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지헤를 가르치십니다. 기쁨과 행복은 가까이에 있습니다. 우리는 가까이 있는 작은 것에서 기뻐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미련한 사람은 눈을 땅 끝에 두고 먼 곳에서 지혜를 찾습니다.

미련한 아들은 아비와 어미의 근심이 되고 고통이 됩니다. 우리는 지혜로운 아들을 두어야 마음에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녀를 책망으로 양육해서 지혜롭게 만들어야, 그 집안에 기쁨이 넘칩니다.

의인을 벌하는 것과 귀인을 정직하다고 때리는 것은 선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의인이고 징직하지만 매를 맞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맞으심으로 우리의 상처를 치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슬픔을 담당하셨습니다. 우리의 슬픔을 담당하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때린 자들은 심판을 받습니다.

경험이 쌓일수록 말수가 적어집니다. 슬기를 깨칠수록 감정을 억제할 줄 압니다. 많은 잔소리를 하기보다 촌철살인과 같이 핵심을 찌르는 말을 해야 합니다.

말을 많이 하는 자는 근심을 줍니다. 미련한 자라도 말을 하지 않으면 지혜로운 자나 슬기로운 자로 여겨집니다. 우리가 기쁨을 얻기 원한다면, 말을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요한 시편 역경 속에 피어나는 찬양의 꽃
▲오요한 목사.
오요한 목사
천안 UBF(말씀사랑교회)
성경 66권 유튜브 강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