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천 100주년
▲월간지 <활천>.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월간지 <활천>은 ‘살아 있는 샘’이라는 의미를 지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기독교 월간지이자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기관지로, 1922년 11월 25일 창간해 올해로 100주년을 맞이했다.

<활천> 측은 “일제 시대 3.1 운동 이후, 1920년대 들어 많은 신문과 잡지들이 창간했다”며 “대부분 잡지와 신문은 창간했다 사라지기를 반복했지만 <활천>은 지금까지 발간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잡지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고 밝혔다.

<활천> 측은 창간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당시 조선 기독교는 모든 것을 선교사와 선교단체에 의존했지만, <활천>은 조선인 교역자들의 생각과 의지, 모금으로 시작됐다는 것.

1920년 가을 성결교회 몇몇 지도자들은 <활천> 창간을 논의하고, 1921년 3월 교역자 간담회에서 이를 상의하기로 했다. 교역자 간담회에서는 “자금은 선교비로 취할 것이 아니라 조선인 남녀 교역자가 공심협력하여 1922년 3월까지 5백 원을 저축하기로 하다”라고 결의했다.

외부의 힘을 빌리지 않고 조선인 교역자들이 함께 자발적으로 창간하기로 한 것. <활천> 창간 결의 후 1년 동안 모금을 했고, 가난 속에서도 계획대로 5백 원을 모았다.

그렇게 창간된 <활천>은 오늘날 100년을 맞이했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일본은 ‘내선일체’를 주장하며 한국 기독교를 일본화하고자 했다. <활천>은 검열제로 원고와 통신을 미리 보내야 했다.

활천 100주년
▲<활천> 창간호.
전쟁이 계속되면서 <활천>은 점점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일제는 매월 60여 면 출판을 절반인 30면, 다시 15면, 다시 반으로 축소하도록 강제했다. 전쟁과 황도 선양 기사를 강요하다, 이를 거부하자 6개월간 정간 처분을 내렸다. 그러다 결국 1941년 12월 1일 폐간당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후, <활천>도 교단 재건과 함께 1946년 1월 복간됐다. <활천> 복간호에 대해 “한국 정치사상 매우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며 “해방 직후 남한에는 ‘우익 3영수’로 불리는 이승만·김구·김규식의 연설 내용이 실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남한 기독교를 대표하는 남부대회가 1945년 11월 28일 정동교회에서 열렸고, 이 자리에서 우익 3영수 환영예배가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이 자리에서 정치와 기독교의 관계에 대한 견해를 피력했는데, 이 연설 내용이 오직 <활천>에만 수록됐다는 것. <활천> 측은 “해방 후 한국 정치와 기독교의 관계를 연구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밝혔다.

간신히 복간했지만, 1950년 6·25 전쟁으로 또 한 번 ‘휴간’해야 했다. 인민군은 <활천> 발행인 박현명, 주필 이건, 편집 주무 김유연을 납북했다. 주요 운영진이 모두 납북되면서, <활천>은 약 3년 동안 휴간했다 속간했다.

전쟁 직후 한국교회는 신학적 방향을 놓고 매우 중요한 논쟁을 벌였다. 진보 진영인 WCC 찬성파와 복음주의 진영인 반대파가 날카롭게 대립했고, 이는 한국교회 분열로 이어졌다. 대부분 교단이 분열의 아픔을 겪었고, 성결교회도 기성과 예성으로 분열됐다. <활천>도 분열의 파도에 휩쓸려 또 다시 휴간했고, 기성과 예성 양쪽 모두 <활천>이라는 잡지를 발행했다.

이후 <활천>은 기성 총회 잡지로서 한국교회 흐름을 잘 반영했다. 1980년대 한국교회 부흥으로 성결교회도 성장해, <활천>도 ‘활천사’라는 출판사를 통해 새롭게 운영됐다. 이처럼 <활천>은 한국 근현대사와 맥을 같이 하고 있으며, 한국교회 역사의 산 증인이다.

활천 100주년
▲<활천> 100주년 감사예배에서 김주헌 총회장이 설교하고 있다. ⓒ크투 DB
<활천> 현 발행인이자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장 김주헌 목사는 “활천은 성결교회의 ‘살아 있는 샘’이자 세상을 ‘살리는 샘’이었다”며 “앞으로도 <활천>은 한국 사회와 교회를 살리는 샘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활천> 사장 최준연 목사는 “<활천>은 초심을 잃지 않고 정체성을 지키며 변화하는 시대 가운데 문화적 갱신을 통해 한국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겠다”고 강조했다.

<활천>은 복음주의 입장에서 목회자의 사역을 돕고 평신도의 건전한 신앙 성장을 도모하며, 사회적으로는 기후 위기와 인구 감소 등 사회 현안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시대를 선도하는 기독교 언론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포부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는 <활천> 창간 100주년을 맞아 ‘활천 100주년 기념예배’ 이후 11월 27일을 ‘활천 100주년 기념주일’로 지키기로 했다. 이 외에 활천 100년사 발간과 활천 100주년 영상 제작, 수기 공모 등 다양한 100주년 행사를 시행하고 있다. <활천>은 한국기독교잡지협회 제1회 우수잡지상, 제1회 경영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창간호 사설에 따르면, 창간 목적은 “신자의 심령상 지혜만 양성코저 함이 아니오. 특별히 영적 품격을 배양하기로 목적함임이며, 신구약 성경을 강해하여 교역자와 평신도에게까지 유익을 얻게 하려 함”이다.

활천 100주년
▲월간지 <활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