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신학의 새관점 학파, 수정주의적 칭의론 주장
한국교회 향한 충정 이해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어
극단적 알미니안 넘어 로마가톨릭 관점으로 나아가
성경이 칭의와 성화에 가르치는 95가지 명제 소개

마르틴 루터 95개조 논제
▲95개조 논제를 성문에 게시하는 마르틴 루터. 벨기에 작가 페르디난드 파웰(Ferdinand Pauwels)의 그림이다. ⓒ위키피디아

지난 10여 년 간 ‘바울신학의 새관점 학파(New Perspective on Paul)’를 지지하는 일부 신학자들은 수정주의적 칭의론을 주창해 왔다.

그들이 수정주의적 칭의론을 지지하게 된 이유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것은 한국교회 내에 팽배해 있는 칭의 교리에 대한 오해와 오용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윤리적인 삶에 있어서 실패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특별히 그들은 종교개혁의 법정적 칭의론이 한국교회의 윤리적 실패 이면의 주범이라고 파악하고 있는 듯 하다. 필자는 한국교회를 향한 그들의 충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수정주의적 칭의론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간단히 말해, 그들의 칭의론은 극단적 알미니안주의적 관점을 넘어 로마가톨릭적 관점으로 나아가고 있다. 처음 회심시 선취적 칭의가 있고, 칭의의 과정을 통과한 후 그 과정에서의 신실함에 기초해 종말론적 최종 칭의가 있다는 주장은 로마가톨릭적 칭의론의 구조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복음주의적 개혁신학권은 이런 주장을 결코 수용할 수 없다. 심지어 웨슬리·알미니안 신학권에 있는 사람들 중 대다수도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알미니안 신학권에 속한 많은 신학자들도 성도의 견인을 인정하고 있다.

더 나아가 칭의와 성화가 서로 병행되는 동일한 과정이라는 일부 신학자들의 주장 역시 로마가톨릭 교리와 매우 유사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본 글을 통해 ‘과연 성경이 칭의와 성화에 대해 무엇을 가르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칭의와 성화에 대한 95가지 명제(theses)를 제시하고자 한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칭의 교리가 ‘교회가 서고 넘어지는 교리(articulus stantis et cadentis ecclesiae)’라고 주장하였다. 칭의 교리를 바르게 가진 교회는 굳게 서지만, 그렇지 못한 교회는 넘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95가지 명제는 마르틴 루터가 1517년 비텐베르크 성당 문에 붙였던 95개조 반박문을 회상하면서 준비되었음을 밝혀둔다. 종교개혁 505주년을 맞이하면서, 한국교회가 성경적인 칭의론과 성화론의 토대 위에 굳게 서길 간절히 기도한다.

1. 칭의(justification)란 전적으로 타락하여 영원한 불못의 형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을 의인이라고 선언하는 행위이다 (롬 3:9-18, 롬 3:24, 갈 4:8).

2. 칭의는 죄인을 의인이라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의로운 행위이다 (롬 3:25-26).

3. 칭의의 주체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롬 3:24, 롬 3:30, 롬 4:5, 롬 4:14).

4. 칭의는 인간이 주체가 되어 성취하는 업적이 아니다 (롬 3:27-28, 롬 4:2).

5. 칭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solus christus) 때문에 일어나는 사건이다 (롬 3:24-25).

6. 칭의는 예수 그리스도가 전 생애네 걸쳐 하나님의 뜻과 율법에 순종함으로 획득한 의 때문에 일어난다 (롬 3:31, 빌 2:8).

7. 칭의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죄인을 위해 보혈을 흘리시고 대속의 죽음을 당하셨기 때문에 가능하게 되었다 (롬 3:24-25).

8. 칭의는 죄인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시고 대속의 죽음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기 때문에 가능하게 되었다 (롬 4:25, 빌 2:9-11).

9. 칭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죄인에게 전가(imputation)됨으로 일어난다 (롬 4:3-5).

10.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의 것으로 여겨주심을 뜻한다 (롬 4:22).

11. 예수 그리스도의 의는 죄인의 밖에 있는 외부적인 의, 낯선 의(external and alien righteousness)이다 (롬 4:24-25).

12. 칭의 사건에서 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는다 (롬 4:24-25, 갈 3:27). 따라서 내면적인 변화는 칭의 사건 이후 시작된다.

13.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는 거룩한 교환을 통해 일어난다 (고전 1:30).

14. 칭의 사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는 죄인의 것으로 간주되고, 죄인의 불의와 저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간주된다 (고전 1:30, 갈 3:13).

15. 칭의 사건에서 죄인은 하나님의 법정에서 무죄한 자로 선포되며, 예수 그리스도만큼 의롭고 완전한 존재로 선언된다. 의롭고 완전한 자로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인정된다. 그래서 성경은 자주 칭의됨을 구원받음과 동일시한다 (롬 4:16, 갈 3:24-26, 갈 4:5-7).

16. 칭의는 오직 은혜로(sola gratia) 일어나는 사건이다. 자격이나 공로가 전혀 없는 죄인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과분하고 파격적인 호의와 선대하심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다 (롬 3:24, 롬 4:4-8, 갈 2:21, 엡 2:8).

17. 칭의는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죄인에게 거저,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다 (롬 3:24, 엡 2:8).

18. 칭의는 죄인의 도덕적 선행이나 율법의 행위나 종교적 업적을 조건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롬 3:27, 롬 4:2, 갈 3:11, 갈 3:21, 엡 2:9).

19. 칭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sola fide) 일어난다 (롬 3:25-30, 갈 2:16, 갈 3:24, 엡 2:8, 빌 3:9).

20. 회심은 죄인이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인 주님과 구주로 믿을 때에 일어난다. 회심 시에 죄인은 칭의된다 (롬 4:3-25).

21. 믿음은 나의 주권을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롬 10:9-10).

22. 그런 의미에서 믿음은 굴복(surrender)이다 (롬 10:9-10).

23. 믿음은 주권의 전이이다. 주권이 전이될 때 하나님의 나라·통치가 우리에게 임하게 되며, 거듭나고 중생한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 (요 3, 벧전 1:23).

24.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인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나의 죄값을 지불하셨고, 죽으신 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구주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롬 10:9-10, 갈 2:20).

25.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는 통로가 바로 믿음이다. 믿음이 우리를 의롭게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의롭게 하신다 (롬 3:26).

26. 여기서 믿음이란 단순한 인지적인 지식(cognitive knowledge)만이 아니다 (약 2:19).

27. 또한 믿음은 감정적 동의(emotional assent)만이 아니다. 믿음은 인격적 신뢰(personal trust)이다 (히 11).

28.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고 완전한 인격과 신실하심과 선하심을 의지하는 것이다 (마 11:28-30, 행 16:31).

29. 믿음은 의탁이며, 의존이다 (롬 10:13).

30.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영접하는 것이다 (요 1:12).

31. 참된 믿음은 선행을 잉태하고 있다 (엡 2:10).

32. 칭의는 사건이며, 로마가톨릭이 주장하는 것처럼 일평생 지속되는 과정이 아니다 (롬 4:3).

33. 칭의는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믿는 순간에 일어나는 사건이다 (롬 4:3).

34. 칭의는 영단번의(once and for all) 사건이다 (롬 4:3-5).

35. 칭의는 일부 알미니안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취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롬 5:1).

36. 칭의는 한번 일어나면 결코 취소될 수 없다 (롬 5:1, 롬 5:18-19).

37. 칭의는 한번 일어나면 영원한 효력을 가진다 (롬 6:21, 히 10:14).

38. 영단번에 칭의된 죄인은 종말의 심판대에서 ‘의로운 자’라는 최종 확인을 받는다 (계 20:15).

39. 영단번에 일어난 칭의와 종말론적인 최종 확인 사이에 불일치는 없다 (고전 1:8, 빌 1:6).

40. 칭의는 신분상 변화이다 (롬 4:13-16).

41. 칭의는 구원파가 주장하는 것과 같이 우리 안에 있는 죄성의 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 (롬 7:14-25, 갈 5:16-17).

42. 우리 안에 죄성은 그대로 남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의 신분을 얻는 사건이 칭의다 (롬 8:1-2).

43. 칭의로 인한 신분 변화는 하나님과의 관계 변화를 동반한다. 죄인을 칭의하심으로 하나님은 죄인을 당신과의 올바른 관계로 회복시킨다 (롬 5:1).

44. 칭의 사건에서 하나님과 죄인의 원수 관계가 청산되고 화해가 일어난다 (롬 5:1, 고후 5:18-19).

45. 칭의 사건에서 하나님은 죄인을 향한 진노를 거두신다 (롬 5:9).

46. 칭의 사건에서 하나님은 죄인의 죄를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용서하신다 (롬 4:6-8; 히 9:26).

47. 칭의된 그리스도인에게는 더이상 결코 정죄함이 없다 (롬 8:1-2).

48. 칭의는 새관점 학파가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과 인간 사이의 수평적인 화해가 아니라,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수직적인 화해 사건이다. 수평적 화해는 수직적 화해에 동반되는 결과요 열매이다 (엡 2).

49. 그리스도인은 자기 자신 안에서는 여전히 죄인이지만,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는 완전한 의인이다(simul iustus et peccator, 롬 7:14-25).

50. 성화(sanctification)는 칭의된 그리스도인이 실제적으로 의롭고 거룩한 자로 변화되는 과정이다 (고후 3:17-18).

51. 성화는 그리스도인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역사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아 가는 과정이다 (롬 8:29, 갈 4:19).

52. 성화는 성령께서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시지만,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할 책임이 있다 (갈 5:16, 빌 2:13).

53. 내주하시는 성령이 우리 인격과 삶을 지배하는 상태가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다 (엡 5:18).

54. 성령 내주와 인치심은 영단번의 사건이나, 성령 충만은 반복적인 사건이다 (엡 1:13, 엡 5:18).

55. 성화는 그리스도인 안에 있는 새로운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나는 과정이다 (벧후 3:18).

56. 성화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의 과정이며, 육신의 소욕을 거부하고, 성령의 소욕을 선택하는 과정의 반복을 통해 이루어진다 (마 16:24, 갈 5:16-18).

57. 성화는 이 땅에서 완성될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죽음으로 이 땅을 떠날 때에야 비로소 죄의 본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빌 3:12-16).

58. 칭의와 성화는 서로 구별되지만, 절대로 분리되지 않는다. 칭의와 성화 모두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뿌리에서 나오는 열매이다. 따라서 칭의 없는 성화는 있을 수 없으며,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 성화 없는 칭의도 있을 수 없다 (롬 6:1-11).

59. 칭의는 성화의 뿌리이자 출발점이며, 성화는 칭의의 결과요, 열매요, 목적이요, 종착역이다 (엡 2:10).

60. 칭의는 영단번의 사건인 반면, 성화는 평생동안 지속되는 과정이다 (빌 3:9-16).

61. 영단번에 오직 믿음으로 칭의된 그리스도인은 즉시로 성화의 과정을 시작한다 (벧전 1:23, 벧전 2:2). 이는 태어난 아이가 즉시로 성장 과정을 시작하는 것과 같다.

62. 참된 믿음으로 칭의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성화는 논리적 필연이다. 하지만 칭의된 직후 죽는다면 성화 과정 없이 바로 영화의 상태로 들어간다 (눅 23:42-43, 십자가 상의 강도).

63. 어떤 그리스도인이 입술로는 믿음을 고백하더라도 성화되지 않는다면, 둘 중 하나다 (고전 3:1, 약 2:26).

64. 하나는 그 믿음 자체가 살아있는 참 믿음이 아니므로 중생되지도 않았고, 칭의되지도 않은 것 (약 2:26).

65. 다른 하나는 믿음은 살아있는 참 믿음이지만, 그 믿음이 자라지 못하고 아주 유치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 (고전 3:1).

66. 성화의 과정은 매우 점진적이다. 매우 더딘 과정이다. 두렵고 떨림으로 가야 하는 길이다 (빌 2:12).

67.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화 과정에서 영적 퇴보나 침체를 경험한다. 영적 퇴보와 침체에도 불구하고, 성화의 과정은 멈추지 않는다 (엡 4:14).

68. 성화 과정에서 성도의 견인은 절대적으로 보장된다. 그것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보혜사 성령이 성도를 위해 기도하시기 때문이다. 만일 성자와 성령이 성부께 드린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다면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자기 모순이 생기는 것인데, 그런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 (롬 8:26, 롬 8:34).

69. 성화 과정에서 짓는 죄에 대해서 우리는 반복적으로 회개해야 한다 (요 13: 19, 요일 1:9).

70. 이 반복적인 회개는 영원한 멸망과 심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 (롬 8:1-2).

71. 도리어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과의 교제가 깨어지는 것이 싫기에 하는 것이다 (요일 1:5-10).

72. 성도는 성화 과정에서 죄를 미워하는 마음이 점점 더 강하여지기 때문에, 더욱더 진지하게 회개하게 된다 (요일 1:9).

73. 성화의 주된 방편은 말씀과 성례(성만찬과 세례)이다 (벧전 2:2, 고전 11:17-34, 마 28:18-20).

74. 기도와 교제와 여러 가지 영성훈련 방법도 성화의 방편이 될 수 있다 (약 5:13-18, 고후 13:13, 히 13:18-19, 요일 1:3-10).

75. 성화되어가는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더 뜨겁게 사랑하게 된다 (요일 4:21, 요일 5:3).

76. 성화되어가는 그리스도인은 지체들과 이웃들을 더 뜨겁게 사랑하게 된다 (벧전 1:22, 요일 4:19-21, 요일 5:1-2).

77. 예수님이 재해석하시고 우리 마음판에 새겨진 율법은 성화과정에서 성도 생활의 규범으로 기능한다. 성경은 그것을 그리스도의 법이라 부른다 (마 5장-7장, 갈 6:2, 히 10:15-16).

78. 성화되어가는 그리스도인의 인격과 삶 속에서는 성령의 열매가 맺어진다 (갈 5:22-23).

79. 성화되어가는 그리스도인은 인격적·영적 성숙을 경험한다. 그 결과 더욱 겸손한 지혜의 사람이 되어 간다 (약 1:5-9, 벧전 5:5-6).

80. 성화되어가는 그리스도인은 선한 일에 열심하는 하나님의 친백성으로 살아간다 (엡 2:10, 딛 2:14).

81. 선한 일이란 육신적인 힘과 영향력과 재물과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관대하게 나누는 것이다 (딤전 6:18; 히 13:6).

82. 성화되어가는 그리스도인은 성경적인 재물관을 확립한다 (마 6:19-24, 딤전 6:6-10).

83. 성화되어가는 그리스도인은 성경적 청지기 정신을 확립한다 (고전 4:1-2).

84. 성화되어가는 그리스도인은 성경적 인생관을 확립한다 (약 4:13-17).

85. 성화되어가는 그리스도인은 성경적인 가치관을 정립한다 (히 5:14).

86. 성화되어가는 그리스도인은 성경적인 세계관을 정립한다 (히 11:1-3).

87. 성화는 개인의 삶뿐 아니라, 공동체의 맥락에서도 일어난다 (고전 12:12-31).

88. 성화는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교회를 통하여 일어난다 (엡 2:19-22, 5:26-33).

89. 성화는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수직적 차원뿐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라는 수평적 차원에서도 일어난다 (요일 5:1).

90. 성화의 수준에는 차이가 있다 (롬 14:1).

91. 성화에 앞서가는 선진이 있고, 뒤따르는 후진이 있다 (롬 15:1).

92. 성화가 깊어지는 만큼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항상 기뻐하며,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간다(살전 5:16-18).

93. 성도의 삶에서 고난은 필수적이며, 고난은 성화의 탁월한 방편이다 (마 713-14, 롬 8:17-18, 히 12:1-13).

94. 성화가 깊어지는 만큼 하늘의 상급과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게 된다 (고전 1: 7, 살전 5:1-11, 딤후 4:6-8, 딛 2:13).

95. 성화의 과정을 거친 성도는 죽음과 더불어 그 영혼이 영화되고, 이어서 부활시 몸이 영화된다 (롬 8:30, 고전 15:42-44).

정성욱
▲정성욱 교수.

정성욱 박사
美 덴버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저서 <티타임에 나누는 기독교 변증>, <10시간 만에 끝내는 스피드 조직신학>, <삶 속에 적용하는 LIFE 삼위일체 신학(이상 홍성사)>, <한눈에 보는 종교개혁 키워드>, <한눈에 보는 종교개혁 키워드>, <한눈에 보는 십자가 신학과 영성>, <정성욱 교수와 존 칼빈의 대화(이상 부흥과개혁사)>, <한국교회 이렇게 변해야 산다(큐리오스북스)>, <밝고 행복한 종말론(눈출판그룹)>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