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가지 형형색색 작은 천, 시골 서낭당 같아
여러 개 지하 공간뿐 아니라, 지상에도 카타콤
초대교회 성도들, 탄압 피해 예배와 무덤 사용
호주 동쪽 해상 노폭 섬 원산지인 소나무 발견

구브로 바보
▲카타콤 입구 나뭇가지에 온갖 천 조각이 걸려있다.
구브로(사이프러스) 섬의 서해안에 면한 바보(Pafos) 항구에 있는 바울 기념교회에서 대로에 나와 조금 더 북쪽으로 걸어가면, 초기 기독교 시대 지하묘지인 카타콤(Ag. Solomonis Catacomb)이 있다.

이 카타콤은 이탈리아 로마 인근에 있는 대규모 카타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작은 규모인데, 현재는 복원 중이므로 일부 구간만 들어가 볼 수 있다.

전체적인 관리가 제대로 안 되어 지저분하고 입구 부근의 나뭇가지에 형형색색의 작은 천을 걸어놓은 분위기는 기독교라기보다는 마치 우리나라 시골의 서낭당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카타콤의 지하 입구는 여러 곳이 있는데, 이 가운데 한 곳은 본격적으로 복원이 되고 있으므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위에 철 구조물을 설치해 놓았다. 이 입구 옆에 서있는 서너 그루의 나뭇가지에는 온갖 천 조각이 걸려 있다.

구브로 바보
▲카타콤 내부. 성인을 그린 그림과 꽃이 있다.
필자는 네팔과 인도의 카슈미르(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국경분쟁 지역)를 여행하였을 때 현지 불교신자들이 돌로 만들어 놓은 석조물 위에 매단 천조각들이 음산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한 침울한 분위기를 이곳의 카타콤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곳 카타콤에는 여러 개의 지하 공간이 있는데, 지하 공간은 생각하였던 것보다 넓다. 옛날 시신을 안치했던 공간에는 여러 성인(聖人)들을 그린 그림과 꽃이 놓여 있다.
이곳 카타콤은 지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 있는 돌로 된 낮은 언덕에도 여러 개 있다.

초대교회 기독교인들은 지하 카타콤 주위에 있는 낮은 바위 언덕에도 동굴을 만들었다. 돌은 아주 단단한 바위가 아니므로, 기독교인들은 이 바위를 뚫어 내부에 큰 공간을 만들었다. 이 언덕에는 여러 개의 지상 동굴 입구가 있으므로, 필자는 호기심에 동굴들 속을 둘러보았다.

필자가 이곳에 갔을 때는 필자 외에 아무도 없었으므로, 동굴 속에서 으스스한 분위기를 느꼈다. 구브로 섬은 기원전 58년 로마군에 점령당하였고, 그 후 로마 제국의 기독교 탄압 통치를 받았으며, 서기 7세기에는 무슬림 아랍인의 침략을 받았다. 당시 박해를 받았던 기독교인들이 탄압을 피해 이곳에 카타콤을 만들어, 예배 장소와 무덤으로 사용한 것으로 짐작된다.

구브로 바보
▲카타콤 내부. 성인을 그린 그림과 꽃이 있다.
카타콤을 나와서 바보 시내를 걷고 있는 필자의 눈에 들어온 몇 그루 나무가 필자를 반갑게 만들고, 동시에 놀라게 하였다. 이 나무는 남양삼나무과에 속한 ‘노폭 소나무(Norfolk Island Pine, 학명 Araucariaceae Araucaria heterophylla)’로서, 원산지는 호주 동쪽 해상에 있는 노폭 섬이다.

영국이 낳은 세계적 탐험가 캡틴 쿡(Captain Cook), 즉 ‘쿡 함장’이 조그만 노폭 섬에서 이 수종이 자라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름을 붙였다.

쿡(James Cook)은 영국 해군 장교(대령으로서 사망)로서 영국 군함을 이끌고 세계를 탐험하였음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이상하게도 쿡 함장(해군 함정 책임자)이라고 하지 않고 ‘캡틴’을 선장(민간인 선박 책임자)으로 잘못 번역하여 ‘쿡 선장’이라고 부르고 있다.

영어로는 함장과 선장 모두 ‘캡틴’이라고 부르는데, 누군가 쿡이 민간인 탐험가인 줄 알고 잘못 번역한 것이다. 필자가 직접 노폭 섬에 가서 본 이 나무를 멀리 떨어진 지중해에서 만날 줄이야…. 누군가가 이 나무를 이곳에 가져다 심은 것 같다.

구브로 바보
▲바보 시내와 높이 솟은 노폭 소나무.
몇 년 전 우리나라 대기업 회장 한 분으로부터 그 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땅에 식물원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고, 필자는 이 나무를 호주에서 수입할 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

바울 기념교회와 카타콤은 항구에서 멀지 않은 평지에 있으나, 바보의 시외버스터미널은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다. 차로 10분 이상 걸리는 거리이나 필자는 군화를 신고 군용 가방을 옆구리에 찬 채로 뛰어서 갔다. 필자는 어느 곳에서나 뛰어 다니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더운 날씨에 외국인이 땀을 흘리며 뛰어가는 모습을 보고, 무슨 급한 일 때문에 달리는 것으로 오해한 현지인이 친절하게도 필자 앞에서 최신형 레인지로버 차를 멈추고 어디로 가느냐고 묻기에, 목적지를 말해주자 타라고 하며 목적지에 내려 주었다.

마음씨 좋은 현지인 신사 덕분에 필자는 뜻하지 않게 잠시나마 현지 이야기를 들으며 빠른 시간에 버스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구브로 바보
▲시내 도로에 있는 카타콤 안내판.
권주혁 박사
세계 136개국 방문
성지 연구가, 국제 정치학 박사
‘권박사 지구촌 TV’ 유튜브 운영
영국 왕실 대영제국 훈장(OBE) 수훈
저서 <여기가 이스라엘이다>,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찾아서>,
<천사같이 말 못하고 바울같지 못하나>,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