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목사 “눈물의 감동을 주시는 귀중한 하나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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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22년 10월 23일
장소: 청주 양성교회
본문: 시 39:12, 56:8, 126:5-6

매주 손수 운전해 전국의 작은교회를 방문해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본지 편집고문 김명혁 목사님께서 10월 23일 청주 양성교회에서 전한 간증 메시지를 소개합니다. 김명혁 목사님은 2017년 이래 이 교회에 열두 번째 가셨다고 합니다. -편집자 주

▲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 명예회장). ⓒ크리스천투데이 DB

▲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 명예회장). ⓒ크리스천투데이 DB
성부 하나님께서는 눈물을 아주 귀중하게 보셨는데, 성경은 여러 곳에서 눈물을 아주 귀중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맨날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는데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 6:6). “여호와여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시 39:12).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시 56:8).

하나님께서 귀중하게 사용하신 선지자 예레미아도 맨날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는데 예레미아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그렇게 되면 살륙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곡읍하리로다”(렘 9:1). “밤새도록 애곡하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애 1:2). “내가 우니 내 눈에 눈물이 물 같이 흐름이여”(애 1:16).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끓으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처녀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 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혼미함이로다”(애 2:11).

성자 예수님께서도 눈물을 흘리면서 우셨다고 했습니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에도 눈물을 흘리면서 우셨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요 11:35). 예루살렘 성이 망할 것을 바라보시면서도 우셨다고 했습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눅 19:41,42).

성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 5:7). 성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라고 부르짖으시면서 통곡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도 아들을 내어 버리시면서 캄캄함으로 얼굴을 가리우시고 우셨다고 생각합니다.

부활하신 후 주님께서 디베랴 바다가에서 배신자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을 만나서 타이르시면서도 우셨다고 생각합니다(요 21:15-17). 그리고 승천하신 후 성자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 우편에서 항상 살아서 간구하신다고 했는데(롬 8:34, 히 7:25), 우리들이 여러 가지 죄악에 밀려서 넘어지고 또 넘어지는 것을 바라보시면서 우시고 또 우신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도 자기의 죄 때문에 그리고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사랑하는 성도들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울고 또 울고 또 울었다고 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4).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행 20:31). “내가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고후 2:4).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빌 3:18). 사도 바울은 맨날 울면서 눈물을 쏟은 눈물의 목회자였다고 생각합니다.

길선주 목사님과 이기풍 목사님과 이성봉 목사님과 김치선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과 박윤선 목사님도 자기의 죄 때문에 그리고 민족이 당하는 불행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와 사랑 때문에 평생토록 눈물을 흘리면서 울고 또 운 눈물의 목회자들이었습니다. 길선주 목사님과 그가 인도하신 1907년 1월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일어난 “부흥운동”은 사실은 “눈물 운동”이었고 “회개 운동” 이었습니다.

눈물은 너무 너무 귀중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눈물은 가장 진솔하고 처절한 자기 표현의 방식이고 가장 친밀한 소통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눈물을 흘릴 때 하나님과 친밀하게 소통하게 되고 사람들과도 친밀하게 소통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야곱이 울 때 에서가 함께 울면서 화해했고, 요셉이 울 때에 형들이 함께 울면서 화해했고, 다윗이 울 때 백성들이 함께 울면서 하나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눈물은 가장 귀중한 은혜의 통로이고 가장 귀중한 소통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면서 우는 자들에게 가까이 하시면서 친밀하게 소통하셨습니다. 자기의 죄 때문에 흘리는 눈물도 귀중하고, 자기가 당하는 슬픔과 아픔과 고통 때문에 흘리는 눈물도 귀중하고, 민족이 당하는 재난 때문에 흘리는 눈물도 귀중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에 감격하여 흘리는 눈물도 귀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요엘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욜 2:12,13).

성부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아모스에게 울음 군을 불러다가 울게 하라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농부를 불러다가 애곡하게 하며 울음 군을 불러다가 울게 할 것이며”(암 5:16).

눈물은 너무 너무 귀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귀중하게 받으시는 것이 눈물이고,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의 은혜를 받게 하는 것이 눈물이고, 나를 살리는 것이 눈물이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까지 움직이게 하는 것이 눈물입니다.

저주 받아 마땅한 니느웨 성이 굵은 베옷을 입고 울며 회개했을 때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려고 하셨던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 그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으니라 왕이 그 대신으로 더불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가로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떼나 양떼나 아무 것도 입에 대지 말찌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로 멸망치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욘 3:5-10).

그런데 하나님께서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인 저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눈물의 감동을 아주 많이 주셨습니다. 저는 본래 눈물이 없었던 좀 강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무엇이든지 두려워하지 않고 막 하고 막 가는 “막가파”였고 심한 장난꾸러기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부모님과의 이별의 슬픔과 아픔을 통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울기 시작했고, 이성봉 목사님 김치선 목사님 등 신앙의 선배님들을 통해서 회개와 은혜 사모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제가 범한 죄와 허물을 회개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고,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을 경험하고 묵상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신앙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11살 때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북에 두고 38선을 혼자서 뛰어넘어서 남쪽에 온 후 몇 년 동안은 거의 매일 밤 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습니다. 후에는 미국에서 태어난 어린 아들 철원이가 불치의 병인 뇌수종을 지니고 태어나서 극심한 고통을 당하면서 살다가 4살 때 저의 곁을 떠나 주님의 품으로 돌아간 일 때문에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슬픔과 아픔의 눈물들은 제가 늘 고백하는 대로 아주 귀중하고 아름다운 보석이 되었습니다. 이별의 슬픔과 아픔의 눈물들은 저로 하여금 십자가에 나타난 주님의 슬픔과 아픔으로 가까이 다가가게 만들었고 슬픔과 아픔을 당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로 가까이 다가가게 만들었고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 철원이가 먼저 간 슬픔과 아픔이 없는 천국을 사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저 자신의 삶과 관련된 ‘눈물의 감동’에 대한 간증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첫째로, 제가 11살 때 월남 2년 후에 일어난 6.25 전쟁으로 인해 대구에 가서 3년 동안 피난 생활을 했는데 그 때 ‘한국의 무디’라고 불리시던 이성봉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부흥회에 12번 참석하면서 깊은 은혜와 감동을 받았는데, 특히 회개와 눈물의 은혜를 받곤 했습니다.

저는 이성봉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부흥회에 맨 앞자리에 앉아서 정성껏 말씀을 들으면서 은혜를 받곤 했고 금요일에는 철야기도를 했고 토요일 새벽에는 안수 기도를 받곤 했는데, 기도제목이 무엇이냐고 물으시면 저는 “좋은 목사님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나중에는 묻지도 않으시고 제가 무릎을 꿇고 앉으면 “너 기도 제목이 좋은 목사님이 되는 거지” 라고 말씀하시면서 안수 기도를 해 주시곤 했습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성봉 목사님께서는 가장 귀중한 성경적 삶과 신앙 9가지를 강조하시곤 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회개와 중생의 복음 신앙’이었습니다. 이성봉 목사님께서는 설교 때마다 회개를 강조하셨습니다. 회개를 통해서만 죄인이 중생하고 구원 얻어 천국에 간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죄 지은 사람이 지옥 가는 것이 아니고 회개하지 못한 사람이 지옥 간다고 말씀하시면서 회개를 강조하셨습니다.

저는 이성봉 목사님의 회개의 설교를 들으면서 울고 또 울고 또 울었습니다. 결국 제가 대구에서 피난 생활을 3년 동안 했는데 주일에는 교회에 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교회에 있으면서 정성껏 예배를 드렸고 새벽 기도를 빠지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유명한 미국 강사님을 초청해서 부흥회를 했는데, 한경직 목사님께서 통역을 하셨습니다. 부흥회 어느 시간에 강사 목사님이 회개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면서, 회개는 개인적으로 해도 되지만 공개적으로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면서 회개할 사람은 지금 앞으로 나와서 공개적으로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도 앞으로 나가지 않는데, 제가 제일 먼저 앞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저의 이기적이고 정욕적인 죄를 고백했습니다. 강사님은 저를 칭찬하셨는데 어른들이 앞으로 나와서 회개의 고백을 했습니다.

둘째로, 제가 고등학생과 대학생일 때 서울로 돌아와 ‘한국의 예레미야’라고 불리시던 김치선 목사님께서 목회하시던 창동교회(나중에 대창교회로 개명)에 다니면서 회개와 참회의 은혜를 받곤 했습니다.

김치선 목사님께서는 새벽 기도회 때마다 ‘성령이여 강림하사 나를 감화하시고 애통하며 회개할 맘 충만하게 합소서’라는 찬송을 부르셨는데, 울면서 회개의 고백을 하시고 또 하시고 또 하셨습니다.

저는 새벽기도회 때마다 회개와 참회의 은혜를 아주 많이 받곤 했는데 새벽 기도 후에 남산으로 올라가서 어느 나무 밑에 앉아서 한 20분 이상 더 기도하고 집으로 와서 아침을 먹고 서울 고등학교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김치선 목사님께서는 매년 연초마다 3일씩 금식 기도를 인도하셨는데 저는 금식 기도에 꼭 참석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김치선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산 기도회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면서 은혜를 받곤 했는데, 삼각산이나 관악산은 물론 대구 주암산까지 쫓아 다니면서 은혜를 받곤 했습니다.

주암산 기도회 어느 시간에 찬송가 246장을 불렀는데 저는 찬송을 부르면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1절 가사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내 주의 나라와 주 계신 성전과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저는 1절을 부르고 나서 더 이상 찬송을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라고 찬송을 부를 때 저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피를 흘려서 교회를 사셨다는 말인가!” 저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고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늘 사랑하지 못하는데”라고 생각하면서 너무 부끄럽고 죄송해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옆에 있던 어느 어른이 저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학생, 무슨 슬픈 일이 있어?” 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주암산 기도회에 참석했던 김치선 목사님의 아들 세창이가 저보고 안수 기도를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안수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세창이는 나중에 목사님이 되었지요.

셋째로, 저에게 ‘눈물의 감동을 주신 귀중한 하나님의 은혜’ 중 하나는 제가 11살 때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별한 다음 평생 이별의 슬픔과 아픔을 지니고 자주 울면서 살았는데, 제가 어머니와 이별한 다음 17년 후에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사랑하는 어머니로부터 편지를 받아서 읽으면서 울고 또 울고 또 운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공부할 때 홍콩을 통해 북한에 계시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제 사진도 함께), 어머니가 제 편지를 받아서 읽으신 다음 편지를 써서 보내셨습니다.

저는 어머님의 편지를 받아서 읽으면서 울고 또 울고 또 울었습니다. 저는 그 편지의 사본을 지금도 성경책 속에 넣고 다니면서 자주 읽곤 하는데, 그 편지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 아들 명혁에게. 9월 5일에 네 편지와 동시에 외로이 자라 성인이 된 내 아들 명혁이에 얼굴을 더구나 훌륭하게 된 된 내 아들을…. 나는 보고 십고나. 손이라도 한번 꽉 쥐어보고 십고나. 이 내 기쁨을 지면 상으로는 표현할 수 없다. 명혁아! 나는 네 말 그대로 오래오래 살아서 내 사랑하는 아들 만날 날을 기다리겠다. 몽중인들 이저스랴 내 명핵이. 부디 건강하기를 축원하면서 어머니 글. 9월 29일.”

너무너무 귀중하고 너무너무 아름다운 사랑과 보고픔의 글이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날마다 하루에 두 번씩 사랑하는 철원이와 아버지와 어머니를 기리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이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넷째로, 저에게 ‘눈물의 감동을 주신 귀중한 하나님의 은혜’ 중 또 하나는 제가 1983년 7월 21일 밤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어느 작은 호텔 방에서 시 139:17,18을 읽으면서 울고 또 운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찌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시 139:17,18).

저는 1983년 7월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빌리 그래함 국제전도대회를 마치고 캐나다로 가는 길에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어느 작은 호텔 방에서 하룻밤을 묵은 일이 있었는데, 그 때 이 성경 구절을 읽다가 너무 깊은 감동을 받고 울고 또 울면서 무릎을 꿇고 감사와 회개의 기도를 드린 일이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빌리 그레함 전도대회 때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너무 감격해 의자에 앉았다가 마룻바닥에 앉아서 울면서 회개와 감사와 헌신의 기도를 드린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제 옆에는 박윤선 목사님께서 앉아 계셨습니다. 레이캬비크의 어느 작은 호텔 방에서 시 139:17,18을 읽으면서 울면서 감사와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다윗에게는 물론 부족한 저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선하신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은혜와 섭리의 조목 조목들이 모래알 보다 더 많다는 사실 앞에 너무나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감사와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습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그 때까지 지내온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지난 날의 모든 일들을 너무 너무 세밀하게 간섭하시면서 저를 가장 선한 길로 이끌어 오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손길을 생각하면서 너무 감격해서 울고 또 울고 또 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시편 51편과 103편과 139편과 143편과 145편 등을 너무너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다섯째로, 제게 ‘눈물의 감동을 주신 귀중한 하나님의 은혜’ 중 또 하나는 2005년 10월 중남미 도미니카 선교 대회에 참석해 은혜와 감동을 받으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운 일이었습니다.

중남미의 조그만 섬인 도미니카공화국 산타 도밍고에 한국과 미국, 중남미 곳곳에서 80여 명의 선교 지도자들이 함께 모여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고 교제하고 발표하면서 세계 선교에 대한 비전과 전략을 나누며 모색했는데, 도미니카 선교 대회는 은혜와 감동이 충만한 너무나 좋은 선교 대회였습니다.

마지막 날 밤 모임은 뜻깊은 감동적인 모임이었습니다. 최복규 목사님의 말씀이 끝난 후 최복규 목사, 최일식 목사, 김명혁 목사, 강승삼 목사는 선교 제1세대인 선배 방지일 목사님 앞으로 다가가서 마루에 엎드려 큰 절을 올리며 감사와 존경과 사랑을 표했는데, 우리는 물론 참석자들은 모두 깊은 감동에 사로 잡혔습니다.

폐회기도를 저보고 하라고 해서, 강단에 올라가서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왼편에는 최복규 목사님, 오른 편에는 최일식 목사님이 서 계셨는데, 저는 감동의 울음이 북받쳐 올라 도저히 기도를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평생 처음 갖는 경험이었습니다. 소리내 울다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신 성자 예수님께, 자비와 긍휼을 베푸신 성부 하나님께, 순교의 피를 흘리신 신앙의 선배님들께, 수고의 눈물과 땀을 흘리신 신앙의 선배님들께, 그리고 선교의 현장에서 수고하고 있는 동역자들과 후배 선교사님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감사의 기도를 눈물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선교사들과 저들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도우심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리고 축도로 밤 집회를 마쳤습니다. 눈물의 감동과 은혜가 충만한 도미니카 선교대회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축복이었는지 모릅니다.

여섯째로, 저에게 ‘눈물의 감동을 주신 귀중한 하나님의 은혜’ 중의 또 하나는 제가 강변교회에서 목회할 때인 2006년 9월 어느 날 새벽 기도회 시간에 롬 7:24 말씀을 읽으면서 울고 또 운 일이었습니다.

제가 그 당시의 상황을 글로 써서 발표했는데, 그 글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는 제목으로 뉴스파워(06. 9. 14)와 국민일보(06. 9. 21)에 그대로 실렸습니다. 그 글의 일부를 그대로 인용합니다.

『나는 오늘 새벽 기도회 시간에 성도들과 함께 사도 바울의 처절한 죄 고백의 탄식을 읽으면서 가슴과 눈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오늘 아침 차를 타고 집에서 교회로 오는 시간에도 그 눈물은 계속해서 내 가슴과 눈에서 흐르고 있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What a wretched man I am!”

자기 자신을 가리켜 ‘저주 받을’ 사람이라고 처절한 죄 고백을 한 사람이 정말 사도 바울 자신이었을까? 나는 오늘 새벽 사도 바울의 처절한 죄 고백의 탄식을 한 마디 한 마디 읽으면서 “어쩌면! 어쩌면!” 하면서 나 자신도 감동에 떨며 탄식하고 있었다. 삼층 천에 올라갈 정도로 가장 큰 은혜를 체험한 사도가! 그의 손 수건이 닿기만 해도 불치의 병들이 물러갔던 가장 큰 능력을 지녔던 사도가! 어떻게? 어떻게? 그런 처절한 죄 고백의 탄식을 할 수가 있었다는 말인가!

나는 가슴과 목이 메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기독교는 값싼 은혜를 파는 종교가 아니다. 만사형통을 빌어주는 종교도 아니다. 그럴듯한 선으로 포장해주는 종교도 아니다. 기독교는 자신의 부끄러운 수치와 절망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벌거벗은 모습 그대로 드러내는 종교이다. 그리고 자신의 저주스러운 모습을 하나님께 진솔하게 고백하는 종교이다.

지금 우리는 처절한 죄 고백의 탄식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자기 자신을 미워하며 한탄했던 욥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는 지금 모두 너무 의인들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메마른 나의 가슴에 사도 바울이 가슴에 지녔던 처절한 죄 고백과 탄식의 몇 백분의 일이라도 주신 주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결국 저는 회개를 가장 귀중한 것으로 여기며 사모하게 되었고, 회개를 가장 많이 한 다윗과 사도 바울을 가장 존경하게 되었고, 길선주 목사님 이기풍 목사님 이성봉 목사님 김치선 목사님 등 신앙의 선배들을 가장 존경하며 본 받고 싶게 되었습니다.

여덟째로, 저에게 ‘눈물의 감동을 주신 귀중한 하나님의 은혜’ 중 또 하나는 중국 연변 지역을 방문하면서 그곳에서 살고 있는 조선족 고아 아이들을 만나면서 눈물을 흘리며 울고 또 운 일이었습니다. 그 때 쓴 기행문 일부를 인용합니다.

『나는 지금 중국 연변에 와서 또 다른 종류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그 눈물을 나의 가슴 병에 담고 있다. 가난과 고난의 슬픔과 아픔 중에서 자라가는 불쌍한 우리 조선족 어린이들과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저들의 슬픔과 아픔을 함께 느끼면서 슬픔과 아픔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 일행은 호텔에 들러 여장을 풀지도 못하고 그 길로 즉시 왕청으로 달려갔다. 소형 버스로 2시간 달려서 왕청에 도착했다. 이번에 긴급 지원하게 된 네 가정을 일일이 찾아 보기 위해서였다. 엄마 아빠 없이 할머니 손에서 자라고 있는 8살 난 정권일이는 10리 되는 초등학교를 걸어서 다니는데 학교에서는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반찬도 없는 밥을 정신 없이 먹어 치우는 손자를 바라볼 때마다 할머니는 가슴으로 눈물을 흘린다고 말했다.

8살 난 이봉림은 간염으로 고생하는 엄마와 함께 둘이서 살고 있는데 엄마는 병원에도 한번 가보지 못하고 오직 어린 딸에게 모든 소망을 두고 하루 하루 아픈 몸으로 품팔이를 하면서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나의 집사람은 봉림이 엄마와 헤어질 때 둘이 한동안 부둥켜 안고 슬픔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모두 가슴에 슬픔과 아픔의 눈물을 지니고 연길로 돌아와서 된장찌개 하나로 저녁식사를 하고 호텔에서 여장을 푼 후 하루 밤을 편하게 잤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화요일 아침 식사를 한 후 우리 일행은 2시간 거리에 있는 화룡으로 달려갔다. 결연가정과 긴급지원 가정 8가정을 일일이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나는 한 가정 한 가정을 방문할 때마다 또 다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대부분의 홀엄마, 홀아빠는 각종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다리 하나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홀엄마와 함께 사는 초등학교 1학년 박성 어린이는 예쁘고 착하게 생겼는데 너무너무 가난하고 불쌍했다. 탈북 여성 엄마가 어디론가 도망가서 홀 아빠와 함께 사는 초등학교 1학년 이화 어린이는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울면서 엄마에게 편지를 쓰곤 한다고 했다.

가장 슬픈 이야기는 식물인간이 된 엄마를 눈물과 사랑으로 쓰다듬으면서 착하고 예쁘게 살아가고 있는 라혜연이의 이야기이다. 엄마 림계향은 한국에 와서 일하다 뇌출혈로 쓰러져 식물 인간이 되었다. 슬픔과 아픔과 절망 중에서도 라혜연이는 학교에서는 최우등생으로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고 있었다. 내가 식물 인간이 된 혜연이 엄마의 머리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했을 때, 엄마는 약간의 반응을 나타내며 눈물을 조금 흘렸다. 박성, 이화 어린이와 혜연이가 나란히 앉아 식사를 했는데 너무너무 예쁘고 불쌍해서 안아주고 안아주고 또 안아주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가슴 병에 담으면서.

그 자리에서 혜연이는 다음과 같은 글을 읽었다. 예쁘게 또박또박 쓴 글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제 고마운 분들의 후원을 받게 될 팔가자 중학교 3학년 5반에 다니고 있는 라혜연입니다. 저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이 현실 앞에서 멍해지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고마운 분들도 있구나! 한 학생도 아니고 이 숱한 빈곤 학생들에게 후원의 손길을 뻗치신다는 생각에 저는 떨리고 긴장된 마음을 가라 앉히고 고마운 분들에 대한 감사하고 또 감사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전달하기 위해서 필을 들게 되었습니다.

고마운 분들이여! 정녕 당신들은 날개 없는 천사와도 비길 바가 아니며 당신들의 따스한 매 손길 하나하나가 얼마나 친근하며 벅찬 감동을 느끼게 하는지 모릅니다. 저는 오늘의 벅차고 감동된 심정을 안고 꼭 고마운 분들이 우리들에 대한 기대 훌륭히 성장하여 나라의 유용한 인재로 되는 이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바르고 훌륭히 성장하여 열심히 학습에 힘써서 고마운 분들의 크나큰 은정에 대해 조금이나마 보답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너무너무 착하고 예쁜 마음의 글을 대하면서 나는 계속해서 슬프고도 아픈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그 눈물을 나의 가슴 병에 담는다. 나는 라혜연이와 엄마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 밤이 깊었다. 내일 수요일 아침에는 안도와 용정으로 달려간다. (엄마들이 북으로 잡혀간) 금화와 선화도 반갑게 만날 것이다. 부족한 나에게 달려갈 곳을 주신 주님께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펼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을 주신 주님께 눈물겨운 감사를 드린다. 2008년 3월 25일 화요일 늦은 밤에.』

아홉째로, 저에게 ‘눈물의 감동을 준 일들과 말씀들’ 중의 또 하나는 제가 강변교회에서 은퇴한 후에도 이곳 저곳을 방문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우는 일입니다. 그 중에서 한두 가지 일을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가 강변교회에서 2008년 1월 13일 은퇴했는데 2008년 부활절 전후에 눈물을 흘리면서 운 일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다음과 같이 기록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글들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부활절 새벽부터 흐르기 시작한 뜨거운 눈물이 지난 며칠 동안 하염없이 흐르고 있다. 덕양기독교연합회가 주관한 부활절 새벽예배 장소에 도착할 때까지도 나의 마음 속에는 부활에 대한 감격보다는 일종의 혼란과 무거움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강대에 오른 순간 내가 앉을 의자 앞에 무릎을 끓었다. 대단한 기도를 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 순간 뜨거운 눈물이 눈과 가슴에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 위해 죽으시고 나 위해 부활하신 주님께 대한 회개와 감사의 눈물이었다.

사실 나는 설교를 시작하면서 감격에 북받쳐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특히 설교 마지막 부분에서 배신자 베드로와 여섯 제자들에게 하신 주님의 부드러운 음성을 전했을 때 나의 가슴은 황송함의 감격으로 떨고 있었다. “애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지난 며칠 동안 이 질문을 상기할 때마다 나는 회개와 감사의 눈물을 흘리곤 했다. 덕양에서 부활절 새벽예배를 마친 후 우리 부부는 강변교회로 달려갔다. 은퇴 후 10주 만에 강변교회로 달려간 것이었다. 1층 식당에서 만난 권사님과 집사님들이 나를 만나자마자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나도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보고픔과 반가움과 사랑의 눈물이었다.

보고픔과 반가움과 사랑의 눈물은 예배 전에도 예배 중에도 예배 후에도 이어졌고 반가움의 포옹은 수없이 많이 이어졌다. 본래 눈물이 많은 이용환 집사는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줄줄 흘리며 주체하지 못했다. 본래 눈물이 적은 강영희 집사도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30여 년 동안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는데 눈물을 흘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보고픔과 반가움과 사랑의 눈물을 흘린 행복한 하루였다.』

이것으로 ‘눈물의 감동을 주시는 귀중한 하나님의 은혜’라는 제목의 간증 설교를 마무리 합니다. 눈물은 너무 너무 귀중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눈물은 가장 진솔하고 처절한 자기 표현의 방식이고 가장 친밀한 소통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눈물을 흘릴 때 하나님과 친밀하게 소통하게 되고 사람들과도 친밀하게 소통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와 우리들 모두에게 눈물의 감동을 풍성하게 베푸셔서 귀중하고 아름다운 눈물의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 집으로 올라가게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며 축원합니다.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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