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성공회 광명교회 민숙희 사제
▲지난 15일 성공회대에서 ‘2022 가을반려동물 축복식’을 진행하며 반려동물에게 축복하는 모습. ⓒ성공회대 홈페이지

“반려동물 축복식?” 처음엔 기사를 잘못 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반려동물을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나날이 증가하는 지금, 한번쯤은 살펴보아야할 주제라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심심치 않게 죽은 ‘반려동물 추도예배’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는 점을 생각하면, 반드시 다루어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다.

먼저 질문해 보자. 하나님은 동물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창세기 기자는 모든 생명체를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고 선포한다. 바다와 땅과 하늘에 있는 모든 동물들은 하나님의 작품이다. 선하신 하나님은 당신께서 지으신 모든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시고 돌보시고 다스리신다. 시편 50편에는 동물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는 말씀이 있다.

“너희 집에 있는 수소나 너희 가축우리에 있는 숫염소가 내게는 필요 없다.
숲 속의 뭇 짐승이 다 나의 것이요, 수많은 산짐승이 모두 나의 것이 아니더냐?
산에 있는 저 모든 새도 내가 다 알고 있고, 들에서 움직이는
저 모든 생물도 다 내 품 안에 있다.”
(시편 50:9-11, 새번역)

‘제사, 예배’와 관련한 문맥에서 읽어야 할 시편이지만, 이 구절은 동물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힐끗 보여준다. 시편이 보여주듯 숲 속의 뭇 짐승, 수많은 산짐승이 모두 하나님의 것이다. 산에 있는 모든 새를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 들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도 하나님의 품안에 있다.

하나님이 모든 동물을 사랑하고 아끼고 품안에 품으시고 계심을 잘 보여준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하나님이 동물을 아끼고 돌보시고 사랑하신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또 다른 말씀도 있다.

“하물며 좌우를 가릴 줄 모르는 십이만여 명의 사람과 수많은 가축이 있으니,
내가 이 큰 성읍 니느웨를 아끼지 않겠느냐?”
(요나 4:11, 바른 성경)

요나에게 들려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잘 보여주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니느웨 성에 있는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십이만 명 넘는 사람을 아끼셨다. 뿐만 아니라 니느웨 성에 있는 수많은 가축도 아끼셨다. 하나님은 사람만 아끼는 것이 아니라 가축과 짐승, 동물을 사랑하신다. 반려동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반려동물 역시 가축과 짐승, 동물의 범주에 속하는 생명이므로….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많은 사람이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자녀나 배우자 없이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삼고 사는 사람도 있고, 배우자와 자녀, 그리고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반려동물을 가족 구성원으로 간주하면서….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종종 반려견이 나온다. 재난영화에서 반려견은 단골손님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것 아는가? 재난영화에서 사람은 죽여도 반려견은 살린다는 사실을.

처음엔 모르고 지나쳤다. 영화에서 이런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고는 호기심이 일었다. 왜 사람을 죽이고 반려동물을 살리는 걸까? 감독의 의도가 무엇일까? 저 장면으로 무언가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걸까? 반려동물의 생명을 사람의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기기 때문일까? 아니면 동물보호단체의 압력을 받기 때문일까? 등등.

반려견 개 동물
▲ⓒ픽사베이

‘반려동물 축복식’과 영화 장면이 묘하게 겹치면서 한 가지 질문이 피어올랐다. 상상하고 싶지 않은 상상이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기 위해 같이 상상해 보면 좋겠다.

사랑하는 배우자, 또는 자녀가 물에 빠졌다. 물론 반려동물도 함께. 그렇다면 당신은 누굴 구할까? 배우자인가, 아니면 반려동물인가? 자녀인가, 아니면 반려동물인가? 단적인 상상이고 질문이지만, 대답은 자명할 것이다. 자녀가 아니라 반려동물을, 배우자가 아니라 반려동물을 구했다는 것은 상상조차 어렵다.

물론 반려동물이 죽게 내버려둬도 좋다는 말은 아니다. 구할 수 있다면 구해야 한다. 하지만 우선순위가 반려동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땅이 죄로 물들고 타락한 것은 동물이 아니라 사람 때문이다. 사람이 동물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비단 동물 뿐 아니라 죄로 일그러지고 망가진 자연환경 자체에 대해 사람은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피조물도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일어나 이 땅을 새롭게 하길 기다리고 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롬 8:19, 새번역)

반려동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학수고대한다. 지금처럼 일그러지고 망가진 세상이 새롭게 되길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이 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거룩함을 회복하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갈 때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시작하신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온전하고 완전하게 임할 때 완성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회복될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뛰놀고, 표범이 염소와 함께 놀고,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을 뿐 아니라 어린 아이에게 끌리는 것으로, 어린아이가 독사 굴에 손을 넣고 장난치는 모습으로 묘사했다. 사람과 사람, 자연과 사람, 자연과 자연의 조화로운 모습으로 묘사했다(이사야 11장 65장 참고).

존엄의 무게, 책임의 무게는 의심의 여지없이 사람에게 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다는 것 역시 존엄과 책임의 무게중심이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은 동물을 가볍게 여기거나 학대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는 방법으로 이 세상을 통치하고 다스리고 돌보고 사랑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반려동물 역시 같은 마음으로 책임감 있게 돌보고 사랑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반려동물이 사람과 똑같은 가치와 책임과 존엄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반려동물 축복식을 한다면 이 땅에 있는 다른 동물을 위한 축복식도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반려동물을 사람의 위치에 올려놓는 것일 뿐 아니라 반려동물이 다른 동물보다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는 말과 다름없고, 다른 동물보다 더 존엄하다는 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아 하나님 대신 이 땅을 통치하고 다스리고 섬기고 돌보아야 할 사람과 반려동물이나 더 확대해서 모든 짐승이 똑같은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라 반려동물 축복식을 옹호하려는 억지에 가깝다.

예배라는 개념에서 보아도 이 문제는 심각하다. 예배의 주체는 사람이 아니다. 예배의 우선순위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예배의 주체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을 예배하면 선하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반려동물 예배라고 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반려동물 축복식은 예배라는 단어를 에둘러 표현한 것처럼 보인다. 동물은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하나님을 예배한다. 개는 개답게 살고, 고양이는 고양이답게 살고, 돼지는 돼지답게 사는 것이 자신이 누려야 할 영광을 누리는 것이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식이다.

사람이 예배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고, 사람이 좋아하는 방식을 반려동물도 똑같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다. 반려동물을 가족이라고 보는 사람의 입장에 서서 본다면, 이것이야말로 강요이고 강제일 따름이다.

반려동물을 사랑하고 아끼고 돌보고 섬기려는 하나님 마음을 가진 교회와 목회자와 성도라면, ‘반려동물 축복식’이 아니라 각 동물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들이 그들다운 삶을 살며 영화를 누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도와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만족을 위한, 자신의 방식을 따른 예배나 형식이 아니라 반려동물이 자신의 고유한 특징과 방법대로 영광을 누리면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높여드리고, 하나님이 사랑 안에 살아가게 도와야 하지 않을까?

지금처럼 낯설고 당혹스러운 세상일수록 교회는, 목회자와 설교자는, 신학교는 더욱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과 마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과 살아내는 일에 마음을 쏟아야 할 것이다.

교회다움을 회복하고 이 땅의 소금과 빛의 사명을 바르고 힘 있게 감당하는 일에 열정과 재정과 에너지와 마음을 쏟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피조물이 기대하고 기다리는 바일 테니까. 반려동물이 간절하게 기다리는 바일 테니까.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사람, 반려동물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부탁하고 싶다. 반려동물을 사랑할수록 더 힘써 하나님과 사람에게 집중하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확장하는 일에 마음을 쏟아주시라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을 축복하고 사랑하고 섬기는 일에 마음과 시간과 돈을 조금 더 사용해 주시라고. 각 반려동물이 하나님이 지으신 대로, 기대하시는 대로 자신의 특성에 맞는 영광을 누리게 해달라고, 최소한 그 방식은 반려동물 축복식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시라고.

지혁철 목사
광주은광교회 선임 부목사
<설교자는 누구인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