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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세조길을 찾은 소강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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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난주 토요일 저녁 KBS TV에서 ‘100인의 리딩쇼, 지구를 읽다’라는 방송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다큐는 외주 제작사인 허브넷에서 제작한 것인데요. 이번 다큐는 ‘나무’가 주제였습니다. 첫 내레이션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새소리, 송진향, 도토리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만으로도 나무는 공간을 가득 메운다. 그러고는 우리 마음을 건드리고 흔든다. 감각들을 조용히 일깨우고 밀려오는 생각의 물결을 밀어내면서 숲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나무와 가까워진다.”(자크 타상의 나무처럼 생각하기)
또 내레이션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나무와 숲은 사람들에게 고갈되지 않는 영감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다시 나무를 발견해야 할 때다”라고 말이죠. 자크 타상은 우리가 볼 수는 없지만, 나무끼리 서로 공감하고 의사소통을 하며 공생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나무를 생각하면 갑바도기아 교부였던 닛사의 그레고리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산상 보훈을 보면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했는데(마 5:8), 닛사의 그레고리는 이 청결한 마음이란 에덴동산에서 창조되었을 때의 본래의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마음을 회복하면 자연과 교감하게 될 뿐 아니라 저절로 아름다운 시가 나오고, 음악이 나오며 천재적 예술성을 발휘하는 영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걸 생각하며 지난주에 장로회 수련회 때 속리산 세조길을 찾았습니다. 처음에는 숲을 찾은 줄 알았더니, 나무 하나 하나를 찾는 걸 느꼈습니다. 산을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나무를 만나러 온 느낌이었지요.
나무들이 제각기 가을을 맞을 뿐 아니라 저를 환영해주고 영접해주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럴 때 자크 타상이 말한 대로 나무와 숲은 저에게도 고갈되지 않는 영감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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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매만지고 있는 소강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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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에 제가 ‘나무와 소년’이라는 시를 썼습니다. “나무는 소년을 기다렸습니다 / 그리움만큼 기다란 줄을 늘어뜨린 채 / 소년이 다시 그네를 타러 올 날을 /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 새싹이 돋아나던 봄이 가고 / 무성한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던 여름도 가고 / 한 잎, 한 잎 / 그리움에 지친 가을의 추억도 가고 / 이제, 그리움마저 퇴색한 하얀 겨울에도 / 나무는 홀로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 강렬한 햇빛도 / 추적추적 내리는 차가운 새벽 비도 / 겨울밤의 세찬 눈보라도 / 아픔만큼 나이테를 더하지만 / 소년이 길을 잃지 않도록 /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소년을 기다립니다 / 나무 그늘 아래 고요히 잠들던 소년의 하얀 얼굴과 / 풀밭을 뛰어다니던 소년의 웃음소리와 / 나뭇가지에 올라타 먼 산을 바라보던 / 소년의 맑은 눈빛을 기억하면서 / 나무는 홀로 소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소년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긴 그림자 석양녘에 드리우고 / 자기에게 돌아올 그 때까지.”
수 년 전에 ‘깊은 산속 옹달샘’을 방문하였을 때, 고도원 장로님이 나무 묵상을 가르쳐준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나무에 대한 재발견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저보다도 먼저 자크 타상이라는 분이 ‘나무를 재발견해야 한다’는 이야길 했다는 걸 알고, 새삼스럽게 나무를 재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심지어는 나무를 보고 나를 보게 된 것입니다. 나무가 마치 나의 거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지요. 더 나아가 닛사의 그레고리의 가르침처럼 청결한 마음으로 나무와 대화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10편의 나무 연작시를 쓰기도 했지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현대인은 나무를 재발견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나무와 함께 살아가고 나무가 우거진 숲이 끝없는 영감의 원천이라는 걸 다시 깨달아야 합니다. ‘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며 숲의 생태계를 잘 지키고 그 속에서 생의 고귀함과 풍성한 영감을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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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매만지고 있는 소강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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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는 운동의 재미와 기쁨을 주겠지만 결코 저를 소년으로 만들어 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숲과 나무는 저에게 끝없이 새로운 영감을 줄 것입니다. 물론 그 영감의 원천은 성령 안에서 나온 것이지만요. 아무튼 우리는 나무를 사랑하고 나무를 재발견해야 할 때입니다.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