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평소 억눌린 감정 미리 빼내는 프로그램을
삶의 굴곡 너무 심하지 않으면, ‘예쁜 치매’ 가능
엄마 치매 통해 하나님 함께하심 더욱 확신 생겨
한국교회에서 치매 알고, 인식 개선 위해 나서야

강현숙 치매
▲강현숙 교수는 ‘예쁜 치매’를 위해 ‘묵은 감정’을 평소 털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대웅 기자
“저희 어머니도 엊그제 산책을 하러 가시는데, 이 더운 날 거위털 조끼를 입고 가려고 고집을 부리셨어요. 하지만 막상 나갔는데 너무 덥다 보니, 알아서 벗으셨어요(웃음).”

치매 환자인 어머니를 주 3회 돌보고 있는 강현숙 교수는 “치매에 대해 알면 여러 모로 도울 수 있다. 알지 못해 서로 도와주지도 못하고 도리어 상처 주는 언행을 하는 모습을 자주 보아왔기에, 그런 사례들을 공유하고 싶었다”며 “제한적이지만 치매 환자도 여전히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 은혜 안에 머무를 수 있음을 알게 되기를 바란다”고 취지를 밝혔다.

숙명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상담학 박사 과정을 마친 강현숙 교수는 대학교에서 학생들의 인성교육과 노인 상담, 심리학개론과 인간관계론 등을 가르치다 신중년·신노년 상담 및 강의로 방향을 전환했다.

저서로 <신중년·신노년의 마음공부>, <50+를 위한 심리학 수업>, <내 마음과의 거리는 10분입니다> 등이 있다. 현재 KBS 라디오 <출발, 멋진 인생 이지연입니다>에서 ‘강현숙의 마음공부’ 고정 게스트로 출연 중이다. 특히 ‘묵은 감정의 표출’을 강조하고 있다.

-말씀처럼 ‘묵은 감정’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른 치매 관련 서적에 없는 이야기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살아가면서 감정을 억눌렀던 부분들은 치매도 비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치매가 왔을 때조차, 그 마음을 알아주면 풀리는 것을 봤습니다.

저희 엄마는 치매에 걸리신 뒤 ‘쌀독에 쌀이 있는데도 아버지가 밥을 안 해준다’고 그렇게 많이 이야기하셨어요. 알고 보니 과거 아버지가 돈 관리를 하면서 억눌렸던 감정들이었어요. 끊임없이 들어줬더니, 어느 정도 말씀하시다 사그라들고 결국 사라졌어요.

그래서 엄마의 억눌린 감정들을 빼내려고 애를 많이 썼는데, 예방 차원에서 보자면 목사님들도 감정이 쌓여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집사, 너 어떻게 이럴 수 있어?’ 하고 속상했던 일들이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제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우리나라에 많은 ‘한(恨)의 문화’를 바꾸는 것입니다. 치매가 오기 전에 교회 중직자든 교역자든 이런 프로그램들을 통해 억눌린 감정들을 미리 빼낸다면, 설사 치매에 걸린다 해도 과거 삶에서 억눌린 부분이 별로 없어 ‘예쁜 치매’가 가능합니다.

이렇듯 삶의 굴곡이 너무 심하지 않으면, ‘예쁜 치매’가 가능합니다. 기억력에 장애가 있지만, 공격적이고 이상 행동들이 별로 없는 경우를 말합니다. 현재까지 의학기술로는 찾아오는 치매를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치매 걸리면 죽은 거야’ 하기보다, 기억이 안 나는 부분은 옆에서 도와주면서 ‘예쁜 치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면 좋겠습니다.”

-감정이 쌓이지 않기 위한 다른 방법도 있을까요. 크리스천들만의 방법도 있을 것 같습니다.

“주로 술·담배를 피하고 인지운동을 하라는 예방법이 거론되지만, 감정을 쌓지 않고 풀어준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표현해서 푸는 방법이 있고, 감정 에너지 자체를 방출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둘 다 안 되면, 운동을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운동을 하고 오면 기분이 전환되지 않습니까. 신체심리학적 원리가 있어요. 화를 참느라고, 근육이 긴장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운동만 해도 기분 전환이 됩니다. 아니면 볼링장에서 볼링을 치거나, 샌드백을 치거나, 춤으로 표출할 수도 있습니다.

표현해서 푸는 방법으로 상담도 있고, 지인에게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혼자 소리내 기도하면서 풀 수도 있습니다. 어르신들께 옛 트로트를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여쭤보면, ‘가사가 자기 이야기라서’라고 합니다. 저도 ‘주님 손 잡고 일어서세요’ 같은 CCM을 부르면 후련하고 좋습니다. 찬양이나 기도 외에도 여러 가지가 크리스천만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강현숙 치매
▲표1. 치매 교인들을 대하는 7가지 방법.
-그래도 아까 ‘예수 믿는 사람이 어떻게…’ 하는 부분은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예쁜 치매’가 아니라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어찌 저렇게 욕을 하고 행동할 수 있어’ 하는 부분이 문제가 될 수 있는데, 이렇게 감정을 미리 해결해 주면서 예방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꼭 교회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교회에서 ‘하나님 앞에 마음에 쌓인 감정들을 울면서 풀어내세요’ 하는 교육까지만 가도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이것도 일반 교육에서 많이 하는 부분입니다. 인성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게 ‘나는 누구인가’입니다. 성신여대에서는 ‘나는 소중한 사람입니다’, 서울여대에서는 ‘나는 하나님의 소중한 사람입니다’라는 제목으로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머리털까지 세신다고 하셨으니, 치매를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치매 증상이 나타나면 굉장히 위축되는데, 조금 당당해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기독교인에게는 ‘고난’이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닐까요? 어떤 모습이든 ‘창조의 드라마’라는 퍼즐 안에서, 머리로 살든 꼬리로 살든 죽을 때까지 하나님과 믿음의 관계 안에서 기도하면서 기쁘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치매가 와도 삶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저도 예전에는 ‘하나님, 불공평해요’ 같은 기도를 많이 했지만, 엄마의 치매를 통해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하심에 오히려 더욱 확신이 생겼습니다. 요즘은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확신하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광야 생활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치매 환자나 가족들을 위해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애매한 부분이 있어요. 교회 시스템이 잘 돼 있다 해서 다 해결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저는 무엇보다 치매에 대한 인식 전환 교육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교인들 중에도 치매 환자들이 많이 있는데,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어요. 주변의 치매 환자를 알아차릴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장로님이나 권사님, 집사님이 치매인 것을 미리 알수록, 빨리 손을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치매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뤄져서, 경도인지장애 때 발견되면 약물을 통해 속도 완화가 가능하고, 기억을 촉진시키는 약물 등을 손쓸 수도 있습니다. 그와 함께 인지치료나 미술치료 등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치매를 잘 발견하지 못합니다. 경도인지장애 환자가 약 254만 명이지만, 인지하는 사람이 10%도 안 된다고 해요. 제가 출석하는 교회가 굉장히 작지만, 책에 쓴 사례들이 사실 다 저희 사례였어요. 그러니 다른 교회들에는 치매 환자들 사례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한 권사님이 매일 검은 바지를 사가는데, 돈을 안 준다고 교회로 연락이 왔어요. 아는 분이라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해주셨지요. 하지만 당사자는 아예 구입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어요. 다른 경우 지난 주에 왜 교회 안 나오셨냐고 물으면, 언제 안 나왔냐고 되묻습니다.

화장실 문 잠그는 법조차 잊어버려, 잠궈놓고 열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처음에는 기억이 안 나는 걸 들키지 않으려, 음식점에 가서도 옆사람과 같은 거 달라고 해요. 교회에서는 평소 잘 찾던 성경·찬송가를 못 찾기도 하고요. 찬송가 400장 뒤에 401장이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하시는 경우도 있어요.

물론 치매 환자들의 증상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자기 집만 못 찾고, 어떤 분은 날짜만 잘 모르십니다. 개인차가 워낙 크지만, 이런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걸 알면 그들을 도울 수 있지요. 큰 교회들에 장례 부서가 따로 있듯, 치매 환자들을 돌보는 부서를 두고 가족 관계를 파악해서 돌보거나 검사를 받게 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치매지만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습니다
▲치매예방수칙 3권·3금·3행. ⓒ중앙치매예방센터.
-작은 교회들도 할 수 있는 일일까요.

“미국에서 ‘해피 톡스’라는 앱이 나왔다고 합니다. 치매 환자들뿐 아니라, 혼자 사는 이들에게 전화를 자주 해주는 서비스입니다. 그렇게 체크해 주면 자녀들은 안심이 되겠지요.

교회 공동체는 가족처럼 서로를 도와야 합니다. 아무리 작은 교회라도, 조그마한 관심만 있으면 가능합니다. 그저 챙겨주는 것입니다.

같이 살아도 치매인지 모를 수 있습니다. 엊그제 엄마가 너무 고집이 세다는 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막 소리를 지르고 물건이 없어졌다고 하고 도대체 살 수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낙상사고를 당해 요양원에 입원하며 검사해 보니 치매였던 것입니다.

보통은 어르신들이 나이 들면 성격이 고약해지는 거라고 생각하십니다. 하지만 기억이 잘 안 되는데 점점 감정을 조절하는 전두엽까지 문제가 생기니, 화를 벌컥벌컥 낼 수밖에 없게 됩니다. 치매는 그렇게 진행되는데, 이상하다고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치매에 대해 알고, 인식 개선을 위해 나서야 합니다. 서울시를 통해 ‘치매와 친구 되기?’ 캠페인을 많이 했습니다. 치매에 대해 바로 아실 필요가 있어요. 목사님들도 대부분 모르십니다. 그러다 보니 목사님들이 모이면 에피소드처럼 이야기를 하시는데, 사실 너무 안타까운 치매 이야기이지요.

지금 1인 가족이 많고, 노인층도 많은 상황입니다. 교회에서 수요·금요·주일예배 참석만 체크할 것이 아니라, 혼자 사는 어르신들을 목사님·사모님들이나 구역장들과 나눠서 챙겨 보시면 어떨까요. 치매인데 정말 못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모친의 치매를 어떻게 돌보고 계시는지요.

“1주일에 3일씩 가서 함께하고 있습니다. 올해까지는 집에서 돌볼 수 있는 단계라고 보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남동생과 도와가며 엄마를 돌보고 있는데, 10살 차이가 나서 다소 어색했던 남동생과도 관계가 좋아지고 있습니다. 네 식구가 함께 원가족이 모여 생활하는 것이 몇십 년 만에 처음이다 보니, 부모님도 너무 좋아하십니다(웃음).

누군가를 위해 전도하고 목회하고 상담하다 보니, 정작 가족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치매가 오게 됐다는 말이 아니라, 더욱 마음을 풀어주고 본이 돼야겠다는 생각으로 나름 정리가 됐습니다.

저는 사실 우리가 귀한 존재라는 말이 잘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교육을 학교에서 하면서도, 나 자신을 잘 돌봐야 한다는 부분을 중요시하지 못했습니다. 치매환자를 돌보는 사람일수록 더 그럴 수 있습니다. 책에 버나드 수도사(St. Bernard of Clairvaux)의 ‘사랑의 4단계’를 제시하고 알리고 싶은 이유도 그것입니다.

어떤 일을 하든, 내 상황이 어떻든 확신을 갖고 살아가는 게 중요합니다. 그 부분은 여전히 강의하기가 어렵습니다. 비교가 너무 심한 세상이라 그럴 수도 있습니다. 치매 요양원이 비싸다 보니, 잘 사는 사람들일수록 치매 환자들을 돌보기 쉬운 면도 있고요.”

책에서 소개한 버나드 ‘사랑의 4단계’는 다음과 같다. 사랑의 1단계는 자기 유익을 위하여 자기를 사랑하는 단계, 즉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만을 바라보는 것이다. 2단계는 자기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단계로, 겉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같지만 실상 하나님의 도움만 기대하고 구하는 기도만 하는 단계이다.

3단계는 하나님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단계로, 하나님이 주실 선물이 아니라 비로소 하나님께 초점이 맞춰지지만 자신과 주변을 미처 보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마지막 사랑의 4단계는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단계, 즉 하나님과 나의 구분이 없이 하나님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단계이다.

강 교수는 책에서 “치매 환자뿐 아니라 나 자신도 정성껏 돌보아야 한다. 치매 환자를 돌보고 있는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내가 나를 돌보고 사랑하는 만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편집자 주

치매지만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습니다
-치매 가족들이 꼭 해야 할 일과, 피해야 할 일이 있다면.

“치매 환자들을 돌보다 보면 스스로 검색도 하고 경험을 통해 알게 되기에, 치매에 대해 모르는 건 별 문제가 안 됩니다. 대신 저도 많이 했던 실수인데, 엄마를 이전처럼 돌려 놓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완벽하게 돌보려는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치매 환자들의 옛날 모습을 생각하면, 가족이 갑자기 변해버린 모습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차라리 요양보호사라면 그냥 인정하고 대처하겠지만, 내 부모일 때는 그게 잘 안 됩니다. 치매가 온 부모가 지저분하고 여러 가지를 못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끼리도 다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쉼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책에 썼습니다. 힘들겠지만, 나를 돌보면서 해야 합니다. 온전히 상대에게만 희생하면 더 힘들 수 있습니다. 마음이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시간이나 공간을 가지는 게 좋습니다.”

-끝으로 치매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씀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상황은 힘드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신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금 여기 계시다는 것을 믿어야지요. 성경에 그렇게 나와 있지 않습니까. ‘주여 주여, 이거 해주소서’ 하는 게 믿음 좋은 것이 아니라,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고 ‘아멘’ 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 아닐까요?

지금은 힘들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 마무리가 좋을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붙들면 마음에 감사가 있을 것입니다. 힘들어서 기도도 못하겠다면, ‘엄마! 아빠!’ 부르듯 ‘하나님! 하나님!’ 부르기만 해도 내 마음을 아시고 인도해 주시리라는 사실을 붙들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