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투데이는 지령 1,000호를 맞아 세대별 한국교회 진단과 대안을 모색한다. 노년기를 대상으로는 기독교와 교회 내에서 제대로 된 담론이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치매’ 문제를 다룬다. -편집자 주

신앙생활 열심이던 엄마, 첫 치매 판정 땐 당황
‘예수 잘 믿었는데 왜 치매 왔어?’ 편견 부딪혀
‘예쁜 치매’로 순하게 살면, 큰일 날 일 아니야
뭔가 잃었다 생겼을 때 생기는 감사·기쁨 있어

강현숙 치매
▲표2. 교회에서 파악 가능한 7가지 치매 의심 증상.
“엄마, 치매가 와도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하나님을 잊어버려도,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잊지 않으세요. 성경에 그렇게 나와 있잖아요.”

뭐든 빠른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속도의 ‘초고령 사회’ 진입 국가이기도 하다. 평균 수명 증가는 많은 변화를 낳고 있고, 치매 인구 증가도 그 중 하나다. 드라마마다 빠지지 않을 정도로 ‘치매’ 또는 ‘기억상실’은 단골 소재인 것이 이를 방증한다. 현재 우리나라 치매 인구는 100만 명 정도이고, 65세 이상에서는 10명 중 1명, 80세 이상 4명 중 1명, 90세 이상 3명 중 1명이 치매 증상을 갖고 있다고 한다.

교회 역시 고령화 비율이 빠르게 늘면서, 치매는 더 이상 먼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부모든 지인이든 치매에 걸린 사실을 숨기기 급급한 것이 다반사. 본인도 주변인도 치매를 현실로 인정하지 못하거나 발병 사실을 알지 못하고 오해만 쌓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러한 가운데 성도들 가운데 치매 환자는 점점 늘어날 것이기에, ‘사랑하는 사람이 치매에 걸린다면 당사자나 가족은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라는 물음을 더 이상 미뤄둘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최근 <치매지만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습니다>를 펴낸 강현숙 교수를 만나 ‘아는 만큼 보이는 치매’에 대해 들어봤다.

치매지만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습니다
강현숙 | 생명의말씀사 | 240쪽 | 15,000원

-기독교와 치매 관련 서적을 집필하신 이유는.

“일반 치매에 대한 책은 많이 나와있지만, 저는 크리스천으로서 위로를 받고 싶었습니다. 엄마가 치매 판정을 처음 받았을 땐 당황했어요. 믿지 않는 친척들도 많은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신 엄마가 어떻게 치매에 걸렸다고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망설여졌어요.

이면에는 ‘예수 잘 믿었는데 왜 치매가 왔어?’라는 편견들과도 마주쳐야 했습니다. 장애인 등에 대한 여러 편견들이 아직 남아있으니까요. 교회에서는 하도 ‘복 받고 잘 될 것’이라는 말씀만 듣다 보니, 생각이 그렇게 뿌리박혀 있어요.

친척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하며 움츠리고 있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왔어요. 친구 어머니가 치매이신데, 저희 엄마도 그렇다는 말을 듣고 넋두리하려 연락한 거였어요. 그러면서 신실하신 그 친구의 어머니와 저희 어머니에게 치매가 온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기도하고 말씀도 더 보게 됐습니다.

어느 날도 누군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 분이 제게 그런 내용을 책으로 써보면 어떻겠냐고 하셨어요. 그게 계기가 됐고, 그 이후 나름대로 책도 보면서 경험한 것들을 적어봤어요.”

-처음부터 노인 문제를 다루신 건 아니라고요.

“인생 전반부에는 서울여대에서 대학생들 인성교육을 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학생들과 호흡하기 힘들어졌다고 느꼈어요. 어떻게 하나 고민하던 때, 50플러스(50대 이상, 신중년)에 대한 관심이 늘었어요. 인생에 20년이 보너스로 주어져 ‘제2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서울시에 50플러스재단이 생겼어요.

사실 인성교육은 예절교육이 아니거든요.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부터 기독교적으로는 정체감과 사명을 느끼고, 이를 재능과 연결지어 잘 찾아서 공동체로 연결시키고, 일에서 의미를 찾자는 데까지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요즘 대학생들은 이게 잘 안 돼서, 엘리베이터에서 누군가를 만났을 때 예절부터 교육합니다.

20년의 삶이 덤으로 주어진 분들에게도 이런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해서, 10년 전부터 이쪽으로 전환했어요. 강사로서 교육하는 대신 바로 노인복지관에서 전문 상담사로서 상담하는 일도 하고 생활지도사들 위한 강의도 했습니다.

그러다 한 노인복지관에서 심리학 강의를 개설해 달라고 했어요. 요즘 TV에 정신과 의사들이 많이 나오는데 잘 못 알아듣겠으니, 쉽게 강의해 달라면서요. 그러다 방송국에까지 연결돼 라디오 방송도 시작했고, 강의를 바탕으로 책도 나왔어요.

그렇게 노년층에 대한 경험과 지식, 만남이 쌓인 상태에서 기독교적 신앙의 관점에서 치매에 대해 써보면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았기에, 쉽게 쓸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강현숙 치매
▲강현숙
-치매란 어떤 질병인가요.

“일반 치매 관련 도서들은 치매를 부정적으로 보는 관점들이 많았습니다. 치매는 걸리지 말아야 한다고요. 하지만 치매는 누구나 걸릴 수 있습니다. 예전에도 치매가 있었지만, 평균수명이 낮아 치매 걸린 노인들을 많이 볼 수 없었을 뿐입니다.

수명이 연장돼 치매 환자도 많아질 수밖에 없었고, 이제 치매를 발달 단계 중 하나로 넣어도 될 정도가 됐습니다. 80대 이상 4명 중 1명이 치매입니다.

예전에는 ‘안티에이징’을 내걸면서 젊어 보이기를 추구했지만, 지금은 ‘웰에이징’을 추구하면서 나를 나답게 가꾸자고 합니다. ‘치매가 걸리면 인생 끝이야. 나는 안 걸릴거야’가 아니라, 혹 치매가 오더라도 ‘예쁜 치매’로 순하게 살아가면, 기억이 없어 벌어지는 일들이 있지만 큰일 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뭔가 잃었다가 생겼을 때 생기는 감사와 기쁨이 있습니다. 먹지 못하다 먹을 수 있을 때, 화장실을 가지 못하다 가게 됐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를 돌보면서 제가 정말 많이 변했어요. 감사가 생겼습니다.

엄마가 하는 행동에 있어서도 정상적으로 보고 만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자체가 감사하다 보니, 더 이상 비교하지 않게 되면서 제 삶도 굉장히 변했습니다. 저희 아이들이 인정할 정도로요(웃음).

치매를 무조건 걸리지 말아야 한다기보다 치매를 통해서도 배울 수 있습니다. 책에도 썼지만, 치매 환자를 있는 그대로 대하고 공감하는 것들은 치매와 관계없이 우리에게도 필요한 이야기입니다. 일반적인 관계에서도 잘 안 되는 일들 아닌가요? 지금 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과 똑같이 대해야 한다는 쪽으로 바뀌고 있는데, 치매도 그 정도까지 가야 하지 않을까요.”

치매지만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습니다
-치매 환자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이유는.

“‘예쁜 치매’란 쉽게 이야기해 기억력에만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잡채를 만드는 과정이 머릿속에 다 있지만, 그걸 끄집어내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해마’가 하는데, 여기에 문제가 생겨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치매에 걸리면 읽었던 책 내용을 끄집어내 대화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볼 때도 창세기가 맨앞에 있는 책이라는 기억 자체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두 살짜리 아이에게 창세기를 말하면 아무것도 모르듯, 그런 상태가 됩니다. 아주 옛날부터 많이 반복했던 것들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기억에만 문제가 있으면 그나마 힘들지 않습니다. 치매 환자들 돌보기가 힘든 것은 기억력 장애로 인해 생기는 오해들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두엽 감정조절 부분에서도 점점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는 화나는 감정이 생겨도 참을 수 있지만, 치매 환자들은 그러질 못해요. 있는 그대로 화를 내고, 현재와 과거가 점점 구분되지 않습니다. 기억력, 감정, 현재와 과거 구분, 이 세 가지 문제입니다.

요양원에 며느리가 왔다 가서 해준 음식을 맛있게 먹었는데, 과거 안 좋았던 며느리와의 기억들이 느닷없이 떠오르게 됩니다. 그때 며느리랑 닮은 것 같은 간호사가 들어오면 착각하고 감정 조절이 안 돼 욕을 하고 때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