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the Guest
▲구마의식을 다룬 영화 <검은 사제들>. 축귀 사역을 모티프로 삼는 대중문화 콘텐츠에는 개신교 목회자가 아닌 가톨릭 사제가 공식처럼 등장한다.
필자가 부산에서 사역할 때 있었던 일이다. 봄바람이 부는 어느 날, 모르는 번호가 휴대폰을 울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소망부 친구 은진이의 도우미 교사입니다. 지금 안 바쁘시면 은진이 집으로 와 주실 수 있을까요?”

“혹시 무슨 일이신가요?”

“은진이가 이상한 증세를 보이는데 걱정돼서 연락드렸습니다. 환청이 자꾸 들리고, 불안하다고 소리치기도 하고, 자기 집이 무섭다고 자꾸 소란을 피우네요. 참고로, 저도 교인입니다. 사실 은진이 엄마가 주일에 산신제(山神祭) 지내고 온 후로 그런 증상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 순간 나는 악한 영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음을 직감했다. 은진이가 지적장애 친구이지만, 도우미가 말하는 그런 증상들이 그전까지는 전혀 없었다.

정황상 단순한 조현병이나 정신질환으로 치부할 수 없었다. 주일에 엉뚱한 데 가서 우상숭배를 일삼는 비신자 엄마의 미신적 열정이 딸아이에게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나는 즉시 하던 일을 멈추고 부랴부랴 준비해서 은진이 집으로 갔다. 소망부 교사로 섬겼던 교인 한 명을 대동(帶同)하였다.

집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군데군데 부적이 붙어 있고, 달마도 그림이 보란 듯이 걸려 있었다.

은진이 부모님과 인사를 나눈 후, 심방 물품으로 사온 음료수 한 박스를 건넸다. 엄마가 자기 딸 걱정을 엄청 하고 있었다. 필자가 방문하기 전에 딸을 데리고 교회로 달려오려고 했다고 한다. 우상을 섬기면서도 자기 딸이 이상 증세를 보이니까 교회 목사를 찾는 아이러니한 그 마음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아무튼 나는 필사적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함께 방문한 교인과 도우미 교사도 손을 얹고 같이 기도하였다. 기도하는 중 은진이가 약간 저항하는 듯했지만,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주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영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은진이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고 괴롭게 하는 악한 영들을 제압하여 주옵소서! 주의 성령께서 이 가정을 사로잡으셔서 악한 영들을 물리쳐 주시고, 은진이 부모님에게도 십자가의 복음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주여, 간절히 소원하오니 이 시간에 은진이의 영혼을 붙잡아 주옵소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굳게 붙잡고 속히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도록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한참을 기도하고 나서, 우리는 눈을 떴다. 비록 비신자 부모이지만 은진이 엄마도 딸아이를 위하는 마음으로, 교인들의 기도 소리를 인내하며 두 눈을 감고 있었다. 눈을 떴는데 은진이의 얼굴에 화색(和色)이 돌기 시작했고, 곧바로 한 마디를 내뱉었다.

“목사님, 이제 괜찮아졌어요!”

그 순간 은진이 엄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목사의 눈으로 볼 때 무조건 안심할 수는 없었다. 혹시 모르니 일단 딸아이를 푹 재우고, 병원에도 데려가 보라고 했다. 평소 사역 경험상 조현병과 귀신들림은 중첩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축귀사역’을 할 때는 어느 한쪽이라고 무작정 단정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우리 사역자들은 탄탄한 신학적 토대 위에서 은사 사역을 분별력 있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신자가 경험하는 다양한 영적 현상들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신학적 분별력을 심어 주면서, 성령의 능력을 교인들이 실제적으로 경험하도록 조력해야 한다. 성령의 충만한 능력이 그들의 일상을 다스리도록 신학적으로, 교리적으로 지도해야 할 책임이 사역자들에게 있다.

필자가 아는 십자가의 복음은 구원(칭의) 받을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구원의 진행 과정(성화)에서도 신자의 실존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특히 성도의 일상에 기도의 능력으로 충만히 나타나야 한다. 우상숭배자들처럼 기도하는 행위 자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면 안 되고, 성도의 기도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

한 영혼이 악한 영들로부터 해방되는 일을 지켜보는 것은 목사에게 큰 행복이다. 하나님의 통치가 그 영혼에게 다시 임했기 때문이다. 죄인의 실존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다.

앞으로도 은진이 같은 교인들에게 관심을 가져야겠다. 단순한 정신질환인지 일시적 귀신들림인지도 계속 분별해 가면서, 그런 사람들에게 복음의 능력이 실제로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기대해야겠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 9:29)는 주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믿는 목사가 되어야겠다.

권율
▲권율 목사.
권율 목사

경북대 영어영문학과(B.A.)와 고려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M.Div.)를 마치고 선교지원 사역에 힘쓰고 있다. 『연애 신학』 저자로서 청년들을 위한 연애코칭과 상담도 자주 진행한다.

비신자 가정에서 태어나 가정폭력 및 부모 이혼 등의 어려운 환경에서 복음으로 인생이 개혁되는 체험을 했다. 현재 부산 세계로병원 원목으로 재직하면서 선교지(몽골, 필리핀) 신학교 강사(외래교수)로 섬기며, 김해 푸른숲교회 협동목사로도 섬기고 있다.

저서는 『올인원 사도신경』, 『올인원 주기도문』, 『올인원 십계명』, 『연애 신학』 등이 있고, 역서는 『원문을 그대로 번역한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A Theology of Dating: The Partial Shadow of Marriage(『연애 신학』 영문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