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죽는 것보다 어려워, 어려운 시간마다
사고 후 처음 마셨던 맛있는 맹물 한 모금 기억
사소하고 당연했던 것들에, 어마어마한 기쁨이
그 기쁨에 집중하면서 힘든 시간들을 통과했다

이지선
▲이지선 교수는 “사고 후, 하나님 주시는 회복과 기쁨을 훨씬 더 자주 강도 높게 누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대웅 기자
“주변에 열등감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할 때가 온 것이라고 봐요. 말로만이 아니라 이 모습 이대로 얼마나 가치 있는 인생이고 의미 있는 삶인지 끊임없이 응원하고 지지하고 보듬는 마음이, 쪼그라들던 마음을 점점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저는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사랑을 끊임없이 표현해야, 그들에게 힘을 줄 수 있어요.”

끔찍한 교통사고 이후 기적적인 회복과 함께 희망을 되찾는 과정을 기록한 <지선아 사랑해> 이후, 20여 년 만에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며 <꽤 괜찮은 해피엔딩>으로 돌아온 이지선 교수(한동대)가 ‘동네 교회’ 강단에 섰다.

서울 중랑구 은혜제일교회(담임 최원호 목사, WAIC 소속)에서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2시(매·마·토·2) 열리는 ‘행복한 우리동네 북 콘서트’에서다. 그는 ‘자살예방의 달’ 9월을 맞아, 생명의 소중함을 전하기 위한 교회의 초청으로 24일 오후 성도들과 지역 주민들 앞에 섰다.

유충식 재즈피아니스트의 특별 연주와 최원호 목사의 소개 이후 간증에 나선 이지선 교수는 23세 때인 2000년 7월 30일, 음주운전자가 낸 7중 추돌사고로 전신 55%에 3도 화상을 입으며 시작된 ‘두 번째 인생’을 차분한 목소리로 빠르게 소개해 나갔다.

“혼자 숨쉴 만큼 폐가 회복돼 오랫동안 달고 있던 호흡기를 떼고 물을 넘길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입 안으로 물을 넣어주셨어요. 몸 전체가 너무 많이 부어 눈도 못뜰 떼였는데, 물 한 모금이 너무 시원하고 맛있었어요. 살면서 맹물이 맛있다고 생각한 순간은 처음이었어요(웃음).

이후에도 살아남기 위해 거친 시간들은 상상도 못할 만큼 어렵고 힘들었지만, 그 시간들을 지날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는 건 죽는 것보다 이렇게 어렵구나’. 그러면서 그 시간들 지날 때마다 사고 후 처음 마셨던 물 한 모금을 기억했어요. 살아서 누릴 좋은 것들, 전에는 의미도 즐거움도 없는 사소하고 당연하게 여겼던 많은 것들에 어마어마한 기쁨이 있음을 알게 됐고, 그 기쁨에 집중하면서 힘든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8개월여 만에 퇴원했지만, 사고 전처럼 살아가기엔 너무 많은 것이 달라졌다. 거울을 보니 외계인이 서 있었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들을 잃어버렸다는 마음에 절망이 찾아오니, 할 수 있는 일은 딱 두 가지였다고 한다. (뛰어내리기 위해) 옥상을 찾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찾는 것. 그녀는 몇 시간 고민 끝에 하나님을 선택했다.

“하나님께 따지고 싶었어요. 살려놓으셨으면, 대책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요. 그런데 몇 시간 동안 울면서 기도해도, 아무 말씀이 없으셨어요. 그분이 원래 좀 그런 스타일이시잖아요(웃음). 울다 집에 돌아왔어요.

다음 주일 아침 교회를 갔는데, 제가 참여하던 성가대가 멋있게 찬양을 불렀어요. 저는 침이 흐를까 수건을 입애 대고 뒤쪽에 숨어 예배를 드리고 있었고요. 여기가 끝이라고 생각했어요. 더 떨어질 곳이 없었어요. 내게 주어진 미래는, 들어가기만 해도 깜깜해지는 동굴 같았어요.

내 인생에 이렇게 엄청난 일이 일어났는데 계획이 있으시다면 좀 알려달라고, 마지막처럼 기도했어요. 그때 목사님이 옆에 오셔서 저를 안고, ‘사랑하는 딸아’ 하는 말로 기도를 시작하셨어요. 저조차 저를 사랑하지 못할 모습으로 앉아있는데, 사랑한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 목소리로 저를 위로하시면서, 두 가지를 약속하셨어요. ‘너를 세상 가운데 다시 세워, 병들고 힘들고 약한 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게 하겠다고 하셨다’고 하셨어요. 제가 기다렸던 약속도,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약속도 아니었어요. ‘네 얼굴을 다 회복시킬 거야’라는 약속을 기다렸거든요.

그리고 여기가 끝이라고 생각했던 제게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어요. ‘여기가 끝이 아니다. 네 인생에 준비된 다른 해피엔딩이 있다. 앞이 보이지 않지만 네게 해피엔딩을 준비했어. 조금만 더 견뎌주겠니’ 하시는 것 같았어요. 당시엔 다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 해피엔딩을 살아서 보자는 마음으로 제게 주어진 오늘 하루를 살아가기로 했어요.

‘내일은, 앞으로는 어떻게 살지?’ 하는 고민과 계획은 제 몫이 아님을 깨달았어요. 제게 주어진 하루를 열심히 사는 게 제 몫이었어요. 그때부터 ‘오늘살이’가 시작됐고, 지난 8개월 동안의 이야기를 글로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거울 보기’부터 시작해, 마음에 조금씩 용기가 생겼어요. 처음 거울 앞에 섰을 땐, 너무너무 어색했거든요. 처음 보는 얼굴이니까, ‘안녕’ 하고 인사부터 시작했어요. 그런데 자꾸 보니까 정드는 얼굴이었어요(웃음). 새로운 얼굴에 익숙해져 갔고, 저 자신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어요.”

이지선
▲은혜제일교회에서 북콘서트가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있는 모습대로 대한 가족과 친구, 교회 식구 덕분
상처 없어진 기적 없지만, 하나님 버리신 것 아냐
누군가에게 희망과 용기 나누는 사람 되게 하셔
사고 ‘당한’ 아닌 ‘만난’ 표현, 잘 헤어질 수 있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면, 성격이 매우 낙천적이고 의지가 대단하다는 반응이 돌아온다고 했다. ‘멘탈이 대단하다’는 오해를 받지만, 자신은 마음이 수시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라고.

“저 자신에게 ‘지선아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는, ‘사랑하는 딸아’ 하고 부르신 하나님과 함께, 저를 있는 모습 그대로 대해준 가족과 친구, 교회 식구들이 있었어요. 고마운 사람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됐어요. 신앙 안에서 저 자신을 안아줄 힘을 얻었어요. 이제 사고일을 ‘두 번째 생일’로 부르고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사진이 있어요. 생명의 은인인 오빠가 저를 웃으며 업어주는 사진이에요. 오빠는 사고 2년째에도 저를 보면서 미안함 때문인지 얼굴로는 억지로 웃지만, 눈에는 눈물이 차 있었거든요. 그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렸더니, ‘솔직히 무섭고 징그럽다’는 댓글도 달렸어요. 굳이 그렇게 솔직하지 않으셔도 되는데(웃음). 또 마음이 무거워졌지요.

그때 깨달은 건, 저 자신이 거울을 보면서 단 한 번도 무섭고 징그럽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는 거예요. 이게 얼마나 기적같은 일인가 싶었어요. 덤으로 산다고 말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살았지만, ‘왜 내게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붕대를 풀었을 때 짠 하고 새 피부가 돋아나, ‘하나님 믿더니 기적이 일어났구나’ 할 수 있도록 매일 기도했어요.

하지만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해서, 하나님께서 저를 버리신 것이 아님을 알게 됐어요. 울퉁불퉁하고 다양해진 색깔의 피부를 눈에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저를 바라보시는 눈으로 제 흉터를 볼 수 있었던 것이 진짜 기적이었어요. 매일이 기적이었습니다.”

그 기적들을 자신의 홈페이지 ‘주바라기’에 남기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해피엔딩을 기다리며 지나왔던 시간들, 때마다 일어나는 마음의 폭풍 같은 것들을 적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운 감정은 무엇인지 묘사하고 설명할 때 더 이상 고통이기를 멈춘다고 스피노자가 말했다고 한다. 한 발 떨어져 기자처럼 삶을 정리하다 보니, 더 이상 그 고통 가운데 있지 않았다.

그러다 하나님의 은혜도 발견했다. 이식한 피부 위로 튀어오른 눈썹을 발견한 날은, 너무 기뻤다. 그 시절은 지금처럼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SNS로 적던 시절이 아니었다. 솔직하게 꺼내놓은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고, 어느 날 책으로 나왔다. 일본과 중국에서도 번역돼 출판됐다. 책을 읽고, ‘살아남아 주어서 고맙다’는 편지를 보내오셨다.

“그분들을 위해 살아남은 게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참고 견뎌온 시간들을 누군가에게 나눠줄 것이 있는 사람으로 살게 하셨어요. 세상의 고통이 화상만 있는 게 아니었어요. ‘나 혼자 이 세상에서 고통을 겪는 줄 알았는데, 이 길을 같이 걷고 있는 지선 씨가 있어 위로가 된다’, ‘지선 씨가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편지가 왔어요. 어찌 보면 아주 불쌍한 여성의 기구한 이야기이겠지만, 하나님께서는 누군가에게 이를 통해 다시 살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주고 계셨어요.”

‘받은 사랑을 베풀기 위해, 자신도 주변에 따뜻한 손을 내밀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지선 씨는 공부를 시작했다. 뜻하지 않게 넘어진 사람들을 만나 다시 일으켜주기 위해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지금은 한동대에서 가르치고 있다. 어린이 재활병원을 세운 푸르메재단 홍보대사로서 발달장애 청년들의 직장을 위한 스마트팜 설립과 수형자 자녀들을 돕는 단체 세움 등을 돕고 있기도 하다.

이지선
▲이지선 교수는 과거 “앓아보지 않은 사람,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르는 마음들이 있었다”며 “아픔의 크기는 결코 잃은 것들의 많고 적음이나 달라진 상황의 경중에 비례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이대웅 기자
“맨 처음 사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독특한 표현을 썼어요. 눈치챈 분도 있으실텐데, ‘사고를 만났다’고 했어요. ‘당했다’가 더 정확하지만, 언젠가부터 그 말이 불편해졌어요. 그럴 때마다 제가 ‘음주운전 사고 피해자’가 됐으니까요. 더 이상 피해자로 살고 싶지 않았고, 하나님도 저를 피해자로 살게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에요.

얼마나 많은 선물들을 주시고, 이전보다 더 많은 행복과 기쁨을 누리는 사람으로 살게 하셨지 몰라요. 그래서 ‘당했다’에서 ‘만났다’로 표현을 바꾸기 시작했어요. 당한 일의 결과는 피해일 수 있지만, 만난 일의 결과는 헤어짐이잖아요. 시간이 많이 흐르고, 사고를 만났지만 잘 헤어진 사람으로 살게 됐습니다.

인생이 쉽지 않지요. 저처럼 큰 사고를 만나지 않았더라도, 살다 보면 곳곳에서 어려운 일들이 많이 생깁니다. 꿈에서조차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사고를 맞닥뜨렸을 때 사람들은 ‘재앙’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재앙이 아니라 평안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불행을 만났지만, 하나님은 잘 헤어지게 하셨어요.

저도 동굴을 만난 듯 캄캄하고 막막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잘 지나왔을 때 인생은 동굴이 아닌 ‘터널’임을 알게 됐고, ‘꽤 괜찮은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장을 다니고 유명해져서가 아니에요. 인생에서 불행을 당한 사람이 아니라, 불행과 잘 헤어지게 하신 인생으로 ‘새로고침’하시는 하나님 덕분이에요. 내가 계획한 대로 흐르지 않더라도 그 끝이 분명 ‘꽤 괜찮은 해피엔딩’이고, 어쩌면 내가 계획했던 것보다 더 괜찮은 해피엔딩일 수 있어요.”

인생이라는 마라톤, 죽을 것 같지만 죽은 게 아냐
제 상황 처절했기에, 하나님 바라볼 수 밖에 없어
가해자? 생존 어려워서 누군가 미워할 겨를 없어
하나님 사랑하시는 딸이기에, ‘외모 열등감’ 없어

엔딩은 마라톤 이야기였다. ‘무식하면 용감해진다’고, 아무것도 모르고 푸르메재단을 위해 덜컥 약속해 참가했다, 첫 도전에 무려 풀코스를 정복한 뉴욕 마라톤 이야기. 최고기록인 8km를 넘어 비록 걸었지만 15km, 20km까지 나아가면서, 그녀는 깨달았다. 왜 인생이 마라톤 같다고 하는지.

“어디서 그만둬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응원을 받으며 걷다 보니 그만둬도 되는 지점을 결정할 수 없었어요. 한 발자국 내딛기도 힘들어 주저앉아 있는데, ‘그만둬도 괜찮아’라고 해주시는 분이 없었어요. 응원해 주시는 분들도 10km 이상 남았는데 ‘다 왔다’고 하셨어요(웃음). 그래서 그냥 걷기 시작했어요.

정말 그만둘 때가 왔다고 느꼈을 때, 한 분을 만났어요. 7km 정도 남았을 때, 누군가 저를 알아보더니 ‘이지선 화이팅’ 하시는 거예요. 모르는 분이었는데, 제 홈페이지에서 마라톤 도전 소식을 듣고 몇 시간 동안 기다리고 계셨어요. 양심이 있지, 거기서 그만둘 수는 없었어요(웃음). 그때부터 이상하게 힘이 났어요. 힘차게 걸으며 다짐했어요. ‘저 분처럼 인생의 마라톤에서 지쳐 있는 사람들을 응원하며 살겠다’고요.

시간이 많이 지나, 더 이상 응원하시는 분들도 없었어요. 7시간 22분 26초에 꼴지로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는데, 1등이 나만큼 기쁠까 싶었어요. 너무너무 그만두고 싶던 순간들이 있었지만, 죽을 것 같을 뿐 죽은 게 아니었어요. ‘이 레이스가 나를 죽이지 않는다. 내가 그만두지 않는 한, 이 레이스는 계속된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각자의 마라톤이 주어졌어요. 얼마나 왔고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어 어려운 게, 인생이라는 마라톤이에요. 살다 보면 죽을 것 같은 고비도 만나고, 저처럼 한 번 그런 일을 만났다 해서 다시 그런 일을 안 만날 거라는 보장도 없어요. 이곳은 천국이 아니니까요.

죽을 것 같은 고비를 만나도, 중간에 그만두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언젠가 저 끝에서 승리의 깃발을 흔드시는 예수님께 ‘그래도 내 사명 다하고 돌아왔어요. 내가 끝을 정하지 않았어요’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좀 늦으면 어때요? 너무 힘들 땐 쉬어가겠지만, 그만두지는 말아요. 여러분 인생의 마라톤을, 저를 기다리며 응원하신 그분처럼 응원해 드리고 싶어요.”

질문도 이어졌다. ‘거액의 사기를 당했는데, 그런 안 좋은 일 가운데 주님께 다가갈 수 있는 원동력이나 계기가 무엇이었는가’라는 질문에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쉽지 않은 시간을 지나고 계실텐데, 제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어렵고 힘든 시간에 하나님 말고는 내 인생을 책임져줄 분이 없음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내가 얼마나 연약하고 깨지기 쉬운 존재인지, 동시에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지 경험하는 시간들이었어요.

완전히 의지하고 순종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만 했어요. 그때 만든 홈페이지 이름도 ‘주바라기’였어요. 제 상황이 처절했기에, 하나님을 볼 수밖에 없었어요. 다른 옵션이 없었어요. 이런저런 생각이 들 때마다, 처음으로 되돌리는 게 중요해요. 조언일 수도, 예배에서 들은 말씀일 수도 있는데, 끊임없이 마음을 돌이키고 구한 것이 사고와 잘 헤어지게 된 원동력 같아요.”

자신을 경찰이라고 소개한 한 시민은 ‘범죄 피해자와 가해자를 만나게 된다. 가해자에 대한 분노가 컸을텐데,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가? 목사님들은 오히려 가해자를 용서하고 축복하라고 하지 않는가’ 하고 질문했다.

“중환자실에서 의식이 깬 뒤, 아버지께 사고 경위를 들었어요. 제 상황을 정확히 몰랐을 때였는데, 아버지께서 ‘보통은 가족이 합의해 달라고 찾아온다는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경찰들 말로는 당시 제대로 보험도 들지 않는 차들이 많았는데, 종합보험에 든 것만 해도 신기하다고 했어요.

그때 아빠에게 ‘만약 가족들이 찾아와 합의해 달라고 하면,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용서하겠다’고 이야기했어요. 용서라고 표현했지만, 무슨 생각이었는진 모르겠어요. 그분은 법대로 처벌을 받은 걸로 알고 있어요. 얼굴도 이름도 몰라요.

한참 시간이 흘러 이런 질문 받을 때면 생각하게 돼요. 사는 동안 가해자에 대한 생각을 잊고 살았다는 걸요. 가족이 찾아와 막 사정했다면, 오히려 기억했을지 몰라요. 용서하자고 말했지만, 실제로 그들을 보고 나면 쉽게 용서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있어요.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생각하는 건, 저 자신의 생존이 어려웠기에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까지 더하지 않도록, 가족들 모두에게 ‘잊어버리는 은혜’를 주셨던 것 같아요. 제가 한 건 용서도 무엇도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선물로 그의 존재를 기억하지 않게 됐어요. 잘 살아남는 일에 모든 힘을 쏟았어요. 나중에 ‘그의 인생이 참 안 됐다’는 생각은 했어요. 축복까지 할 수는 없겠지만, 다시는 그런 일 하지 않고 잘 사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열등감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있는 최원호 목사는 ‘가장 대표적인 열등감이 외모 콤플렉스인데, 언제쯤 자신이 예쁘게 느껴졌는가’라고 물었다.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지우고 싶고 부정하고 싶은 순간은 초반에 조금 있었지만, 저 자신이나 외모에 대해 열등감을 느껴본 적은 없었어요. 물론 열등감보다 더 바닥이었던 순간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생존을 고민하면서 알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저를 여전히 어떠한 모습이든 상관없이 저를 사랑하는 딸이라고 부르신다는 거예요.

가족과 친구와 교회 식구들은 저를 받아들이고 익숙해졌지만, 길거리에서 저를 처음 보시는 분들은 굉장히 불쾌한 반응을 보이셨어요. 화상 환자는 듣지도 화내지도 못하는 줄 아시는지, 굉장히 큰 소리로 제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 폭력적 반응에 힘들었지만, 가족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게 진짜 사랑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저도 어느 순간 짠 하고 극복한 건 아니에요.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사고와 조금씩 멀어졌어요. 성장과 회복은 완성품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서 마치 여행처럼 계속 하게 하실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고 전에도 교회를 열심히 다녔지만, 제가 계획하는 인생을 하나님께서 좀 도와달라고 기도하던 사람이었어요. 이후 삶이 완전히 달라지면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각도 완전히 변화됐어요. 하나님께서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하시는 영화에 저는 배우로 출연할 뿐이에요. 시나리오가 어떻고 연출이 어떻고 하는 건, 제 역할이 아니에요.

‘꽤 괜찮은 해피엔딩’을 그리는 이 영화가 잘 완성되도록, 저는 순간마다 잘 살고 배역에 맞게 최선을 다할 뿐이지요. 그러면서 더 자유로워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