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기독교원로의회
▲김명혁 목사. ⓒ크투 DB
본문: 마 5:23-25, 38-45, 6:14,15, 18:21.22, 막 11:25, 눅 11:4, 엡 4:32

성자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고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게 하신 성부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을 따라서 이 세상에 오셔서 33년동안 온갖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용서하시고 도우시면서 사시다가 십자가에 달려서 저주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신 “사랑과 용서와 도움과 구원”의 하나님이시라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사랑과 용서와 도움과 구원”의 손길을 펴신 귀중한 말씀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마 5:23-25).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마 5:38-4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 6:14,15).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찌니라”(마 18:21.22).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막 11:25).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눅 11:4).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

성자 예수님께서는 지옥의 저주를 받아 마땅한 일곱 귀신들렸던 인간 쓰레기 막달라 마리아에게 까지 “사랑과 용서와 도움과 구원”의 손길을 펴셨습니다. 눅 8장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나간 사람이었다고 했습니다.

“이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반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 쌔 열 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눅 8:1-3).

“일곱 귀신이 나간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문자적으로 귀신 들려서 미쳤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몸도 정신도 마음도 영혼도 모두 파괴되어서 사람으로서의 구실을 할 수 없었던 폐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생각도 말도 제대로 못하고 음식도 잠도 일도 아무 것도 제대로 하지 못 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파괴된 폐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는 그런 폐인으로부터 건짐을 받아 온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생각도 제대로 하고 말도 제대로 하고 음식도 제대로 먹고 잠도 제대로 자고 일도 제대로 하는 온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영적으로 말해서 막달라 마리아는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었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그렇게 해 주셨습니다.

또한 막달라 마리아가 부도덕한 길거리의 여자였다는 것입니다. 고레기오라는 화가가 그린 막달라 마리아의 모습은 욕망의 색갈로 가득한 길거리 여인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는 그런 윤락의 늪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그렇게 해 주셨습니다.

또한 막달라 마리아가 일곱 가지 죄악에 사로 잡혔던 전형적인 죄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일곱 귀신은 일곱 가지 죄악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는 그런 죄악의 덫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영원한 지옥의 저주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죽음에서 살아난 것입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그렇게 해 주셨습니다.

사실 부활하신 성자 예수님께서 자기를 제일 먼저 나타내 보이신 사람이 바로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너무너무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결국 막달라 마리아가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성자 예수님을 그렇게도 생생하고 진지하게 증거했던 이유는 바로 자기가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성자 예수님께서는 또한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아서 죽이는 로마 군인들 에게까지 극도의 “사랑과 용서와 도움과 구원”의 손길을 펴셨습니다. 너무너무 놀라운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장면을 눅 23장은 다음과 같이 상세하게 기록했습니다.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 쌔 백성은 서서 구경하며 관원들도 비웃어 가로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찌어다 하고 군병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가로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때가 제 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며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두드리며 돌아가고 예수의 아는 자들과 및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눅 23:33-49).

정말로 정말로 놀라운 장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그래서 지옥의 저주를 받아 마땅한 로마 군인들에게 까지 “사랑과 용서와 도움과 구원”의 손길을 펴셨고 평생 죄만 짓던 강도 한 사람에게까지 “사랑과 용서와 도움과 구원”의 손길을 펴신 사실은 너무너무 이해하기 힘든 지나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성자 예수님을 너무 많이 사랑하셨고 문둥병자들을 너무 너무 많이 사랑하셨던 그래서 “사랑과 용서와 도움과 구원”의 손길을 펴시는 귀중한 삶을 사시다가 순교의 죽음을 죽으신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과 용서와 섬김”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손양원 목사님께서 나병환자들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섬기면서 살기를 소원하시는 간절한 기도의 말씀 하나를 소개합니다.

『주여 애양원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애양원을 참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을 주시옵소서. 주께서 이들을 사랑하심 같은 사랑을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나는 이들을 사랑하되 나의 부모와 형제와 처자보다도 더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차라리 내 몸이 저들과 같이 추한 지경에 빠질지라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만약 저들이 나를 싫어하여 나를 배반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저들을 참으로 사랑하여 종말까지 싫어 버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내가 이들을 사랑한다 하오나 인위적 사랑, 인간적 사랑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람을 위하여 사랑하는 사랑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고 주를 위하여 이들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보다는 더 사랑치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내가 또한 세상의 무슨 명예심으로 사랑하거나 말세의 무슨 상급을 위하여 사랑하는 욕망적 사랑도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만 그리스도의 사랑의 내용에서 되는 사랑으로서 이 불쌍한 영육들만을 위한 단순한 사랑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나의 남은 생이 몇 해 일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몸과 맘 주께 맡긴 그대로 이 애양원을 위하여 충심으로 사랑케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그 다음 손양원 목사님의 원수 사랑과 용서에 대한 눈물의 고백의 말씀 하나를 소개합니다.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내 아들들은 죽어서 천국에 갔지만, 안재선은 죽으면 지옥 갈 텐데,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그를 살려야 한다. 그를 용서해야 한다. 그를 사랑해야 한다. 동희야 내 말 잘 들어 봐라. 내가 무엇 때문에 5년 동안이나 너희들을 고생시키면서 감옥 생활을 견뎌 냈겠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었겠느냐? 제 1, 2 계명과 함께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도 똑같은 하나님의 명령인데 내 어찌 이 명령은 순종치 않는단 말이냐.

원수를 사랑하라는 명령에 순종치 않는다면 과거 5년 간의 감옥살이가 모두 헛수고요, 너희를 고생시킨 것도 헛고생만 시킨 꼴이 되고 만다. 그러니 동희야, 가만히 생각해 보아라. 그를 죽여서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되겠느냐? 동희야, 용서만 가지고는 안 된다. 원수를 사랑하라 했으니 사랑하기 위해 아들을 삼으려는 것이다. 아들들을 죽인 자를 잡았거든 매 한 대도 때리지 말고, 죽이지도 말라고 해. 내가 그를 구해서 아들을 삼겠다고 해.』

딸 동희양은 몇 번이나 반항하며 아버지에게 소리를 지르며 대들었습니다.혹 용서는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아들을 삼는다는 것은 무엇이냐고 악을 쓰며 달려들었습니다. “동희야, 용서만 가지고는 안 된다. 원수를 사랑하라 했으니 사랑하기 위해 아들을 삼으려는 것이다. 딸은 자기 의지에 반해 아버지의 하나님 절대 신앙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결국 딸은 아버지의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를 국군 심문자에게 그대로 전하므로 처형되기 10여분 전에 원수를 살려냈습니다. 동희 양은 취조 군인에게 달려가서 이렇게 아버지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아버지가 두 오빠를 죽인 자를 잡았거든 매 한 대도 때리지 말고, 죽이지도 말라 하셨어요. 그를 구해 아들 삼겠다고요. 성경 말씀에 원수를 사랑하라 했기 때문이래요.” 그는 숨도 쉬지 않고 단숨에 말을 토해 놓고는 책상에 엎드려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동희 양의 말이 끝나고 울음을 터뜨리자, 방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충격을 받은 듯했습니다. 취조를 하던 군인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가 떨어진 줄도 모르고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으며 “위대하시다”, “위대하시다”라고 감탄의 소리를 토해 냈습니다. 안재선까지도 고개를 숙인 채 흐느껴 울고 있었습니다.

손동희 권사는 그 때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이 광경이야말로 오늘까지 내 눈 앞에 잊혀지지 않는 역사적인 장면의 한 토막이었다.” 사랑의 원자탄이 떨어진 장면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한국교회가 사랑하고 존경하고 자랑하는 사랑의 원자탄이 된 데는 보통 사람이 경험하지 못한 극도의 “가난과 고난과 고통과 슬픔과 아픔”이 있었던 것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손양원 목사님과 정양순 사모님은 마지막까지 사랑과 용서와 섬김”의 삶을 정성껏 사시다가 세상을 떠나 하늘 집으로 올라가셨다고 생각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1950년 9월 13일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2주일 동안 온갖 수모를 다 당하시고 9월 28일 밤 11시쯤 미평 과수원에서 총살당하여 48세에 순교하셨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자기를 죽이려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총 개머리 판으로 입을 얻어맞아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늘 나라로 가셨습니다. 그가 그렇게도 그리고 사모하던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이튿날 아침 남편의 순교 소식을 접한 정양순 사모님은 남편의 시신 앞에서 지난 밤에 갓 태어난 아기를 안고서 비통해 하면서도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오! 당신 소원대로 됐군요. 평소 주기철 목사님을 그렇게도 부러워했는데, 하나님, 감사합니다. 평생 동안 주님의 일을 하게 하시고, 손양원 목사가 소원하던 순교를 허락해 주신 은혜,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정양순 사모님은 마지막까지 나환자들의 친구로 살다가 1977년 11월 26일 사랑하는 남편과 두 아들이 있는 천국으로 옮겨졌습니다.

그가 운명하기 전 가슴에 꼬깃꼬깃 간직했던 돈을 꺼내어 딸에게 전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돈을 밀양교회에 전해주어라.” 밀양교회는 건축 중에 있던 나환자 교회였습니다. 그의 시신은 남편의 무덤과 합장되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순교하시던 거의 같은 시간에 태어난 아기 동길은 후에 커서 아버지를 따라 목사와 선교사가 되었고 필리핀에서 선교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과 정양순 사모님은 순교적 믿음을 지킨 믿음의 사람들이었고, 생명을 다 바쳐 나환자들과 원수를 사랑한 “사랑과 용서와 도움”의 성자들이었으며, 천국을 바라보며 산 소망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삶이어야 하는 것을 보여주고, “사랑과 용서와 도움”의 삶이 얼마나 귀중함을 보여주고 우리 곁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이제 ‘사랑과 용서와 도움의 손길을 펴는 귀중한 삶’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마무리합니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불우하고 불쌍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용서와 도움”의 손길을 펴면서 살아가는 삶보다 더 귀중하고 더 아름답고 더 축복된 삶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의 삶이 모든 불우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용서와 도움의 손길을 펴는 귀중한 삶” 이었고 손양원 목사님의 삶이 “사랑과 용서와 도움의 손길을 펴는 귀중한 삶” 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온갖 죄와 허물로 가득한 죄인 중의 죄인인데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축복으로 부족한 저도 모든 불우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용서와 도움의 손길을 펴는 귀중한 삶”을 살다 죽을 수는 없을까 라는 생각을 지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11살 때 38선을 혼자서 뛰어넘어 남한으로 온 다음 평생토록 고아와 나그네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몸에 지니고 살면서 신앙생활을 나름대로 열심히 하면서 살았지만 오랜 동안 반일, 반북, 반공, 반중국, 반자유주의, 반순복음주의, 반무슬림주의, 반타종교주의를 지니고 살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인가 저의 생각과 삶의 자세가 조금씩 바뀌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를 품는 포용적인 자세로 바뀌어 지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스데반 집사를 비롯한 귀중한 신앙의 선배님들이 “사랑과 용서와 도움”의 손길을 모두에게 펴는 귀중한 삶을 살아오신 사실을 묵상하면서 부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뀌어 지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친일, 친북, 친공, 친중국, 친자유주의, 친순복음주의, 친무슬림주의, 친타종교주의로 바뀌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북한 동포들 돕는데 앞장을 서게 되었고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해서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를 건축하고 준공식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저는 다음과 같은 성자 예수님의 말씀을 아주 귀중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그리고 사도 요한의 예언 말씀을 아주 귀중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계 7:9, 10).

제 삶의 마지막 소원과 기도를 고백하면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부족하고 또 부족한 제가 북한이나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그곳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그곳 사람들에게 제가 소유하고 있던 모든 것을 선물로 드리면서 사랑과 용서와 도움의 손길을 펴는 귀중한 삶을 살다가 죽게 하시옵소서! 아멘! 아멘! 아멘!”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명예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