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노란봉투법 관련 보도. ⓒMBN 캡처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마가복음 8:15)”.

유대의 랍비(선생)들은 누룩을 악한 충동이자 인간의 나쁜 성질을 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리새인의 누룩은 형식주의와 거기서 발생하는 위선과 독선, 헤롯의 누룩은 세속주의의 악영향을 나타내주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이란 ‘분리된 자’를 나타내고, 그 의미는 히브리어 ‘페루 쉽’에서 나온 말로 율법에서 깨끗하지 않다고 하는 것들로부터 분리하려는 태도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누구보다 율법을 열심히 지키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죽은 자의 부활을 믿기 거부했지만, 바리새인들은 부활을 믿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내세를 부인하고 죽을 때 영혼이 사라진다고 믿었지만, 바리새인들은 내세와 각 개인에게 상응하는 보상과 처벌이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부인하였지만, 바리새인들은 영적 영역에 있는 천사와 마귀의 존재에 대해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특히 당시 사회에서 사두개인들은 바리새인들보다 더 엘리트에 귀족이었으며, 더 부유하고 지위도 강력했습니다. 제사장과 대제사장을 사두개인들이 다 꿰어찼을 정도이고, 산헤드린 공회에서도 다수 의석을 차지할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보통의 노동자들을 대표하며 대중의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의 권력 중심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이었지만, 바리새인들은 회당을 장악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바리새인들보다 로마와 더 친밀했고, 로마법을 더 많이 따르며 수용했습니다.

그렇다면 ‘헤롯의 누룩’은 무엇일까요? 헤롯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과 세례요한을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는 그가 영적 민감성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특히 헤롯은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세례요한과 같은 영을 갖고 있다고 결론내릴 정도로 영적인 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헤롯은 정욕의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헤로디아를 취한 헤롯은, 그들의 결혼을 반대하던 세례 요한을 죽여 버립니다. 이는 육체의 소욕을 따르는 헤롯의 이중적 성격을 드러냅니다. 세례요한을 통해 영적 이야기를 즐겨 듣던 그의 이러한 모순적이고 이중적인 태도는 이 시대 대한민국 정치 지도자들의 ‘이중 잣대’와 같은 맥락 아니겠습니까?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국회의원 50여 명이 공동으로 ‘노란봉투법’을 발의했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되고 있습니다. ‘노란봉투법’은 불법 행위자들을 보호하는 것으로, 노동조합이 불법쟁의 행위를 하더라도 사용자가 노조와 조합원에게 손해배상 청구나 가압류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입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최진식 한국중견기업회장 등은 14일 국회에 “‘노란봉투법’은 정당한 쟁의행위가 아니다. 불법 쟁의행위까지 면책하는 것은 헌법상 기본권인 사용자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해 우리 헌법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렇듯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법을 만들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신들의 권력 행사를 위하여 노동자들을 앞세우기 위함일 것입니다. 교묘하고 달콤한 유혹으로 노동자들의 환심을 사서 그들의 이익을 누리려는 고약한 심보입니다.

시대가 변했는데도 오래 전 사용했던 방법만 고수하고 있으니,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다는 이중적인 잣대는 헤롯 왕의 누룩과 같은 맥락 아니겠습니까?

필자가 생각하는 ‘노란봉투’는 어린 시절 아버지들이 월급을 받아오시는 날 두툼하게 들어있던 월급봉투였습니다. 이를 안주머니에 넣고 술 한 잔 하신 후 집에 돌아온 아버지가 자녀들을 부릅니다. 용돈도 주시고, 과자나 빵을 사다주신 그 때가 사뭇 그립습니다. 지금도 아버지의 그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한 대가의 수고비지만, 고생은 어느 순간 사라지고 식구들 먹여 살리느라 피땀 흘렸던 그 시절 아버지들의 애환이 담긴 ‘노란봉투’는 아버지의 권위를 나타내는 그 시절 ‘월급봉투’였습니다.

정말 희한한 일은 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나라와 국민을 위한 제안 대신, 노동자들을 위한답시고 달콤한 유혹으로 표 장사나 하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약한 자를 돕는 것처럼 위선을 떨어선 안 됩니다.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은 왜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추구하기보다 자신들의 보신에만 열을 올리는지, 참으로 어이가 없어 긴 한숨만 나올 뿐입니다.

6.25 남침 때, 얼마나 많은 지주들이 목숨을 잃었습니까? 하인이나 머슴들이 주인을 죽창으로 찔러죽이고, 농기구를 이용해 주인을 무참히 살해했던 역사를 금세 잊었단 말입니까?

물론 악덕 주인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은 물론 자신의 식구들을 먹여 살렸던 주인을 무참히 살해한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이 되질 않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나 하는 짓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노란봉투법을 만들려면, 성추행범, 사기꾼, 도둑, 그리고 살인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정말 한심한 정도가 아니라 뭔가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고 모자라는 사람들이 모인 곳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노란봉투법’을 만들자는 사람들은 정말 무슨 생각일까요? 국민들을 위해 내놓는 아이디어가 고작 이 정도인가 싶습니다. 다음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에서는 후보자들의 정신건강 체크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 그리고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당부하십니다.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는 성경 말씀도 있습니다. 하루하루를 살면서 최선을 다해 일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며 민족을 사랑하는 이 땅 모든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거짓되고 위선적인 오늘날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그리고 헤롯과 같은 누룩들이 더 이상 부풀지 못하도록, 믿음으로 막아내야 하겠습니다.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