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록, 한 점의 그림] 아름다운 동행: ‘작은 사슴 별자리에 닿다’
한센인 거주마을 안동 지역 한 교회에서 전시회
소록도 주민들 ‘해록예술회’와 성좌원의 연합전
섬세함 떨어지나, 설렘과 기대로 작년부터 참여
작은 불빛 모여 세상 환하게 밝히는 먹먹한 순간
작년 가을 한센인 거주마을인 안동의 (구) 성좌교회에서 의미 있는 전시가 열렸다. 청년 작가들이 주축이 되어 성좌원 어르신들을 조명한 <별자리: 별이 남겨진 공간>란 전시를 개최한 것이다.
1946년 애생교회로 출발한 성좌교회는 1972년에 개축, 1994년까지 사용해 오다가 신축된 복지관 내부의 예배시설로 이전하여 현재는 폐쇄된 상태이나, 청년 작가들이 주민들의 추억이 어린 공간을 최대한 보존하기 애쓴 가운데 활기 넘치는 공간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별자리> 전은 모두 1, 2, 3부로 나누어 미디어아트, 설치, 조각, 회화 등으로 성좌원 주민의 어제와 오늘을 조명하였는데 잔잔한 감동을 남겼던 기억이 있다. 그중에서도 마을주민들이 과거를 회고하는 어르신들의 인터뷰는 가슴 아픈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한센병에 대해 무지했던 일반인들의 편견과 차별이 가슴을 후벼 그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 영문도 모른 채 가족과 헤어져야 했고 동네 이웃과도 격리된 채 오랜 세월을 지내야 했으며, 혹시라도 외출을 나가면 따가운 시선을 견디기 힘들었다. 이들에게 가해진 차별과 멸시, 따돌림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사람들의 의식도 많이 개선되었다. 전시를 보고 위로를 얻은 것은 한센인들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그분들의 존재에 눈을 뜨게 된 것은 부끄럽지만 소중한 경험이었다. 모두가 병을 갖고 있는데 유독 이들만 그렇게 혹독한 대가를 치렀는지, 우리의 오해와 편견이 얼마나 큰 파괴력을 지녔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작년 전시회에 이어 올해에는 <작은 사슴 별자리에 닿다>(2022. 8. 23- 9. 4)는 전시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올해 전시는 소록도 주민들로 구성된 ‘해록예술회’와 성좌원 주민들의 연합전으로 이루어졌다.
‘해록예술회’(강선봉, 김기춘, 김영설, 김용하, 김종숙, 류승열, 박애남, 박용채, 신계순, 이영래, 장규득, 전귀자, 조재형, 한광희)는 2016년 창립하여 국립 소록도병원에서 창립전을 가진 후 제주 KBS 방송국, 고흥 남포미술관, 전남도청, 국회의원 회관 등에서 스무여 차례의 전시를 열었고, 얼마 전에는 서울 인사동 갤러리에서 단체전을 갖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들은 한센인들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는데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몇 년 앞서 활동하고 있는 ‘해록예술회’에 비해, 성좌원 주민들(김점태, 김옥조, 박인숙, 박정웅, 신현숙, 여순연, 이종찬, 임순옥, 장경희, 정란근)은 지금까지 붓을 잡아보지 못한 분들이 대부분이다. 여건이 되지 못해 포기해야 했거나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처음에는 서툴고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재미있다’,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고, 하고 싶었던 것을 해보니까 괜찮아”, “이거 하니까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재미는 있는데 손이 떨리네”, “욕심이 생겨 더 배우고 싶고 잘하고 싶은 마음이야” 등 미술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긍정적인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센병의 상흔으로 손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고 고령으로 섬세함은 조금 떨어질지 모르나, 물감을 혼합하고 칠하는 것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그분들은 설렘과 기대로 미술 프로그램에 임하였다.
외부인을 대하는 눈빛도 달라졌다. 주민들이 처음 프로그램을 진행하러온 청년 작가들을 만났을 때는 경계심을 풀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경계심은 누그러지고 이제는 반갑게 손을 잡아주신다고 한다. 청년 작가 중 한 명은 “내가 오히려 이분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았다”고 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소록도의 ‘해록예술회’와 안동 성좌원 어르신들이 미술을 매개로 만남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거리상으로 멀리 떨어져 있으나, 이들은 한센인이라는 것과 그로 인해 긴 세월 불이익을 받았다는 공통의 경험을 지닌다. 신체적 고통이야 치료를 받으면 되지만, 그들이 받은 정신적인 고통은 쉽게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시장을 돌며 필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은하수>란 작품이다. 주민들의 오래된 생활용품 수백 점을 전시 공간에 띄우고 음향까지 곁들인 설치 작품이었다. 성다솜과 이원재 작가는 성좌원 30여 명의 주민들에게 그간 사용해온 생활용품을 수거하고 이를 전시 오브제로 활용하여 그들의 존재를 반추할 수 있도록 했다.
가까이에서 살펴보니 바구니, 장화, 머리빗, 카세트 테이프, 전구, 우산, 모자, 털신, 수동 전화기와 같은 생활용품들이었다. 이 작품을 기획한 이원재 작가는 “오랫동안 음지에서 살아오신 어르신들을 다시 우리 곁으로, 사회의 품 속으로 모셔오고 싶었다”고 말했다.
주위 인공조명과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마저 모두 차단하고 오브제에 형광 물질을 칠하여 감상자들이 어둠 속에서 오직 주민들의 삶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설치작품 <은하수>는 그들의 고달팠던 지난 시간의 자취를 잔잔히 내비치고 있었다.
전시장 안의 오브제는 블랙라이트의 특수 조명을 받아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고 있었는데, 이는 그들이 소중한 존재임을 알려주는 불빛과도 같이 다가왔다.
우리가 미술 작품을 보며 여러 의미내용을 접할 수 있지만, <은하수>처럼 강력한 울림을 받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것에 담긴 의미는 가공된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의 인생을 생생히 증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하루가 슬픔과 고통으로 점철되었던 그들의 삶이 젊은 작가들의 눈과 마음, 손과 귀를 통해 세상에 당당하게 자리잡기를 바라는 소망이 깃든 감동적인 작품이었다. 전시를 계기로 그들 역시 우리와 똑같은 존재라는 걸 인식하게 된 것은 값진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주민들은 엄혹한 시련을 겪는 가운데 신앙 안에서 은혜와 평강을 누렸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주민들은 그들의 삶에 신앙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사료된다.
여기에 그들의 예술적 잠재성을 꽃피울 수 있는 활동이 덤으로 주어진다면, 정서적인 면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분들도 평소 동경하거나 전달하고 싶은 세계가 있으며 아름다움을 사모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다만 그것을 표출할 통로를 갖지 못했을 뿐이다.
미술은 자신과 자신의 삶을 보다 깊게 이해하게 되며, 타자에 대한 공감력을 키울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예술 프로그램을 통해 이들의 삶을 뒤돌아보고 우리 사회가 그것을 공유하는 접촉점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번 전시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안동 지역 청년 작가 18명이 평면과 조각으로 나뉘어 함께 참여하였다는 점이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프로그램의 진행을 돕고 작품까지 출품하며 행사의 의미를 빛내주었다.
예술이 성취해야 할 과제는 “이웃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형성하는 것”이란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기나긴 세월을 눈물과 외로움 속에서 지내온 어르신들과 함께 전시를 공동 개최함으로서 삶을 공유하고 이들에 대한 이해를 높이게 된 것은 높이 살 만하다.
작은 불빛들이 모여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순간의 먹먹함이 전시를 보는 사람들의 가슴에 촉촉이 스며들었을 것이다.
서성록 교수
안동대 미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