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정통신학과 신앙, 설교 통해 확산
한국교회 목회자들, ‘진리’ 사랑하지 않는 듯
성도들도 예수 그리스도보다 체험 중요시해

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
▲서창원 교수는 이날 30주년 설교에서 목회자들에게 “은과 금 대신 나사렛 예수 이름을 드러내고 있는지” 반문했다. ⓒ이대웅 기자
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Korea Institute for Reformed Preaching, 이하 설교연구원)이 30주년을 맞았다. 한국교회 강단 사역을 성경 중심으로 갱신하자는 목표로 1992년 설립된 설교연구원은 특히 한국교회에 청교도 사상을 보급해 왔다.

1993년 6월부터 영국 진리의깃발(Banner of Truth)과 제휴해 격월로 해당 잡지를 번역 발간해 청교도와 개혁주의 설교 및 양서를 보급하고, 매년 두 차례 외국 저명 학자를 초청해 종교다원주의와 복음주의가 확대되는 상황 가운데 실질적으로 설교 사역에 도움을 주고 개혁주의를 세워가는 일에 힘쓰고 있다.

설교연구원은 영국 유학 중 개혁주의 설교와 이를 보급하는 연구원의 필요성을 직접 보고 느낀 서창원 교수(총신대 은퇴)의 헌신으로 설립 이후 오늘까지 이어져 왔다. 본지는 지난 8월 22일 서울 강남구 세곡교회에서 열린 30주년 기념세미나에서 서창원 교수를 만나, 30주년 소감을 비롯해 여러 이야기를 청취했다.

-30주년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30년을 한결같이 한 길을 걸어왔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큰 은혜이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흔들릴 수도 있었는데 한 길만 보고 걸어올 수 있었다는 것이 제게는 너무 큰 은혜입니다.

처음 시작할 때도 환영받지 못했지만, 30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대중적으로 환영받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진리는 언제나 살아서 역사하듯, 영원한 진리를 붙들고 나온 것이 오늘까지 버틸 수 있었던 힘입니다. 진리의 힘이었지, 제 힘이 아닙니다.

이번 30주년 세미나는 원장으로서 맞는 마지막 행사입니다. 연말에 원장에서 물러날 예정입니다. 만 35세에 처음 시작해서 30년간 해왔습니다. 지금 35세인 사람은 이런 일을 시작할 생각도 못할 것입니다.

젊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런 생각을 주셨고 함께해 주신 어르신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진리를 위해 일하는 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이 되길 바랍니다.”

-35세 청년으로서 30년 전 이 일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왜 신학이 아닌 ‘설교’ 연구원인가요.

“지금도 대부분의 강단이 성경을 설교하지 않지만, 30년 전에는 더 심했습니다. 교회의 생명이 설교인데, 성경에 충실하지 못한 설교가 너무 많습니다. 목회자들이 성경 진리를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설교’ 연구원을 창립했습니다.

특히 성경 말씀뿐 아니라 정통 신학에 충실한 설교가 필요합니다. 한국 목회자들의 설교에는 신학이 별로 없습니다. 윤리·도덕적 교훈에 불과할 뿐, 신학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혁주의 정통신학과 신앙을 설교를 통해 확산시키자고 생각한 것입니다. 유학 시절 영국에서 공부하며 느꼈던 일을 한국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고민하면서 2년 동안 조사와 연구를 실시한 뒤 연구원을 시작했습니다.”

-30년 전과 오늘날을 비교해 보면, 사역의 열매가 있다고 보시는지요.

“한국교회 전체적 상황과 저희 설교연구원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국교회 측면에서는 설교가 전반적으로 나아지지 못했다고 봅니다.

30년 전에도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개혁과 변화의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방법론과 시작을 설교로 하자고 했던 것입니다. 다른 분들은 설교가 아닌 프로그램이나 구조조정 등의 방법을 선택했지만, 결국 다 성공하지는 못했다고 봅니다.

그래도 개혁주의 설교를 하는 교회들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청교도나 종교개혁자들이 물려준 설교의 유산을 물려받은 목회자들이 많아진 점에 대해, 연구원 입장에서 감사드립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는 빙산의 일각이지만, 30년 전 그런 설교가 전무하다시피 했던 것에 비하면 굉장히 많은 성장을 이뤘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기독교 생태계를 보면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있음을 여실히 느낍니다. 이번 세미나에도 더 많은 목회자들이 오셔서 배워 가시기를 바랐습니다. 강좌 10회와 집회 4회를 생각하면 회비도 저렴한 편이지만, 배우려 하질 않습니다.

목회자들 안에 진리를 탐구하는 정신이 부족합니다. 여전히 교회성장에 목을 매고 있습니다. 설교든 뭐든 교회성장의 도구로 생각할 뿐, 하나님 진리의 말씀을 순전하게 전한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슬픕니다. 무늬만 기독교일 뿐, 속은 썩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첫 강의에서도 들으셨겠지만, ‘구원의 확신’을 갖고 더없는 성숙한 자리에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 얼마나 있습니까. 그런 면에서 연구원 입장에서 외형적으로 자랑할 만한 것은 보이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7천 명을 남겨 주신 것처럼 순수하게 주님 따르는 사람들을 남겨 두셨다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
▲서창원 교수는 “30년 전만 해도 교회성장과 복음주의 운동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어, 개혁주의를 치켜드는 일은 무모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이대웅 기자
-진리를 따라 설교하면, 성장이 안 되나요.

“교회 성장을 숫자적으로만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일반적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진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둠에 속한 자들은 빛 가운데 들어오는 걸 싫어하는 법입니다. 진리를 계속 공급하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나기 때문에 싫어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들만 진리를 사랑합니다.

교회 나오는 사람들이 다 거듭났다고 말할 수 없는 아픔이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여전히 복음인데, 그 복음을 들을 기회는 주지 않고 도덕적이고 풍요롭게, 즐겁고 행복하게 지상에서 잘 사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죄와 회개를 이야기하면 싫어하니까, 하지 않습니다.

아까 조엘 비키 총장님이 강의에서도 언급하셨듯, 영적 성숙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대표기도하는 장로님들의 20년 전 기도와 지금의 기도가 별다를 게 없습니다. 깊이가 없습니다. 이것이 대부분 한국교회에서 일어나는 모습입니다.

성도들도 성장하고 성숙하는 모습이 보이질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보다 신앙적 체험을 더 중요시합니다. 진짜 그리스도인들은 체험보다 그리스도를 더 높이고 사랑해야 하는데, 자꾸 극적 순간을 요구합니다. 그러다 보니 조금만 환난이 닥치면 예배를 빠지고 신앙에서 돌이킵니다. 지속적 성숙을 이루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목회자들이 진리를 사랑해야 하고, 성도들은 진리를 따라 살도록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진리를 전해주지 않으니, 성도들은 어떤 면에서 포기한 측면도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성도들이 설교에서 ‘내가 듣기 좋은 소리’가 나오면 은혜 받았다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굉장히 감성적 판단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 삶을 변화시킬까요? 더 주님을 닮고 의지하게 하는 내용을 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신앙이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것인데, 한국교회 현실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저 보고 느끼게 하려고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리를 따라 설교하고자 하는 개혁교회에서 ‘수적 성장’은 쉽지 않습니다. 실제로 큰 교회도 많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질 않으니까요.”

-그래도 저변 확대는 필요하지 않을까요.

“말씀처럼 개혁주의 목회자들이 공교회성을 추구하면서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해외와 국내 개혁주의 목회자들이 한 가지 다른 점이 그 부분입니다. 한국은 ‘각자도생’할 뿐, 협력해서 시너지 효과를 내려 하지 않습니다.

이번 세미나처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개혁주의 사경회를 하면, 소속이 어디든 함께 모여 공부하고 교제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개혁주의 설교와 목회가 무엇인지를 보여줬으면 합니다.

영미권에서 이런 세미나가 열리면, 개혁교회 성도들은 각자 교회 모임 대신 함께 세미나에 참석하는데, 우리는 그게 잘 안 됩니다. 심지어 교인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목회자 혼자 참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각자 따로 사역하면서 ‘우리는 소수’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함께 모이면 그래도 숫자가 꽤 됩니다. 이런 일들을 함께 하려면 희생하고 양보하고 협력하는 정신이 필요해 쉽지는 않습니다. 각개전투를 하다 보니, 개혁주의가 확산되지 못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100% 나와 같은 생각은 아닐 겁니다. 크고 작은 차이들이 있겠지만, 넓은 틀 안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나 여러 교리문서, 신조에 동의하는 분들과는 함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중심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설교를 성경적으로 전하면서, 다른 면에서는 비성경적 방식으로 살아선 안 됩니다.

-30년 간 가장 아쉬웠던 점을 꼽는다면.

“지난 30년 간 세미나를 개최하면서 주옥 같은 메시지들이 축적돼 있는데, 단행본을 만드는 등 제대로 알리는 일을 하지 못한 점입니다. 이쪽 방면에는 은사가 없나 봅니다(웃음).

진리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돈을 벌 수 있느냐를 먼저 봅니다. 그래서 희생하겠다는 사람이 적습니다. 저희 연구원 간사들은 정말 진리를 위해 희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쪽 방면에는 소질이 없습니다.”

-30주년 이후의 비전이 있으시다면.

“저는 원장 직을 내려놓지만, 연구원 차원에서는 이 일을 지속적으로 감당하기를 바랍니다. 이런 세미나를 통해 세계 개혁교회와의 유대 관계도 긴밀히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세계 개혁교회와 유대관계를 갖고 함께 가려는 단체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자신들 사역을 위해 세계 개혁교회를 이용하려고만 해선 안 됩니다. 국제적 마인드를 가지고 같은 지체로서 세계를 아우르는 지도자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2023년 초 세미나는 ‘교회사 공부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열 예정입니다. 개혁교회에서 교회사를 너무 무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역사를 왜 알아야 하는가를 다루고자 합니다. 내년 여름 세미나에는 리처드 프랏 목사님이 오셔서 여호수아 강의를 해주실 예정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이 없는 동남아 아프리카 선교지 등을 찾아가 가르치는 일을 하고자 합니다. 6개월은 선교지에 있고 6개월은 한국에서 좋은 책들을 소개하고 보급하는 일들을 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