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사막 순례 이야기
도널드 밀러의 오색사막 순례이야기

도널드 밀러 | 허진 역 | 잉클링즈 | 396쪽 | 16,000원

우연히 내 손에 들어온 <도널드 밀러의 오색사막 순례 이야기>는 무언가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국내에 이미 소개된 그의 책들은 꽤 유명했고 특히 미국에서는 상당한 베스트셀러이기도 했지만, 왠지 그 정체성이 무엇인지 확 와닿지 않아 책 장을 처음부터 넘기기가 힘이 들었다.

그러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마치 로드무비를 보는 듯한 흥미로움 속에 조금씩 빠져들기 시작했다. 자전적 소설이라고 해도 무방한 듯한 이야기는 읽는 이를 상당히 즐겁게 한다. 그런데 그의 책의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자꾸 내게는 어릴 적 교회생활과 교회 친구들이 떠올랐다.

반(半) 모태신앙 이력을 가진 나는 초등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꽤 오랜 전통을 가진 작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200-300명 정도의 장년과 중등부 고등부가 각각 20-30명 정도 있었던 교회였다.

비록 작은 교회였지만 역사적으로는 한국교회사에 한두 줄을 채우는 교회였다. 남산 자락 중앙정보부와 서울예술전문대학 건너편에 자리하고 조금만 내려가면 명동을 맞이하는 서울 중심이긴 했지만, 당시만 해도 그곳에 주거지를 가진 사람들이 상당해서 교회는 지역 주민이 대다수였다. 교회는 신앙 공동체이기도 했지만, 특히나 주일학교는 교회친구만이 아니라 동네 친구, 학교 친구이기도 했다.

그런 교회 특성을 보면 믿음 때문에 교회에 나오기도 했지만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오는 아이들도 적지 않아, 어느 정도 나이가 든 후 적지 않은 친구들이 교회와는 멀어지는 경우도 꽤 있었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 중에는 교회를 다니기는 하지만 신앙적인 모습과는 꽤나 거리가 있는 경우도 상당했다.

그래도 학교에서나 교회에서나 상당히 범생(?)적인 삶을 가졌던 나로서는 신앙적인 모습에서 최소 남자 친구들과는 괴리감을 가질 때가 있었다. 게다가 교회 내에 몇 년간 학교에서는 불량 학생이나 문제 학생으로 평가받는 무리들이 교회 내에 들어와 교회 어른들에게는 골칫거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정서적으로 여리거나 가정이나 환경으로 상처 입은 이들이 대다수여서, 그들과 대화하고 어떤 때는 도우며 마치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밑에서> 주인공이 겪었던 두 세계를 살아가는 듯 몇 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면서 교회 중고등부를 흘러가는 문화 속에서 술담배 둘 다 전혀 안 하는 몇 안 되는 범생으로서 어떤 때는 좀 외롭기도 하고―당시 술담배는 신앙인으로서의 강한 금기이기도 해서 그것이 일종의 신앙 수준의 판단 기준이기도 했다―그들의 신앙적 모호함으로 신앙생활의 본을 찾을 수 없어 외롭기도 했다.

그러다 교회의 분란으로 인해 교회가 쪼개지고 그 교회에서 다시 나와 뚜벅이 신앙생활을 속에 접하게 된 곳이 몇 달간의 짧은 경험을 한 캠퍼스 선교단체와 나의 신앙 방향성을 바꾸었던 반포에 있는 꽤 건강했던 모 교회 대학청년부였다.

오색사막 그린 사막 애리조나 풍경 남서 남서부 그린 미국 경치 순례
▲미국 애리조나 일명 ‘오색사막’. ⓒ픽사베이
강한 보수성을 지닌 선교단체에서는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과거와 다르게 분명한 신앙의 확신과 범생으로서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을 접했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그곳에서 떨어져 나갔고 나 또한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나님보다 그들의 틀과 법칙이 강요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그곳에서 만난 친구 하나는 아직도 교제를 나누고 있다.

이어진 곳이 청년 시절을 보낸 교회였다. 그곳에서 마치 목장에서 자유롭게 키우는 듯한 양과 소마냥 신앙인으로서의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이들을 보며, 또 다른 신앙공동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낡은 폭스바겐 밴을 몰고 여행을 하는 저자와 폴의 모습, 그리고 그들이 만나는 여정 속 사람들, 그리고 친구들은 그저 평범한 미국 사람들 같지만 순수하게 하나님을 만나고 추구하는 이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어떤 때 두 주인공의 모습은 무모해보이고 치기 어려 보이고 젊은 청년들의 갖는 욕망과 값싸 보이는 관심거리에 머무는 듯 하지만, 그들은 그 여정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들을 돕는 손길을 경험한다. 어떤 때 그들은 아무 대책 없이 살아가는 듯 하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인도를 경험한다. 생각해 보면 나도 그러했던 것 같다.

내가 살아오며 접해왔던 이들은 비록 방법은 다르고 관점과 신앙적 스타일은 다르지만, 각각의 그들을 통해 나는 인도를 받고 또 도움을 받기도 하고 돕기도 했던 것 같다. 저자가 펴낸 다른 책들이 갑자기 궁금해진다. 청년 시절 그의 모습은 몇 년, 또는 수십 년 후 어떻게 달라졌을지 말이다.

추신 1: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드는 계속된 아쉬움 한 가지. 미국 사람들에게는 이 책의 저자가 언급하는 여정이 머릿속에 그려지겠지만, 나같이 미국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들이 가는 길이 어디쯤 지나가는지, 얼마나 긴 거리를 간 것인지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것을 알고 본다면 더 이 책을 읽는 재미가 있지 않았을까? 챕터마다 표시는 하지 않더라도, 책 앞에 한 장쯤은 그들이 갔던 길을 지도로 표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만 그런 걸까?

추신 2: 국내 번역판 표지그림은 상당히 의미있는 듯한데, 그에 대한 설명을 간략히라도 담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추가한다.

문양호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함께만들어가는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