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철학? 사정없이 폭을 좁히라
설교자로서, 나는 왜 설교하는가?
나의 설교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물음표 질문 상징 물어보기 묻다 정보 아이디어 전구 빛
▲설교자여, 스스로에게 질문하라. ⓒ픽사베이
어느 분야건 자기만의 속도와 방향으로 묵묵히 걷는 사람은 자기만의 철학이 있다고 했다. 여기서 던지고 싶은 질문이 있다. 설교자는 어떨까?

‘설교’라는 영역도 다르지 않다. 설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하고 존경하는 설교자가 있을 것이다. 혹시 존경하는 설교자를 만나 교제할 기회가 있다면, 설교 철학이 무엇인지 질문해 보라. 자기만의 분명한 설교 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존경하는 설교자를 만날 수 있는 경우는 희박하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분들을 만나지 못한다 해도 그분의 책을 읽으며 얼마든지 질문할 수 있고, 대화할 수 있다. 지금처럼 영상이 넘쳐나는 때에 얼마든지 존경하는 분의 설교 영상을 접할 수도 있다. 책과 영상을 통해 분명한 설교 철학이 있다는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요점은 더없이 분명하다. 설교자로서 자기만의 방향을 설정하고 흐트러짐 없는 속도로 끝까지 걸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만의 설교 철학을 세워야 한다.

바로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도대체 설교 철학이 무엇일까? 설교 철학은 여러 가지 주제로 범위를 설정할 수 있고, 그 범주에 따라 설명할 수 있다.

이를테면 “설교란 무엇인가?” “설교자는 누구인가?” “무엇을 설교해야 하는가?” “누구에게 설교하는가?” “어떻게 설교해야 하는가?”와 같은 범주이다. 어느 것 하나 가벼운 질문이 없다. 이 모든 것이 설교 철학이라는 범주에 들어간다. 각 주제를 다룬 책만 해도 부지기수다.

그만큼 설교 철학이 방대할 뿐 아니라 설교 철학에 대해 할 말이 많다는 뜻이며, 동시에 설명하기도 쉽지 않다는 뜻이다.

렌즈 카메라 초점 조리개 사진사 목표 시선 방향 관점 바라봄 눈 관찰 순종 유혹
▲설교 철학, 폭을 좁혀보라. ⓒ픽사베이
여기서 이 모든 주제를 말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그럴 만한 능력도 없다. 필자는 설교 철학의 폭을 사정없이 좁히고 싶다.

“설교자로서 나는 왜 설교하는가?” 부연 설명을 붙이자면 “설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의 설교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로 설교 철학의 폭을 좁혀볼 생각이다.

설교 철학이라고 하기엔 몹시 단순해 보인다. 그러나 이 질문에서 파생되는 질문만 해도 무게감이 상당하다는 것을 곧 알 수 있다.

“나는 왜 설교하는가?” 설교자라면 자신에게 던질 수밖에 없는 질문이다. 문제는 사역 현장에서 이 질문을 쉽게 놓쳐버리거나 잊어버린다는데 있다.

끝없이 다가오는 설교 준비에 바빠서, “이런 일까지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이런 저런 사역에 치이고 쫓기다 보면, “나는 왜 설교하는가?” 라는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질문이 어느새 증발해 버리기 일쑤다.

따라서 설교자는 종종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모든 설교에 자연스럽게 이 철학이 자연스럽게 녹아들 때까지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폭을 좁힌 설교 철학, 다시 말해 “왜 설교하는가?”, “설교의 목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설교자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설교를 제일 잘하는 설교자가 되고 싶다’, ‘설교로 유명해지고 싶다’, ‘설교학 책을 내고 싶다’, ‘설교 잘해서 좋은 교회에 담임 목사로 청빙 받고 싶다’, ‘설교 잘해서 교회를 더 건강하게 세우고 싶다’ 등과 같은 목표를 가질 수도 있다. 나쁘지 않다. 어떤 대답이라도 좋다.

성경에 뿌리내린 설교 철학, 더 견고한 설교 철학을 세우기 위해서 나는 왜 설교하는지, 내가 가지고 있는 설교의 목표는 무엇인지 질문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주 자신과 동역자에게 이 질문을 던져보고 진지하게 대답해 보자. 시간이 갈수록 생각이 무르익고 자기만의 분명한 대답을 가지게 될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설교에 분명한 방향이 생길 것이며, 설교 역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어질 것이다.

지혁철 목사
광주은광교회 선임 부목사
<설교자는 누구인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