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용사 기념공원 추모의 벽 건립 후일담
건립 공헌한 윌리엄 웨버 대령, 4월 타계해
추모의 벽 건립 노력 새에덴교회 스토리도
▲방송 예고편.
|
방송에서는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 추모의 벽 건립‘, ‘추모의 벽 건립의 공헌자, 올 4월 타계한 윌리엄 웨버 대령’, ‘한국전쟁과 미8군 사령부 설치, 그리고 카추사’, ‘추모의 벽 건립을 위해 한국 민간단체(새에덴교회)의 노력’, ‘한국전 참전용사 하비 스톰 소령의 스토리’ 등이 소개된다.
또 6.25 한국전쟁이 정전협정으로 중단된 지 69년째, 휴전선은 여전하고 남과 북은 대립과 갈등 속에 대치 상황을 이어가지만 전쟁의 기억은 역사책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가운데,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흔들리지 않는 평화의 미래를 구축할 방법을 모색한다.
한국전쟁을 온몸으로 겪어냈던 미국 참전용사 마지막 생존 세대의 증언과, 그때의 기억과 흔적을 발굴, 되새기는 이들의 노력을 통해 한국전쟁의 현재적 의미를 조명한다.
▲추모의 벽을 둘러보는 박민식 국가보훈처 장관.
|
특히 미국 KWVMF(한국전 참전용사 기념재단)에 따르면 하루 수백 명씩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사망소식이 접수되고 있는 가운데, ‘추모의 벽’은 산 교육의 장이 될 전망이다. 참전 당시 20-30대였던 그들은 대부분 90세를 넘겼다.
지난 2020년 미 상·하원은 진통 끝에 워싱턴D.C. 알링턴 국립묘지에 들어설 ‘한국전쟁 전사자 추모의 벽’ 건립을 위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논란의 핵심은 미국 전사자들과 함께 한국인 카추사의 이름을 함께 넣는 것이었다고 한다.
팽팽한 의견 대립이 있었으나, 웨버 대령 등의 노력으로 결국 법안은 통과됐다. 한국전쟁에는 백인은 물론, 흑인과 히스패닉 등 다양한 인종이 참전했고, 한국 카추사의 경우 전쟁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미국 주도로 설립돼, 한국인이지만 미군 소속이기에 그들의 헌신과 희생을 추모해야 한다고 최종 결정한 것.
▲소강석 목사가 한국전 참전용사 전사자 추모의 벽 준공식 행사에서 추모시를 낭송하고 있다.
|
이와 관련, 새에덴교회(담임 소강석 목사)는 지난 16년간 매년 미국 참전용사들을 위한 행사를 진행해 왔다. 생존 참전용사 혹은 유가족들을 한국에 초청, 가난한 아시아의 변방의 나라에서 세계 10대 무역국으로 성장한 모습을 직접 목격할 수 있도록 도왔다.
한국까지 올 수 없는 참전용사들을 위해 미국에서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들의 참전이 한국의 현대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용기였는지 다시 평가하기 위해서다.
개인의 기억에 머물러 있던 참전용사들이 모이고, 대화하고, 행보를 이어가자, 가족과 지인, 미국 정부 차원으로 영향력이 확대됐다. 이들은 한국의 또 다른 외교사절이 되었고, 한반도 평화통일의 국제적 지지자가 되었다.
▲미국 워싱턴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에서 과거 노령의 참전용사 휠체어를 끌어주고 있는 소강석 목사. ⓒ새에덴교회
|
그러나 1951년 1월, 원주 324 고지전에서 수류탄, 박격포에 팔다리를 잃는 치명상을 입는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혈투 끝에 고지 탈환에 성공한 뒤 본국으로 후송된다. 웨버 대령은 놀랍게도 예편하지 않고 1년간 수술, 재활을 거쳐 현역에 복귀. 미국 역사상 팔다리를 잃은 뒤 현역에 복귀한 두 번째 군인, 전쟁영웅이 됐다.
한국전 당시 웨버 대령의 모습은 미국 워싱턴D.C.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 ‘19인의 용사상’ 조각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생전에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재단 회장으로 활동하던 중 한국교회 초청으로 여러 차례 방문했고, 워싱턴 기념공원 장진호 전투 기념 조각상 건립에 함께 참여해 전쟁의 의미를 되새기는 데 일조했다. 그는 개인의 기억을 집단의 기억으로 확대, 재생산하는 데 남은 일생을 바친, 한미동맹의 상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