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율
▲(왼쪽부터) 26년 만에 만난 ‘병창이’와 함께한 권율 목사가 개업한 식당 앞에서 함께한 모습.

최근 필자는 ‘존재를 변화시키는 행복’을 경험했다. 26년 전 중학생이 교회 다니는 식당 사장님으로 변화된 사연인데, 당시의 일은 이전에도 잠시 소개한 적이 있다. 간단하게 다시 요약하면 이렇다.

1996년 어느 날 봄이었다. 어떤 중학생이 점심시간마다 고등학생 형들에게 찾아와 돈을 좀 달라고 했다. 당시에는 급식이 없어 다들 도시락을 집에서 싸 왔다. 아마 이 친구는 도시락을 못 싸와서 점심 값이 필요했던 것 같다. 어느 날 나는 이 친구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너는 왜 자꾸 우… 우리한테 돈을 얻으러 오… 오는 거야?”

“점심 사 먹으려고요.”

“엄마가 도… 도시락 안 싸 주시니?”

“저희 집엔 저 혼자밖에 없어요. 아빠는 공사장에서 일하시다가 허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해 계시고, 지금 엄마는 새엄마인데 얼마 전에 집 나갔어요. 형하고 누나는 벌써 가출해서 집에 거의 들어오지 않아요.”

이 친구의 말을 듣는 순간 큰 충격에 휩싸였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이 아이가 하루 종일 굶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날부터 나는 이 아이를 친동생처럼 사랑하기로 결심했다.

다음 날부터 점심시간만 되면 병창이를 찾아가 점심값을 주었다. 그리고 천국 복음을 날마다 들려주었다. 평소 나의 습관대로 성경 말씀을 쪽지에 적어주며, 한 주 동안 암송해 오라고 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

그러다 몇 달이 지났다. 어느 날 수중에는 집에 갈 때 써야 할 차비만 남았다. 점심 시간에 병창이를 만나면 오늘 하루만 굶자고 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점심 값을 애타고 기다리고 있는 얼굴을 쳐다보니, 차마 그렇게 말할 수가 없었다. 수중에 있는 돈 전부를 다 주고 다른 친구에게 차비를 빌려 집으로 향했다.

이런 식으로 나는 병창이를 최선을 다해 도왔다. 그날 하나님이 기적을 베푸셔서, 집에 갈 때 우연히 두 명의 ‘천사’를 만나 차비가 해결되었다(2021. 4. 14. 칼럼 참고). 학교에도 소문이 나서, 한동안 돕는 손길이 이어졌다.

하지만 나는 구제 사역보다 그의 회심을 더욱 바라고 있었다. 필자의 도움을 받는 동안에는 병창이가 교회 나가는 것 같았는데, 이듬해 타 지역으로 전학을 간 후로는 연락이 끊어져 어떻게 지내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다 페이스북을 통해 우연히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토록 복음을 전하고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었건만.

하지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최근 필자가 진주에서 집회를 마치고 밤늦게 쉬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가 휴대폰을 울렸다. 혹시나 싶어 통화 버튼을 눌렀는데, 병창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율이 형, 저 교회 다녀요!”

순간 두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26년 만에 필자의 기도가 응답되었음을 직감했다. 청주 옥산에 있는 교회에 출석하는 중이라는데, 정말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뻐했다.

살인적인 여름 사역 일정이었지만, 그다음 주에 하루를 비워 급하게 청주로 심방을 갔다. 두 눈으로 ‘어른 병창이’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다. 3시간 넘도록 버스를 타면서, 26년 만에 동생을 만날 생각에 설레기까지 했다.

마침내 청주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부랴부랴 목적지에 도착해서 병창이를 찾았다. 신기하게도 둘 다 외모가 한결 같다며 첫눈에 알아보고 서로를 끌어안았다.

병창이는 개업을 앞둔 식당 내부를 단장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착한 아내와 정말 귀여운 일곱 살짜리 아들도 함께 있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을 곧 소개하는데, 자기를 전도한 동갑내기 친구라고 했다.

역시 하나님은 한 영혼을 돌이키시려고 전도자를 붙여주신다. 대화를 해 보니 하나님이 붙여주신 믿음의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사업체를 여러 개 가지고 있으면서도 겸손하고 무엇보다 선교적 마인드가 강한 성도였다. 부디 친구 식당이 잘되도록 계속 지켜보며 도와주기를 간절히 부탁했다.

막차를 타고 내려오는데 “이제는 제가 보답할 차례예요!”라고 한 병창이의 말이 자꾸 여운으로 남았다. 이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간단한 메시지를 보냈다.

“사랑하는 동생 병창이에게. 26년 전부터 형은 이미 병창이를 친동생처럼 마음에 품고 있었어. 개업 축하금을 많이 못 줘서 참 미안하네. 이제는 교회에 잘 정착해서 열심히 신앙생활 하고 믿음의 가정 꼭 꾸려나가길 기도해.”

앞으로 하나님께서 이 친구를 어떻게 인도하실지 정말 기대가 된다. 26년 전에는 경찰이 되겠다는 꿈을 꾸었지만, 이제 교회 다니는 식당 사장님으로 멋지게 변해 있다. 목사로서 이런 변화를 목격하는 것이 참 행복하다.

권율 목사

경북대 영어영문학과(B.A.)와 고려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M.Div.)를 마치고 선교지원 사역에 힘쓰고 있다. 『연애 신학』 저자로서 청년들을 위한 연애코칭과 상담도 자주 진행한다.

비신자 가정에서 태어나 가정폭력 및 부모 이혼 등의 어려운 환경에서 복음으로 인생이 개혁되는 체험을 했다. 현재 부산 세계로병원 원목으로 재직하면서 선교지(몽골, 필리핀) 신학교 강사(외래교수)로 섬기며, 김해 푸른숲교회 협동목사로도 섬기고 있다.

저서는 『올인원 사도신경』, 『올인원 주기도문』, 『올인원 십계명』, 『연애 신학』 등이 있고, 역서는 『원문을 그대로 번역한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A Theology of Dating: The Partial Shadow of Marriage(『연애 신학』 영문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