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장애인 위한 관심과 사랑 원동력은 기독교 신앙
세상 여론, 기독교인 봉사와 헌신 높게 평가하면서도
근본 바탕인 신앙은 정작 미신처럼 치부하며 부정해

<우영우>가 유독 사랑스러운 자폐인 보여주는 이유

매력적 캐릭터 제시하지 않으면 관심조차 없기 때문
이들 위한 기독교인 헌신, 죽음 이후 영혼 보상 추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아스퍼거 신드롬과 서번트 증후군을 지닌 변호사의 장애 극복 서사를 선보이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박욱주 박사님의 이번 칼럼은 2주 전에 이어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입니다.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역삼역 우영우 똑바로 읽어도 우영우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를 외치는 자폐성 장애를 가진 천재 변호사 우영우(박은빈)와 아버지 우광호(전배수)를 중심으로 로펌 법무법인 한바다의 ‘서브아빠’ 정명석 변호사(강기영)와 ‘국민 섭섭남’ 송무팀 이준호(강태오), ‘권모술수’ 권민우(주종혁) 변호사와 ‘봄날의 햇살’ 최수연(하윤경) 변호사, 법무법인 태산의 태수미(진경), 친구 동그라미(주현영)와 김민식(임성재) 등이 출연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자폐성 장애와 다원주의: 자폐성 장애를 낭만스럽게 치장하는 서번트 증후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가 전국 17.5%라는 놀라운 시청률을 보이며 지난 3개월 간의 여정을 마쳤다. 케이블 방송가에서 이 정도 시청률은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이 드라마는 근래 들어 우리 사회에 점차 무게감 있게 다가오는 자폐성 장애와 발달장애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2020년 기준 국내 자폐 스펙트럼 장애 인구는 3만 1천 명에 달한다. 이는 2010년 대비 약 2배 증가한 수치다.

여기에는 자폐성 장애가 선천적 원인을 갖는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조기 진단이 이전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이루어진 이유가 크다. 여기에 더해 고질적인 만혼과 고령 출산도 자폐 스펙트럼 장애 유아 비율을 높이는 중요 원인이 된다.

현재 자폐성 장애는 주로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병행한다. 그러나 핵심 증상을 호전시키는 약물치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의사에 따라 견해는 다르지만, 약물치료가 장기화되면 상당한 부작용이 나타날 우려가 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그러므로 사실상 자폐성 장애를 조금이나마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길은 심리치료와 꾸준한 소통 노력, 그리고 특성화된 교육이다. 쉽게 말해 자폐로 인한 한계를 완전히 극복하도록 치료할 길은 없고, 오로지 주어진 지적 능력의 한계 안에서 사회와 인간관계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는 뜻이다.

결국 자폐성 장애는 그에 대응하기 위한 인문학적 고찰과 시스템 구축 노력이 최선의 방안으로 제시된다. <레인 맨>, <굿 닥터>, <우영우>가 제시하는 인문학적 해답은 다원주의적 인간 이해에 따른 소수자, 약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다.

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채용되는 서번트 증후군(자폐성 장애를 앓는 이 중 극소수의 환자에게 나타나는 천재적 재능)이라는 소재는 약자와 소수자도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할 인간이라는 사실을 내세우기에 적합한 매력적인 요인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드라마 <우영우>에서 서번트 증후군은 자폐성 장애인의 현실을 낭만스럽게 포장하는 주된 소재로 채택된다.

그런데 아쉽게도 자폐성 장애를 가진 이들 가운데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인물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전체 자폐성 장애인 중 100만분의 1의 확률로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이들이 존재한다.

이 극소수에 불과한 이들이 언론의 조명을 받고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곤 하지만, 실상 이들은 일반적인 자폐성 장애인을 대표하지 못한다. 자폐성 장애인들의 현실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고난스럽다.

이처럼 정치적 올바름 사상과 다원주의 인간 이해를 바탕으로 자폐성 장애인들을 동등한 인격으로 그려내려는 노력이 거의 비현실에 근거를 두고 있는 반면, 기독교의 자폐성 장애인 돌봄에 대한 목회신학과 사회복지 관점의 고찰은 지극히 고통스럽고 힘든 그들의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자폐성 장애와 기독교적 헌신: 자폐성 장애인들의 고난스러운 현실을 직시하는 기독교적 돌봄

최근 들어 정치적 올바름과 다원주의 인간 이해가 학계에서도 주류로 등극하면서, 일반 사회복지나 인류학 측면에서 자폐성 장애를 주제로 다루는 연구가 점차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이 분야의 연구는 거의 기독교 목회신학 연구자들의 독무대나 다름 없었다. 이는 그만큼 교회 내에 자폐성 장애인들에 대한 돌봄을 사역의 한 소명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흔치 않게 존재한다는 증거가 된다.

원래 장애인들에 대한 돌봄은, 다원주의 인간 이해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인격적 평등에 원리적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한 가지 더 필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남을 위해 자기 인생과 힘을 소비할 줄 아는 헌신의 의지이다.

이 부분에서 기독교계는 자주 놀라운 성과를 보여온 바 있다. 높은 수준의 교육과 훈련받은 교역자들과 신자들이 세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봉사하며 헌신하는 일은 교회가 사회를 향해 제시할 수 있는 중요한 신앙의 표지로 인식되어 왔다.

이런 헌신에는 두 가지 믿음이 필요하다. 첫째는 자신의 인생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속되었고 붙들린 바 되었다는 믿음이다. 이 믿음을 간직한 자는 자신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받은 만큼 남에게도 베풀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는다.

둘째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한 중요한 방편이라는 믿음이다. 이 믿음을 가진 이에게 약자와 소외된 자들에 대한 돌봄은 더 이상 인간적 책무가 아니라 신적 권위를 가진 책임이 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장애인 평등과 돌봄은 사회의 영혼들을 향한 기독교적 사역의 중요한 책임 가운데 하나이다.

세속화와 무종교 세태가 일반화된 세상에서,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기반으로 봉사하고 헌신하는 일은 더 이상 대중에게 큰 감흥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 봉사와 헌신의 행실 자체는 높게 평가하지만, 그 원동력을 이루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미신 수준으로 치부하는 것이 오늘날 종교 부정의 현실이 보여주는 실상이다.

그러나 이렇게 미신 취급을 받는 신앙 기반의 장애인 돌봄이 다원주의적 인간 이해를 바탕으로 삼는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봉사와 사랑의 손길보다는 순전하고 숭고하다.

왜냐하면 순전히 인간적 신념에 바탕을 둔 타인에 대한 봉사는 그 실상에 대한 과대포장과 낭만화, 그리고 그에 따른 유무형의 보상이 따르지 않으면 한순간 불타올랐다가 사라지는 감정의 발로에 그치고 말기 때문이다.

<우영우>가 유독 사랑스러운 자폐성 장애인을 보여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정도로 매력적인 캐릭터를 제시해 주지 않으면, 대중은 자폐성 장애인에 대해 아예 관심조차 가지려 하지 않는다. 특히 그들의 고난스러운 삶의 실상을 알게 되는 경우 더욱 그로부터 거리를 두려 한다.

자폐성 장애인을 비롯한 각종 약자와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기독교적 헌신 역시 특정한 보상을 바라고 이루어지는 행위이다.

단 그 보상은 이 땅에서의 보상이 아니라 죽음 이후 영혼에 내려지는 보상이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믿으려는 의지와 소명을 외면치 않는 신앙 양심을 붙든다면 약자에 대한 헌신의 힘은 죽을 때까지 그치지 않는다.

그래서 병자, 장애인, 소수자에 대한 기독교적 돌봄과 헌신은 드라마 <굿닥터>나 <우영우>처럼 따로 그 이미지를 낭만스럽게 꾸밀 필요가 없다. 그 현실이 처절하면 할수록, 영혼에 더 큰 복으로 다가온다는 믿음의 힘 때문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자폐성 장애의 엄밀한 현실보다는 훈훈한 낭만에 기댄 장애인 인식을 선보이는 드라마 <우영우>. 보다 현실성 있는 서사와 캐릭터가 아쉬운 대목이다.

오지에 파송되기를 자처하는 선교사들, 빈민과 장애인들에게 삶의 위로와 신앙 교육의 기회를 선사하려는 도시의 교역자들, 그 외 각자 주어진 위치에서 어려움을 감내하며 타인의 신앙과 복지를 위해 힘쓰는 이들의 마음 속에는 이와 같은 믿음의 힘이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이 점은 다원주의적 돌봄과 헌신을 추구하는 이들이 결코 따라할 수 없는 참된 기독교 신앙인의 돌봄과 헌신이 갖는 고유한 강점이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