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유대인 전통적인 유태인 통곡 유대교 거룩 율법 하나님 토라 랍비
▲예루살렘에서 토라를 읽고 있는 유대인 랍비의 모습. ⓒ픽사베이
본문: 요한복음 7장 14-16절

주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는 장면입니다. 명절에 올라가신 주님은 성전에서 가르치게 됩니다. 명절이 중간쯤 되었을 때입니다. 당시 유대인의 초막절은 7일간을 지킨답니다. 그 중간 정도라고 보면, 주님이 예루살렘에 상경한지 3일 정도입니다. 그때 유대인들이 주님의 가르침에 놀라게 됩니다. 이를 배경으로 ‘유대인들이 놀랍게 여겨’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주님의 가르치심에 놀랐다
주님의 가르침은 종교지도자와 차별화됐다는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성전에서 공개적으로 가르치고 계십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축제를 축하하는 기간에 누구나 가르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강단에서는 전통적으로 메시지가 있었지만, 설교가 없는 예배와 비슷합니다.

초막절에 주님이 성전에 나타나신 것은 사흘 동안의 침묵 후였습니다. 주님은 성전에서 진리에 대한 순종을 설파하셨습니다. 그때 주님의 가르치심은 참석한 사람을 다시 한 번 놀라게 한 것입니다.

이 가르침의 놀라움은 예수님께서 랍비학교에서 공부하신 적이 없다는데 있습니다. 대학에 입학한 적 없는 사람이 물리학을 논하는 교수들 그룹의 수준과 동일한 정도입니다.

유대인들의 놀라움은 바리새인의 오만함과 비교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받은 교육과 지식은 여러 사람보다 우월함을 자랑합니다. 그런 것에 비하면 주님의 가르침은 너무나 뛰어나서, 그대로 종교 지도자들에게 도전이 됐습니다.

주님에 대한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저항은 결국 지식이 아니라, 반역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종교지도자들의 위선적인 태도를 비판하신 이유입니다.

2. 주님의 가르침에 감탄했다
학교에서 배우지도 않았는데 가르침이 훌륭하다는 말입니다.

“배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글을 아는가”라는 말은 “공부하지 않고 학교에 다닌 적이 없는데, 어떻게 저렇게 놀랍게 가르칠 수 있는가?”의 감탄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유명한 학교에서 유대인의 법과 전통을 가르쳤습니다. 실제로 유대인의 학문은 경전 지식과 나이 많은 장로들의 전통에 대한 지식으로 이뤄졌습니다. 그렇게 교육을 받은 유대인들이 자녀들에게 성경을 읽도록 가르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느니라(디모데후서 3:15)”는 말씀에서도 교육이 드러납니다. 주님은 그런 학교에서 가르침을 받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유대인은 주님의 가르침에 놀랐습니다.

확실히 주님께서는 유대인이 받는 교양 교육을 받지 않았습니다. 랍비들에게서 배운 적도 없습니다. 그리고 대학 등의 학교에서 훈련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종교 지도자들보다 훨씬 더 해박하면서도 박식한 지식을 드러냅니다.

특히 주님은 은혜롭고 위엄 있게 말하거나, 유대인의 비유와 비유를 더 적절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성경의 의미를 꿰뚫어 가르치신 것입니다. 주님의 가르침은 종교 지도자들의 전통적 교리와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주님의 가르치심에 놀랐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너무나 은혜로우면서도, 그 속에는 진리와 증거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가르치심에 권세를 가진 능력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놀라서 감탄한 이유입니다.

3. 매우 특별한 가르침이었다
일반적인 가르침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주님의 가르침에 놀라서 “주님이 대단하신 분이다”고 인정하게 됐습니다. 그때 주님은 가르침의 원천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임을 밝힙니다.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입니다.

주님의 교훈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사람에게서 온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가르쳐 주지도 않았고, 사람이 가르쳐 줄 수도 없습니다. 책에서나 사람의 교훈으로 배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주님의 이 말씀에는 항상 전제가 있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교리는 나의 것이니라”입니다. “나와 내 아버지는 둘이 하나가 되어 하나가 되어 하나”라고 강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주님의 교훈을 배우지 않으려 했습니다. 인간적으로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특별한 존재로 인정하기 싫어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는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신의 성품을 가진 육체로 오신 분”이라고 인정하면서, 믿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독학으로 배운 것도 아닌 것인데도 말입니다. 주님의 교훈은 주님의 영적인 심원한 곳에서 나온 것인데도 말입니다. 이는 주님의 가르침이 갖는 궁극적인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유입니다.

김충렬
▲김충렬 박사.
4. 정리

우리 삶에서는 잘 판단해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정당하고 올바른 것 같은데도, 틀린 것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얼른 생각하면 틀린 것 같은데, 아주 올바르고 정당한 것이 있습니다. 가는 인생 길에 주님이 하나님이 되심을 믿어 놀라운 축복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는 주님 말씀에 놀라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감탄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우리는 주님이 말씀의 능력이 매우 특별함을 깨닫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사람에게 축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
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