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예언자뿐 아니라 작가들 통해 시대 깨우신다
그리스도인, 교회라는 좁은 범위에 하나님 가둬놓아
성경 이야기 추상적으로 말해, 구체적으로 적용돼야

이정일
▲이정일 목사는 책에서 “이 책에 수록된 아홉 권의 책들을 읽다 보면, 문학이 얼마나 우리 인생을 발전시키는지 알게 되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대웅 기자
“상상이 부족하면 하나님을 외워서 알게 되고 남의 설명만 듣게 됩니다. 믿음에 상상이 더해지지 않으면 신앙은 뒤틀려 버리기 쉽습니다. 시도 비슷합니다. 어떤 시는 쉽지만 또 어떤 시는 난해합니다. 시도 신앙처럼 현실과의 연결고리를 찾지 못하면 자기 세계에 빠져 횡설수설하게 됩니다. 그러면 독자의 공감을 얻지 못합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한국교회의 진짜 위기는 상상의 빈곤입니다.”

한국교회가, 그리스도인들이 ‘문학’을 접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정일 목사가 제시하는 답이다. 그는 “성경을 안다는 건, 성경을 느낀다는 게 전제가 돼야 한다. 이걸 놓치면 성경을 알아도 마음은 돌밭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며 “감성이 회복돼야 경이로움을 느끼고, 경의로움을 느껴야 진짜 믿음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시와 감성과 영감과 신앙은 연결돼 있”고, “하나가 열리면 다 열리게 돼 있다”고도 했다.

또 “오늘날 교회에서는 문학을 신앙과 별개인 듯 여기지만, 문학은 신앙을 더 깊게 만든다”며 “그것은 우리의 영혼을 경이로움으로 채우시려는 하나님의 뜻이다. 문학은 인간 본성을 일깨워 하나님을 보게 한다. 시편이 보여주듯 이 경이로움은 하나님을 열망하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이고, 지혜는 경이로움을 느끼는 데서 시작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정일 목사는 평생 문학을 공부했고 박사 후 신학을 공부했지만, 스스로 문학과 인생 속에 파묻힌 하나님의 이야기를 캐내는 광부라고 생각한다. 왜 신앙이 좋아질수록 삶이 바빠지는지, 왜 교회를 오래 다닐수록 생각이 좁아지는지, 왜 성숙이 아니라 성공을 목표로 하는지, 말씀을 캐며 그는 물었다고 한다. 전편에 이어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정일 목사의 이야기.

나는 문학의 숲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이정일 | 예책 | 308쪽 | 20,000원

-지난 책에서 ‘성경이 아닌 생활에 밑줄을 쳐야 한다’는 기형도 시인의 시구에 많은 분들이 무릎을 쳤습니다. 많은 독자들에게 그 문장이 아까 말씀하신 ‘와닿는 한 문장’이었을 것입니다. 왜 이런 좋은 글귀가 잘 알려지지 않았을까요.

“문학 작품을 잘 안 읽기 때문 아닐까요(웃음). 개인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예언자를 사용하시지만, 작가들도 시대를 깨우는 예언자로 사용하신다고 봅니다. 작가가 쓰는 문장을 통해 하나님의 생각이 흘러 나올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만 머물고 계신 것이 아니라, 모든 세계 속에, 직업 속에, 질서 속에 존재하십니다. 시야를 넓히면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모든 영역 속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길 원하심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교회라는 좁은 범위에 하나님을 가둬놓습니다. 하지만 좋은 시를 쓰는 것만으로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고, 좋은 드라마를 통해서도 하나님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이 시대에 필요한 것 아닐까요.

우리 삶의 방식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야 합니다. 취미나 좋아하는 책, 재능이나 직업 속에도 거룩한 것이 있고,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는 뭔가가 있습니다. 그것을 찾고 볼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서 얼마나 강렬하고 풍요롭게 함께하시는지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경험들을 문장 속에 담아놓았습니다.”

도깨비
▲도깨비 김신의 메밀밭 부활 장면. 그는 자신이 죽을 때 받은 형벌의 흔적을 그대로 갖고 부활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설정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아무래도 <도깨비>입니다.

“주인공 김신이 아담보다 아홉 살 많습니다(웃음). 아담이 정말 오래 살았는데, 우리는 그렇게 오래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지만 김신은 고민합니다. 사랑에 빠지기 전까지는 이 아픈 생애를 끝내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지고 나서 감정이 확 바뀝니다.

김신을 보면 성경 속 술람미 여인을 알 수 있고, 그 사랑이 무엇인지 느껴집니다. 우리가 사랑을 막연하고 추상적으로 생각하지만, 문학을 읽으면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 이야기를 ‘사랑, 믿음’ 하면서 추상적으로 말합니다. 이것이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적용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런 이해가 없기 때문에, 실전에서 늘 고전하는 것입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런 구체적인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때’ 이삭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이삭은 야곱에게 하나님을 어떻게 설명했을까? 그런 이야기는 교리가 아니라 삶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가 느낀 하나님을 자녀들에게 이야기로 들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 문해력 요구되는 콘텐츠라면 뭐든 저항해
<도깨비>나 <반지의 제왕>으로 설교 시작하면 집중해
교회 문화 경험한 아이들 확 줄어, 익숙한 것들로 시작

-<도깨비>도 그랬지만, 드라마나 영화로 신앙을 풀어주는 것에 대해 어떻게 보시는지요.

“매우 좋다고 봅니다. 시대가 바뀌어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고 어려운 걸 싫어합니다. 문해력이 조금이라도 필요한 콘텐츠에는 저항하지요. 터치 스크린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복잡한 것들은 분석하기 힘들어합니다. 신앙을 설명하려면, 그들이 익숙하고 좋아하는 것으로 해야 합니다.

전방 군인들에게 매주 설교하는데, 드라마 <도깨비>로 시작하면 실제로 흥미롭게 듣습니다. 얼마 전에는 <반지의 제왕>으로 시작했는데, 모든 이들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저를 쳐다보고 있습니다(웃음). 익숙한 내용이기도 하고요.

<반지의 제왕> 속 여정을 출애굽 과정과 연결시키면, 아이들은 단번에 둘이 일치함을 알게 됩니다. 저도 설명하기 너무 편하고, 아이들도 들은 내용을 바로 이해할 뿐 아니라 잊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고민하는 내용을 <반지의 제왕> 속 호빗을 통해 보여주고 설명하면, 익숙한 내용이기에 교회에 생전 처음 나오는 아이들도 다 이해합니다.

나는 문학의 숲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예전과 달리, 교회나 설교를 경험한 젊은이들이 확 줄어들었음을 느낍니다. 그런 친구들에게도 교회와 성경을 경험시키고 하나님을 설명할 기회를 잡으려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겠지요. 아이들은 스릴러, 드라마를 좋아하고 사랑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런 익숙한 것들로 시작해야 합니다.

지금 교회 현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힘들면 가장 먼저 ‘이해하기’를 포기합니다. 피곤하면 성경은 둘째 치고, 기도도 안 됩니다. 엘리야가 지쳤을 때, 하나님은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일단 잘 먹고 쉬게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문학의 역할입니다. 기력을 회복시키고, 시내산에 가서 말씀을 먹게 하셨습니다.

문학은 내 삶을 정리하고 기초체력을 키워, 말씀으로 설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있는 워밍업 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 문학은 하나님 말씀을 세우는 기초 단계로써 존재합니다. 성경이 우리와 동떨어진 과거가 아니라, 오늘이라는 현실 속에 생생한 삶이 들어있음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방금 이 문장을 공들여 쓴 이유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언어 속에 얼마나 놀랍고 풍요로운 힘이 있는지 경험시켜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묘사를 통해 얼마나 우리로 하여금 깊은 것을 경험하게 하는지, 그런 문학적 언어 속에 하나님 사랑이 얼마나 풍요롭게 들어가는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신앙 교리로 이해하기보다, 경험하고 경이로움 느껴야
바깥 사람들 교회 어떻게 보는지 이해하려면 문학 필요
독서는 이론 아냐, 무슨 책이든 좋아하는 것부터 시작

-목사님처럼 문학으로 신앙 이야기를 잘 풀어내려면 어떤 훈련이 필요할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호기심입니다. 호기심이 있어야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고, 경이로움을 느끼면 믿음이 무엇인지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과정을 교리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해 보는 것입니다.

알래스카에 사는 에스키모인들은 눈(雪)을 표현하는 단어가 30개 이상이라고 합니다. 경험할수록 더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섬세한 표현은 같아 보이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여름에 보면 초록도 얼마나 다양한가요. 작은 것 속에 얼마나 하나님의 신비스러운 생각을 넣어 놓았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바깥을 보면 풍경이 보입니다. 그냥 풍경이라고 생각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이 땅에 그려놓은 그림임을 알게 됩니다. 최고의 문학 작가는 어린 시절 느꼈던 경이로움을 우리에게 다시 회복시킵니다. 마치 <어린 왕자>처럼요.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는 책처럼, 우리가 놓친 것이 무엇인지 혜안을 보여줍니다. 최고 성악가의 목소리는 어린아이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지금 그런 것이 필요합니다.”

-SF 소설로도 신앙을 이야기할 수 있나요. 지난 학기 ‘문학과 영화로 읽는 SF’ 수업도 하셨는데요.

“SF 소설은 가끔 머리 아플 때 읽었는데, 정리하는 차원에서 수업을 개설했더니 아이들 반응이 너무 폭발적이었습니다. 신청한 학생 150명 중 아무도 취소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적은 처음입니다(웃음). 아이들이 SF와 판타지 소설에 관심이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판타지 소설의 세계 3대 작가 중 C. S. 루이스와 J. R. R. 톨킨이 기독교인입니다. SF와 판타지의 차이는 과학적 근거가 있는가에 있습니다. SF는 정확하진 않더라도 가능할 법한 근거가 나오는 작품이고, 그런 것 없이 그냥 간다면 판타지입니다. 그래서 교회 바깥 사람들이 볼 때, 요한계시록은 ‘판타지’입니다. 아무런 근거 없이 공중으로 올라가니까요.

이런 훈련을 받지 않으면, 교회 바깥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이런 이해도를 가지면, 훨씬 유연하게 복음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젊은 친구들이 주일학교 때부터 훈련돼 있지 않고 교리교육만 받았습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교리와 성경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설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문학입니다. <빨강 머리 앤>이나 <하이디>를 보면, 기도하는 장면들이 자주 나옵니다. 얼마나 복음을 설명하기 좋습니까. 성경으로만 설명하면 대화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럴 때 상대도 나도 아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면, 대화가 되고 자연스럽게 성경으로 이끌 수 있어요.”

이정일
▲지난 7월 ‘문학으로 만나는 성경’ 집필차 떠난 영국에서 촬영한 이정일 목사.
-신앙에서는 질문이 실종됐는데, 문학에서는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호기심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일방적으로 읽습니다. 어느 구절을 읽는지가 중요하지, 어느 구절이 와 닿는지를 중요시하지 않습니다. ‘내 마음을 때리는 한 문장’이 중요합니다. 문학은 머물러 서서 이야기하는 경험을 하게 합니다.

책 속 <도깨비>를 설명한 한 구절을 봅시다. ‘상상이 부족하면 하나님을 외워서 알게 되고, 남의 설명만 듣게 됩니다(105쪽)’, ‘시와 감성과 영감과 신앙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가 열리면 다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104쪽)’. 이런 구절들이 남을 것입니다.

좋아하는 구절만 읽느냐고 할 수 있는데, 초보 때는 그렇게 읽는 것도 필요합니다. 성숙해지면, 하지 말라고 해도 다양하게 읽습니다. 고전 불가능하다. 90쪽 계신 걸 알아버려서.

책에서 ‘묘사의 힘(170쪽)’을 강조했습니다. 문학은 감성을 건드리지만, 과학은 건드리지 못합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결정할 때 팩트가 아닌 경험에서 결정하기 쉬운데, 그 경험은 감정적일 때가 많습니다.

자기계발서는 눈에 보이는 곳을 갈 때 막강한 힘을 발휘합니다. 반면 문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길을 갈 때 필요합니다. 상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반지의 제왕>입니다.

문학을 읽어야 우리에게 성경이 더 깊어집니다. 우리는 성경을 이미 다 읽어 내용을 알기 때문에, 감흥이 없습니다. 저는 성경을 처음 읽을 때 1장을 읽고, 2장을 읽기 전에 먼저 상상했습니다. 심지어 출애굽 장면에서 애굽 병사가 쫓아왔을 때도, 다음 부분을 읽기 전에 상상해 봤습니다. 홍해가 갈라질 거라고는 정말 예상하지 못했습니다(웃음).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작가입니다.

수업을 할 때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1-3부까지 읽고 나서 마지막 4부를 읽기 전, ‘여러분이 작가라면 어떻게 끝낼지 상상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상상으로 내용을 그려보고 나서 4부를 읽으면 파워풀합니다. 작가들은 한 장면을 2-3쪽씩 묘사하기도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엄청난 일입니다. 그런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상상력이고, 하나님의 생각도 그렇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이번 책을 어떤 분들이 어떻게 읽으시면 좋을까요.

“소개된 9권의 책 중 마음에 와닿는 책이 한두 권은 있으실 것입니다. 그런 책들이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이고, 쌓이면 책을 읽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독서는 이론으로 시작하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무슨 책이든 내가 좋아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 과정이 쌓이면 책을 읽는 근육이 생깁니다. 그것이 쌓이면 좀더 어려운 책을 읽고, 시간이 지나면 고전을 읽을 수 있습니다. 다양한 책을 읽다 보면 깊이가 생깁니다.

깊이는 하나를 팔 때가 아니라, 다양한 책들을 읽고 조화가 생길 때 생깁니다. 이번 책 속 작품들은 그 샘플 같은 아홉 가지입니다. 한두 권을 읽으면, 비슷한 책으로 지평을 넓힐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