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본철 교수(성결대 역사신학)_200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역사신학/성령의 삶 코스 대표).

오늘날 한국교회는 전통적 복음주의의 위기를 만나고 있다. 전통적 복음주의자들은 영성이란 것이 상상력과도 같은 인간의 초이성적인 기능들을 통한 성경과의 정서적인 상호작용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성경 본문 내용에 대한 인식적인 이해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일찍이 휘튼 대학(Wheaton College)의 웨버(Robert Weber) 교수는 합리주의적 영성 이해의 위험성에 대해 “부활의 신비와 능력은 빼어 내버리고, 그 대신 크리스천의 삶에 대한 나의 갈등에는 거의 도움도 안 되는 무미건조한 사건으로 부활을 생각하는 것”(Robert E. Webber, Evangelicals on the Canterbury Trail: Why Evangelicals Are Attracted to the Liturgical Church)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한국교회의 전통적 복음주의가 종종 성경 중심적인 영성의 모습과 능력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부흥 운동기에 만연하던 그 생생한 성령의 역사와 그 능력에 대해 점점 잊혀져가고 그 대신 온갖 눈속임과 사이비 영성들이 온 교계에 만연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은 맥그라트(Alister McGrath)가 지적한 바와 같이,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영성을 향한 합리주의적이고도 규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형식주의에 대한 복음적 경건의 축소는 오직 영성 자체의 빈약한 상태를 두드러지게 함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Alister McGrath, Evangelicalism and the Future of Christianity).

이러한 합리주의적인 성경 해석과 영성 스타일은 경건한 삶에 접근하기 위한 복음주의자들의 프로그램의 시도들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우리의 복음전도는 어떠한가? 현재 한국교회에 수많은 전도 세미나들과 프로그램들이 소개되고 있다. 매우 고무적인 일인 것만은 틀림없으나, 전도를 위한 것이든 개개인의 경건을 위한 것이든 간에, 프로그램 지향의 위험성은 그들이 증진시키려는 영성의 실천들이 자칫 공허하게 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필자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오늘날 많은 교회가 너무도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에 대해 둔감하고 무지하다는 사실이다. 물론 효과적인 전도를 위해서 여러 방법론과 기술적 고안들이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것이고, 근본적인 것은 성령의 능력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실제적인 설명을 위해 필자의 사역 가운데 아프리카 동부 지역의 한 섬에서 있었던 일을 소개한다.

 섬 인구의 99%가 모두 이슬람 신앙을 갖고 있는 이곳에서 사역하는 현지인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한 주간 동안 성령론 집중 강의를 하게 되었다. 서로 교단들도 다른 이들이었지만, 그리스도인들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그곳에서 그들은 모두 소중한 한 가족이라는 의식으로 깊은 사랑과 일치의 마음으로 묶여 있었다. 온 종일 열심히 강의를 듣고, 또 그 강의 내용을 중심으로 성도들을 양육해야겠다는 굳은 다짐 속에서, 그들은 뜨거운 합심기도와 함께 성령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와 한 동안 시간이 흐른 후 그들의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소식 중에 가장 기뻤던 것은 그들 중의 한 목회자가 이전보다 더욱 성령을 깊이 의지하고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또 성도들을 성령론을 중심으로 힘 있게 양육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때 은혜 받았던 목회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여서 그 땅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성령의 능력은 영적으로 암흑 상태인 그 땅을 환하게 비추어가리라는 벅찬 소망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이천년 전 초대교회를 보라! 그들은 얼마나 성령의 주권과 능력에 민감했었나! 사도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자.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4-5)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인간의 수단과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빌립 집사가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데에 민감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때, 주님께서는 그를 충분히 사용하셔서 가장 효과적인 전도의 열매를 거두실 수 있었다(행 8:26-40).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증거 할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성령의 능력이다. 왜냐하면 성령은 복음 증거의 영이시기 때문이다.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눅 24:48-49).

그리고 성령의 능력을 받아 지속적으로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게 될 때, 성령께서는 우리를 복음 증거의 삶으로 부르신다. 그리고 사도행전의 경우들처럼, 우리는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복음을 증거 하게 된다.

복음적 성령의 능력이 확산되는 일에 방해가 되는 신념 중에는 방언, 예언, 신유 등의 성령의 나타남이 사도시대 이후에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고 보는 일부 신학적 이론의 영향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이론은 여러 가지 면에서 볼 때 설득력을 잃는다. 왜냐하면 우리의 신앙 경험이나 목회와 선교의 현장 속에는 성령의 나타남의 실증적 자료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런 이론은 성경의 진술과 비교해 볼 때도 어긋나고 또 폭넓은 복음주의신학의 관점에서 볼 때도 적절한 조화점을 찾지 못하는 허술한 것이다.

목회자들이 설교와 기도를 포함한 모든 사역을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하는 일은 승리로운 사역의 결실을 위해서 필수적이다. “성령의 능력이 없다면 우리의 설교는 헛고생일 뿐이다. 그분의 생명력이 우리 안에 없다면 아무 유익이 없다. 우리는 다만 육신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Paul Washer)

힘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한국교회를 다시 일으킬 수 있는 힘은 오직 복음의 능력이다. 복음의 능력은 곧 말씀과 성령이 조화롭게 역사할 때 나타난다. 말씀 없는 성령사역이 뿌리가 없듯이, 성령의 능력 없는 말씀은 공허할 뿐이다. 그러므로 유사 복음과 사이비 영성은 명백히 구분하고 배척해야 하며, 그 대신 복음이 약속한 성령의 능력은 교회의 모든 사역의 현장 속에 거침없이 나타날 수 있어야 한다.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역사신학/성령의 삶 코스 대표)
유튜브 채널 : 배본철 www.youtube.com/user/bonjour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