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믿음과 함께 걷다

철학, 믿음과 함께 걷다

안영혁 | 목양 | 310쪽 | 15,000원

“철학으로 세계를 묻고 믿음으로 다시 보다”, 마치 틸리히(Paul Tillich)의 상관관계를 말하는 것 같다.

틸리히는 ‘실존의 물음과 신학의 대답’을 추구했다. 그러나 안영혁 박사의 <철학, 믿음과 함께 걷다>는 그런 관계성 유지보다, 한 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 살고 신학을 하면서 겪은 철학에 대한 좌충우돌 사고(思考)를 고대철학에서 현대철학까지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안영혁의 <철학, 믿음과 함께 걷다>를 읽으면서, 불현듯 존 프레임의 <서양 철학과 신학의 역사>가 생각났다. 책의 분량은 비교가 되지 않지만, 신학자가 철학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에 대한 절체절명의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안영혁은 좀 더 즐거운 자세로 진술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프레임은 정확한 제시를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안영혁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기본 지식에 십수 년 동안 신학을 연구하면서 축적된 사유 지식을 보여준다. 프레임 박사는 “인간의 사고 영역에서 벌어지는 영적 싸움의 역사”로 부제를 제시했다. 철학을 바라보는 관점을 예단할 수 있겠다. R. C. 스프로올의 <신학자가 풀어쓴 서양 철학 이야기>는 단순 진술로 보인다.

안영혁의 철학 진술은 사유에 녹아 있는 자기 이해를 제시하려 시도하고 있다. 그래서 어쩔 때는 재미있는 장면도 있다. 그 재미는 저자가 유도한 재미가 아니라, 어떤 관점을 저가가 독특하게 제시하기 때문에 정신이 번쩍 드는 즐거움이다.

칸트
▲근대 철학계의 총아, 프로이센 출신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 ⓒthe-tls.co.uk 캡처

많은 사역자들이 철학을 학부에서 전공했지만, 연계해서 철학 담론으로 저술을 낸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안영혁 박사는 신학을 하면서도 철학과 끊임없이 사유를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대학 시절 몇 가지 구체적인 담론들이 형성됐다고 추측해 보기도 한다.

그래서 십수 년이 지난 뒤에 한 덩어리의 사유로 집약해 출판했다. 더 깊은 사유와 진전, 자기 이해로 형성된 멋진 인문학 저서가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보기도 한다.

안영혁은 고대 철학과 중세 철학은 매우 짧게 구성했다. 근대와 현대 철학에 대해 상당히 세밀하게 제시했고, 또 우리 시대 유발 하라리까지 제시한 것은 사유가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도 철학적 사유를 탐구하면서, 신학에서 어떻게 답변해야 할지 탐구를 진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안영혁의 <철학, 믿음과 함께 걷다>는 저자가 학문에 함께하며 즐기고 있다. 독자들도 저자의 즐김에 동참하고 함께 즐긴다면 멋있는 하모니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유발 하라리가 TED 강의를 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철학 저서가 얼마나 많은가? 전문 철학 저술을 그리스도인이 본다면 상당히 답답할 것이다. 아니 그 책에 아예 손이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안영혁의 <철학, 믿음과 함께 걷다>는 우리의 신학 연구자가 서양 철학에 대한 담론을 진행하는데 자기가 고민한 흔적들이 많고, 개념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려는 시도를 많이 하고 있다. 그래서 철학에 대해서 좀 더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는 매우 좋은 저술이다. 저자가 자기가 이해한 바를 제시하기 때문에 더 좋은 저술이다.

사유 저서, 특히 철학 저서는 한 번에 냉큼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철학 저술이 잘 판매되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끊임없이 철학적 도서를 읽어내야 한다. 그러면 어느 순간에 세계정신사의 한 줄을 꿰고 있지 않을까?

고경태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광주 주님의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