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성전
▲예루살렘 성전의 모습. ⓒ위키피디아
본문: 요한복음 7장 8-9절

초막절 장면입니다. 초막절에 올라가는 문제를 두고 주님과 형제들이 의견 차이를 보였습니다. 주님의 형제들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대중 앞에 주님이 나서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반면 주님은 아직은 내가 등장해야 할 때가 아니라는 견해입니다. 그렇게 하다 의견이 어느 정도로 정해지는 분위기로 갑니다. 이 본문을 배경으로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너희는 올라가도 된다
올라감에 아무런 제약이 없는 경우임을 말합니다.

8절에서 주님의 의도가 분명히 드러납니다.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되, 주님은 갈 수 없다”는 명쾌한 의도입니다. 주님이 올라가지 못하는 이유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명절에 올라가라는 말씀은, 주님의 형제들이 순례단에 합류해 희생과 제사 의식에 참여하라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초막을 지을 때까지 거기 있으라는 의도입니다.

여기에는 축제 위주의 봉사적 행사, 공허감을 경험하는 예식적인 감사 등을 꼬집는 측면도 내포돼 있습니다. 단순히 국민적인 명절에 맞추는 분위기에 편승하는 태도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의도입니다.

주님의 형제들은 주님을 통한 세상적 인정과 권세를 갖는 편에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반면 주님은 구속사적 관점에서 중요한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조금도 차질이 있어서는 안 되는 구속 사건을 완성해야 하는 중요한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이는 주님이 순례자로서 개선 행렬로 아니라, 초막절에 가지 않으려는 이유입니다. 이는 엄숙한 희생적 행위를 나중을 위해 유보하시는 주님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이는 주님이 형제들과 함께 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2. 주님의 때가 아직은 차지 않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때가 차지 않았음을 밝히면서 동행불가(同行不可)를 천명합니다. 단순히 때가 차지 아니하였으니 올라갈 수 없다는 이유입니다.

실제로 주님은 갈릴리에서 온 사람과 함께 축제에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도 합니다. 속으로 몰려드는 어두운 예고가 주님의 마음에 제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본문에서 이후에 올라가는 것을 배제하지 않은 데서 드러납니다. 주님은 지금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을 잠시 미루고 유보하셨을 뿐입니다.

아마 주님은 아무도 모르는 무거운 마음을 홀로 가지셨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카라반 행렬이 출발하는 준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순례의 행렬의 뒤에 그림자처럼 드리워지는 주님의 때를 선명한 그림처럼 느끼고 계셨을 것입니다.

이 순간 주님은 그대로 유월절 어린양의 그림입니다. 유월절의 어린 양으로 고난을 받으시는 엄청난 고통의 생각입니다. 그러면서 수용 가능한 때의 완성을 마음으로 깊이 다짐하게 됩니다.

당시 자기만족을 조장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종교 지도자들과 비교되는 부분입니다. 더구나 초막절 행사는 아직 축하행사가 한 달이나 남은 것도 이유일 수 있습니다. 그 분위기에서 순례자들은 어수선한 여행으로 함께 모이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그 자리는 하나님이 없는 자리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아우성만 높아지는 영혼이 허탈한 현장일 수 있습니다. 이는 주님이 “나의 때가 차지 아니했다”는 형식을 빌어, 의도적으로 방향을 돌린 이유입니다.

3. 더 기다려야 할 이유가 있다
아직 마무리를 해야 할 일들이 남아있다는 말입니다.

9절 말씀은 단순히 주님의 동향(動向)만을 전달합니다. 그런데 이는 매우 의미심장함을 던져줍니다. 형제들이 순례를 시작한 후에야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을 두고 마태와 마가, 누가와 요한의 복음서가 모두 공통으로 밝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때를 기다리면서, 아직 미진한 복음사역을 완성하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복음사역의 근거지였던 갈릴리에 다시 머무십니다. 갈릴리 사역을 재개하여 마지막 출발을 촉구하는 모습입니다. 갈릴리는 복음사역의 전초기지입니다. 고기를 잡던 어부들이 제자로 부름을 받았던 곳입니다. 세례요한이 세례를 주던 곳입니다. 그래서 갈릴리는 제자들에게도 영적 고향입니다.

이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마지막 여행을 앞두고, 주님은 마무리 작업을 하시려는 의도입니다. 예루살렘에의 입성은 구세주로 등극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메시야임을 주장해야 하는 순간입니다.

그 엄숙한 예루살렘의 입성을 앞두고 갈릴리에서 정신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누가복음을 쓴 누가는 여러 차례에 걸쳐 예루살렘에 대한 주님의 결의를 암시합니다. 주님이 갈릴리에서 머무시면서 예루살렘의 입성의 때를 기다리는 이유입니다.

김충렬
▲김충렬 박사.
4. 정리

우리 삶에는 중요한 때가 있습니다. 그때를 놓치면 안 되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때를 놓쳐서 후회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가는 인생의 길에 믿을 만한 때에 주님을 제대로 믿어서 놀라운 축복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는 중요하게 행동해야 하는 때를 알게 하소서. 행동할 때가 아닌 것도 분명하게 아는 지혜를 갖게 하소서. 더 기다려야 하는 때에는 더 기다릴 줄 아는 용기를 갖게 하소서. 주님을 온전히 따라가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축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
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