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막절 유대인들
▲예루살렘의 초막절 모습. ⓒ크투 DB
본문: 요한복음 7장 3-5절

초막절 장면입니다. 초막절은 유대인의 3대 절기 중 하나입니다. 7일 동안 초막(Tent)에서 생활하며, 조상이 광야생활을 한 것을 기념합니다. 애굽 땅에서 나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때까지 40년 광야생활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초막절 행사는 7일 동안 계속되지만, 제8일째는 큰 성회로 모여 제사를 지냅니다. 이 본문을 배경으로 ‘초막절에 주님의 형제들’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인간적인 성공을 부추긴다
서둘러서 성공의 길을 가야한다는 말입니다.

3절에서 보면, 주님께 육신의 형제들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 55-56절을 보면, 유대인들이 “우리가 마리아와 요셉을 알고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리고 그 누이들, 아마도 사촌까지를 모두 망라한 것 같습니다.

주님의 형제들이 이제 주님에게 인간적인 성공의 길을 제시합니다. 이 명절이 성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입니다. 명절에는 많은 사람이 많이 모이기에 유명해지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초막절 후 곧바로 유월절로 이어지는 큰 절기입니다. 그때는 각처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올 것을 예상한 것입니다.

작은 시골은 성공하기에는 적절한 장소가 아님을 의미합니다. 한국 속담처럼 “말(馬)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가야 한다”는 모양새입니다.

그래서 지금 주님의 형제들은 주님에게 인간적인 성공의 길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빨리 성공을 해서 주님의 제자들에게도 보란 듯이 뭔가를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속에 감추고 있던 형제들의 기대심리가 명절을 즈음하여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주님의 형제들은 주님이 인간적으로 성공하기를 그렇게도 기대했나 봅니다. 하늘나라의 진리를 전파하는 주님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어, 안타깝기만 합니다.

2. 세상에 드러내라는 권고
주님이 세상에 드러낼 기회라는 말입니다.

4절을 보면, 주님의 형제들은 초막절을 절호의 기회로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초막절이 주님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만사는 기회가 있으므로 그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조급함이 보입니다.

주님의 형제들은 제자들과 고생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주님을 옆에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동안의 일은 세상에 드러나기 위한 전지훈련 정도로 생각했나 봅니다. 선지자가 자기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함을 증명하는 장면 같기만 합니다. 아마 형제들은 주님이 세상에 높이 드러나는 영광스러운 날을 목 빼고 기다렸나 봅니다.

다만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아심이 생깁니다. 주님의 형제들은 주님을 가장 가까이서 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그렇게도 알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럴 수밖에요. 살을 맞대고 사는 사람이라도 그 깊은 속마음을 잘 알지 못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수십 년을 살고 “그런 사람인줄 몰랐다고” 하면서 이혼을 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안경으로만 보려는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깊은 마음과 생각을 영원히 모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죽은 다음에야 알게도 됩니다. 그때 그 사람의 깊은 마음을 알고 가슴을 치며 통곡한다고 합니다.

안타깝지만, 영적인 눈이 감기면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주님의 형제들이 인간적인 것만 보이는 이유입니다.

3. 영적 정체성이 드러난다
영적 정체성은 감출 수 없다는 말입니다.

5절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입니니다. 가장 가까운 형제들이 주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니 말입니다. 이 말씀은 굉장한 폭로성 발언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형제들도 주님을 믿지 않았다고 고발하는 성격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그동안 주님은 형제들에게 어떤 분이었을까요? 주님의 형제들은 육신적인 것 말고는 주님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이런 것들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다만 이렇게 고발성 폭로를 하는 것에는 분명히 깊은 의도가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수치스러운 일이라 숨겨야 할 정도의 일을 굳이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영적 원리와 주님의 메시아성을 보게 됩니다. 영적 원리란 엄격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입니다. 영적 원리에서는 형제라도, 가족이라도 쉽지 않습니다. 주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이 간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메시아임을 나중에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함을 보게 됩니다. “주님이 부활하기 전까지는 주님의 형제들도 주님을 믿지 아니 하였더라”입니다. 주님의 형제들도 “주님의 부활 때까지 주님을 메시야로 믿지 않았다”고 극적인 효과를 거두는 것입니다.

복음서 기자가 주님의 부활 이전에 형제들이 취했던 태도를 예리하게 기억하여 기술하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해서 주님의 메시아성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영적 의미를 받아들이게 만듭니다. 주님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임을 확실하게 입증하려는 의도입니다.

김충렬
▲김충렬 박사.
4. 정리

우리는 잘못된 것을 쉽게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반드시 믿어야 할 것을 믿지 못하는 수도 있습니다. 가는 인생의 길에 주님을 끝까지 믿어, 놀라운 축복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는 주님을 메시야로 믿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우리는 하늘나라의 진리를 믿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우리는 주님을 진정으로 믿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주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믿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축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김충렬 박사
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