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월, 칼 바르트와 칼뱅, 레슬리 뉴비긴 소개
편지 형태로, 매주 1편씩 한 달간 신학자 설명
신학, 지식보다 삶으로 적용하도록 돕기 위해

이달의 신학자 복있는사람
▲4-6월 ‘이달의 신학자’ 칼 바르트, 장 칼뱅, 레슬리 뉴비긴.

너도나도 유튜브를 비롯한 가볍게 보고 들을 수 있는 콘텐츠 제작에 뛰어드는 시대, 묵직한 메일링 콘텐츠로 매주 독자들과 소통하는 출판사가 있다.

복있는사람 출판사는 매주 목요일 오전 11시, 신청자들에게 ‘이달의 신학자’라는 제목의 메일을 발송하고 있다. 출판사가 출간한 책들의 저자들을 중심으로 매달 한 명의 신학자를 선정, 편지 형태로 해당 신학자의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지난 4월부터 발행중인 메일 콘텐츠는 4월 스위스 칼 바르트(Karl Barth), 5월 프랑스 장 칼뱅(Jean Calvin, 존 칼빈), 6월 영국의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을 각각 다뤘다. 7월에는 영국의 변증가 C. S. 루이스(Lewis)를 소개할 예정이다. 현재까지는 모두 서유럽 지역 인물들이다.

5월의 신학자 칼뱅의 경우 네 차례 콘텐츠를 발행했다. 5월 5일 첫 편 ‘잠잠히 칼뱅만을 읽으며’에서는 칼뱅의 일생을 개관하면서 “칼뱅의 삶과 신학은 책 <기독교 강요>에 모두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며 “사실상 그의 삶은 이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존재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고 소개했다. 첫 편 제목인 ‘잠잠히 칼뱅만을 읽으며’는 ‘4월의 신학자’였던 칼 바르트가 했던 말로, 자연스럽게 두 신학자를 연결하고 있다.

이후 5월 12일 ‘하나님을 진심으로 갈망하다’, 19일 ‘중보자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6일 ‘성령의 조명이 없이는’ 등에서는 “칼뱅이 <기독교 강요>를 쓴 목적은 ‘사람들이 진정한 경건을 배울 수 있게 해줄 몇 가지 기초들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와 같이, 출판사 발간 도서이자 칼뱅의 대표작인 <기독교 강요> 초판의 주요 내용들을 소개하면서 저자의 사상을 정리해 준다.

“칼뱅의 선택 교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신학적 논쟁이 남아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그는 신자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은 명확하며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작정이라고 선언합니다. 칼뱅이 선택 교리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과연 칼뱅이 강조하고 싶었던 바는 무엇일까요? … 그의 의도까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는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정죄하기 위해 책 <기독교 강요>를 쓰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성령의 조명이 없이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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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중 장 칼뱅의 <기독교 강요> 프랑스어 초판을 소개하는 모습.
특히 칼뱅 서거일인 5월 27일에는 ‘스페셜 레터: 바로 거기에 교회가 존재한다’를 추가 발행해 종교개혁자 칼뱅의 교회론과 말씀 사역에 대해 추가로 들려주기도 했다.

앞의 신학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6월 ‘레슬리 뉴비긴’ 편은 그의 자서전 <아직 끝나지 않은 길>을 중심으로 당시 세계교회협의회(WCC)와 복음주의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속하지 않는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신학자’로 규정하면서, 그를 ‘삶의 신학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신학을 삶으로 표현하려 했던 뉴비긴이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에큐메니컬한 그룹에 속해 있으면서도, 자기가 속한 그룹을 비판할 줄 아는 사고. 자기와 입장이 다른 사람의 장점까지도 바라볼 수 있는 넓은 마음. 이론에 갇히지 않는 창의성. 자신의 주장을 개선하고 성찰할 수 있는 자기비판의 능력. 앞으로도 살펴보겠지만, 다른 종교와 이웃에 대한 그의 열린 태도에도 밑줄을 긋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뉴비긴이 바르트가 쓴 <로마서 주석>에 대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으로 가득했다”라고 평가한 것에 대해선, “바르트가 살았던 시대에는 엄밀한 신학적인 이야기들이 있어야 했다”며 “반대로 뉴비긴이 처했던 상황에는 바르트와는 다르게 엄밀성보다는 접근성이 조금 더 중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쉬워야 했고,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 성경을 설명하는 구조여야 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뉴비긴은 다른 사람의 신학을 앵무새처럼 따라 읊었던 신학자는 아니었다. 그는 자신만의 신학을 펼쳐 나갔고,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온전히 자신만의 삶을 살아냈던 사람”이라며 “이처럼 신학과 신앙은 각자가 처한 상황 속에서 만들어져 가는 듯하다”는 인사이트를 제시하고 있다.

해당 콘텐츠는 ‘편집자 B’라는 이름으로 유동운 편집자(서울신대 박사과정)가 전공을 살려 자료 조사 등을 거쳐 작성하고 있다. 묵직한 내용들을 읽기 쉽고 간명한 문장들로 정리해 독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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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 내용 중 일부.
‘이달의 신학자’ 취지에 대해 유동운 편집자는 “신학 전공자로서 누구나 신학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신학을 좀 더 쉽게 설명하고 싶은 바람이 있었다”며 “출판사에서 일을 시작한 뒤, 신학도서들이 많아 평이한 언어로 설명하고 싶었다. 그리고 하나의 좋은 이야기를 제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위르겐 몰트만을 전공했다는 유 편집자는 “몰트만을 할까 하다가, 출판사 서재에 칼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과 <교의학개요> 등이 꽂혀 있었는데, 독자들이 다소 어려워할 거 같아 칼 바르트부터 시작했다”며 “다음에는 프랑스어 초판 <기독교 강요> 출간을 기념해 장 칼뱅을 선택했다. 쉬운 언어로 돼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중요한 주제별로 더 풀어서 소개해 봤다”고 전했다.

6월 말 현재 메일링 서비스 구독자는 860여 명이며, 1천 명을 1차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신학을 잘 모르는 분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독자 분들도 그렇게 받아들여 주시는 거 같다”며 “신학적 내용을 지식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자기 삶에 적용할 수 있고 스스로 돌아볼 수 있다는 피드백들이 있다”고 밝혔다.

신간뿐 아니라 잊혀진 도서들을 다시 상기시키는 역할도 하고 있다. 콘텐츠 발간 후 칼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나 뉴비긴의 <아직 끝나지 않은 길> 등 구간 도서들에 대한 관심도 상승하고 있다.

‘7월의 신학자’ C. S. 루이스에 대해선 “루이스는 신학자가 아니지만 ‘신학자를 부끄럽게 만든 변증가’라 생각했다”며 “그가 신학적 언어를 평이한 일상의 언어로 ‘번역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던 만큼, ‘이달의 신학자’ 취지와도 맞는 것 같아 선택했다. 루이스는 (이전 신학자들에 비해) 아무래도 독자들이 친숙해서 좀 더 관심이 높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다.

유동운 편집자는 “이달의 신학자 콘텐츠를 꾸준히 발행하고자 한다”며 “헬무트 틸리케(Helmut Thielicke)나 스탠리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 등은 출판사 내에 자서전이나 평전이 없어 타 출판사 책들을 참고할 생각도 있다”고 했다.

‘이달의 신학자’는 시대에 맞게 적극적인 소통도 시도하고 있다. 새로운 글을 소개하기 앞서 독자들이 보내온 의견들을 소개하고, ‘이달의 챌린지’를 통해 독자들이 꼽은 책 속 한 문장을 모아두는 공간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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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중 칼 바르트의 저서들을 소개하는 모습.

독자들도 ‘피드백’에 적극적이다. 다음은 독자들의 실제 반응 모음.

“유명한 신학자와 친해질 수 있는 한 통의 편지. 정성이 담긴 글과 엄선한 사진은 아주 짦은 시간에도 금방 친해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4월 7일, 익명)”

“바르트의 신학을 아주 살짝 엿보고 있지만, 텍스트를 읽어가면서 절로 아멘 아멘 하게 됩니다. 유한한 우리 인간을 위해 친히 다가와주시고, 마주하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 은혜가 새삼 크고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4월 18일, 윤설팜)”

“칼 바르트를 신정통주의자로 피해야 할 대상으로만 배워왔던 터에, 이달의 신학자를 통해 만나게 된 바르트는 직접 읽어보고 판단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습니다. 좋은 기획으로 좋은 신학자를 소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4월 29일, 에이레네)”

“칼뱅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뭔가 보수 신학 꼰대 같은 느낌이 물씬 나지만, 그가 하나님을 사랑한 열정과 지역사람들을 위해 행한 목회의 모습은 오늘날에도 도전을 주는 것 같습니다. (5월 12일, sailer)”

“이단마저도 개신교를 공격할 때에 칼빈의 이야기를 단편적이고 자극적으로 다루곤 하는데, 어찌 보면 우리들마저 예정이나 다른 교리들을 이성적으로 앞세운 채 정작 칼빈이 염두에 두었던 목회적 관심은 뒤로 한 것은 아닐지, 그렇게 칼빈을 오해하게 하고 그의 신학을 오해하게 하고 결국 교회와 그리스도를 오해하게 했던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5월 26일, 구독자 H)”

“오늘 글을 보며 비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먼저 접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인 나'라는 것을 되새깁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길 힘써야겠습니다. (6월 9일, Coramdeo87)”

“이달의 신학자를 통해 바르트에 대한 글을 읽었는데, 이번에 뉴비긴을 통해 다시금 바르트를 상기하게 되는 짜임새가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이달의 신학자가 엮여가며 이야기를 만드는 게 재밌습니다. (6월 16일, 이선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