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집단적 고통에 대한 반응으로 등장 주장
성경 전체 ‘집단 트라우마’ 속 탄생 주장 아냐
민족적 고난과 성경 서로 주고받은 영향 연구

거룩한 회복탄력성
거룩한 회복탄력성

데이비드 M. 카 | 차준희 역 | 감은사 | 364쪽 | 22,000원

유대인들은 오랜 기간 민족 차원의 ‘고난’을 겪어왔다. 나치에 의한 홀로코스트가 대표적이지만, 2천 년 이상 괴롭힘부터 대학살까지 크고 작은 고통을 경험했다.

이는 성경의 주 무대인 신·구약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모세오경은 민족 전체가 노예로 살다 탈출해 ‘가나안’으로 향하는 과정이고, 사사기에서도 이민족의 침입과 지배가 계속된다. 룻기와 욥기는 개인 또는 가족 차원의 ‘고난 극복기’라 할 수 있고, 시편에도 고난 중에 지은 시들이 다수 등장한다.

통일왕국의 짧은 전성기 이후 갈라진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차례로 멸망당해 유다 민족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 돌아온다. 그 시절 기록된 예레미야 같은 예언서들은 슬픔과 울분에 가득차 있다. 신구약 중간기에도 당대의 제국은 이름을 바꿔가며 유대인과 가나안 땅을 지배했다.

무엇보다 오늘날의 기독교를 출발시킨 신약 성경 속 예수의 제자들은 당시 지배층의 핍박을 내내 겪었고, 끝내 스승의 십자가형을 직·간접적으로 목격해야 했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한 사도 바울은 전도여행 내내 쫓기고 쫓겨나고 붙잡혔다. 그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까지 고백했다.

이 책은 ‘트라우마로 읽는 성경’이라는 부제처럼, 유대인과 기독교인의 성서들이 고통에 대한, 특별히 집단적 고통에 대한 반응으로 등장하게 됐다는 도발적 주장을 펼치고 있다.

트라우마라는 개념 자체가 현대적이지만, 성경이 쓰여진 당시에 트라우마가 없었던 것은 아니기에 저자의 논제에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성경 전체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하나의 ‘집단 트라우마’ 속에 탄생됐다는 주장은 아니다. 민족적 고난의 경험과 성경이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를 연구했다고 보면 된다.

고난 십자가 예수 나무 성금요일 부활
▲ⓒ픽사베이
저자에 따르면 유대 민족은 계속되는 끔찍한 고난 속에서도, 훨씬 크고 강대했던 다른 민족이나 국가들과 반대로 공동체가 유지됐고,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 파괴와 멸망, 학살과 포로 등의 트라우마 속에서 성경은 올바른 회복의 길을 제시했고, 그 성경과 함께 유대 민족은 트라우마를 견뎌내며 ‘회복탄력성’을 갖게 돼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여러 경전의 전반적 형태와 강조점은 대부분 위기의 시대에 형성됐다. 따라서 고통 및 고통의 잔존물이 성서 안에 기록됐다. 이는 많은 다른 고대의 문서와 달리 이 경전들이 현재에도 존속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 준다. … 유대인과 기독교인의 경전들은 인간의 트라우마로부터 등장했고 그 트라우마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저자는 초반 예언자 호세아가 ‘결혼 비유’를 통해 이스라엘이 당하고 있는 고통의 경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공했고, 비록 당시 이스라엘은 멸망당했지만 그의 예언은 살아남아 다음 세대를 위해, 특히 그 이후 고난을 겪게 되는 남유다의 공동체적 트라우마를 다루는 방식으로 수용됐다고 주장한다. 다신론이 지배하던 땅에서 유일신론적 비전을 전했다는 것.

이후 모세부터 아브라함, 포로기와 신약 성경까지 이어지는 트라우마와 그 반영에 대해 살피고 있다. 저자의 주장을 다 수용할 수 없다 해도, 그의 시각은 성경 속 고난을 바라보는 관점과 우리가 고난을 대하는 자세에 도움을 준다. 무엇보다 전문적 내용임에도 그리 어렵지 않게 읽히는 것이 장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