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굽인들, 창조 원리 마트 준수하는 것 중요시
신이 준 천직은 농업, 목축도 군복무도 거부해
나일강 홍수 풍요, 시간적 여유 사후 세계 연구
요셉, 애굽 문명에 흡수 차단 위해 목축업 선택

애굽 이집트 나일강
▲태양을 상징하는 피라미드. ⓒ픽사베이

5. 마트(Maat, 질서)의 역할

1) 신이 애굽인에게 준 천직, 농업

따라서 애굽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구성원들이 이 세계가 창조된 기본 질서인 마트(Maat)에 따라 각자 자기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특히 호루스의 후손인 바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애굽을 지키고, 또 애굽 내에서 이 마트가 잘 지켜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 마트가 잘 지켜지면 애굽에는 평화와 번영이 깃들 것이고, 반대로 마트가 지켜지지 않으면 무질서와 파괴가 잇따를 것입니다.

만일 왕이 죽은 자의 무덤을 파괴하거나 신전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등 마트를 지키지 않게 되면, 애굽의 신들은 외부의 적을 이용하거나 내부의 반란을 이용하여 기존 왕을 몰아내고 새로운 왕을 세울 것입니다.

이처럼 애굽의 역사는 마치 오시리스(빛)와 셋(어둠) 사이의 투쟁처럼 질서와 혼란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으로 애굽 신화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애굽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애굽의 창조 원리인 마트를 어떻게 잘 지킬 것인가에 있습니다. 이 마트 중 하나가 바로 농업입니다.

태양신이 애굽인들에게 나일강의 홍수를 준 것은 바로 애굽인들에게 이 땅에서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 것으로 농업은 바로 신이 준 직업이라는 것입니다.

2) 목축의 거부

그렇다고 애굽인들이 목축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농사 일을 위하여 또 우유와 고기를 위하여 소나 염소 등을 키웠으며, 보조 운송 수단으로 나귀나 말을 키우기도 하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들이 목축을 천직으로 삼는 것을 싫어했다는 점이며, 그 이유는 목축이 바로 나일강 홍수를 통하여 농업을 생계 수단으로 삼으라는 태양신의 마트를 어기는 행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애굽인들은 3,000년 동안 거의 변동 없이 조상 대대로 나일강 주변에 있는 땅에서 농사를 주업으로, 목축을 부업으로 살아왔습니다. 애굽은 역사의 변동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한 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이주해야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더구나 나일 계곡에 있는 땅들은 홍수로 인하여 늘 비옥하였기 때문에, 땅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옮길 필요도 없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애굽에서는 무덤 외에 일상생활 유물이 거의 발견되지 않습니다.

애굽 이집트 나일강
▲수로에 물을 대는 두레박.

3) 군복무의 거부

이처럼 애굽인들은 목축도 싫어하였지만, 군대에서 복무하는 것도 싫어하였습니다. 주로 자국 출신 군인들로 채운 메소포타미아와는 다르게, 군복무가 마트 본연의 사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애굽인들은 군대 가기를 꺼려했습니다. 군대에 가게 되면 천직인 농업에 종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애굽 왕국은 늘 부족한 군대의 숫자를 채우기 위하여 외국의 용병을 채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즉 장교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병은 용병으로 채워졌습니다.

특히 가나안 출신 용병이 많았는데, 가나안은 기근이 들면 먹고 살기가 매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많은 유대인들이 애굽의 용병으로 지원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애굽 군대의 전투력은 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록 화려한 장비로 무장을 하였지만, 용병들이 남의 나라를 위하여 굳이 목숨을 걸고 용감히 싸울 필요는 없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애굽 군대는 숫자에 걸맞는 전투력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연전연승하는 애굽의 고대 기록들은 모두 과장된 것입니다. 신의 아들인 바로가 전쟁에서 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애굽 용병 중 예외적인 존재가 유대 용병이었습니다. 20세기에는 네팔 그루카 용병이 용감하기로 유명하였는데, 그에 못지 않았던 것이 바로 유대 용병이었습니다.

애굽 왕국에서 가장 선호하는 용병이 바로 유대인이었고, 그들을 비싼 용병비를 주고 고용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유대 용병들은 군인으로서 완벽한 자질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 용병들은 보초를 설 때 절대 한눈을 팔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이 보초를 서는 동안에는 적의 침입이 불가능하였습니다. 또 전투에서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용감함은 다른 용병과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활을 얼마나 잘 다루는지 하늘의 매도 떨어뜨릴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유대 용병은 당시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최고의 용병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용병으로서 한 가지 중대한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안식일에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심지어 적이 쳐들어와 당장 죽임을 당할 경우에도 절대 무기를 들고 대항하지 않았습니다.

4) 상업의 거부

애굽인들은 목축이나 군대처럼 상업도 천직으로 삼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밭에서 수확한 곡식이나 집에서 기른 가축을 이웃 동네와 물물교환을 하면서 살았지만, 상업만을 목적으로 하는 일에는 나서지 않았습니다.

농업을 마트로 여기는 애굽인들은 상업을 바람직하게 여기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나일강을 떠나 외국으로 나가는 것도 마트를 어기는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결국 애굽에서는 무역이 발달할 수 없었고, 집단 상거래가 일어나는 도시도 발달할 수 없었습니다. 기껏 해야 남북으로 길게 뻗은 나일강 상하류를 파피루스로 만든 배를 타고 오르내리며 서로 필요한 것들을 물물교환하는 것이 이들 상거래의 전부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애굽은 외국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매우 뒤처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문화를 서로 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한 애굽인들은 동물 숭배와 같은 고대 풍습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다 더 치명적이었던 것은 마트에 몰두한 나머지 도전의식이 필요한 수학이나 과학 등을 소홀히 함으로써 문명 간의 경쟁, 특히 메소포타미아나 그리스-로마 제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던 점입니다.

애굽 이집트 나일강
▲나일강에서 새와 물고기를 잡는 애굽인들.

6. 내세관

1) 신이 나일강 홍수를 준 이유

애굽인들이 마트에 더욱 집착하게 된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내세관 때문입니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이 수로 관리나 힘든 농사 일로 인하여 사후 세계에 무관심하였다면, 애굽인들은 나일강 홍수가 주는 풍요로움으로 생긴 여유를 사후 세계 연구에 바쳤습니다. 사후 세계에 대한 이들의 집착은 세계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장례 문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애굽인들은 무한 반복되는 일출과 일몰, 또 나일강의 홍수를 보면서 생명도 반복된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자연 현상을 본 애굽인들은 자신들에게도 현재의 삶뿐 아니라 죽은 다음의 세계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태양신이 애굽인들에게 나일강 홍수를 통하여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완벽한 환경을 제공한 것은, 애굽인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애굽의 장례 문서(Coffin Texts)에 따르면, 태양신이 애굽인에게 이런 완벽한 환경을 준 것은 다음 네 가지 조건을 만들어줘 영원히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①모든 사람이 호흡하며 살 수 있도록 대기를 만들었습니다.
②매년 나일강의 홍수를 보내 풍족하게 먹고 살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③모든 애굽인들이 똑같은 (영생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④모든 애굽인들이 항상 사후 세계를 생각하며 살도록 만들었습니다.

즉 태양신은 모든 애굽인들에게 먹고 사는 걱정 없이 사후세계 심판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똑같이 주었다는 것입니다.

2) 영생을 얻는 방법

태양신이 준 영생의 기회를 살리는 방법은 신이 준 ‘마트’를 잘 지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사후세계 통과 여부가 결정됩니다. 사람이 죽으면 누구나 지하 세계를 통치하는 오시리스 앞에 서야 되는데, 그곳에서 다음과 같은 선언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①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습니다.
②나는 누구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③나는 무뚝뚝하게 굴지 않았습니다.
④나는 누구도 울리지 않았습니다.
⑤나는 유부녀와 관계를 맺지 않았습니다.

애굽 무덤에서 발견되는 벽화 내용들은 모두 이 심판과 관련이 있는 것들로, 죽은 자가 이 심판을 잘 통과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하여 일종의 모범 답안지가 화려하고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죽은 자가 이 심판을 통과하면 영원한 세계로 나갈 수 있고, 통과하지 못하면 지하 세계를 지키는 괴물에게 잡아먹히게 됩니다.

3) 마트의 실천

이런 종교관을 갖게 된 애굽에서는 장례 문화가 매우 발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피라미드도 이 장례 문화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엄청난 규모의 피라미드를 건축한 것을 볼 때 사후 세계가 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후 세계에서 영생을 획득하고자 했던 애굽인들은 이 땅에 살면서 고도로 발달된 도덕적인 사회를 만들어 살았음을 볼 수 있습니다.

태양신이 이 세계를 창조할 때 사용하였던 마트가 잘 지켜지도록 하는 것이 애굽 땅에서 혼란을 몰아내는 길이자 사후 세계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이기 때문에, 애굽인들은 마트의 실천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애굽인들이 목축을 증오한 것도 목축 자체의 중요성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창조신의 마트를 지키기 위하여 농업 대신 목축을 생업으로 삼는 것을 가증히 여겼던 것입니다.

신이 주신 애굽 땅은 목축보다는 농업에 적합한 곳이며 따라서 영생을 얻고자 하는 애굽인들은 목축보다는 농업에 종사해야 했던 것입니다. <계속>

구약 문화 배경사 류관석
▲류관석 교수는 “우리는 우리의 잣대로 성경을 이해하는데 익숙해져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많은 오역이 나오고 성경의 내용에 공감하는 정도가 약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류관석 교수
대한신대 신약신학
서울대 철학과(B.A.), 서강대 언론대학원(M.A.),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M. Div.),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Th. M. 구약 / M. A. 수료), Loyola University Chicago(Ph. D., 신약학)
미국에서 Loyola University Chicago 외 다수 대학 외래 교수
저서 <구약성경 문화 배경사>, <산상강화(마태복음 5-7장)>, <기적의 장(마태복음 8-9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