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지적 능력 없어도 된다는 생각, 함정과 오류
사탄이 마음 침투해 넘어뜨리는 ‘미혹 포인트’ 있어
음악 제대로 공부해야, 제대로 하나님 찬양 가능해
음악 통해 하나님 빛나게 하려면, 음악 이해가 필수

박치용 서울모테트합창단
▲박치용 지휘자는 “1989년 서울모테트합창단을 창단하고 30여 년을 하나님 찬송하는 일에 전념해 온 저는 누구보다 찬송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며 살아왔다”고 책에서 고백했다. ⓒ이대웅 기자

내 맘에 한 노래 있어
박치용 | 홍성사 | 456쪽 | 20,000원

“인생들이 은혜의 열매요 구원의 노래인 찬송을 부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것에 더해 하나님을 노래하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는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다시금 깨닫습니다.”

박치용 지휘자는 서울예고와 서울대에서 작곡과 성악을 전공하고 26세에 서울모테트합창단을 창립, 30여 년간 대한민국 대표 민간 프로 합창단을 이끌며 맑고 깨끗한 울림, 정제된 화음, 깊이 있는 음악으로 순수 합창음악과 교회음악의 진수를 선보이며 합창단을 세계적 수준으로 이끌어 왔다.

그가 30여 년만에 첫 작품으로 최근 펴낸 <내 맘에 한 노래 있어>는 코로나19 시대를 지나며 위로와 치유가 간절한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에세이로, 합창단 주요 레퍼토리이자 찬송가와 시편찬송, 클래식 등 주요 교회음악 68곡의 기원부터 배경, 구성 등을 안내하면서 교회음악에 대해 알기 쉽게 전달하고 있다.

책 표지 사진부터 합창단의 색깔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각 곡을 연주한 서울모테트합창단 버전을 비롯해 함께 들을 만한 곡들을 QR코드로 만나볼 수 있고, 코로나19 관련 단상이나 합창단 이야기까지 들어 있다.

‘모테트(motet)’는 13세기 출현했으며, 짧은 성구나 성시에 붙인 무반주 다성음악을 일컫는다. 근대적 의미의 서양음악 역사 최초로 나타난 음악 형식으로 서양음악과 교회음악의 뿌리가 됐으며, 순수하고 고상한 양식으로 교회음악을 대표해 후대 음악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는 등 합창단의 정체성을 잘 나타내는 명칭이라 할 수 있다. 코로나19를 버텨낸 박치용 지휘자와의 일문일답.

-지난 5월 말, 오랜만에 롯데콘서트홀에서 ‘서울모테트합창단 제120회 정기연주회’를 여셨는데요.

“전체 객석이 1,900석 정도 됐는데, 2/3 정도인 1,520분 정도 참석하셨습니다. 프로그램이었던 브람스(J. Brahms)의 ‘독일 레퀴엠(Ein Deutsches Requiem): 위로와 평안의 노래’는 대작이고 규모도 켜서, 저희 프로 팀뿐 아니라 청소년합창단과 대학부 음악 전공자들 25명까지 67명 정도 합창을 함께했습니다.

교회음악 역사로 볼 때 바로크와 고전파 작품들은 바흐와 헨델의 위대한 곡들이 많고, 고전파 이후 낭만파 시대 중에는 브람스의 레퀴엠을 최고로 꼽습니다.

레퀴엠이란 진혼곡, 죽은 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곡으로, 가톨릭적 사고와 신앙 내용이 특화된 경우가 있습니다. 개신교에서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 레퀴엠을 교회에서는 연주하지 않습니다. 일부 발췌는 할 수 있지만, 예배 중 전곡 연주는 있을 수 없습니다.

신실한 루터교 신자였던 브람스는 이것이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바흐와 헨델은 레퀴엠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브람스는 다른 차원의 레퀴엠을 쓰고 싶어했습니다. 죽은 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산 자들을 위한 레퀴엠입니다.

죽음을 생각하고 맞이하고 접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성경에서 텍스트를 끄집어냈습니다. 그야말로 개신교 신앙의 삶과 죽음에 대한 진수 (眞髓)만 모아놓은 말씀들입니다. 이 말씀들로 곡을 썼고, 곡 자체도 위대한 의미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말씀처럼 바흐나 헨델이 아닌, 브람스나 베토벤도 신앙심 깊은 곡을 많이 썼는지 몰랐습니다.

“베토벤은 그리 많이 쓰지는 않았습니다. ‘감람산 위 그리스도’라는 작품을 썼고, 단편 몇 곡과 미사 음악 외에는 아주 조금 썼습니다.

반면 브람스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레퀴엠 외에도 무반주 합창 등 교회음악곡들을 많이 썼습니다. 교회 지휘자로 생계를 유지한 적도 있는 등 깊이 있는 교회음악 작품들이 많습니다.

대체로 바로크나 르네상스 시대에 비해 고전파 시대 이후 기악 음악이 발전하다 보니 작곡가들의 교회음악 작품 수가 현저히 줄어들었고, 이는 다른 작곡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멘델스존은 유대인이었지만 개신교로 개종했고, 바흐의 영향을 많이 받아 교회음악 작품을 많이 썼습니다.”

내 맘에 한 노래 있어 박치용

-코로나19로 지난 2년 간 공연을 하지 못하셨죠.

“코로나19 이후, 공연계는 어떤 분야보다 큰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합창단이 1989년 시작해 2019년 30주년을 뒤로 하고, 새로운 30년이 시작되는 2020년 코로나가 찾아왔습니다. 그해 계약된 연주를 한 건도 하지 못했습니다. 작년에는 열 건 정도 연주할 수 있었습니다. 정기연주 세 번에 작은 연주 예닐곱 번이었습니다.

올해는 다행히 조금 더 늘어날 것 같습니다. 코로나 전 1년에 40-50회 공연했다면, 올해는 20회 정도입니다. 예년의 50% 수준도 안 되다 보니, 합창단 운영이 어려워졌습니다. 단원들에게 적은 수준이지만 급료를 주고 4대보험을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1990년 창단 6개월 만에 프로로 전향하면서 풀타임 출근에 급료를 지급했습니다. 합창단은 4대보험이 의무사항은 아니었지만, 급료를 많이 줄 수 없는 가운데 2005년 전후부터 단원들 복지와 자긍심 차원에서 결단했습니다. 코로나가 없었더라도 저희 같은 형태의 예술단체 운영은 대한민국 현실에서 사실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국가나 대기업에서 지원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활동 수익(70%)과 기독교인들의 후원(30%)으로 유지해 왔습니다. 그런데 코로나로 연주가 완전히 멈춰 버렸습니다. 매달 급료를 드리면 제로 상태로 운영해 왔고 부채까지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가 닥친 것입니다.

8년 전 하나님 은혜로 많지 않은 재정임에도 재단법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25주년 때 그간의 사회공헌을 인정받아 최소한의 출연금으로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재단법인이 되니 정부 지원 사업 등에 불이익도 있고, 단원과 직원들 처우 수준도 높아져야 해 지출이 더 늘었습니다.

그런데 2010년대 이전 굉장히 많았던 교회 초청 연주도 1년에 한 자리 수로 줄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점점 엔터테인먼트와 퓨전이 강조되면서, 저희 같은 정통 클래식 합창 영역은 위축되고 있습니다. 결국 코로나로 일부 단원들의 무급 휴직이 시작됐고, 프로젝트성 단기 고용제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책을 쓰게 되신 계기도 되었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2020년 봄부터 공연을 할 수 없어 재정 압박이 심해졌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보니, 2019년 개설했던 유튜브에 저희 합창 콘텐츠를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은 음악 CD조차 잘 사지 않고, 특별한 매니아들 외에는 유튜브 같은 플랫폼으로 음악을 접하지 않습니까?

요즘 트렌드에 맞추고자 신경써서 작업했습니다. 기존 음원들은 음향 작업을 거치고, 되도록 영상도 첨가했습니다. 그런데 그냥 콘텐츠만 올리니 성의없어 보여서, 주요 곡들은 대중들을 위해 해설을 붙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음악회에 티켓을 사서 오시는 분들보다는 좀더 설명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에세이 형식을 취했습니다. 곡의 중심 내용을 넣으면서, 음악 애호가나 전문가들에게도 유익이 있도록 스펙트럼을 넓혔습니다. 1-2주에 하나 씩 1년 반 넘게 쓰다 보니, 내용이 쌓였습니다. 꼭 해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곡들은 결국 합창단이 지난 30여 년간 많이 연주한 주요 레퍼토리인 동시에 교회음악의 주요 레퍼토리였습니다.

그러다 작년 가을쯤 ‘책으로 내는 것도 의미 있겠다’ 싶었습니다. 지난 2019년 30주년을 맞아 ‘합창단 30년사’를 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다. 쓰고 나니 일종의 합창단 역사 자료집 역할도 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음악 전문 출판사도 고려했지만, 홍성사에서 나오게 됐습니다.

유튜브에는 5천 자로 내용이 제한되다 보니 각 내용을 다시 정리하면서 새로 쓰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QR코드를 넣어 해설한 곡들을 독자들이 검색해서 찾지 않고도 직접 들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저희 합창단 버전뿐 아니라 참고하거나 추천할 곡들을 더해 3-4개씩 넣었습니다.”

서울모테트합창단
▲지난 5월 제120회 정기연주회 모습. ⓒSMC
-책에서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곡들을 풀어내셨나요.

“음악이란 게 결국 모호한 경지인데 언어로 변환시키는 것이 사실 굉장히 어려운 작업입니다. 단순히 글로 만드는 것 자체가 어렵다기보다, 음악이란 모호한 것이기에 모호하게 이해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걸 인간의 논리 안으로 가져오면, 골치 아파 합니다.

어떤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같은 가족이라도 별로 안 좋아할 수 있습니다. 음악을 ‘좋다, 싫다’로 표시하려는 경향인데, 사실 음악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 중 예술 영역, 특히 음악은 지적 능력을 동원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많습니다. 복잡하게 설명하는 것 자체를 귀찮아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함정이 있고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사탄이 우리 마음으로 침투하고 넘어뜨리게 하는 미혹의 포인트가 여기 있다고 봅니다.

음악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만든 곡조로도 정말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게 될 수 있습니다. 음악이란 신비한 영역도 있지만, 철저히 논리적이고 과학적이고 수학적인 기초 하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철저히 외면하고, ‘내가 좋으면 그만’이라면서 정서적 카타르시스에 머물고자 합니다.

그런데 제가 여태까지 공부하고 아는 음악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음악은 왜 존재할까요? 찬송이란 무엇일까요? 찬송이란, 음악이라는 도구를 통해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세계를 주석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석’에 중요한 방점이 있습니다. ‘주석’이란 방법론이나 수사학이 아니라, 주석의 원전, 본체가 중요한 것입니다.

목회자와 신학자들이 주석을 거쳐 설교하거나 가르칠 때도 본인의 신앙과 정서, 학문적 깊이와 신학적 논제 등 모든 것을 동원해서 하나님 말씀을 주석해내, 결과적으로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을 더욱 보화와 같이 빛나게 하는 것 아닙니까.

음악도 똑같습니다. 찬송이 음악이라는 도구를 통해 하나님 말씀을 주석해내 보화와 같이 빛나게 하는 것이라면, 음악에 대한 이해 없이 온전히 가능할까요. 그런데 한국교회 지도자들과 신학교, 각 교단에서 이 문제를 다루지 않습니다. 음악이나 찬송이 무엇인가 하는 정의도 없이, 그냥 찬양하자고 합니다. 곡조와 방법이 어떻든 사람의 마음만 신실하면 되고, 가사 내용이 성경적이기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말씀처럼 중요한 포인트네요.

“교회에서 제게 세미나 요청이 들어오는데, 2/3는 기능을 가르쳐 달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찬송에 대한 개념부터 잘못돼 있고 성가대나 봉사에 대한 개념도 없이, 오로지 자기 만족에만 사로잡혀 있는데 기능만으로 될까요. 찬송은 영적 전투의 장이고, 성가대는 군대 용어로 하면 특공대나 수색대와 같은 곳입니다.

하지만 많은 성가대원들은 ‘왜 성가대를 하느냐’고 물으면, 70-80%가 자기 만족적 이유를 댑니다. 그래서 각 교회 성가대에 문제가 많이 생기는 것입니다. 잡음이 많고 지휘자는 전공자를 뽑을 필요가 없다고도 합니다.

음악이 얼마나 매력적인가요? 그래서 사탄이 음악을 통해 얼마나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를 미혹하는지 모릅니다. 찬송도 ‘중언부언’ 할 수 있습니다. 이 음표가 어떤 원리로 써 있는지 모르면, 중언부언 아닌가요.

박치용 서울모테트합창단
▲박치용 지휘자는 “합창단을 통해 음악적으로나 신앙적으로 다른 이들이 가지 않았던 길을 개척하면서, 음악의 본질, 교회음악과 찬송의 가치를 깨달아 가는 보람이 정말 특별했다”고 책에서 밝혔다. ⓒ이대웅 기자
성가대 세미나에 가면, 마지막에 꼭 하는 일이 있습니다. 전 교인 성경암송 대회가 열렸다고 가정하고, 유치부부터 시니어까지 대표가 나와서 시편 1편을 암송하게 하는 것입니다. 나이대별로 읊는 뉘앙스가 다 다릅니다. 살아온 삶이 다르기에, 단어 하나 하나에 대한 느낌과 중요시하는 방점이 다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몇 살짜리 성가대원인가요? 초등학교 5-6학년만 돼도 단어의 의미는 다 알지만, 깊은 뜻은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음악은 그만큼 악보를 읽고 못 읽고가 굉장히 중요하지만, 시대가 변해서인지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미디어가 곧 메시지인데, 미디어만 좋으면 그냥 좋은 줄 알아요. 노래만 잘 하면 ‘통과’입니다. 음악을 감정으로 이해하는 것은 정말 위험합니다. 에스겔 28장에서 두로 왕에게 들어간 사탄을 책망하는데, 성경 전체에서 사탄에 대해 가장 구체적으로 표시된 부분입니다. 사탄은 음악의 신이었던 것입니다.

사탄이 음악의 중요성을 더 잘 알 것입니다. 바흐, 모차르트, 슈베르트를 다 합쳐도 사탄의 능력에 못 미칠 것입니다. 음악이 어떻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도 잘 알 것입니다. 음악은 언제든지 유혹의 가장 핵심입니다.

사람들은 음악을 아직 여흥 정도로 이해하지만, 무지의 소치입니다. 논어에서 공자가 여러 차례 음악에 대해 이야기했을 정도입니다. 치자(治者)가 갖춰야 할 최고 덕목으로 예(禮)와 악(樂)을 들었습니다. 철학 정치의 덕목을 예와 악으로 꼽았습니다. 시에서 마음이 일어나고, 음악을 통해 완성됩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음악은 모든 것에 있어 통합적 개념을 갖고, 인간 언어와 논리 너머 차원을 나타낸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언젠가부터 음악을 풍류 정도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옛 선비들은 서화와 함께 음악까지 알아야 했습니다. 교회도 국가도 먹고 사는 문제부터 해결하고 음악을 추구했지만, 잘 살든 못 살든 예술이란 가장 중요한 삶의 요소이자 핵심 중 하나입니다.

근본적으로 믿음의 근간과 말씀과 찬송의 모든 내용들을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고, 제대로 정립하기도 전에 샴페인부터 터트린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단순히 음악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전인격적으로 깨닫게 해달라고 하고 지적·정서적·의지적 등 전인격적 신앙을 강조하면서, 거기서 나오는 것이 항상 감정적이라면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요. 철저히 말씀대로 살자고 하면서, 찬송에 대해 구별하지 못하고 사탄이 기뻐하는 일을 해선 안 됩니다.

지금은 혼돈의 시대, 분별이 없는 시대, 무엇이 옳은지 모르는 시대 같습니다. 저는 그동안 하나님 주신 온전한 찬송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 왔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주석하는 것이 찬송이라면, 그 도구인 음악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고 관심을 갖자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교회의 세속화와 타락이 찾아오고, 교인들이 누릴 은혜를 박탈당하게 될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