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 브뤼헬
▲16세기 플랑드르 화가 브뤼헬의 1598년작 ‘산상설교’.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마태복음 5:1)”.

예수님께서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 두 형제 베드로와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서 그물 던지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들은 어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불러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후 그들은 즉시 그물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생업을 위해 평생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먹여 살렸던 어부 일을 당장 그만두기가 심히 어려웠을텐데, 과감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며 따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물을 버리고 따르는 제자들과 함께 조금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 안에서 그물 깁는 모습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십니다. 그들 역시 평생 자신들을 먹여 살리고 의지했던 배와 사랑하는 아버지마저 버리고, 주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순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사람들이 맛보지 못했던 천국에 대한 기쁘고 행복한 소식을 알려 주십니다. 백성들 중 모든 병을 앓는 사람과 모든 약한 것을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온 수리아 지방에 퍼져 나갔습니다.

모든 앓는 자와 각종 병에 걸려 고통당하는 자, 귀신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으로 고생하는 자들 모두를 데려왔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당하는 고통을 모두 해결해 주시는 이적들을 행하십니다.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놀라운 일들이 전개됩니다.

예수님께서 그 따르는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셨고, 제자들이 나아옵니다. 주님께서 입을 열어 가르치시면서, 산상보훈의 핵심인 팔 복을 가르쳐 주십니다.

보통 산상수훈 또는 산상설교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 말씀들은 단순히 사람들에게 높은 도덕적 표준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실제 삶에서 지켜야 할 윤리의 대강령을 제시하셨습니다.

특히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상속받는 데서 유래된 말로,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인 천국을 차지할 것을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산상수훈의 팔복은 여덟 개의 지복 형태로, 참 제자에 대한 단호한 묘사로 시작됩니다. 여기서 ‘복이 있나니’도 ‘행복하다’도, ‘마카리오스(makarios)’에 대한 적절한 번역이라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것은 축하와 권고의 용어라고 성경 주석은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온 자질들은 선망의 대상이 되고 열심히 닮아가야 할 대상들입니다. 각 자질들에는 이유가 따라 나오는데, 단기적으로 볼 때는 보상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삶을 따름으로써 아무도 패배자가 되지 않을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보상은 물질적인 것보다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경험과 관계의 차원에 있습니다. 이 부분을 시작하고 끝맺는 핵심 구절은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그들의 왕으로 인정하며 확신에 차 있는 사람들, 자신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는 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특히 팔복 첫 번째인 ‘심령이 가난한 자’에 대한 말씀은 하나님이 구원해 주시기를 바라면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난한 자 혹은 온유한 자, 억압받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구약의 주제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12명의 제자들을 다 부르신 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사도로 세우시고, 가난한 사람들과 굶주리는 사람들, 우는 사람들과 미움과 모진 박해를 당하는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도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려 애쓰는 사람들이야말로 스스로 가난하게 되고 굶주리게 되기도 하며, 슬픈 일을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시기와 질투로 인해 박해를 받기도 합니다.

좀 더 많이 먹고 싶은 욕구, 좀 더 많이 소유하고 싶은 욕구, 좀 더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은 욕구들에서 탈피하여 가난한 사람들, 굶주리는 사람들, 우는 사람들, 미움과 박해 속에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되려고 할 때, 우리는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에서 받는 고난 이상, 심지어 십자가에서 못박히시는 처참한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리시는 고통까지 동참할 수 있는 모습이야말로, 예수님께서 걸어가셨던 그 모습을 닮아가는 진정한 크리스천의 삶이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팔복을 나누는 곳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당히 앉아 계십니다. 그 길은 분명 그리 쉬운 길은 아닙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길도 아닙니다. 험하고 먼 길이지만 주님께서 곁에 앉아계신다면, 그 길은 생명의 친구가 되는 방주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주님께서 내 곁에 앉아 계심을 모른 채 저 멀리 계시다고만 생각하기 때문에, 늘 반복되는 죄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안주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항상 주님께서는 내 안에, 그리고 내 곁에 계신다는 신뢰와 믿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할 때 사탄과 마귀들은 틈새를 노리고 나를 넘어지게 함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같은 사도들이지만, 가룟 유다는 돈궤를 맡아 늘 잔머리를 굴리는 습성이 있었다고 합니다. 함께했던 다른 제자들과 달리 돈을 관리하는 사도로서, 예수님의 발에 향유로 발을 씻기는 그 모습을 보고 “300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유를 팔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사용되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마리아를 질책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뜻이 아닌 교활한 인간의 방법대로 살다가 결국 비참하게 생애를 마감하는 뼈아픈 사건 때문에, 지금까지도 배신의 제자로 기억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주님께서는 늘 내 곁에 계신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어야 하겠으며, 저만치가 아니라 바로 내 곁에 계심을 철저히 인식하고, 오롯이 믿음으로 주님께서 걸어가신 그 길을 수용하며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야고보서 1:2)”.

성도는 믿음으로 인해 여러 가지 고난과 환난을 당하나, 이것은 오히려 믿음을 연단하여 성도의 인격을 온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고 기쁨으로 시험에 대처해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를 깨닫고 항상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심을 인식하며, 늘 불안한 팬데믹 시대를 주 안에서 믿음으로 지혜롭게 대처하며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효준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