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전주 미래교회
일시: 2022년 6월 12일
본문: 사도행전 20:28, 로마서 12:1

기독교학술원 이사장 취임식
▲김명혁 목사. ⓒ크투 DB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하고 아름다운 곳은 교회이고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하고 아름다운 일은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정성껏 예배를 드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일보다 귀중한 일은 세상에 없고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정성껏 예배를 드리는 일보다 아름다운 일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성부 하나님의 눈과 귀와 마음이 항상 향하는 곳이라고 성부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성전을 지어서 헌납하는 솔로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이르시되 내가 이미 네 기도를 듣고 이곳을 택하여 내게 제사하는 전을 삼았으니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로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염병으로 내 백성 가운데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찌라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이는 내가 이미 이 전을 택하고 거룩하게하여 내 이름으로 여기 영영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대하 7:12-16).

사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오래전에 출애굽의 목적이 성부 하나님께 정성껏 예배 드리는데 있다고 모세에게 10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바로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8: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바로 앞에 서라 그가 물로 나오리니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8:2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9:1).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10:1).

성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좀 극심하신 말씀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성부 하나님께 정성껏 예배 드리는 안식일 성수를 거역하는 자들은 반듯이 잡아서 죽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찌니 무릇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찌며 무릇 그 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 칠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찌니라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하라”(출 31:14-17).

교회가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하고 아름다운 이유는 교회가 성자 예수님께서 자기 피를 흘려서 세우신 성자 예수님의 몸과 머리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학생일 때 찬송가 246장을 부르다가 가사에 감동을 받고 울고 또 울고 또 운 일이 있었습니다. “내 주의 나라와 주 계신 성전과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제가 고등학생 일 때 대구 주암산에서 열린 부흥회에 참석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예레미야라고 불리시던 김치선 목사님께서 부흥회를 인도하시고 계셨습니다. 저는 김치선 목사님께서 목회하시던 창동교회에 다니면서 새벽마다 김치선 목사님의 눈물의 설교를 들으면서 은혜를 많이 받곤 했고, 저는 김치선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부흥회는 이곳 저곳을 쫓아 다니면서 은혜를 많이 받곤 했는데 대구의 주암산까지 쫓아가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부흥회 어느 시간에 찬송가 246장으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1절 가사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내 주의 나라와 주 계신 성전과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저는 1절을 부르고 나서 더 이상 찬송을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라고 찬송을 부를 때 저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피를 흘려서 교회를 사셨을까?” “나는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하지 못했는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 놀랍고 너무 감사라고 부끄러워서 뜨거운 눈물을 계속해서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우니까 옆에 있던 어른 한 사람이 “학생, 무슨 슬픈 일이나 어려운 일이 있느냐” 라고 저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울었습니다. 아마 20여분 동안을속해서 울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8절은 성자 예수님께서 자기 피로 교회를 사셨다고 지적했습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행 20:28).

성자 예수님께서는 교회가 자기의 피를 흘려서 세우신 예수님의 교회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사도 바울은 교회가 성자 예수님의 몸이고 머리라고 분명하게 지적했습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 1: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엡 5:23).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

교회는 또한 성령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강림하시고 임재하심으로 구체적으로 세워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1-4).

사도 바울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주님과 교회를 섬기면서 주님의 교회를 너무너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위해서는 괴로움을 당해도 고난을 받아도 좋고 수고를 해도 피를 흘리며 죽어도 좋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 1:29).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빌 2:17,18).

그리고 예베소교회 장로들에게 교회를 잘 섬기고 양떼를 잘 돌보라고 당부했습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행 20:28).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정성껏 예배 드리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하고 아름다운 이유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목적이 바로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 곧 영적인 예배를 드리는 데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은 말씀을 아주 분명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사실 천국에서 영원히 계속될 것도 예배입니다. 설교도 전도도 구제도 다 없어지지만 예배만은 영원토록 계속된다고 말씀했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찌로다 아멘 하더라”(계 7:9-12).

교회보다 더 귀중하고 아름다운 곳은 세상에 없고 하나님께 정성껏 예배 드리는 일보다 더 귀중하고 아름다운 일은 세상에 없습니다.

부족하고 또 부족한 저는 어릴 때부터 교회를 집보다 더 좋아하고 학교보다 더 좋아하며 사랑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신의주 제이 교회에 9년동안 평양 서문밖 교회에 2년동안 다니면서 주일에는 하루 종일 교회에 가서 정성껏 예배 드리는 것을 공부하는 것보다 다른 일 하는 것보다 더 귀중하고 아름답게 여기면서 좋아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4학년과 5학년 학생일 때 평양 서문밖 교회에 다녔는데 주일날 학교에 오지 않는다고 2년 동안 월요일마다 학교에서 벌을 받고 정학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저는 교회를 사랑하고 정성껏 예배 드림을 사랑하다가 교회에 가서 마음껏 예배 드리는 삶을 살기 위해서 남한으로 가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북한에서 떠나기 한 달 전에 감옥에 계시는 아버지를 찾아가서 “저 남한으로 가겠어요” 라고 말씀 드렸을 때 아버지는 저를 한참 바라보시다고 “그러면 가”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를 너무너무 사랑하시던 저 없이는 살지 못한다고 자주 말씀하시던 어머니도 울면서 “그러면 가”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부족한 저는 11살 때인1948년 8월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평양에 남겨두고 북한을 떠나 캄캄한 밤에 38선을 혼자서 뛰어 넘어서 남한으로 와서 한 평생을 고아와 나그네로 외롭고 슬프게 살게 되었습니다.

서울에 와서 이모님을 만나서 이모님 집에서 살게 되었는데 주일에는 하루 종일 교회에 가서 정성껏 예배를 드릴 수 있어서 너무너무 좋았는데 어머니와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몇 년 동안은 밤마다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습니다.

사실 저는 초등학생과 중학생 때부터 한 평생 주일에는 하루 종일 교회에 가서 정성껏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게 되었고 기도와 전도와 봉사에 최선을 다하게 되었습니다. 새벽기도를 빠지지도 않았고 수요일 저녁 예배를 빠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의 한 평생을 너무 많이 축복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저는 지금도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라는 찬송을 부르면서 교회를 사랑하기를 힘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강변교회에서 은퇴한 후 지난 14 년 5개월 동안 주일마다 전국의 흩어져 있는 작은 교회들을 주로 찾아가서 작은 교회의 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설교를 하고 있는데 얼마나 고맙고 감사하고 좋은지 모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는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라는 찬송을 부르면서 몸과 마음과 시간과 정성과 눈물과 물질과 생명을 다 쏟아 바치면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다운 교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 교회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교회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였기 때문에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6,47).

어머니 교회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교회가 교회다운 교회로 발전했고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을 지니게 된 것이 너무너무 귀중하고 아름다운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예루살렘교회가 지녔던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 세 가지를 아주 간단하게 줄여서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예루살렘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기도하는 일에 전혀 힘을 썼다고 했습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2).

둘째로 예루살렘교회는 교제하며 떡을 떼는 일에 전혀 힘을 썼다고 했습니다. “저희가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2).

셋째로 예루살렘교회는 섬기며 봉사하는 일에 전혀 힘을 썼다고 했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행 2:44,45).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행 4:32).

어머니 교회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교회가 주력한 것은 첫째로 말씀과 기도에 전무한 일이었고 둘째로 교제와 떡을 떼는 에 전무한 일이었고 셋째로 섬김과 봉사에 전무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역사가들은 교회의 특징 세 가지를 말씀 곧 “케리그마”와 교제 곧 “코이노니아”와 봉사 곧 “디아코니아” 라고 지적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성자 예수님께서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로 보시던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 6 가지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저는 성자 예수님께서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로 보시던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 6가지를 살펴보면서 그 6가지 모습을 가리며 “기회말교봉기”, 즉 기도와 회개와 말씀과 교제와 봉사와 기쁨이 충만한 모습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2017년 1월 29일 주일 강변교회에 가서 “기회말교봉기가 충만한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는데 오늘 그때 한 설교를 절반으로 줄여서 하려고 합니다. 그 때 한 설교의 본문은 행2:37-47, 빌1:1-11으로 삼았습니다. 그 때 저는 설교를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계속하고 마무리를 했습니다.

『저는 오늘 “새로운 시작”을 시도하는 강변교회가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를 바라고 소원하면서 “기회말교봉기가 충만한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우선 교회가 어떤 곳인가에 대한 말씀을 간단하게 몇 마디로 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존재들 중에 교회보다 더 귀중하고 더 복되고 더 아름다운 존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성자 예수님께서 피 흘려 사신 예수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성부 하나님의 눈과 마음과 귀가 항상 향하고 게시는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성령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령님의 전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보다 더 귀중하고 더 복되고 더 아름다운 존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를 너무너무 좋아했고 교회를 너무너무 사랑했습니다.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것보다 더 좋았습니다. 북한에서는 주일에 교회에 가지 못하게 했고 학교에 오라고 했지만 저는 10살 11살 때 평양에 있는 제 오 인민학교에 다녔는데 2년 동안 주일 날 한 번도 학교에 가지 않고 아버지가 목회하시는 평양 서문밖교회에 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교회에 있으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월요일마다 학교에서 벌을 받고 때로는 정학을 당했습니다.

결국 저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교회에서 자유롭게 예배 드리기 위해서 북한을 떠나 남한으로 가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저는 11살 때인 1948년 8월 고향과 부모를 떠나 38선을 뛰어넘어서 남쪽으로 왔습니다. 저는 남한에 와서 고향과 부모를 떠난 고아와 나그네로 슬픔과 아픔을 지니고 외롭게 한 평생을 살았지만 남한에 와서 주일 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교회에 가서 예배 드리고 봉사하는 것이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사실 저는 어릴 때부터 한 평생 주일에는 집에 가지 않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교회에서 살았습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들 중에서 가장 귀중하고 복되고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있는 교회들이 모두 귀중하고 복되고 아름다운 교회들은 아닙니다. 학원과 같은 교회들도 있고 회사와 같은 교회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소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을 내려다 보셨을 때 일곱 교회들 중에서 주님의 칭찬을 받은 귀중하고 복되고 아름다운 교회는 두 교회 밖에 없었습니다. 다섯 교회들은 모두 주님의 책망을 받은 문제가 많은 교회들이었습니다.

저는 오늘의 한국교회가 부족한 것이 없다고 자랑하던 라오디게아 교회와 비슷하게 된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이야말로 한국교회가 순수하고 귀중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조금이라도 되 찾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기회말교봉기가 충만한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어떤 교회인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로, “기도”가 충만한 교회가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교회를 세우신 성자 예수님께서 “기도” 하시는데 전력을 다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 집은 기도하는 집” 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 1:35).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눅 5:16).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맟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눅 6:12).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눅 22:44).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마 21:13).

부활하신 성자 예수님께서 사십일 동안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고 승천하시기 전에 부탁하신 말씀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함께 모여서 기도하면서 성령의 임재를 기다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 일백 이십 여명이 마가의 다락방에 함께 모여서 열흘 동안 전력을 다해서 기도하다가 성령의 충만을 받고 예루살렘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행 1:13-15). 예루살렘 교회는 “기도”로 시작했을 뿐 아니라 계속해서 “기도”에 전력을 다했다고 했습니다. “저희가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2).

둘째로, “회개”가 충만한 교회가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교회를 세우신 성자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제일 먼저 선포하신 말씀이 바로 “회개하라”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리”(마 4:17).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에 부탁하신 메시지도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복음을 모든 족속에게 전파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 24:47,48).

성자 예수님께서는 부활 승천하신 다음에도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다섯 교회에 편지를 써서 보내시면서 “회개하라” 라는 말씀을 다섯 번 써서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 2:5). “그러므로 회개하라”(계 2:16).

셋째로, “말씀”이 충만한 교회가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교회를 세우신 성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는데 전력을 다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막 1:14).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요 7:16).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요 12:49,50).

넷째로, “교제”가 충만한 교회가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교회를 세우신 성자 예수님께서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 만나서 “교제”하시는데 전력을 다하셨기 때문입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부도덕한 수가성 여인을 찾아가셔서 친밀하게 교제하시고, 세리장 삭개오를 찾아가셔서 친밀하게 교제하시고, 저주 받아 마땅한 핍박자요 포행자요 살인자인 사울을 찾아가서 친밀하게 “교제”하신 너무너무 이상하신 분이셨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교제”가 충만한 귀중한 교회였습니다. “저희가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2).

다섯째로, “봉사”가 충만한 교회가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교회를 세우신 성자 예수님께서 자기가 세상에 오신 목적이 “섬김”과 “봉사”를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고 모든 종류의 죄인들과 병자들을 친히 “섬기고” “봉사” 하시는데 전력을 다하셨기 때문입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예루살렘 교회는 “섬김”과 “봉사”가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4-47).

여섯째로, “기쁨”이 충만한 교회가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교회를 세우신 성자 예수님께서 친히 기뻐하셨고 그리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가라사대”(눅 10:2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 5:11,12).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요 15:11).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에게는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을 받으면서도 오히려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저희가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행 5:40,41).

사도 바울은 “기쁨”의 참 근원을 찾아낸 사람이었습니다. 주님 안에서 그리고 성도들과의 사랑의 교제 안에서 “기쁨”을 발견했습니다. 이와 같은 “기쁨”은 사도 바울의 가슴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가슴 가슴에도 전염되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옥중에서 매를 맞으면서도 기뻐하며 찬송을 불렀는데 그때 그 기쁨은 간수에게 전염되었고 루디아에게 전염되었고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전염되었을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랑의 “기쁨”과 섬김의 "기쁨"이 충만한 가장 이상적인 교회였고 가장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사랑의 “기쁨”이 없는 교회는 건강한 교회도 아니고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도 아니고 행복한 교회도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빌 3:1).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항상 기뻐하라”(살전 5:16).

이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어떤 교회가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 입니까?

첫째로, “기도”가 충만한 교회가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회개”가 충만한 교회가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셋째로, “말씀”이 충만한 교회가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넷째로, “교제”가 충만한 교회가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다섯째로, “봉사”가 충만한 교회가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여섯째로, “기쁨”이 충만한 교회가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여섯 가지를 줄여서 “기회말교봉기”가 충만한 교회가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라고 말합니다. “새로운 시작”을 시도하는 강변교회가 “기회말교봉기”가 충만한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를 바라며 축원합니다.

이제 “기회말교봉기가 충만한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 라는 제목의 설교를 마무리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곳은 교회이고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일은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정성껏 예배 드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성자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서 사신 성자 예수님의 몸과 머리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교회를 사랑하는 것보다 귀중하고 아름다운 일은 없고 교회에 나와서 정성껏 예배 드리는 일보다 귀중한 아름다운 일은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한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교회를 집보다 일터보다 더 귀중하게 여기면서 사랑하며 섬기면서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예배 드리는 일을 공부하는 일보다 돈을 버는 일보다 놀러 다니는 일보다 더 귀중하게 여기며 사랑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라고 늘 고백하면서 주님의 교회를 사랑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귀중하게 여기시고 기뻐하시는 교회다운 귀중한 교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시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교회다운 교회가 되려면 목회자와 신자들이 말씀과 기도에 전혀 힘쓰고, 교제와 떡을 떼는 일에 전혀 힘쓰고, 그리고 구제와 섬김과 봉사하는 일에 전혀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회말교봉기”가 충만한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찬송가 “내 주의 나라와 주 계신 성전과”(246, 208) 를 함께 부르시겠습니다.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명예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