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청주 양성교회
일시: 2022년 6월 5일
본문: 베드로전서 4:12-16, 시편 119:7

김명혁 2019년 12월
▲김명혁 목사. ⓒ크투 DB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고난의 귀중한 의미”에 대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성경은 고난의 귀중하고 아름다운 의미에 대해서 너무너무 섬세하고 상세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귀중한 말씀들의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성부 하나님께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의 유익에 대해 하신 말씀들을 인용합니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와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사 58:6-11).

“하나님이 나의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감찰하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창 31:42).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보시고 그 고난을 감찰하셨다 함을 듣고 머리 숙여 경배하였더라”(출 4:3).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욥 5: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 119:67).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나의 고난이 막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시 119:107). “나의 고난을 보시고 나를 건지소서”(시 119:153).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는 고난 당하는 자를 신원하시며 궁핍한 자에게 공의를 베푸시리이다”(시 140:12).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욘 2:2).

둘째로, 성자 예수님께서야말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의 삶을 사시다가 고난의 죽음을 죽으셨다고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의 죽음을 죽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 귀중한 말씀들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마 16:21).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니라”(히 3:18).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고후 1:5).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히 13:12).

성자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가라사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눅 6:20).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눅 16:20-23).

시편 119편의 저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전 7:3).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은 유익한 것이고 귀중한 것이고 보배로운 것입니다. 우리 구주이신 성자 예수님의 삶이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으로 가득한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의 삶을 이렇게 묘사하시기도 했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마 8:20).

이사야 53장은 성자 예수님께서 당하실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이렇게 기술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사 53:4).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성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심으로 극심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당하셨습니다.

셋째로, 사도 바울이 지녔던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자 예수님의 따뜻하신 부르심을 받고 처절하게 회개한 다음 성자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며 닮게 된 사도 바울의 삶은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으로 충만한 삶이었습니다. 그가 기술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의 리스트는 아주 길고 다양합니다.

고린도후서에서 아주 길게 기술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3-27).

고린도후서 12장에서도 자기가 당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기술했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 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 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12:7).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10).

넷째로, 사도 베드로가 지녔던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조만간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정식으로 반대를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책망하시면서 자기를 따르려는 사람은 십자가의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몸에 지고 죽을 각오를 하고 자기를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수 많은 실패와 배신과 좌절을 거친 다음, 디베랴 바다가에 나타나신 부활의 주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통곡하면서 회개한 다음 앞으로는 팔을 벌리고 자기가 원치 않는 죽음의 길로 가게 될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은 다음부터 조금씩 조금씩 십자가의 길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의 길로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결국 “가난과 고난과 시련과 불 시험과 능욕”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십자가의 예찬자가 되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십자가의 고난을 영광과 연결시키기까지 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 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 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찌어다”(벧전 4:12-19).

십자가의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피하는 대신 십자가의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달려간 사도 베드로는 결국 사도 바울과 함께 로마 세계를 십자가의 복음과 십자가의 죽음으로 무너뜨린 초대교회의 가장 보배로운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다섯째로, 성 프랜시스가 지녔던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 프랜시의 삶이야말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으로 가득했습니다. 성 프랜시스는 이태리 앗씨시의 부유한 포목상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는 아버지로부터의 상속권도 재산도 평안한 삶도 세상의 향락도 모두 버린 채 한 평생 “가난과 고난과 청빈”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성자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글자 그대로 실천하며 살려고 최선을 다했는데 두 벌 옷을 가지지 않고 신을 신지 않고 맨발로 걸어 다니며 한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성 프랜시스는 자기는 “가난이라는 이름의 여인과 결혼했다”고 선언하며 절대 청빈과 완전 무소유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죽기 2년 전 라베르나 산에 들어가 깊은 기도에 빠졌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도대체 당신은 누구이시오며 작은 벌레 같은 저는 무엇입니까? 오, 내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제가 죽기 전에 두 가지 은총을 허락해 주소서. 한 가지는 당신께서 수난에서 당하셨던 그 고통을 제 영혼과 육체도 체험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 또 한 가지는 그 어떤 고통도 사랑으로 감내할 수 있는 극치의 사랑을 제게도 넘치게 주시옵소서.”

바로 그때였습니다. 프랜시스의 몸에는 마치 불덩어리를 댄 것 같은 고통이 일어나 그는 그만 까무러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의 두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에 심한 통증이 일어났습니다. 상처가 생겼고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이후 죽기까지 극심한 고통을 몸과 영혼에 지니며 살다가 고통스럽게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무한한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는 1226년 10월 3일 4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 주님 품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는 둘러 서 있는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여기 서 있는 형제들과 여기 없는 형제들의 죄들을 용서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진정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전합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마지막 말을 하고서 눈을 감았습니다. “오, 나의 자매 죽음이여.” 성 프랜시스는 성자 예수님을 너무너무 사랑하고 “가난과 고통”을 너무너무 사랑하다가 그리고 “가난과 고통” 자체가 되어서 살다가 죽었습니다.

여섯째로,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이 지녔던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손양원 목사님만큼 그렇게 진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몸에 지니고 산 사람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애양원 나환자들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함으로 주어진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몸에 지니고 감사하며 살다가 48세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신사참배를 거부한 대가로 피나는 “고문과 박해”를 당했습니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 순천 반란 사건 때는 그렇게도 사랑하던 두 아들 동인이 동신이가 공산당에 의해서 총살을 당해서 죽은 너무나 “슬프고도 아픈 비극”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두 아들이 총살을 당해서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손양원 목사님 내외는 엄청난 충격에 쌓여 비통해 했습니다. 반란 사건이 진압되고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손양원 목사님은 밤을 새워 통곡하고 울면서 기도하고 교회를 나오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했습니다.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내 아들들은 죽어서 천국에 갔지만, 안재선은 죽으면 지옥 갈 텐데,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결국 손양원 목사님의 마음에는 커다란 사랑의 폭풍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를 살려야 한다. 그를 용서해야 한다. 그를 사랑해야 한다.” 10월 26일 두 아들의 시체를 담은 관이 애양원 뜰에 도착했을 때 손양원 목사님과 정양순 사모님은 관 위에 엎어져 울부짖으며 비통해 했습니다.

그런데 두 아들을 잃은 슬픔과 비통함이 그렇게 컸었는데도 불구하고 손양원 목사님은 두 아들을 총살한 그 좌익 학생을 용서하고 사랑하기로 결심을 한 것이었습니다.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이 체포되어 총살을 당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손양원 목사님은 계엄 사령관에게 딸을 보내어 그를 사면할 것을 간청했습니다. 그를 양자로 삼아 교육시키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안 가겠다고 반항하며 대드는 딸 동희를 설득하여 용서의 메시지를 전달하게 했습니다. 아버지는 듣지 않으려는 딸을 설득했습니다.

“동희야 내 말 잘 들어 봐라. 내가 무엇 때문에 5년 동안이나 너희들을 고생시키면서 감옥 생활을 견뎌냈겠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었겠느냐? 제 1,2 계명과 함께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도 똑같은 하나님의 명령인데 내 어찌 이 명령은 순종치 않는단 말이냐. 원수를 사랑하라는 명령에 순종치 않는다면 과거 5년 간의 감옥살이가 모두 헛수고요, 너희를 고생시킨 것도 헛고생만 시킨 꼴이 되고 만다. 그러니 동희야, 가만히 생각해 보아라. 그 학생을 죽여서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되겠느냐?”

딸은 몇 번이나 반항하며 아버지에게 소리를 지르며 대들었습니다. 혹 용서는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아들을 삼는다는 것은 무엇이냐고 악을 쓰며 달려들었습니다. 딸은 자기 의지에 반해 아버지의 하나님 절대 신앙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결국 딸은 아버지의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를 국군 심문자에게 그대로 전하므로 처형되기 10여분 전에 원수를 살려냈습니다. 동희 양은 취조 군인에게 달려가서 이렇게 아버지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아버지가 두 오빠를 죽인 자를 잡았거든 매 한 대도 때리지 말고, 죽이지도 말라 하셨어요. 그를 구해 아들 삼겠다고요. 성경 말씀에 원수를 사랑하라 했기 때문이래요.”

그는 숨도 쉬지 않고 단숨에 말을 토해 놓고는 책상에 엎드려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동희 양의 말이 끝나고, 동희 양이 울음을 터뜨리자 방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충격을 받은 듯했습니다. 취조를 하던 군인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가 떨어진 줄도 모르고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으며 “위대하시다” “위대하시다” 라고 감탄의 소리를 토해 냈습니다. 안재선까지도 고개를 숙인 채 흐느껴 울고 있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한국교회가 사랑하고 존경하고 자랑하는 사랑의 원자탄이 된 데는 보통 사람이 경험하지 못한 극도의 “가난과 고난과 고통과 슬픔과 아픔”이 있었던 것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손양원 목사님과 정양순 사모님에게 있어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은 가장 값지고 가장 아름다운 보석이 되었습니다. 그 보석은 하늘에서도 찬란하게 빛날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추가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한경직 목사님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던 성 프랜시스의 영향이 손양원 목사님에게도 미쳤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동휘 목사님과 강원용 목사님과 아중표 목사님에게도 미쳤다는 사실입니다.

일곱째로, 부족하고 또 부족한 저의 삶은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와 사랑과 축복으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몸에 지니고 사는 삶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저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과 어머니의 삶이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몸에 지니고 사는 삶이었고, 어릴 때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별한 저의 삶이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몸에 지니고 사는 삶이었고, 나중에는 저의 사랑하는 어린 아들 철원이의 삶과 죽음이 극심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몸에 지니고 살다가 죽는 모습이었습니다. 이제 그 이야기를 간단하게 줄여서 하려고 합니다.

저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은 신의주 제이교회에서 9년동안 목회에 전력하시면서 가난과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셨는데 일본 시대에는 신사참배를 반대한다고 자주 감옥에 잡혀가서 감옥생활을 하셨고 해방후에는 평양 서분밖교회에서 목회하시면서 공산주의 정부와 협력하지 않는다고 자주 감옥에 잡혀가서 감옥살이를 하시다가 6.25 전쟁이 일어날 즈음에 순교를 당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주일성수와 신앙생활을 바로 하기 위해서 11살때인 1948년 8월 캄캄한 밤에 38선을 혼자서 뛰어 넘어 남한으로 온 다음 서울에서 이모님을 만나서 이모님과 함께 살게 되었는데 신앙의 자유를 누리게 되어서 너무너무 감사했는데 어머니와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수년 동안 밤마다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축복으로 이성복 목사님 김치선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들을 만나서 사랑과 도우심을 받으면서 신앙생활을 마음껏 하게 되었고 서울중학교 서울고등학교, 서울 대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를 마음껏 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좋은 목사님이 되기 위해서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12년 동안 여러 좋은 학교에서 신학과 역사신학과 선교학을 연구하게 되었는데 가난과 고난과 슬픔은 여전히 저를 따라 다녔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으로 유학을 갈 때 비행기 탈 돈이 없어서 104불을 주고 미국 군함을 타고 2주 반 동안 걸려서 미국으로 가게 되었고 주머니에 가지고 간 돈은 100불에 불과했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여러 종류의 아르바이트 즉 노동을 했는데 마루 청소, 화장실 청소, 인쇄소 일, 도금공장 일, 식당 접시 닦기, 판매원 일, 페인트 칠하기, 정원 가꾸기 등등 여러 종류의 일들을 했는데 힘은 들었지만 나의 수고로 좋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만족하면서 좋아했습니다.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 중에서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일은 뜨거운 여름에 페인트 칠하는 일과 정원 가꾸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몇 시간동안 일을 한 다음 땅 바닥에 들어 누어서 잠깐씩 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페인트 칠과 정원 가꾸는 일을 하면서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곤 했습니다. 낡은 집이 깨끗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바뀌는 것을 바라볼 때 잦는 기분이 아주 좋고 재미가 있었습니다. 흐트러져 있던 정원과 화단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꾸어 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은 십자가의 주님을 따르기를 소원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가장 유익하고 가장 귀중하고 가장 아름다운 보석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당하는 모든 종류의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거부하거나 피해가려고 하면 안될 것입니다.

모든 종류의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에는 깊은 영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이 당하는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통해서 조금은 겸손해지고 조금은 따뜻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조금은 우리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의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에 참여하게도 되고 조금은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당하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로 가까이 다가가게도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천국을 바라보면서 준비하게 만들기도 때문입니다.

지금 이곳 저곳에서 어려움을 당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여러 분들이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의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 모두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위로와 평안과 은혜와 축복을 가득하게 베풀어 주셔서 모든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귀중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며 축원합니다.

고린도후서 12장 10절을 읽고(“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찬송가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363장) 함께 부르시겠습니다.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명예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