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부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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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한복음 6장 62-63절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말씀하는 본문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믿지 못하고 수군거렸습니다.

그때 주님이 “앞으로 더 큰 일이 일어날 것인데 그때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반문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것에 대한 질타입니다. 이 본문을 배경으로 ‘이전에 있던 곳으로’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부활 승천을 예고하다
언젠가 하늘로 다시 돌아간다는 부활승천 예고입니다.

주님 말씀을 믿지 못하는 유대인들에게 주님은 은근히 답답한 속내를 드러내십니다. 이 정도를 믿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면 어떻게 하겠느냐? 앞으로는 이 정도가 아니라, 더 엄청난 일들이 전개될 것이라고 응수합니다.

주님이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분명히 앞으로 일어날 미래에 대한 암시입니다. 이 말은 엄청난 사건이 일어날 것을 예고하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이 미래의 일은 여러 가지가 겹쳐 있습니다.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란, 먼저는 승천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승천에는 십자가의 죽으심 이후에 일어날 일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죽으신 후 부활하심이 전제되어야 가능합니다.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간다”는 말에 여러 가지 함축적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믿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안타까움에서 하신 말씀이 미래에 일어날 구속의 사건이었습니다.

단순히 점층법을 뛰어넘어 비약이 등장했습니다. 의미를 한 단계 높이려는 점층법이 아니라, 아예 뛰어넘는 엄청난 비약의 말씀입니다. 간단한 말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유대인에게는 더 혼란이 가중되었을 것입니다. 이전에 있던 하늘로 돌아간다고 했으니 말입니다.

2. 주님의 선재를 계시한다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62절 말씀에서는 주님이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감을 암시하셨습니다. 그러면 ‘이전에 있던 곳’이란 선재적인 의미입니다. 존재의 근본을 다시 언급하는 부분입니다.

철학에서는 사물의 근원을 ‘아르케’라고 합니다. 사물의 근본을 말할 때, 아르케를 기본 명제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자신의 이전에 있던 곳을 밝힘으로써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선재(先在)를 계시합니다.

“내가 이전에 있던 곳이다”입니다. 이를 풀어 설명하면, “언젠가는 내가 전에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너희들이 보게 될 것이다”는 말입니다. 한치 앞을 보지 못하는 인간과 너무 비교되는 부분입니다.

어제까지 멀쩡한 사람이 오늘 갑자기 죽은 사람으로 발견되는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내일을 내다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사람은 미래가 궁금해, 점을 보면서 기대려고 합니다.

사람은 미래를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주님은 앞으로 일어날 미래에 대해 예시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주님 말씀 그대로 모두 진행되고 실행되었습니다. 예언하신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미래에 대해 하신 말씀은 예언이자 계시였습니다. 그 예언과 계시를 유대인들이 알지 못한 것뿐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날까?” 해서 믿지 못하고 의심했습니다. 모두가 사실 그대로 되었는데 말입니다. 주님의 선재의 진리를 믿지 못하는 불신앙 때문이었습니다.

3. 영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영적인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금 주님은 유대인들에게 영과 육을 비교해서 말씀합니다. 영적인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서라는 지적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기준이 잘못되었다는 이유입니다.

주님 말씀을 육적인 차원으로 이해하면 어렵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육적이란 논리와 이성으로 이해하려는 태도입니다.

그러면 주님 말씀을 “논리와 이성으로 이해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영적인 주님의 말씀을 인간의 이성과 논리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말씀은 영적인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제시입니다. 인간의 이성과 논리는 과학이기 때문입니다.

과학은 어떻게, 즉 방법에 대해 질문하고 그 해답을 구하는 방식입니다. 반면 영적인 진리는 과학이 아니라, 믿음의 세계입니다.

믿음의 세계는 과학의 “어떻게?”라는 방법론보다는 “왜 그런가?”의 질문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따져서 아는 방법이 아니라, 먼저 믿음으로 받아들여서 깨닫게 되는 차원입니다.

이 원리를 알았던 위대한 과학자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성경을 최상의 철학과 지혜로 여긴다. 나는 어떠한 세속 역사에서보다 더 확실한 진실성을 성경에서 발견한다. 세상에 밝혀진 어떤 역사책보다 성경의 역사적 진실을 더욱 더 믿는다”고 믿음으로 고백했습니다.

김충렬
▲김충렬 박사.
4. 정리

세상에는 반드시 믿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믿음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주님의 영적인 진리입니다. 가는 인생의 길에 주님의 영적인 진리를 믿어, 놀라운 축복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는 주님의 예언이 성취됨을 믿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우리는 주님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계셨음을 믿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리고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영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반드시 축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
전 한일장신대 교수
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