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적 작품’으로, 기독교적 치유와 회복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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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록, 한 점의 그림] 훈데르트바서, 아픈 땅을 치료하는 예술가

자연계 모티브, 화려한 색상과 식물 형태 자주 등장
볼품 없어진 건물에 새 호흡 불어넣어 의미 되찾아
하늘과 땅의 이혼에도, 하나님 사랑 흘러감 보여야
이 세상 회복 상상하며 작은 일부터 환경 돌봄 실천

▲하우스(훈데르트바서, 오스트리아 빈, 1977-1986).

▲하우스(훈데르트바서, 오스트리아 빈, 1977-1986).

오스트리아 태생의 훈데르트바서(Hundertwasser, 1928-2000)는 유럽의 곳곳을 여행하면서 독학으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개척한 독특한 이력의 예술가이다.

그의 예술을 형성하는 데는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쉴레, 안토니 가우디 등 유겐트스틸(Jugendstil)의 미술가들이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자연에서 유래된 부드러운 곡선을 조형 어휘로 구사한 공통점을 지녔다.

훈데르트바서를 말할 때 자주 등장하는 용어는 ‘친환경적 미술가’라는 애칭이다.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Friedensreich Hundertwasser)라는 이름 자체가 “평화롭고 풍요로운 곳에 흐르는 백 개의 강”이란 뜻으로 그가 추구하는 정신을 알려준다.

그의 작품에는 화려한 색상과 식물성 형태가 자주 등장하며 자연계에서 착안된 모티브들로 구성돼 있다.

건축가로서 그의 신념은 매우 뚜렷하다. “집을 지으면서 파괴된 자연을 다시 지붕 위에 올려놓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우리는 불법적으로 자연에서 빼앗은 영토를 자연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말하자면 그는 자연의 손님인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빼앗은 것을 돌려줄 의무를 지니므로, 건물 옥상에 흙을 올리고 풀과 나무를 심어야 할 것을 주장했다.

자연 돌봄은 적극적으로 작품속에 반영된다. 대표적인 예가 빈 소재의 훈데르트바서 하우스(Hundertwasser House)이다. 임대아파트지만 디자인이 독특하여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싶어하고 사계절 관람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작품은 식물과 인간의 공존을 바탕으로 제작됐는데, 곳곳에 나무가 자라고 지붕에 잔디와 나무를 심어 마치 숲에 와 있는 느낌을 갖게 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건축물이 푸른 자연으로만 인식될 때, 건축물은 자연의 ‘이물질’이 아니라는 소신대로 자신의 작품도 녹색의 일부로 남겨두었다.

그런 추진계획의 일환으로 나온 개념이 ‘나무 세입자(Tree Tenant)’이다. 훈데르트바서는 나무가 당당히 건물의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것을 ‘나무 세입자’로 불렀다.

그에게 ‘나무 세입자’는 도시속 ‘숲의 대사’로서 인간의 중요한 동반자로 기능하며 도시를 다시 인간이 자유롭게 숨쉴 수 있는 곳으로 만들 수 있다고 보았다. ‘세입자’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나무를 의인화한 것이 재미있는 발상이지만, 자연을 그만큼 중시하고 있다는 표시이다.

그의 ‘나무 세입자’ 이론에는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자연의 권리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는 그만의 철학이 내재돼 있다.

또 한 가지 주목되는 것은 ‘곡선’이 조형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유대인이었던 작가는 ‘곡선’이 창조주로부터 부여된 것이며, “직선은 하나님이 부재하고 부도덕하다”는 신념을 품었다.

즉 기하학적인 직선은 창조적인 것이 아니며, 자연을 돌보라는 신의 말씀을 거역한 불순종의 표시라는 것이다.

물론 그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나무의 형태 역시 직선이며, 세포 역시 직선으로 된 것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런 주장을 하게 된 배경에는 자연적인 것을 보호하고 존중하려는 뜻에서 비롯됐으리라 추론하게 된다.

보다 근본적인 물음은 자연을 대하는 우리의 대응 방식이 크게 잘못돼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사업가들에게 자연은 ‘천연자원’을 의미하고, 피조 세계는 단지 이익 창출을 위한 ‘원자재’일 뿐이다. 자연 약탈은 재앙을 초래할 뿐이라는 교훈을 우리는 코로나19에서 뼈저리게 체험한 바 있다.

우리의 착각은 자연이 우리의 소유라고 오해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이는 성경의 정신에도 위배된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 사는 자들은 다 주의 것이로다(시 14:1)”.

▲스티텔라우 소각장(훈데르트바서, 오스트리아 빈).

▲스티텔라우 소각장(훈데르트바서, 오스트리아 빈).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도 이 땅 전체를 조립라인으로 바꾸는 권리를 보장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이 땅을 우리의 지배 아래 두셨기에, 우리는 이 땅을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피조 세계의 지속적 관리에 대해 책임이 있는 셈이다.

이런 인식의 틀에서 볼 때, 훈데르트바서의 생태주의 예술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그것은 자연을 남획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보살필 대상으로 여기는 인식의 전환에 있다. 훈데르트바서야말로 성경의 정신에 입각한 ‘행동하는 예술가’란 생각을 갖게 한다.

그의 대표작 중에는 쓰레기 소각장을 변모시킨 슈피텔라우(Spittelau)가 있다. 이곳은 다른 기피 시설과 마찬가지로 도시 환경의 시각적 오염으로 외면받는 곳이었다.

막상 이곳에 작품을 설치해 달라는 요청이 왔을 때, 작가는 고민하다가 이 프로젝트에 착수하게 된다. 곳곳에 화려한 색깔과 유기적인 패턴을 넣고, 공간을 재구성하면서 슈피텔라우는 놀랍게도 ‘꿈의 궁전’으로 재탄생했다. 그는 쓰레기 소각장을 기술과 생태가 결합된 예술 작품으로 바꾸었다.

이런 이유로 그는 ‘건축치료사’ 또는 ‘건축의사’로 불린다. 다시 말해 삭막하고 병든 건물을 고쳐, 인간의 존엄성과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도록 치료하는 예술가라는 뜻이다.

슈피텔라우 소각장을 비롯하여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유리병을 재활용한 공공화장실 등은 부정적 이미지를 지닌 건물을 새롭게 되살려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말하자면 볼품 없게 된 건물에 새 호흡을 불어넣어, 존재의 의미를 되찾아준 셈이다.

그의 건축을 기독교적으로 해석하면, 죄로 인해 손상된 자연을 치유를 통해 복구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오늘날 땅은 생물 다양성의 상실, 기후를 위협하는 공기와 물의 오염, 그리고 다른 많은 질병으로 고통을 받는다.

하워드 A. 스나이더(Howard A. Snyder)는 이를 땅과 하늘의 이혼에서 생긴 문제로 진단하면서, 우리는 하늘과 땅의 이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들, 모든 피조물에게 흘러가는지 보여주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그런 주장은 지구 환경이 위기에 빠지면서 설득력을 얻게 됐다. ‘동산의 치유’란 의제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의 문제가 된 셈이다.

훈데르트바서 역시 자연이 훼손된 원인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인간이 창조질서를 거역하고 ‘지구를 죽였다’는 데서 찾았다. 결국 그가 꺼내든 카드는 기독교적 의미를 지닌 ‘치유’와 ‘회복’이었다.

최종적으로 창조질서를 바로 세우시고 치유해 주실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지만, 그렇다고 그리스도가 오실 날만을 기다리며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협력자(cooperatio Deo)로서 맡겨진 책임을 저버리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훈데르트 바서의 ‘치료받은 건축물’를 보면서 이 세상이 회복되는 광경을 상상하며, 주위 작은 일부터 환경 돌봄을 실천해 보는 것은 어떨까?

▲서성록 교수.

▲서성록 교수.

서성록 교수
안동대 미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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