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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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선교단체와 일해야 할까?

독립군. 선교 사회에서는 선교단체 소속 없이 타문화권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독립군이라고 부른다. 어떤 이들은 지역교회 파송을 받으나, 그마저도 없는 이들이 있다. 괜찮을까? 개인적으로는 부정적이지는 않다. 선교사라는 타이틀이나 소속 단체 없이도, 미션얼 크리스천 또는 선교적 크리스천으로 살 수 있다. 또한 이는 미래의 방향이기도 하다. 이런 분들을 하나님께서 놀랍게 쓰신다. 그럼에도 지난 몇 년 동안, 인터서브의 문을 두드렸던 사람들 가운데는 약 절반 가량이 이런 독립군들이었거나, 선교단체가 없어지거나 어려워져서 독립군들이 되신 분들이었다. 왜 이 사람들은 선교 단체와 함께 일하려고 할까? 다음의 세 가지 이유 정도가 있다. 혹시, 이 질문이 있다면 참고하면 좋겠다.

하나. 공적인 직함 public mask

선교지에서는 직업으로 자신을 소개하면 된다. 의사, 목사, 교사, 주부 등등. 그러나, 한국에 오거나 한인 교회에 오게 될 때에, 자신을 설명할 타이틀이 필요할 경우도 있다. 특히 목사가 아닌 경우 더 난감하다. ‘어디 어디 소속 선교사예요’라는 말  한마디로 해결될 것을 한참 설명하게 된다. 이런 현실적 필요 때문에 선교단체에 들어오고자 한다. 좋은 동기일까? 실용적으로 필요한 동기이다. 그래도 된다.

둘. 펠로우십 Fellowship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펠로우십, 즉 성도의 교제가 필요하다. 이는 사도신경에 나올 정도로 우리 신앙의 중요한 축이다. 불교나 힌두교와 기독교를 가르는 중요한 차이점이다. 현지에서 이 펠로우십을 어떻게 할까? 독립군으로 나가도 현재 교회나 국제, 한인교회를 나가며 펠로우십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이런 교회들 대부분의 교인들은 선교적 정체성이 약하다. 예배를 드릴 수는 있으나, 깊은 고민들을 설명하고 나누기는 어렵다. 성도의 교제는 함께 예배드리는 것 이상의 깊은 교제를 말한다. 유월절날 예수님과 함께 식사를 했던 제자들,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제자들, 그들의 교제 가운데 성령님이 임하셨다. 제자들뿐이랴?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받았던 바울은 현장에서는 팀으로 일했다. 디모데, 누가, 실라, 바나바, 브리스길라, 아굴라와 같은 동료들과 교제하며 협력했다. 이런 펠로우십은 교회의 다른 표현이며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선교 단체에 소속되려고 한다면, 그건 바른 동기이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교회 공동체는 상호 헌신mutual commitment 으로만 가능해진다. 함께 하며 이런 교제와 기도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면 선교단체가 필요한 시점이다.

“선교 단체에 들어가면 무엇을 해주시나요?” 가끔 이런 직격탄의 질문을 받기도 한다. 이 시대의 소비주의 문화는 신앙 안에도 깊이 들어와 있다. 내가 부담하는 회비에 비례하여 서비스를 계산하는 영적 소비주의가 공기와 같이 익숙하다. 보통 내 대답은 이렇다. "별거 없어요.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은 현장의 작은 공동체, 그게 다예요. 그나마도 사람 모이는 곳이어서 문제들이 있어요. 가치와 목적에 동의해서 함께 원하심 할 수 있어요." 그런데도 함께 할까? 교회에 대한 바른 신학을 가진 사람이라면, 바로 이 별거 아닌 작은 펠로우십 가운데 성령이 임하신다는 것을 안다. 반면, 잘못된 소비주의적 기대를 가진 이들이라면, 굳이 선교단체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나을 듯하다.

셋째, 책무 Accountability

선교사는 하나의 직업이며 이 직업은 교회와 후원자들의 기도와 재정후원으로 유지되기에 공적 책임이 따른다. 아무런 평가와 점검과 소통이 없이 스스로 선교사라는 공직을 거론한다면, 이는 배임에 해당된다. 개인적으로는 최소한의 교회 파송도 없는 이들이 스스로를 "선교사"로 부르고 다니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선교단체는 개인들 스스로 지기 힘든 공적인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정기적으로 소속 선교사들의 사역과 건강성, 재정을 평가하고 이를 후원자들과 파송교회와 소통해야 한다고 믿는다.

사실, 이 부분은 선교사들에게 불편한 부분이다. 기질적으로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이들이 단체의 규약과 질서를 따르는건 쉽지 않다. 대표로 일하면서 가장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고, 힘들었던 순간은 문제가 있는 선교사들을 직면하고 책무 가운데 서도록 하는 일이었다. Order 질서. 수도원을 부르는 다른 이름이다. 우리 단체의 경우, 개인의 자유와 주도성을 존중한다. 그러나, 질서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스스로, 이 질서 가운데 책무를 지는 것에 분명한 이해가 있을 때 선교단체에 들어올 수 있다.

선교학자 랄프 윈터는 교회사 전체를 돌아보며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모달리티라고 불리는 지역교회, 소달리티로 불리는 선교단체, 이 두가지 구조를 통해서 이뤄졌음을 성찰했다. 많은 이들은 교회라고 하면 지역교회 만을 생각하지만, 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선교단체들이 했던 역할은 말할 수 없이 크다. 그 교회는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함께 예배하고, 그를 세상 가운데 증거하고, 상호 약속을 통해서 책무를 지기로 한 공동체이다. 건물, 제도, 재정 모든 껍데기를 떼고나면 남는건 이게 다가 아닐까? 놀랍다, 주님의 지혜여!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약속한 인간들의 작은 모임 가운데 성령은 일하신다. 그 비밀을 새롭게 발견할 때이다.

조샘 대표

*이 칼럼은 인터서브 5월 뉴스레터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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