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친구다모여 예수님과 함께한 마지막 7일
▲미디어 아트로 ‘마지막 만찬’을 재현한 모습(본 사진은 칼럼과 관련이 없습니다). ⓒ크투 DB
본문: 요한복음 6장 56-57절

연합체에 대해 말하는 장면입니다. 무슨 연합체인가 하면, 생명의 연합체입니다. 세상에 연합체가 많으니 헛갈릴 수 있습니다. 연합한다면서 하루도 못가 갈라지는 연합체도 많습니다.

여기서는 그런 일시적인 연합체가 아니라, 도저히 갈라질 수 없는 생명의 연합체입니다. 이 본문을 배경으로 ‘주님과 연합된 삶’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주님 안에서 사는 사람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라는 말입니다.

56절 말씀은 주님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권유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산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주님 안에 살아갑니까? 바로 주님과 우리가 연합체가 되어 살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얼핏 보면 성찬식에 대한 교훈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깊이 더 생각하면, 영적 의미를 믿는 자에게 주시는 연합체의 교훈입니다.

주님을 확실하게 믿는 사람은 주님과 연합체가 되어 살아야 하고, 또 살아가게 된다는 놀라운 비밀이 들어 있습니다. 이른바 둘이 하나가 된 생명의 연합체입니다.

생명의 연합체는 생명의 소통을 하게 됩니다. 생명의 연합체에서 일어나는 생명의 소통은 놀라운 기적의 삶입니다. 생명의 연합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그대로 지속되는 결합이기 때문입니다. 이 연합으로 인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생활이 가능해집니다.

우리는 주님과 하나 되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주님 말씀으로 단단히 묶여 한 덩어리로 살아갑니다. 이제 우리 가정생활과 모든 삶이 하나가 되는 영원한 뿌리를 두고 살아가는 고향의 삶이 돼야 할 것입니다. 주님과 연합체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2. 주님이 우리 안에 사는 사람
주님이 우리와 함께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사신다는 말은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나도 그의 안에 거한다”는 말씀은 함께 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믿는 성도 안에 산다”는 말은 성찬식의 교훈이 아닙니다. 영적인 의미를 믿는 자에게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약속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주님이 성도 안에 산다”는 말은 삶의 충만함과 풍요로움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는 사람의 삶은 이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삶이기 때문입니다.

툭하면 낙심하거나 좌절하는 삶이 아닙니다. 무엇이 안 된다고 쉽게 실망하지도 않습니다. 심한 열등감에 전혀 시달리지도 않습니다. 여건이 충분하지 않아도 새로운 창의성을 만들어내는 삶을 살아갑니다. 도저히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만들어가면서 살아갑니다.

주님이 그 사람 안에 살아계신 증거입니다. 그런 사람은 주님의 생각과 주님의 뜻을 따라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의 지체가 몸 안에 있는 것처럼, 우리는 주님과 얽혀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성전 안에 계시는 것처럼, 주님은 우리의 마음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이 상호거주의 조건은 무엇입니까? 주님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 내 안에 살고, 그 안에 내가 있다.”는 조건입니다. 이 신성한 조건의 동사가 현재 시제이며, 이는 주님의 지속적 유지를 암시합니다. 주님과 연합체 되었기에 “항상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약속이 따르는 이유입니다.

3. 주님도 하나님으로 인해 사신다
주님이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말입니다.

57절 말씀에서 주님이 하나님과의 연합은 주님이 중간 다리를 놓아 연합체가 된 사람을 의미합니다. “나는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자는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만 여기서 성경학자는 ‘나로 말미암아’의 전치사가 모호하기에, “나는 아버지 때문에 산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 더 낫다고 지적합니다. 개인적으로 성경도 혼동을 일으키는 ‘말미암아’를 현대어로 ‘인해서’, ‘의해서’, ‘통해서’, ‘때문에’로 적절히 바꾸어 사용하면 의미가 더 선명해질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아무튼 주님과 하나님과의 생명연합체는 의미심장합니다. 주님은 세상의 생명을 위해 아버지께 자신의 살과 피를 바치는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생명을 위해 목숨을 바치므로 죽음을 깨뜨리고 영원한 생명을 쟁취하셨습니다.

이렇게 주님은 하나님과 생명의 연합체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과 생명의 연합체가 되셔서 주님의 지위가 하나님 앞에서 유일무이(唯一無二), 즉 독보적이게 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듯. 성경에서 ‘살아계신 아버지’라는 말이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의로우신 아버지, 거룩하신 아버지, 살아계신 하나님’ 등은 있습니다. 그런데 ‘살아계신 아버지’라는 말은 여기에만 나옵니다. 바로 아버지와 아들이 생명의 연합체가 됨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김충렬
▲김충렬 박사.
4. 정리

우리가 살면서 누군가와 연합한다면 좋은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힘을 가진 사람이나 세력과 연합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런 연합이 모두 일시적이라는 사실입니다. 가는 인생의 길에 생명의 주님과 영원히 연합되는 축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는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주님과 연합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주님이 우리 안에서 사는 주님과 연합된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리고 주님과 연합된 사람은 주님으로 인해 하나님과 연합된 사람임을 믿게 하소서. 주님의 살과 피로 주님과 연합체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반드시 축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
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