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국 목사.
그믐달 여명에 걸렸다.

한강 상류를 지나는 차창이 을씨년스러운 건 심령의 착잡함 때문이랴. 아들과의 만남은, 개탄할 원죄(하나님 떠난 모든 인간의 죄)의 속성과 지극히 제한적인 무능력 앞에 회개의 눈물을 쏟아낼 수밖에 없는, 망연자실한 밤을 쓸었다.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 아들의 심리적 불안정은, 이혼한 부모의 재혼 가정을 왕래하며 받은 상처가 복합적 원인 중 하나라는 진단 결과다.

가정 파탄의 원인이 된 부모의 이혼과 헤어진 부모의 재혼 환경을 수용하기에 버거운 청소년기였으리라. 더군다나 친모의 재혼 상황을 숨긴 채 친부의 전적인 양육 지원을 받은 환경은 수용하기 힘든 이중적 짐이었으리라.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아들에게 상처가 된 친모의 열악한 재혼 환경은 안타까움을 너머 울화를 치밀게 한다. 재혼을 했으면 잘 살아야지, 못난 사람 그리고 못된 사람.

밤새 부르짖는 간구와 무릎 걸음은 육신의 앙금을 씻어내지 못하고 번민을 거듭한다. 기꺼이 죽음을 물리치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 생명의 주관자시여, 감사하고 감사한 은혜 중에 이혼이 만연한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강인한 완충의 멘탈을 아들에게 생성시켜 주옵소서! 기도하는 심령이 애달프고 서럽다.

오늘은 아들의 생일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영원한 생명을 은혜로 받기 위해 태어난 날이다. 둘째 아들이다. 둘째 아들은 아비가 낳은 아들이다. 둘째 아들을 임신한 임산부는 아들의 출산을 완강히 거부했다. 생명의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임산부는 큰아들을 낳을 때처럼 심한 입덧의 고통으로 몸부림쳤다. 결국 임산부의 소원대로 불법 낙태를 하는 산부인과를 수소문 끝에 찾아갔다. 기절한 임산부를 병원 소파에 뉘여 놓고 산부인과 의사에게 낙태할 의사가 없음을 알렸다. 의사는 기절한 임산부에게 낙태 불허를 알렸다.

오늘 낙태하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다고 희미한 입놀림을 거듭하는 임산부, 지금 당장 낙태해 달라고 애원하는 임산부를 들쳐 업고 큰아들을 출산한 산부인과를 찾아갔다. 임산부는 이미 의식이 몽롱한 상태였다.

다시 찾아간 산부인과는 기독교 교단에서 운영하는 산부인과다. 임산부가 죽을지언정 낙태를 불허하는 신본주의 병원이다. 그곳에서 둘째 아들은 태어났다.

유독 사랑스러운 아들이다. 사랑이 제일이라는 하나님 말씀처럼, 인생들은 생명이 존속되는 한 사랑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을 망각한 사랑은 본질적인 사랑의 실체가 아닐 수 있다.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이다. 믿음, 소망이 결여된 상태에서의 사랑은 안개와 같이 사라질 헛것이다.

인생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 죽음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영원한 생명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 슬픔, 애곡, 노여움, 두려움, 갈등, 대립 없는 천국 소망으로 감사의 삶을 살아가게 하신 하나님, 인생들은 그런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하나님께서 기꺼이 받아주시는 천국 소망 안에서 사랑할 때, 비로소 본질적 사랑에 다가간다.

비 소식이다.

때이른 폭염이 지속되고 있는 오월의 비 소식이 반갑다. 일기의 변화가 반가운 건 무엇인가 작은 변화를 통해 과거를 털어내고픈 열망이 생성되었음일까. 무기력한 부정적 사고를 뜯어내고 감사와 긍정의 미래를 수용하고픈 작은 불씨가 소생되었음일까.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17).

새로운 동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은 항상 열려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된다. 원치 않는 환경, 추악한 죄업, 막장의 막막함, 안타까운 사건, 부실한 대응, 안일한 냉소, 답답한 일상, 열악한 미래, 방향 없는 세월 모두 이전 것이라니 얼마나 좋은가.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린도후서 6:2).

하민국 목사
웨민총회 신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