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선교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사역, 성경번역 사역
우리 선교 타깃, 번역된 성경을 각 종족들에 나누는 것
방역 철저히 하면서 단기선교와 사역코스 오픈해 준비
한 번뿐인 인생, 가장 가치 있는 일에 바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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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봉헌된 첫 번역 미나 성경을 들고 기뻐하는 토고 여성. ⓒ대한성서공회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우리의 단기 선교 타깃은 무엇이 돼야 할까요? 지금 세계 선교는 적은 선교 헌신자로 어떤 단기선교를 지향해야 하는지 길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도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먼저 일반적인 상황을 살펴보면 2021년 전 세계 인구는 78억 명이고, 나라는 247개 국입니다. 이 중 UN 회원국은 193개 국, 비회원국은 53개 국입니다. 언어와 민족은 약 7,400개입니다. 이 중에 5백만 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언어와 민족은 약 100개 정도이고, 나머지는 소수민족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종교로 볼 때 기독교 인구 수는 32.3%, 약 25억 2천만 명 정도이고 이슬람은 24%로 약 19억 2천만 명, 힌두교가 14%로 약 11억 2천만 명, 불교가 7%로 약 5억 9천만 명, 나머지는 아시아의 소수종교, 아프리카와 밀림 지역의 토착종교들입니다.

한 가지 유념해야 할 사항은 지금은 기독교 인구 수가 가장 많지만, 2060년이 되면 이슬람의 자연적 인구 성장으로 기독교와 이슬람이 같은 인구 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선교해야 할까요? 돌파구를 찾기 위해 현재 선교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세계 선교를 위해 제일 먼저 필요한 사역은 성경번역 사역입니다. 코로나 기간에도 성경번역 사역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최근 세계성서공회연합회(UBS) 발표에 의하면 전 세계 7,359개 언어(78억 명 사용) 중 성경이 번역된 언어는 3,425개에 불과했습니다.

이 중 성경전서가 완역된 언어는 704개(57억 명)이고, 신약만 번역된 언어는 1,571개(7억 9천 3백만 명), 단편성경만 번역된 언어가 1,160개(4억 6천 3백만 명)입니다. 나머지 3,964개 언어를 사용하는 10억여 명을 위한 성경번역은 아직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한 가지 희망적인 소식은 위클리프 성경번역선교회에서 앞으로 2033년까지 모든 언어로 성경이 번역될 것이라고 발표한 점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불과 11년 후면 성경 번역이 다 끝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우리의 선교 대상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바로 번역된 성경책을 각 나라와 종족들에게 나눠주는 것입니다. 문서로, 디지털 성경으로, 영상 번역으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포스트 코로나 이후 우리의 선교 타깃이어야 합니다.

물론 이전과는 다르게 코로나19에 대한 방역은 철저히 지키면서, 단기 문서선교 학교와 사역코스를 오픈하여 각 종족들에게 성경책을 나눠주고, 장기 선교사를 파송하여 교회를 개척하는 세계 선교 사역을 출발하면 좋겠습니다.

단기선교 사역 중 성경나눔 사역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대동강변에서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의 일생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1840년 영국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1863년 런던선교회 파송으로 중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두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먼저 온 선교사들과의 갈등 관계였고, 둘째는 출장 중에 임신한 아내와 아이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토마스는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항의했고, 앞으로의 발걸음도 막막해했습니다. 토마스는 세관 통역관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세관에서 조선 사람들을 만나 조선에는 단 한 명의 그리스도인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조선 선교사로 헌신합니다.

그리고는 1865년 9월 백령도 근처의 작은 섬에 도착하여 성경 2백 권을 배포하고, 이 섬에 3개월 동안 머물면서 조선말을 배웁니다. 토마스는 다시 중국 북경으로 돌아가, 어떻게 하면 정식으로 조선에 들어갈 수 있을지 기도합니다.

이때 마침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조선에 들어가기 위해 조선어 통역관을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1866년 제너럴 셔먼호의 조선어 통역관 신분으로 승선하여 마침내 조선으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그런데 들어가자마자 배가 대동강변 모래밭에 침몰해서 오도가도 못하게 됩니다. 당시 조선은 쇄국 정책으로 외항선은 무조건 대항해 침몰시키고, 외국인은 현장에서 처형하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때마침 외항선을 본 조선 군병들은 제너럴 셔먼호를 보고 쳐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대로 외국인들을 모조리 칼로 쳐죽이고 배는 불에 태워버렸습니다. 토마스는 성경책 한 권이라도 더 조선인들에게 나눠주고 싶어 여기저기를 뛰어 다녔습니다.

그러다 조선 군병 박춘권에게 잡혔습니다. 토마스는 마지막으로 자기 품 속에 있던 성경책 한 권을 박춘권에게 웃으며 건네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칼에 맞아 피를 흘리며 죽었습니다. 이 때 그의 나이는 27살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토마스의 일생은 실패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가족이나 후손을 남기도 못했고 전도의 열매가 많았던 것도 아니었으며, 교회를 세운 적도 없었습니다. 그냥 성경책 몇 권을 몇몇 조선인들에게 나눠준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후 박춘권은 토마스로부터 받은 성경책을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금서이기에 숨겨놓았는데, 조카가 성경을 읽고 예수를 영접하게 됐습니다.

또 대동강변에서 토마스로부터 성경책을 건네받은 12살 최치량이 고을의 관원 박영식에게 건네줬습니다. 박영식은 책을 좋아하는 관리여서 집으로 가져옵니다. 그런데 집이 겨울 바람에 너무 춥다 보니, 성경책을 박박 찢어 문풍지와 벽지로 온 사방에 붙였습니다.

박영식은 밥을 먹을 때도 말씀이 보였고, 누워서 벽을 봐도 말씀이 보였고, 천정을 봐도 말씀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그의 생각에 남아, 마침내 예수를 만나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그 얼마 후 박영식의 집은 널다리골교회가 됩니다. 널다리골교회는 후에 평양 최초의 장대현교회가 됐고,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탄생지가 됩니다.

토마스 선교사가 성경책을 나눠준 사역은 보잘것없는 작은 오병이어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헌신이 한 사람을 살리고 여러 사람을 살렸으며, 조선을 살리고 오늘의 우리와 대한민국을 살리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기적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떻습니까? 단 한 번뿐인 인생을 가장 가치 있는 일에 바치고 있습니까? 아직도 우리 눈이 어둡고 마음에 허영이 많아서 주님의 영광, 주님의 일이 안중에도 없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그날에 주님께서 물으실 것입니다. “내가 네게 맡긴 사명을 너는 어떻게 했니?” 이 질문에 우리가 기쁘고 당당하게 대답하는 선교적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장찬익 선교사
아일레 선교회 대표
광주중앙교회 협동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