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주도 목사
▲현주도 목사. 
교회가 부흥되고 성장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목회자가 있을까?

교회의 부흥 성장은 누구나 꿈꾸는 것이다. 그런 그 꿈은 꿈일 뿐 나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다.

어떤 이는 특별하고 능력 있는 사람의 몫이라 치부해 버리고, 다른 목회자의 교세를 궁금해 하며 부러워하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대박집 쪽박집을 이야기한다. 대박나는 가게나 쪽박 차는 가게나 이유가 분명하다. 손님이 몰려오는 곳은 그만한 이유가 있고, 망하는 가게 또한 분명한 이유가 있다.

장사하는 가게와 교회를 비교할 수 없지만, 일반적 상황 속에서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러한 부분을 생각해 볼 때, 부흥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곳이나 부흥에 대한 의지 자체가 없는 곳을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교회의 부흥은 더욱 막막하여졌다. 모이기에 힘써야 할 (히 10:25) 교회가 성도들이 모이지 않아 침체되고, 거리두기로 인해 전도의 거리는 더욱 멀어져만 간다. 거기에 한 술 더 떠 교회의 부정적 이미지를 제공하는 데 앞장서는 부류들로 인해 교회는 사회로부터 격리가 필요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가슴 앞은 현실 속에서 목회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모두가 주님을 만나는 은혜의 시간들이 있었다. 각자마다 다르게 다양한 형태로 그리스도를 체험했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만나는 계기나 방법은 각자마다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다짐한 것은 있었을 것이다.

“주여 제가 주를 위하여 무엇을 하리이까?”

은혜를 체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비슷한 고백이나 다짐을 했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목회자가 되었고 오늘에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어떤가? 여전히 그 은혜 안에서 처음 그 감동으로 살고 있는가? 처음 그 고백을 이루었는가? 아니면 이루어 가고 있는가?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반드시 찾으신다. 당신의 그 고백을(신23:21). 고백은 했지만 현실은 녹녹지가 않다. 전도하기는 더더욱 힘들어 지는 것 같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자신감도 떨어지고 현실의 벽에 부딪혀 전도는 커녕 예배드리기도 벅차다.

사람은 어떤가? 전도하려고 열심히 공을 드렸지만 실망만 안겨준다. 시간이 지날수록 경제적 어려움은 더해진다. 몸은 천근만근이고 질병까지 찾아온다. 삶이 힘들고 어려우니 전도는 커녕 날마다 날마다 근심 걱정이다. 이러니 처음 그 고백은 사라져버린지 오래고 열정은 다 식고 차가운 냉수가 되어 버렸다.

여기서 묻고 싶다. 사람 대문에 실망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의 은혜와 비교할 수 있는가? 돈 때문에 힘든 것이 그리스도의 피 값과 비교할 수 있는가? 병으로 고생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찢기신 살과 비교할 수 있는가?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다고 해서 주님이 받으신 조롱과 수모와 고통에 비교할 수 있는가? 그의 은헤와 사랑은 영원한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탈종교화 시대라고 해서 MZ세대와 적응하기 힘들다고 해서 복음 듣기를 거부한다고 해서 포기할 것인가?

“왜 내야 해야 합니까?” 묻는다면

“왜 내가 해야 합니까?”라고 묻거나 회피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그 길을 위해 택함 받은 자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서원을 했든 안 했든 지금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안수하여 목회자가 된 나에게 사명이 주어졌다. 아니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마 28:19, 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며 목회자라면 더더욱 본을 보여야 하는 것이 전도다. 코로나가 있기 전 교인들과 같이 전도를 하다가 내가 담임목사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라면서 “목사님도 전도 나오시네요?”라고 말하던 사람도 있었다. 목회자가 전도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교회의 성장을 원한다면 전도는 반드시 행해야 할 필수사항이다.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막 16:15)이다. 은혜 받은 자의 당연한 결과물이다. 전도를 통해 교회가 성장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물론 교세가 크다고 해서 성공한 목회라고 할 수 없지만, 교세를 보고 평가하는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할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꿈꾸고 궁금해 하는 부분을 풀어헤쳐 보자. 물론 사람을 모으는 다양한 마케팅, 프로모션 기법들이 있지만 오늘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복음적 방법을 찾아 살펴보고자 한다. 교회가 부흥하기 위해선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될 것이 있다.

교회 부흥의 주체

그에 앞서 교회 부흥의 주체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부흥의 주체가 되시는 분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부흥할 수 있다. 사람의 생각으로 행하면 부흥하는 것 같으나 무너지고 무너지지 않는 것 같으나 속이 썩어 악취가 나는 곳이 되고 만다. 교회 부흥의 주체는 누구인가? 교회의 주인은 누구인가?

교회의 터가 되시는 이는 주님(마 7:24; 21:42; 고전 3:11)이시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돌이 되어주셨다(엡 2:20). 교회의 궁극적인 기초이심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어떤 인물이나 사상 체계도 교회의 기초가 될 수 없다. 다음으로 교회의 몸이 되시는 이 또한 주님이다(고전 12:12~27; 엡 1:23). 교회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수요받은 유기체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로 채워지고 그리스도는 교회 안에 내재하시어 교회로 하여금 충만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르기까지 완전하도록 인도하시고 역사하신다. 교회의 머리되시는 이 역시 주님이시다(엡 1:22; 5:23; 골 1:18). 그리스도는 교회에 생명을 부여하시는 분으로 사랑과 온유 거룩함으로 지배하시며 통치하신다. 머리가 되신다는 것은 교회의 주인이 되시는 것이다(마16:18 행20:28; 골1:18).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터가 되어주시고 교회의 몸이 되어 주시고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교회의 주인으로 계신다. 그렇다면 교회의 주인이 되어주시는 예수님에게로 사람을 이끌려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사람을 이끄시는 이가 곧 교회 부흥의 주체가 되신다.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끄시는 주체자는 요 6:44, 65에서 확인 할 수 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이끈다”는 성령의 역사로 인한 중생을 말한다(고전3:16, 6:19, 12:3, 요일3:24). 즉 성령의 인도 속에서 교회로 향하게 되고 예수를 믿어 거듭나게 된다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가 부흥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교회의 주인은 성 삼위 일체 하나님이시고 교회 부흥의 주체 또한 성 삼위 일체 하나님이시다. 이럴 때 어떤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께 주권이 있으니 전도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은 말씀에 무지한자이거나 거짓 선지자와 같은 자일 것이다. 성경을 통해서 전도는 예수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이라는 것이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방법은 하나다. 전도다. 하나님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전도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고전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미련한 방법이라고 말하는 것은 전하는 내용이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내용과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전도를 해도 그만큼 전도에 대한 효과가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방법은 전도 외에는 없기 때문에 쉼 없이 복음을 전해야 한다. 다만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교회가 부흥하였던 상황들을 말씀해 주고 계신다. 지금부터는 성경 속에 나타난 교회 부흥의 상황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성경 속 교회가 부흥 성장한 상황

성경은 교회가 부흥했었던 그리고 부흥할 수 있는 상황들 몇 가지를 설명해준다. 첫째, 성령 충만할 때 교회는 부흥이 된다. 성령님은 교회 성장의 주체이시다. 그럼에도 교회에서 성령의 부재 현상을 자주 목격한다.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바로 열매이다. 그에게서, 또는 그 교회의 모습 속에서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고 있는가. 성령의 열매는 자의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들어 낸다 해도 쉽게 들통이 나게 마련이다. 반대로 성령이 충만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거룩함을 나타내고 권능을 행사할 수 있고 영성이 있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한 거짓이다. 교회 성장에 있어 성령의 절대적 역할을 잊어서는 안 된다. 복음은 사람을 통해서 전해지지만 그 복음을 통해 역사하시는 이는 성령님이시기 때문이다(행1:8; 고전2:4,5; 12:3). 이처럼 성령이 임하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담대히 전하게 된다. 성령께서는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사람을 변화시키시고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게 하시며 그 고백 가운데 믿음이 형성되게 하신다.

목회자치고 성령을 체험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성령 충만하여 성령과 일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성령 사역을 인정하고 성령님의 일하심을 구하는 것이 성령과 함께 일하는 것이다. 즉 성령에 매인 바 된 삶이다(행 16:6,7; 20:22). 성공적인 목회나 교회 성장을 원한다면 성령 충만을 소망하자. 그럴 때 교회가 부흥되는 시작이 될 것이다. 교회의 부흥에는 항상 성령의 활발한 역사가 있었다.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베드로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였다. (행 2:41) “사람들이 세례를 받으매 이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행 4: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더라” 교회 부흥의 주권은 성령께 있고 성공적인 전도를 위해선 성령으로 충만해야 함을 보여 준다. 성령 충만할 때 놀라운 기적의 역사는 시작된다.

둘째, 성령으로 충만하면 당연하게 따라오는 것이 있다. 바로 말씀 충만이다. 즉 말씀이 흥왕할 때 부흥성장이 이루어진다. 고아들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지 뮬러가 “현대 사회에서 믿는다고 하는 사람 중에서 성경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단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매우 걱정스럽다” 말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면서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목회자들은 어떨까? 안타깝게도 목회자들도 성경을 가까이 하지 않고 있다는게 현실이다. 목회자의 말씀 부재는 교회 성장을 막는 것은 물론이고 예배를 방해하는 요소가 되고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억누르고 본인 스스로 영적 갈급함에 빠지게 한다.

이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읽어야 한다. 기도하고 읽고,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기를 반복한다. 입맛이 있든 없든 삼시세끼 밥을 먹는 것처럼 우리 영혼의 양식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읽고 먹어야 된다. 묵상하는 동안 소화도 잘 된다. 이제는 매일 읽는 말씀을 체계화하는 연습을 한다. 성도들을 가르쳐야 할 목회자로서는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이다. 가르칠 수 있는 조직화되고 체계적인 성경지식과 능력을 갖추었다면 이제는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 능력 또한 은사로서 성령께서 주시는 것이기에 기도로 간구하고 전달하는 능력을 훈련해야 한다. 이렇게 반복된 훈련 속에 말씀에 맛이 나기 시작한다.

말씀이 맛이 나고 살아 있는 교회는 갈급한 영혼들이 모여들게 되어 있다(암 9:11).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말씀으로 무장되어 있는 목회자를 사용하신다. 성령의 검인 말씀의 검으로 무장되어야 사단 마귀도 틈타지 못하는 것이다. 말씀으로 무장되어 있으면 영적 먹거리가 풍부해 짐으로 영의 양식을 찾는 양무리가 모여드는 것이다(행 6:7; 19:20). 말씀의 흥왕함 속에서 말씀을 통하여 나타나는 능력이 샘솟듯 솟아난다.

셋째, 성령이 충만하고 말씀으로 무장되는 데 있어 반드시 동행되는 것이 있다. 기도이다. 기도할 때에 성령이 임하였다(행1:14; 2:1-4; 4:31). 기도가 끝나자마자 능력이 나타나고 있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라. 주님의 생애는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끝을 맺으셨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수시로 기도하셨다. 기도의 내용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기도였다. 그 결과 성령으로 충만 할 수 있었고(눅4:14), 구속사역을 이루실 수 있었다. 예수님도 기도하셨는데 우리는 왜 기도를 안 하는가. 기도할 때 성령으로 더욱 충만하여지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는 일어난다(약5:15,16).

교회가 성장하지 않거나 전도할 의욕이 없는 것은 기도하지 않는 죄를 범하기 때문이다(삼상 12:23). 기도하지 않을 때 주님이 주시는 권능도 성령의 역사하심도 사라진다. 기도하지 않으면 주님이 주신 권능이 사라지고 어떠한 능력도 나타나지 않는다(막 9:29). 사람들에겐 조롱거리가 되고 주님께는 책망을 듣게 된다. 사도들도 말씀과 기도에 전념을 했다(행 6:2,4). 말씀과 기도에 전념한 결과 성령의 역사는 뜨겁게 일어났다. 교회는 부흥이 되었으며 그리스도의 도가 오늘에까지 오게 된 것이다. 딤전 4:5에서 말씀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여지는 비결이다.

마지막으로 선한 행실을 나타낼 때 교회 부흥은 이루어진다. 교회 안에서 삶 속에서 전도하는 순간에도 사랑의 섬김이 있어야 한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말씀과 기도로 무장이 되었다면 이제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나라 백성의 신분은 소금과 빛이다(마 5:13-16). 소금의 맛을 내고 빛을 비추는 삶은 선한 행실을 뜻한다.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의 의를 드러내는 것과는 달리 그리스도인의 선한 행실은 율법을 온전히 이루는 사랑에서 비롯되며(롬 13:10)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결과물이다(약 3:17,18). 만약 성령으로 충만하고 말씀에 능통하고 기도에 능력이 따른다고 하여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 선한 행실을 통한 사랑의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 사랑이 없는 모습으로 전도를 한다면 회칠한 무덤인 위선자요 외식하는 자가 된다. 전도는 사랑으로 하는 것이다.

그 사랑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죽어가는 영혼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다. 선한 행실은 성령 충만한 결과물이고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생명의 향기이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기도 하다(마 5:16).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다. 예수님의 성육신 속에서 보여 주셨던 행적들을 배우고 따라야 한다. 그는 온유하시고 겸손하셨다(마 11:29). 그 온유는 온전히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삶이었고(빌 2:8)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은 종의 신분으로 오신 가장 큰 겸손이었다(막 10:45). 교회 성장을 원한다면 사랑의 섬김이 있어야 한다. 그 섬김은 선한 행실로 나타나게 되어 있으며 앞서 성령충만, 말씀, 기도와 병행될 때 교회의 부흥과 성장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많은 이들이 전도에 나선다. 그러나 실망 속에서 쉽게 그만둔다. 그 이유는 말씀과 기도가 부족하고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사랑의 섬김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도는 효과가 즉시 나타나지 않더라도 계속해 나가야 한다. 목회데이터연구소에서 조사한 자료를 보면 전도 후에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6개월 1년 이상 시간이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만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도는 쉬지 않고 꾸준히 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열매는 반드시 맺힌다. 교회 부흥은 하나님이 이루신다.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 복음을 전하는 발걸음을 그 발걸음을 아름답게 바라보신다. 초대교회 부흥을 이루셨던 하나님, 한국교회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 부흥을 이루시었던 하나님 그 하나님은 동일한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께서 오늘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내일 부흥을 허락하시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결정된다.

부흥은 부흥에 대한 믿음이 없기에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예수님도 고향에서는 능력을 나타내지 않으셨다(마13:58). 이유가 무엇인가.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믿을 때에 능력이 나타난다. 믿을 때에 믿음의 역사가 일어난다(막9:23). 그 믿음으로 말씀과 기도로 내 자신을 쳐 복종시키자. 한 알의 밀알이 되자.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변화되자. 그럴 때 성령께서 역사하실 것이다. 먼저는 내 자신의 영적 성장이 이루어 질 것이고 성도들과 가족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것이다. 성도들과 가족들의 영적성장을 통해 삶의 변화와 함께 부흥은 이루어질 것이다. 삶으로 전도하게 되고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더욱 복음을 전할 수 밖에 없게 되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영광과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삶으로 전환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때 진정한 부흥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부흥을 원한다면 이것만은 반드시 기억하자. 전도는 주님이 원하신다. 전도 외에는 구원을 알릴 수 있는 것이 없다. 전도는 사랑으로 한다.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말씀과 기도로 성령 충만하여져 대한민국에 다시한번 뜨거운 부흥이 이루어지는 놀라운 역사기 있기를 바란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계 2:7)